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부터 북한 규탄까지…尹 SNS ‘한줄 공약’도 따라하는 이재명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좌)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우). 사진 / 시사포커스DB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좌)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우). 사진 / 시사포커스DB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선후보가 지지율 상승을 위해 갑자기 문재인 정부와 여러 면에서 다른 기조를 취하며 ‘변신’을 시도하는 모양새지만 결국 국민의힘 등 야권에서 주장해온 바와 겹치면서 졸지에 따라하는 꼴이 되고 있다.

◆ ‘탈원전→감원전’ 물러서더니 아예 탈원전 반대 인사 영입?

이 후보는 지난 19일 과학기술정책토론회에서 “원자력 위험성 문제는 단순한 공포가 아니다. 우리 원전이 많이 위치하는 지역에 지진 문제도 있는 게 사실로, 원전 숫자도 상당히 많고 밀집도도 전세계적으로 가장 높고 수백년 만에 1개 사고가 나도 엄청난 피해가 있을 수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다만 지난해 12월 과학기술 공약 발표 당시엔 문 정부의 탈원전이 아니라 자신은 ‘감원전’이라고 밝혔고, “국민이 원하면 신한울 3·4호기 재개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발언했었는데, 이 후보가 “이미 가동하고 있거나 건설 중인 원전은 계속 진행해서 가동 연한까지 사용하되 신규로 짓지는 않겠다”고 했던 만큼 결국 감원전도 탈원전과 별 다를 게 없는데다 ‘신규로 짓지 않겠다’는 말이 무색하게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가능성은 열어뒀다는 점에서 말장난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지난달 31일 이채익,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등은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을 호도하지 말라. 감원전은 문 정부가 추진한 탈원전에 기존에 계획했던 신한울 3·4호기만 추가할 수도 있다는 말장난”이라며 “이 후보는 건설재개에 우호적인 국민 여론을 눈치 채고 조건부 건설재개를 운운하며 감원전론을 들고 나왔다. 작년 말에만 해도 원전을 시한폭탄이라고 했던 이 후보가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를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조삼모사고 나중에 ‘건설재개 검토해보겠다고 했더니 정말인 줄 알더라’라며 말을 확 바꿀지도 모른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실제로 국민의힘 윤 후보가 탈원전 정책 전면 백지화를 공언하자 지난 27일 민주당 선대위 기후위기탄소중립위원회의 양이원영 의원은 성명을 통해 “윤 후보의 탈원전 백지화, 원전 최강국 건설은 어이없는 공약이다. 이재명의 대안은 태양광, 풍력발전 최강국 건설”이라며 “탄소중립위원회에서 발표한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감안하면 30% 비중 유지를 위해서 신한울 3·4호기 같은 대형 원전은 34기, SMR은 689기가 필요한데 핵폐기장은 대체 어디에 어떻게 건설할 것인지 대안이 없다”고 주장해 사실상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등에 부정적 목소리를 낸 바 있다.

하지만 같은 날 민주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과학과혁신위원회 인재영입 발표식에선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원자력 전문가들을 영입하는 모순된 상황이 이 후보 캠프 내에서 벌어졌는데, 공동위원장을 맡게 된 김규태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스템공학과 교수는 심지어 “탈원전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직접 강조했으며 한 발 더 나아가 이 후보의 감원전에 대해서도 “어휘에 대해선 정확한 의미는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다. 민주당도 국가성장동력에서 원자력을 이해하고 부른 것으로 안다”고 밝혀 이 후보 선대위가 후보의 관련 공약과 기조에 대한 이해도 이뤄지지 않은 인사를 영입했을 만큼 손발 안 맞는 공약이 나오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는 정책을 깊이 검토해 내놓은 공약이 아니라 여론 동향에 쫓겨 급조하다 보니 나온 촌극으로 비쳐지고 있는데, 실제로 서울경제·한국선거학회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1~13일 전국 유권자 1344명에게 실시한 여론조사(95%신뢰수준±2.7%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문 정부의 국정과제 중 원전 폐지는 보기로 제시된 그 어느 국정과제보다 낮은 22%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고 매일경제와 MBN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달 28~29일 전국 유권자 1007명에게 실시한 ‘원자력발전 정책 방향성’ 조사(95%신뢰수준±3.1%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도 ‘원전 축소’를 꼽은 비율은 21%에 그쳤다.

