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을 ‘기문국’으로, 장수를 ‘반파’로...문화재청도 폐기한 지명
시민단체 “전라도민을 일본의 후손으로 만들었다”...천인공노할 일

‘전라도천년사 바로잡기 전라도민연대’가 19일 오전 전북 남원 만인의총에 집결한 다음 전북도청에서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 전라도민연대 제공)
‘전라도천년사 바로잡기 전라도민연대’가 19일 오전 전북 남원 만인의총에 집결한 다음 전북도청에서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 전라도민연대 제공)

고려 현종 9년(1018년)에 오늘날의 ‘전라도’ 명칭이 정해진지 1천년을 기념하여 시작한 ‘전라도 천년사’에 식민사관 지명사용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전북·전남·광주 등 호남권 3개 광역 지자체가 손잡고 24억원을 들여 2018년부터 5년 동안 추진한 ‘전라도 천년사’가 ‘임나일본부설’에 휘말리게 됐다. ‘전라도 천년사’의 편찬업무는 전북연구원에서 맡았다.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이용돼 온 ‘일본서기’의 지명들이 ‘전라도 천년사’에 서술되었다는 것이 행안부 정보공개청구 자료로 드러났다.

16일 ‘전라도 천년사’에 남원을 ‘기문국(己汶國)’으로 서술(밑줄 적색부분)했다는 것이 행안부 정보공개청구 자료로 드러났다.
16일 ‘전라도 천년사’에 남원을 ‘기문국(己汶國)’으로 서술(밑줄 적색부분)했다는 것이 행안부 정보공개청구 자료로 드러났다.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은 일제가 과거에도 조선(가야 지방)을 지배했으니 다시 일본의 지배를 받아야한다는 제국주의 침략이론이며, 가짜학설이다.

정보공개자료에 의하면 남원을 ‘기문국(己汶國)’으로 장수를 ‘반파(伴跛)’로 기술한 것이 확인됐다. 다른 지방의 지명도 이와 같은 임나일본부설 지명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지명을 사용한다는 것은 일본의 가야 지배를 인정하는 것과 같다. 

남원을 기문국이라고 고쳐 부른 근거가 너무도 놀랍다.

과거 조선총독부 소속의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1922년에 처음으로 남원을 ‘기문국’이라 주장했는데, 그 이유가 기상천외하다. “지금 남원의 산성을 蛟龍山城(교룡산성) 이라고 써서 그 옛 이름의 자취를 남겼다. 己汶(기문) 즉 基汶(기문)이 남원인 것은 의심할 것 없다”고 단언했다. 그 이유는 남원이 섬진강 상류에 있다는 것과 교룡 산성의 용(龍)이 물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남원은 기문이라고 말장난을 했던 것이다.

‘전라도 천년사’의 처음 편찬계획은 고려로부터 1000년 역사를 대상으로 집필하려는 것이었으나, 기왕이면 전라도 전체 역사를 서술하기로 욕심을 내 고대사 부분을 포함하면서 부터 이런 문제가 터진 것이다. 전라도 천년사가 급기야 ‘오천년사’가 된 것이다.

가칭 ‘전라도천년사 바로잡기 전라도민연대(전라도민연대)’는 19일 오전 전북 남원 만인의총에 집결한 다음 전북도청에서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도지사와 전북연구원장의 면담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전라도민연대 측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전라도 오천년사의 왜곡 수준은 참으로 놀랍고 참담하기 그지없다”며 “ ‘일본서기’와 ‘임나일본부설’을 근거로 남원은 ‘기문국’, 장수는 ‘반파국’, 해남은 ‘침미다래’로 왜곡했고, 더욱이 ‘임나4현’까지 삽입하여 전라도를 통째로 일본의 식민지로 도배하여 전라도민을 일본의 후손으로 만들었다”고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일이라고 개탄했다.

이어 전라도민연대 측은 “전라도 오천년사가 왜식민지 오천년사가 되었다”며 누구의 장난이냐며 집필자 공개를 요구했다.

항의시위 참가자들은 “봉정식(출판기념식)을 취소하라” “기문국을 삭제하라” “공개검증을 실시하라” “최종본을 공개하라” 등의 손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전북도 이영일 학예관은 “6명의 집필 교수 가운데 5명은 기문가야라는 표현은 추정될 수 있다는 논지의 의견을 가졌고, 한 교수는 기문가야를 주장해 실리게 됐다. 기문이 일본서기에 나오는 지명이지만 남원과 장수 사이에 기문이라는 지명이 분명히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한 매체를 통해 해명했다.

도(道)측은 전라도민연대의 항의시위 등에 대해 대책을 논의하고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전한다. 

이 책의 출판 기념일은 21일로 예정돼 있으나 진통이 심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이 가야 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신청서에 남원고분군 조성 정치체 명칭을 ‘기문국’으로 기재했다가 시민단체의 반발로 해당 지명을 삭제했다는 2022.5.9자 공문. (자료 / 식민사관청산 가야사전국연대 제공)
문화재청이 가야 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신청서에 남원고분군 조성 정치체 명칭을 ‘기문국’으로 기재했다가 시민단체의 반발로 해당 지명을 삭제했다는 2022.5.9자 공문. (자료 / 식민사관청산 가야사전국연대 제공)

한편 남원을 기문국으로 표기하면 안 된다는 이른바 ‘기문국 논란’은 작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과정에서도 나왔다.

문화재청이 가야 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신청서에 남원고분군 조성 정치체 명칭을 ‘기문국’으로 기재했다가 시민단체의 반발이 일자 4월 ‘운봉고원 일대의 가야 정치체’로 수정했다. 문화재청도 남원을 기문국으로 표기하는 것을 삭제했다. 같은 이유로 당시 논란이 됐던 합천의 ‘다라’ 지명도 함께 수정 삭제했다.

정부가 대외적으로 기문국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임나일본부설을 옹호하고 식민사관을 조장할 수 있음을 공식 인정하고 사실상 폐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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