실제 추진 가능성보다 대국민 ‘정치적 메시지’…北 도발에 ‘경고’ 의미도

1월 11일 윤석열 대통령이 외교부·국방부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대통령실
1월 11일 윤석열 대통령이 외교부·국방부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대통령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일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 마무리 발언 중 “더 (북핵) 문제가 심각해져 가지고 대한민국에 전술핵 배치를 한다든지 우리 자신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며 핵무장론에 불을 붙였는데, 이런 주장을 한 배경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계속 ‘핵 비확산’ 고수하던 윤 대통령, 기존 입장 번복했나?

윤 대통령은 대선 예비후보 시절인 지난 2021년 9월 23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 2차 토론회에서 당내 대권 경쟁후보였던 홍준표 의원이 나토식 전술핵 배치를 주장한 데 맞서 “나토식 핵 공유를 하게 되면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해서 비핵화 외교 협상은 포기하는 게 된다”며 ‘자체 핵무장’에 대해선 아예 “비확산 체제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가능성이 많다”고 부정적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면서 당시 윤 대통령은 “미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사용하는 데 있어 우리의 관여 절차와 협의를 좀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확장 억제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확장 억제’에 방점을 뒀고, 홍 의원이 독일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가 자체 핵개발 가능성을 협상 카드 삼아 미국의 나토식 핵 공유를 성사시킨 점을 들어 “우리도 핵개발 할 수 있다는 방식으로 핵균형을 이룰 수 있다”고 반박한 데 대해서도 윤 대통령은 “이렇게 되면 핵군축으로 가게 되고 핵군축 협상을 하면 UN사 해체라든가 평화협상이라든가 주한미군 철수 같은 카드를 저쪽에서 가져올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국익에 손해가 날 수 있다”고 응수했다.

심지어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한 지난해 8월에도 윤 대통령은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에 대해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낼 생각”이라며 여전히 핵무장론과는 거리를 뒀으나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평가가 중론이던 지난해 10월 초 일부 언론보도를 통해 윤 정부가 미국에 전술핵을 공유하는 수준의 확장억제를 강화하자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고 핵무기를 탑재한 미 항모전단이나 핵잠수함 등 전략 자산을 한반도 주변에 상시 순환 배치하는 방안을 미국과 협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보도와 관련해 지난해 10월 13일 윤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 출근 중 ‘미국에 실질적 핵 공유를 요청했다는 보도가 있다’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국내와 미국 조야에 확장억제 관련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잘 경청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꼼꼼하게 따져보고 있다”며 일단 확장 억제에 무게를 둔 신중한 입장을 내놨고, 지난해 11월 미 워싱턴에서 가진 54차 한미안보협의회의에서 한미 양국은 핵전력 운용 공동기획과 공동연습에 합의했다.

이후 지난해 12월 26일 대통령실이 포함된 비행금지구역까지 북한 무인기가 침범하는 사태가 일어났고 야권이 안보 우려를 표하면서 윤 대통령에 맹공을 퍼붓자 올해 초인 지난 2일 공개된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은 “미국과 핵에 대한 ‘공동기획, 공동연습’ 개념을 논의하고 있고 미국도 상당히 긍정적”이라며 “사실상 핵 공유 못지않은 실효적 방안이 될 것”이라고 ‘한미 핵 공동연습’을 내세웠으나 이마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백악관으로 들어가는 길에 “NO(아니다)”라고 답하면서 논란이 일어났다.

결국 미 정부 측에서 한미 확장억제 강화 방안으로 북한의 핵무기 사용을 포함한 일련의 시나리오에 대한 한미 공동 대응을 모색하는 테이블탑 연습(실기동 훈련이 아닌 모의훈련)을 비롯해 윤 대통령이 발언한 한미 공동 기획(미국의 핵 정책 전략, 작전계획 등에 한국이 참여하는 것), 정보공유나 연습(미국의 핵 투발 전략자산을 동맹국이 재래식 수단으로 지원하는 시나리오를 실전적으로 훈련하는 것), 훈련 확대를 의미한다고 설명하면서 엇박자 논란을 진화했고, 윤 대통령도 지난 10일 AP통신과 가진 인터뷰(11일 보도)에서 거듭 ‘핵 공동기획·실행’ 방침을 부각했으나 갑자기 다음날인 11일 국방부·외교부 현안보고에서 ‘자체 핵무장’을 거론했다.