오히려 원전 확대라고 응답한 비율은 36.5%였고 현재 수준 유지를 택한 비율도 37.2%로 나왔는데, 이런 상황 속에 윤 후보 뿐 아니라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등 야권에서 원전 필요성을 역설하고 탈원전 정책에 선을 긋는 공약을 내놓으니 민주당에서도 한편(기후위기탄소중립위)에선 탈원전을 외치면서도 다른 한편(과학과혁신위원회)에선 탈원전 반대를 외치는 엇박자가 일어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급기야 정권 초반인 지난 2017년 6월 19일 부산 기장군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에서 열린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새 정부는 탈원전과 함께 미래에너지 시대를 열겠다”고 선포했던 문 정권조차 임기 말인 지난 3일엔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조선일보 유튜브 ‘강인선·배성규의 정치펀치’에 나와 “문 정부가 탈원전·탈핵 정권은 아니다”라고 강변했고, 문 대통령조차 지난 19일 중동 순방 당시엔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만나 UAE 원전 수출 사례를 들며 “한국의 원전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성과 안전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사우디 원전산업 최적의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 北 자극 말라더니 野 따라 북한에 강경 발언하며 태세전환

북한이 최근 쏘아올린 탄도미사일 발사 장면 / ⓒ뉴시스-노동신문
북한이 최근 쏘아올린 탄도미사일 발사 장면 / ⓒ뉴시스-노동신문

민주당의 오락가락한 모습은 비단 이 뿐만이 아닌데, 앞서 지난 11일 윤 후보가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위협이 계속되고 있는데 방지할 계획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마하 5 이상의 미사일이 발사되고 거기에 핵이 탑재했다고 하면 수도권에 도달해 대량 살상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분 이내라 요격이 불가능하다”며 “조짐이 보일 때 저희 3축 체제 제일 앞에 있는 킬체인이라고 하는 선제타격 밖엔 막을 방법이 없다”고 이른바 ‘선제타격론’을 제시하자 민주당 선대위에선 최지은 대변인이 “한반도 평화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윤 후보를 비판했고 김용민 최고위원은 아예 ‘전쟁광도 아니고 이게 무슨 말이냐“고 성토했다.

이 발언이 나온 11일만 해도 이미 북한이 올 들어 2번째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한반도 정세 경색의 원인을 제공했음에도 도리어 여당에선 북한보다 윤 후보 비판에만 집중했는데, 이 후보도 그로부터 닷새 뒤인 16일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를 시작으로 원산-금강산-고성-강릉에 이르는 동해 국제관광 공동특구를 조성하고 DMZ 평화생태관광을 추진하겠다”며 상황과 동떨어진 공약을 내놓은 데 이어 23일엔 “안보 갖고 장난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멀쩡한 시기에 선제타격 얘기하면 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겠나. 사소한 일로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고 윤 후보에 책임을 묻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발언이 나온 23일에는 이미 북한이 유엔 결의 위반사항인 탄도미사일을 4차례나 발사한 이후인데다 20일엔 아예 조선중앙통신이 잠정 중지했던 핵실험 및 ICBM 발사를 재개할 의사를 내비치기까지 한 이후인데도 이 후보는 “이 멀쩡한 시기”라고 평가했었는데, 이에 윤 후보는 “북한과 민주당은 원팀이 되어 저를 전쟁광으로 호도하고 있다. 선제타격은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이 임박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우리의 자위권적 조치”라고 응수했다.

비록 이 후보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도발’로 규정하며 문 정부보단 발언수위를 높이긴 했으나 북한을 자극한다는 논리로 그간 윤 후보 공격에 주로 집중했었는데, 그래도 북한이 멈추지 않고 25일과 27일에 순항미사일 시험발사와 지대지 전술유도탄 시험발사를 연달아 이어가고 27일엔 또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쏘는 등 1월에만 역대 최다로 미사일을 쏴대자 그제야 이 후보는 27일 ‘한반도 긴장 조성행위 중단’, ‘대선 개입 중지 촉구’,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대화 재개 협력’ 등을 담은 대선후보 대북공동선언 구상이란 구체적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이 후보는 27일 “이런 군사적 도발은 자중해야 한다. 대선에 매우 안 좋은 악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대한민국 내정에 영향 주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생기고 있다”며 오로지 국내 정치적 차원에서 바라보는 모습을 보였으며 28일 김포에 있는 해병대 2사단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보다 노골적으로 “하필 대한민국 대선이 이뤄지는 시점에 집중적으로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는 국론을 분열시키고 한반도의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혀 본질은 안보 우려보다 선거 영향을 의식했기 때문임을 내비쳤다.

