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내세웠던 ‘힘을 통한 평화’ 모방한 文?…‘안보’ 명분으로 난국 돌파 속셈

24일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 긴급회의를 주재하면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 ⓒ청와대
24일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 긴급회의를 주재하면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 ⓒ청와대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임기 동안 대체로 대북관계에 있어 ‘평화’, ‘대화’, ‘협력’ 메시지를 내는 데 방점을 두면서 올해 초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 횟수를 급격히 늘렸음에도 별 반응을 내놓지 않던 문재인 대통령이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려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안보 우려를 표한 것을 계기로 돌연 북한에 대해 ‘강한 안보를 통한 평화’란 자세를 취하기 시작해 임기 말에 이르러 당선인과 ‘안보 이미지 경쟁’을 하려는 듯한 모양새다.

◆ 文 “北미사일 발사해 안보 엄중…강한 안보 통한 평화”, 갑자기?

문 대통령은 서해수호의 날인 25일 자신의 SNS에 “어제 북한이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한반도 안보 상황이 매우 엄중해지고 있다. 강한 안보를 통한 평화야말로 서해 영웅들에게 보답하는 최선의 길”이라며 자신의 임기 동안 이뤄진 국방예산 증가와 전투기·잠수함 등 국산 무기체계 개발이나 전력화 등을 거론한 뒤 “우리는 철통같은 국방력과 평화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20대 대선이 치러지기 2달 전인 올해 1월만 해도 북한은 불과 1개월 동안 7차례라는 역대 최다 발사 기록을 세우기도 했는데,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 대상인 탄도미사일을 6차례나 발사한 이후에도 청와대는 유감만 표명했을 뿐 국가안전보장회의도 문 대통령이 아니라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주재했으며 7차례 발사 때인 30일에야 문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직접 주재하는 ‘둔감한’ 모습을 보인 바 있다.

그 이후인 2월은 물론 3월 대선 직전까지도 북한은 계속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문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직접 주재하지 않았으며 임기 전체를 통틀어도 직접 주재한 경우는 지난 24일 회의까지 합쳐봤자 고작 13차례에 불과한데, 24일 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 유예를 스스로 파기한 것”이라며 “한반도와 국제사회에 심각한 위협을 야기하고 유엔안보리 결의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역설했으나 그간 있었던 탄도미사일 발사도 이미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이었고 심지어 이날 발사된 미사일은 북한 보도에 따르면 지난 16일에도 발사된 미사일과 동일한 화성-17형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25일 보도한 대로면 24일 발사된 미사일은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인 화성-17형으로 앞서 지난달 27일과 지난 5일, 지난 16일에도 발사된 미사일과 같은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보이는데, 정작 그때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이미 쐈는데도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직접 주재하지 않다가 24일 발사 이후 갑자기 회의 주재에 이어 25일에 SNS를 통해 안보 관련 메시지를 내놓은 데에는 진정으로 북한 미사일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기보다 사실상 윤 당선인을 의식한 행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 안보 강조하는 文·민주당, 사실상 안보보다 윤석열 의식?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인수위원장과 부위원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사진 / 김기범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인수위원장과 부위원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사진 / 김기범 기자

당초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회동하기로 했다가 당일 취소되는 이례적 사태가 벌어진 지난 16일만 해도 양측 간 갈등 원인은 인사권 문제로 관측됐을 뿐 용산 국방부 청사로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는 문제는 그 이후에나 갈등 요소로 떠올랐는데, 비록 실패로 끝나긴 했어도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시험을 한 지난 16일엔 정작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하지 않았던 문 대통령이 청와대를 국민에 개방하고 용산 국방부 청사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겠다는 윤 당선인의 구상이 분명하게 나온 이후인 24일에 갑자기 안보회의를 주재한 것은 국방부 청사로 집무실을 이전하는 데 대해 반대한 이유로 내세웠던 ‘안보 우려’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를 보여주듯 24일 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정부 교체기에 안보에 한 치의 빈틈도 없도록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유관국 및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모든 대응 조치를 철저히 강구하라”고 한 발언은 윤 당선인과 청와대 이전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던 지난 22일 국무회의에서의 내놨던 “국정에는 작은 공백도 있을 수 없다. 특히 국가 안보와 국민 경제, 국민 안전은 한순간도 빈틈이 없어야 한다. 정부 교체기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란 발언과 표현 면에서도 크게 다를 게 없다.