◆ 사실상 ‘국민 안심용’ 메시지…野 “무책임한 발언해” 맹비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비롯 관계자들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평화-안보대책위원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 / 권민구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비롯 관계자들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평화-안보대책위원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 / 권민구 기자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보면 10일부터 11일 사이의 단 하루 동안 한미 정부 간 북핵 대응 방침에 있어 갑자기 큰 이견이 생겨 일종의 대미 압박용 ‘협상 카드’로, 혹은 아예 실제로 추진하려고 자체 핵무장 가능성을 열어뒀다기보다 북한 도발에 엄정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 무인기 논란 등으로 국방 실태를 우려하는 여론을 진정시키기 위한 국내 정치적 메시지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장 ‘자체 핵무장’ 발언이 나왔던 지난 11일 국방부 연두업무보고에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한미 양국이 북한의 핵무기 사용 시나리오에 대응한 첫 군사훈련인 확장억제수단운용연습(DSC TTX)을 오는 2월에 실시한다고 했으며 올 상반기 예정된 군사연습인 프리덤쉴드도 역대 최장기간인 11일 동안 실시하기로 했다고 밝히는 등 ‘자체 대응’보다는 ‘한·미 동맹’을 통한 공동 대응에 무게를 뒀고 12일(현지시간) 미 백악관의 존 커비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도 “한국 정부가 핵무기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강조했다.

또 대통령실에서도 지난 12일 윤 대통령의 ‘핵무장’ 발언에 대해 “북핵 위협이 심화된다거나 북한 도발이 더 심각해진 상황이 왔을 때, 이런 전제가 있었다. 북핵 위협이 갈수록 고도화하는 상황에서 국민을 지키겠다는 국군통수권자의 의지, 각오 등을 더 분명히 한 말”이라며 “핵확산금지조약 체제를 준수한다는 원칙엔 변함이 없다”고 사실상 국민 안심 목적의 메시지였음을 내비쳤고, 신범철 국방부차관도 같은 날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대통령께서 자체 핵무장론을 제기하거나 한 건 아니고 대통령 지시는 현재 한미 간 논의되고 있는 확장억제를 내실화해서 국민을 안심시키라는 취지”라고 한 목소리로 해명했다.

더구나 윤 대통령이 북한 무인기 사태 이후인 지난 1일 육해공군 및 해병대 지휘관들에게 “일전 불사한다는 결기로 적의 어떤 도발도 확실하게 응징해야 한다”고 당부한 데 이어 문제의 ‘핵무장’ 발언이 나온 11일 국방부 업무보고 자리에선 “공격을 당하면 100배, 1000배로 때릴 수 있는 대량응징보복 능력을 확고하게 구축하라”고 지시하는 등 북한에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내려다 보니 ‘자체 핵무장’까지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무인기 사태를 고리로 ‘안보 무능 정권’이라고 지적하는 야권의 공세를 덮을 만한 초강경 발언이기는 하지만 야권은 윤 대통령의 ‘핵무장’ 발언이 너무 경솔하다고 비판을 쏟아냈는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핵무장이란 게 그렇게 쉽게 말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한미동맹에 심각한 균열을 가져올 수 있는 심각한 주제이고 실현 가능성도 전혀 없는 사안”이라고 지적했으며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무책임한 발언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연일 강경한 말폭탄도 부족해 직접 핵무장까지 언급하면서 한반도를 화약고에 빠뜨리고 경제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일침을 가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정청래 최고위원은 “자체 핵무장론은 한미동맹 깨자는 것이고 사실상의 반미투쟁이다. 아무말 대잔치가 불러올 재앙이 심각하게 걱정”이라고 꼬집었으며 급기야 박찬대 민주당 최고위원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다. 독자 핵무기를 개발하게 되면 경제 제재를 각오해야 한다”고 윤 대통령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 뿐 아니라 민주당은 내주 국회 국방위를 열어 국방부나 대통령실 관계자를 불러 북한 무인기 관련 질의를 이어가겠다고 윤 정부를 압박했는데, 13일 열린 민주당 대통령실 관련 의혹 진상규명단 기자회견 이후 국방위 야당 간사인 김병주 의원은 “국방위는 확대된 국방위를 여는 것으로 합의됐다. 경호 실패와 위기관리 실패를 따져보려면 경호처, 안보실이 와야 한다. 비행금지구역에 대해선 국토부가 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이 같은 야권의 요구에 미온적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그럼에도 이수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무인기 안보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을 위해 국방부는 물론 대통령실, 통일부, 국토부 등 핵심관계자가 반드시 출석해야 한다. 국방위를 통해 안보 참사, 거짓보고 진상과 책임을 밝히고 재발 방지책을 논의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민주당 진상규명단은 아예 “북한 무인기 침범은 결국 준비 안 된 대통령실 이전으로 발생한 것이다. 대통령실 이전 관련 의혹 전체를 즉각 전면 감사해야 한다”고 이슈 확대까지 나섰다.

