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포커스 / 이혜영 기자]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9일, 여야는 내년도 예산안 문제를 놓고 막판 협상을 벌이다가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결국 정기국회 내 예산안 처리는 불발됐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김진표 국회의장에게 마지막으로 본회의 개의를 요청했지만 야권의 '단독 예산 수정안'을 받아 드리지는 않을 것이기에 사실상 정기국회 내 예산안 처리는 시간 상으로도 힘든 상황이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와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양당 정책위의장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여야정 회동을 가지며 막판 담판 협상을 시도했지만 여야의 양보 할 수 없는 치열한 신경전으로 인해 끝내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 정기국회 내 예산안 처리 불발, 주호영 "죄송...법인세 인하 문제 때문"

특히 여당의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간담회를 열며 "국민 여러분께 정말 죄송하다. 내년도 예산안 법정 시한인 12월2일 지키지 못한 적은 있어도 정기국회 마지막날인 9일은 넘긴 적이 없는데 오늘은 사실상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된 것 같다"며 "회기 내 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어려울 것 같다"고 고개를 숙였다.

주 원내대표는 "예산안이 큰 줄기가 합의돼도 소위 증감에 대한 시트(예산명세서)를 정리하는데 12시간 이상 시간이 필요한데 여야 합의에 이르지 못 한 상황"이라고 설명하면서 여야의 이견을 좁히지 못한 이유에 대해 "가장 중요한 건 법인세 인하 문제"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윤석열 정부가 법인세 인하를 요구하고 있지만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갖고 납득되지 않는 이유로 법인세를 높이 유지하는 게 민주당 정체성이라는 이유를 들며 이 안을 거부하고 있다"며 "그래서 세법이 합의되지 않고 있다"고 부연했다. 

반면 '초부자 감세를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누누히 밝혀왔던 민주당은 "최고세율은 매년 영업이익이 3000억원 이상 나는 법인에 한한 것"이라고 반박하면서 강하게 반대하며 총력 방어전을 펼쳤는데, 다만 민주당 소속인 김진표 의장은 국회의장으로서의 책임도 있기에 최고세율을 2년 유예 후 감면하자는 중재안을 여야에 제시했지만 양측 모두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은 새롭게 출범한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인 내년도 예산안을 거대야당의 힘으로 윤 정부가 짜놓은 계획대로 하지 못하도록 방어했기에 언뜻 보기에는 민주당의 승리라고 보여지지만, 신년도 예산안이 정기국회 회기를 넘긴 경우가 2014년 이후 처음이기에 민주당 소속인 김 의장에게는 불명예를 안게 되어 사실상 민주당이 승리라고 볼 수만은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관측했다.

◆ 박홍근, 민주당 잘못 아니다 피력 "정부 원안과 민주당 수정안 모두 올라가 있어"

특히 박홍근 원내대표도 마찬가지로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었는데, 그는 "민주당은 정기국회 안에 예산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엔 변함이 없다"며  "지난 1일, 2일 헌법이 정한 시간에도 국회의장이 본회의를 열지 않았다. 국민의힘도 본회의 개최에 반대해 무산된 바 있다"고 밝혀 민주당의 잘못이 아니라고 피력했다.

아울러 박 원내대표는 "오늘이라도 정기국회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예산안을 처리하는 방법은 있다"며 "정부 원안이 본회의에 올라가 있다. 여기에 민주당이 마련한 '(단독) 수정안'을 국회의장이 처리할 의사가 있다면, (김 의장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정기국회 내 내년 예산안을 처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지금이라도 국회의장이 결단하고 국민의힘이 이를 수용하면 가능한 문제인데, 국회의장은 여야가 합의한 수정안을 마련해 오지 않으면 민주당안 만으론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김 의장은) 여야가 합의하지 않은 이상 정부안으로도 처리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며 "그래서 우리 민주당은 남은 안건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이라도 해야 한다 말했지만, 김 의장은 예산안 처리가 우선이란 입장을 반복했다"고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박 원내대표는 "저희는 국회의장이 지금이라도 정부 원안이건, 민주당 수정안이건 처리할 의사를 밝히면 거기에 따른 절차를 통해 국민 염려를 덜어주는 방향으로 정기국회 내 예산안 처리에 임하면 된다는 생각"이라며 "국회의장이 이마저도 불가하다고 공식 선언하면 저희로선 매우 유감이고 안타깝지만 결국 여야가 더 지속적 협상을 통해 예산안 타결을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더나아가 그는 "정기국회 말미에 예산안을 둘러싸고 여야의 협상 줄다리기가 있어도 이렇게까지 현격한 입장차를 갖고 시간을 끌었던 적도 없을뿐더러 정부·여당이 예산안을 저렇게 소극적 미온적으로 회피한 적 없었다"고 비판하면서 "우리로선 정말 양보할 수 있는 최대치로 해내면서 임했다. 가급적 양보할 것을 양보하면서 여기까지 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 대통령실도 쓴소리, 이진복 정무수석 "정부가 일하도록 도와주는 것도 국회가 할 일"

한편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의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에 대해 대통령실도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는데, 특히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마지막에 좀 막혀있는 것 같던데 시간을 갖고 논의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상황을 짚으면서도 민주당이 단독 수정안으로 제출하겠다고 예고한 것에 대해 "좋은 모습이 아니다. 민주당은 그게 옳은 방법인지는 잘 판단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또한 이 정무수석은 민주당의 지역화폐 등 이재명표 예산 증액 요구에 대해 "제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과거에 포퓰리즘에 가까웠던 예산들, 정부가 빚을 끌어안고 가면서 만들었던 예산안으로 인해 긴축재정 만들어 국민 살림살이를 바르게 만들려는 행정부의 의지가 끊기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반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민주당을 겨냥해 "왜 정권을 바꾸고 왜 선거를 치렀겠냐"며 "국민이 원하는 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국회가 할 일인 것이다"고 부연했고, 이어 "그 과정에서 여야가 생각이 좀 달라고 조정을 해야 한다"며 "(민주당이 단독으로) 예산을 일방적으로 통과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 추경호 장관 "정부도 타협안 줬는데 야당 너무 완강해, 더이상 제시할 게 없어"

아울러 이날 여야 회동에 참석했던 추경호 장관도 합의 불발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보였는데, 그는 "정부도 타협할 수 있는 안을 줬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며 "그러나 (법인세법 개정안과 관련해) 야당 입장이 아직 접점을 좁히기엔 완강하다. 그래서 나머지 결단은 양당 원내대표가 대화를 더 해달라고 주문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추 장관은 "이제 정부가 더이상 타협안을 제시할 게 없다"며 "제 역할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꼬집으며 국회로 탓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