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자들을 위하여(6) - 어민들의 자살은 자살인가 타살인가

죽음은 끝이다. 모든 것의 종말을 뜻한다. 자금성의 황제도 중동의 석유왕도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도 죽음 앞에 무력하다.

백수의 왕 사자도 죽음은 피할 수 없다. 풀숲을 기어 다니는 버리지도 죽는다. 죽은 후 호화 장의차를 타고 묘지로 가는 재벌도 행려병 환자로 숨을 거두어 가매장 되는 인생도 마찬가지다.

차를 타고 달리다가 가끔 교통사고를 당해 숨진 짐승의 시체를 보는 경우다 있다. 끔찍스럽다는 생각과 함께 비명에 간 동물에 대한 연민을 금할 수 없다.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죽음이 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천재이든 인재이든 재난은 비극일 수밖에 없고 재난 뒤에는 또 다른 비극이 생긴다. 천재인 경우에는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으니 하늘을 원망하는 게 고작이지만 인재의 경우에는 다르다.

사람이 잘못해서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준 것이 인재다. 더 긴 얘기 필요 없다. 바로 태안 원유유출 사고다.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할 것이 없는 참사다. 백주에 날벼락이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삼성중공업의 해상크레인과 홍콩선적의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가 충돌해서 기름이 바다로 쏟아진 것이다. 서해안은 기름바다가 되었다.

농민은 땅을 의지해서 살아가고 어민은 바다가 목줄이다. 청정해역이라는 태안 보령 서산 서천 등은 양식 산업이 번창하는 곳이며 여름이면 서울을 비롯해서 전국에서 피서객이 몰려온다. 이들이 기름 오염지역의 주민들의 생존을 지켜 주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사고가 난 후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들인 삼성이나 유조선측은 침묵을 지켰다. 한국 최고의 대기업들이 소유한 삼성중공업이 책임을 누가 지느냐를 따지며 머리를 굴렸다. 피해 어민은 안중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사람이 죽어갔다. 먹고 살 수 없어 죽은 것이다. 자살을 한 것이다. 내가 잘못해 죽는다면 억울할 것도 없다. 그러나 지은 죄도 없이 내 목숨을 끊어야 했다. 왜 죽어야 했는가. 이들이 꼭 자살을 해야만 했는가. 절망 때문이다.

교통사고를 내고 뺑소니를 치는 놈이 있다. 뺑소니 운전사다. 뺑소니를 치는 바람에 사고를 당한 사람은 죽는다. 살인이다. 법은 뺑소니를 준엄하게 다룬다.

태안 유조선 기름유출 사건의 당사자인 삼성중공업이나 유조선측은 바로 사람 치고 도망친 뺑소니 운전자나 무엇이 다른가. 하늘이 용서 못할 파렴치한이다.

바다에 목을 매달고 살아가는 어민들이 기름 범벅이 된 바다에서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조개 한 삼태기 건지지 못하는데 무슨 수로 살 수가 있단 말인가.

사람만이 아니다. 바다 새들도 기름으로 목욕을 한 채 하늘을 날지 못하고 죽어갔다. 말을 못해서 그렇지 그들의 저주를 어떻게 다 받을 것인가.

백만이 넘는 국민이 서해안 바다로 몰려들었다. 군인들도 모였다. 조금이라도 기름피해를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초등학생들이 언 손을 호호 불면서 바위에 붙은 기름을 제거하는 모습을 가해자들은 눈이 멀어서 못 본단 말인가.

내 배가 부르니까 어민들의 쪼르륵 소리 나는 허기 진 배는 나 몰라라 해도 괜찮단 말인가. 사람은 희망이 있어야 산다. 아무리 배가 고프고 가난하다 해도 희망이 있으면 버티며 산다.

그러나 희망이 사라지면 무엇으로 산단 말인가. ‘차라리 죽어버리자’ 하는 말은 희망이 없다는 말이다.

“운규야, 아버지 정신적 고통에 못 살겠다. 나 보려면 지금 집에 들어와라."

이것이 무슨 말인지 아는가. 소원면 의항2리에 살던 고 이영권씨의 마지막 유언이다. 태안반도를 뒤덮은 기름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한달이 넘게 일을 했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점점 절망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자신을 도저히 지탱할 힘이 없어 끝내 목숨을 끊었다. 이건 분명 타살이었다.