차이가 있다면 문 대통령이 24일 회의에선 “대통령 당선인 측과도 긴밀하게 협력하라”고 주문한 점인데, 윤 당선인 측에서도 물러서기는커녕 강공으로 맞서고 지난 19일만 해도 ‘청와대 집무실의 국방부 이전으로 안보 공백이 우려된다’면서 윤 당선인을 압박했던 역대 합참의장들까지 23일에 “윤 당선인의 용산 집무실 이전이 안보태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가운데 이상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고 동참하겠다”고 입장을 바꾸자 돌파구를 찾기 어려워진 문 대통령이 ‘안보’를 고리로 윤 당선인과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갤럽이 지난 22~24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조사한 문 대통령 국정수행평가 결과(95%신뢰수준±3.1%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도 문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힌 부분은 19%를 기록한 ‘새 정부·당선인에 비협조’였으며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이 곧 취임할 당선인과의 기싸움을 장기화해봤자 어차피 물러나야 해 유리할 게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따라 서훈 국가안보실장은 문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지시한대로 25일 오후 윤 당선인을 예방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관련 동향과 정부의 조치, 전망과 대책 등을 브리핑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이 같은 사실을 밝힌 데 이어 국가안보실이 당선인 측과 정부 교체기에 외교안보 현안에 빈틈없이 대응하기 위한 협력을 지속해나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는데, 당선인과의 기싸움으로 여전히 양자 간 회동은 이뤄지지 못하더라도 여론엔 당선인에게 협조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는 행보로 보이고 이를 증명하듯 더불어민주당에서도 25일 윤호중 비대위원장이 비대위 회의에서 윤 당선인을 겨냥 “북한이 ICBM 도발까지 하고 있는데 바늘만큼의 빈틈이 있어선 안 된다. 청와대 이전에 무조건 올인 할 게 아니라 안보 공백을 먼저 생각하라”고 압박에 나섰다.

하지만 대선 전만 해도 윤 당선인이 ‘힘을 통한 평화’를 강조하는 데 대해 민주당에선 호전적이란 공세를 취했고 특히 ‘선제타격’ 발언에 대해선 문 정부의 국방백서에도 있는 표현이지만 전쟁 위기를 조장한다며 맹공을 퍼부었던 민주당이 대선이 윤 당선인 승리로 끝난 뒤엔 오히려 ‘안보를 생각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정략적 공세 차원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또 우리나라만 타격범위에 포함되는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북한이 발사했을 땐 사실상 묵과하던 문 대통령이 미국까지 사정거리가 닿는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에만 격한 반응을 내놓는 점도 미국 대통령이 아닌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선 납득하기 어려운 행보란 지적도 없지 않은데 윤 당선인이 공약한 사드 추가 설치를 반대해온 이유 중 하나로 그간 여권에서 우리나라를 보호해주는 게 아니라 미국까지 타격하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방어하는 체계란 논리를 내세웠던 점에 비추어 본다면 북한의 단거리탄도미사일보다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만 성토하는 문 대통령의 반응 역시 똑같이 문제 삼아야 하나 민주당은 여기엔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

◆ ‘안보’ 내세우려던 文과 민주당, 국민의힘에 맹폭 당해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좌)와 태영호 의원(중), 허은아 수석대변인(우). 사진 / 시사포커스DB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좌)와 태영호 의원(중), 허은아 수석대변인(우). 사진 / 시사포커스DB