◆ 홍준표·오세훈 등 여권까지 불붙은 ‘핵무장’ 주장 후폭풍

홍준표 대구시장(좌), 오세훈 서울시장(우). 사진 / 시사포커스DB
홍준표 대구시장(좌), 오세훈 서울시장(우). 사진 / 시사포커스DB

이런 가운데 여권에서는 반대로 자체 핵무장 주장은 문제없다며 ‘핵무장론’에 한층 힘을 실어주는 목소리가 나와 대조를 이뤘는데, 지난 12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와 미국이 같이 펴고 같이 쓸 수 있는 능동적 핵우산 전략이나 독자적 핵무장까지 검토해야 한다. 지금까지 전적으로 미국의 의지에 달린 수동적 핵우산으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했으며 윤 대통령의 핵무장 언급을 ‘안보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 민주당을 향해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북한의 위장평화 공세에 장단 맞춰주면서 북핵 고도화의 시간을 벌어준 원죄가 있다. 민주당은 북핵에 대해 언급할 자격 자체가 없다”고 응수했다.

그러면서 오 시장은 “민주당의 자중지란 발언은 북한과 중국이 한국의 안보 강화 대책을 공격할 빌미만 제공하는 이적행위일 뿐”이라고 수위 높은 공세를 퍼부은 데 이어 “얼마 전 2030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68%가 핵무기 보유에 찬성했고 이제 북핵에 대비해 모든 전략적 가능성을 열어놓는 게 국익에도 부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여론이 핵무장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실제로 한국리서치가 지난달 6~9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에게 실시한 여론조사(95%신뢰수준±3.1%P)에선 만일 미국의 핵우산 제공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 재배치하자는 의견이 과반인 53%로 나왔으며 전술핵 재배치마저 불발될 경우엔 국민 과반인 58.1%가 자체 핵무장해야 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온 바 있는데, 이는 ‘동의하지 않는다’(31.6%)고 답한 비율의 2배에 가까워 시사하는 바가 깊다.

그래선지 홍준표 대구시장도 13일 페이스북을 통해 “민주당은 아직도 30년 전 노태우처럼 평화 타령만 하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외치는 종북주의 근성을 버리지 않고 있고, 우리는 여전히 미국 눈치나 보면서 미국의 확장억제 정책에만 매달려 있다. 입으로만 외치는 확장억제 정책이 과연 핵공격을 우리가 받을 때 그 실효성이 있을까”라며 “우리 후손들에게도 북의 핵공갈 노예로 계속 살라고 하겠나. 전술핵 재배치를 하든가 나토식 핵공유를 하지 않고는 남북 핵균형을 이룰 수 없다”고 역설했다.

비록 이들 두 정치인은 이전에도 핵무장 관련 주장을 펼친 바 있지만 탈북자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까지 앞서 지난 9일 이데일리TV ‘신율의 이슈메이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도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한시적 핵무장과 같은 새로운 콘셉트를 만들어야 한다. 북한 김정은이 저렇게 나오니 우리도 일단 핵무장을 통해 핵 억지력을 갖추겠다는 것”이라고 입장을 내놓기도 해 정치권 내 핵무장 주장이 쉽게 잦아들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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