태안군 근흥면 어촌마을에 사는 73세의 김 노인도 음독자살을 했다.
김 노인 역시 70 평생을 바지락을 캐며 바다에 의지해 살았는데 기름 유출 난리로 채취가 완전히 중단되었고 한 달 넘게 한숨만 쉬다가 약을 먹었다. 이 역시 타살이다.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집회 중에 농약을 마시고 몸에 불을 지른 지창환씨도 지난 19일 아침 세상을 등졌다. 살인이다. 분명한 살인이다.

삶의 희망이자 단 하나의 생계 수단인 굴밭과 양식장을 내 잘못이 아닌 남의 잘못으로 잃고 살 길이 끊긴 절망감에 삶을 포기한 것이다.

이영권씨는 한 달 넘게 하루 종일 복구 작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우체통에 쌓이는 것은 연체된 각종 세금과 공과금 납부서 뿐이고 작은 아들 장가를 보내야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고 한다.

거기에다 가해회사 보상 담당자들이 힘들게 복구 작업을 하는 현장에 와서 한다는 소리는 "무면허 양식장은 보상이 안 되고 면허 양식장도 3년간 소득을 증명할 근거가 없으면 전혀 보상을 받을 수가 없다"는 천벌 받을 소리를 지껄여 댔으니 절망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또 무슨 놈의 서류는 그렇게 많은가. 보상을 받는데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는데 대책위, 수협, 면사무소, 가해회사 등 이건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피해 어민들에게 할 짓이 아니다.

사람부터 살려 놓고 봐야 하는 게 아닌가. 국가에서 나오는 긴급구호 자금은 뭐가 그렇게 복잡하고 걸리는 게 많은가. 대한민국 행정이 느려터지기가 세계적이지만 사람 목숨보다 다급한 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사람부터 살려 놓고 볼 일이 아닌가.

태안주민들의 자살이 계속되자 그제야 제 정신이 들었는지 긴급생계자금과 국민성금 등 558억 원을 주민들에게 전달하기로 했다고 한다.

결국 사람이 죽어야 움직인단 말인가. 제 자식들이 죽어 나가도 그렇게 굼벵이처럼 움직일 것인가.

한국 제일의 재벌인 삼성중공업은 잘잘못을 가리기 위해 47일 간 뒷짐지고 계시다가 이제 사과 성명을 내신단다. 왜 그리 장고를 하셨나. 잘잘못 따지고 있었는가.

삼성비자금 특검 때문에 넋이 나간 것은 아닌가. 그럴지도 모른다. 삼성에버랜드가 발칵 뒤집혀 난리다. 미술품을 숨겨 놓은 창고에 특검팀이 들이 닥친 것이다. 수천 점의 고가 미술품이 발견됐다고 한다.

무식해서 잘 모르지만 대단한 미술품 애호가인 것만은 분명한데 몇 천억의 비자금을 쏟아 부어 사드리는 그림을 가운데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미소’가 90억이라 한다. ‘프랭크 스텔라’의 ‘베들레헴 병원’은 100억이라고 한다.

이런 고가 그림 몇 점 더 산 셈 치고 태안 기름 유출 사고지역에 긴급구호금으로 그 돈을 썼다면 어민들이 얼마나 망극해 했겠으며 귀한 목숨 끊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비자금 중에 10분이 1만 써도 피해어민은 희망을 찾는다.

절망의 끝에 희망을 찾은 어민들의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이 진짜 ‘행복한 눈물’ 아닌가. 그 모습에서 삼성은 행복을 찾을 수는 없는가.

예술을 사랑한다면 먼저 인간부터 사랑해야 되는 것은 아닌가. 삼성은 예술사랑 이전에 인간 사랑부터 매워야 한다.
사람의 목숨은 우주보다도 더 무겁다고 한다. 고관대작과 대 재벌의 목숨도 가출노동자의 목숨도 다를 게 없다.

가난한 어민의 자식이나 재벌의 자식이나 자식 귀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언론에 보도되는 유명 연예인이나 재벌 자식들의 자실 소식을 듣는다.


그 때 느끼는 감정은 어떤가. 아 아 저렇게 존귀한 목숨을 스스로 끊는다니. 탄식을 한다. 복에 겨워서 자살을 한다고 하는가. 아니다. 오죽하면 목숨을 끊겠는가. 그들도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목숨은 다 고귀하고 죽음은 더 없는 슬픔이고 비극이다. 태안의 어민들이 더 이상 목숨을 끊는 비극은 없어야 한다.

삼성은 아무리 비자금 특검 때문에 정신이 없어도 또한 법을 따지기 전에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인지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꼭 해야 할 일이고 재벌의 참 모습이다.

재벌의 변한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줄 수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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