이처럼 북한보다는 실상 윤 당선인을 염두에 둔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안보’ 발언에 윤 당선인 측에서도 맞불을 놨는데,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25일 브리핑에서 “안보에 대한 윤 당선인의 의지는 명확하고 오히려 더 국방부 청사로 저희가 들어가는 것을 통합과 소통의 의지뿐만 아니라 안보에 있어서도 더 확실하고 안보강국으로 든든한 외교안보를 펼칠 것을 국민들이 믿고 선택해주셨다고 생각한다”며 용산 국방부 청사로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에서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고 왜 미사일 발사 때마다 당선인 입장이 나오지 않느냐는 질문엔 “현재 군 최고통수권자는 문 대통령이라 (당선인은) 반 보 뒤에 서 있는 게 관례”라고 응수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국민의힘에선 ‘안보’를 강조하는 자세를 취하는 문 대통령을 겨냥 허은아 수석대변인이 25일 논평을 통해 “(북한이) 위장 평화쇼를 벌이면 문 정권은 거짓 제스처에 장단 맞추며 안보 현실을 외면한 채 종전선언에 집착해왔다. 수차례의 미사일 도발에 단호한 대응은 찾아볼 수 없었던 ‘북한 바라기’ 문 정권에 북한은 보란 듯 임기 말 최대의 위협을 감행했고 문 정권 스스로 자초한 결과”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같은 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북한이 미사일 발사해도 ‘미상 발사체’ 운운했다. 대통령이 임기 말에야 북한 미사일 도발을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말한들 그것을 믿을 국민이 어디 있겠느냐”며 “문 정권의 안보정책은 완전히 바닥에서부터 무너졌다. 5년간 문 정권은 굴종적인 대북정책과 일방적 대북 구걸로 북한의 배짱과 콧대만 키워줬다”고 문 대통령에 직격탄을 날렸고 같은 당 태영호 의원은 아예 이날 페이스북에서 “문 정부가 집권 5년 내내 떠들어온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파산했다”고 주장했다.

한 발 더 나아가 태 의원은 이번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 “윤석열 정부를 시작부터 길들이려는 것”이라며 “차기 정부가 임기 초부터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도록, 그리고 김정은 정권이 남북관계 주도권이 자기에게 있다고 오판하지 않도록 대통령 집무실 이전 등의 문제를 전향적으로 처리하고 윤 당선인과 새 정부에 힘을 실어주기 바란다”고 거꾸로 문 정권 압박까지 나섰는데, 이 같은 역공 외에도 설상가상으로 민주당까지 ‘안보 이미지’를 부각시켜보려다 실수를 범해 빈축을 사게 됐다.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서해수호의 날인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은 서해 연평도에서 북한의 기습 공격을 당한지 20년째 되는 날이다. 2002년 3월 26일 북한 잠수정의 기습 공격에 맞서 끝까지 서해를 지켜내신 쉰다섯 분의 서해수호 영웅들을 잊지 않겠다”고 글을 올렸다가 올해 20년을 맞은 제2연평해전과 북한 잠수정 공격으로 발생한 2010년 3월 26일의 천안함 피격사건을 혼동한 것 아니냐는 비판만 받았다.

당장 국민의힘 허은아 수석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 박 위원장을 겨냥 “본인이 참석한 행사가 무엇을 위한 행사인지, 날짜만 헷갈리는 게 아니라 내용까지 모르는 것인가. 정부여당의 부족한 역사인식과 호국영령을 등한시하는 마음이 개탄스러울 뿐”이라며 “집권여당 비대위원장으로서 필요한 기본적인 소양과 역사관부터 갖추기 바란다”고 직격했는데, ‘안보’를 명분 삼아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을 압박하려던 문 대통령과 민주당으로선 도리어 공격당하기 좋은 구실만 준 자충수가 된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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