또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도 지난 27일 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을 불과 40여일 앞두고 연일 계속되는 북한의 도발은 결국 남한 선거에 개입하기 위함”이라고 이 후보와 한 목소리를 냈는데, 한 발 더 나아가 이들은 윤 후보가 선제타격론을 말한 뒤로 북한이 모든 수단을 쓰겠다고 했다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선 북미 대화 불발 이후 북한 경제 상황 악화에 따라 권력 기반을 강화할 계기가 필요하고 윤 후보로선 대북 강경노선 천명과 정부에 대한 비난을 통해 보수 세력을 결집시켜야 해 두 사람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있는 것”이라고 북한과 국민의힘을 한데 묶어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정작 북한은 이보다 앞선 지난 22일 선전매체 ‘통일의 메아리’에서 “대북 선제타격론을 주장하는 윤석열은 더 이상 구태 색깔론으로 남북 대결을 조장하지 말고 조용히 후보 자리에서 사퇴하는 것이 제 살길을 찾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며 이 후보가 아니라 윤 후보를 사퇴하라고 요구해왔었는데, 이때만 해도 이 후보조차 자신을 지목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북한의 대선개입 발언을 비판하기는커녕 “멀쩡한 시기”라고 평했던 만큼 민주당이 이제 와 북한과 국민의힘을 한데 묶어 보는 주장까지 펼치는 것은 결국 여론이 자당보다 야권의 안보상황인식과 대책에 힘을 실어주자 짜낸 아이디어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 14~15일 데일리안이 여론조사기관 여론조사공정(주)에 의뢰해 전국 유권자 1001명에게 실시한 선제타격방위시스템 동의 여부를 묻는 질문(95%신뢰수준±3.1%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60.9%는 윤 후보가 주장한 ‘킬체인’에 대해 “동의한다”고 답했으며 동의하지 않는다는 비율은 26.4%에 그쳤는데, 동 기관이 북한 도발에 만족할 만한 대응을 할 후보를 물은 조사에서도 윤 후보는 43.6%를 기록했고 이 후보는 39%로 나와 ‘힘에 의한 평화’를 내세운 윤 후보의 공약에 상대적으로 여론의 무게추가 더 쏠리는 모양새다.

◆ 이재명, 윤석열의 SNS ‘단문 공약’도 벤치마킹?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자신의 SNS에 짤막한 문구로 공약(위)을 내놓자 이재명 후보가 자신도 비슷하게 짤막한 문구를 SNS에 올린 모습.(아래) ⓒ윤석열, 이재명 페이스북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자신의 SNS에 짤막한 문구로 공약(위)을 내놓자 이재명 후보가 자신도 비슷하게 짤막한 문구를 SNS에 올린 모습.(아래) ⓒ윤석열, 이재명 페이스북

이외에도 지난 13일 자신이 ‘병사 월급 200만원 시대 열겠다’고 한지 17일 뒤인 지난 9일에 윤 후보가 병사 봉급 200만원 인상 공약을 내놨다고 페이스북에 올리는 등 자신이 ‘원조’라고 주장하던 모습과 달리 이제는 청년층 유권자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윤 후보 측 전략도 그대로 따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단적인 예가 한 줄이나 두 줄 정도로 핵심 공약을 짤막하게 SNS에 올리는 홍보 전략인데, 윤 후보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시작으로 첫 시도했을 때만 해도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지난 11일 ‘이재명 플러스’에 쓴 칼럼을 통해 “국민에게 정책 발표할 때는 최소한 왜 필요하고 그 정책이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 효과들은 어떻게 보완하겠다 정도는 얘기해야지 무슨 검찰 신문하면서 사람 말 문지르듯 툭 내뱉는다고 정책이 아니다”라고 비판한 데 이어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역시 23일 KBS1TV ‘정치합시다2’에 나와 “유권자들에게 ‘저게 무슨 정치냐’하는 생각 들게 해 기분 나쁘게 만들 수 있다”고 꼬집는 등 여권에선 혹평을 쏟아냈다.

그러나 지난 27일부터 이 후보도 윤 후보의 ‘단문 전략’을 그대로 따라해 “주식양도세 폐지”를 올린 윤 후보 공약에 응수하듯 “부자감세 반대”라는 6글자만 페이스북에 올리더니 김포의 해병대 2사단을 방문한 28일에는 해병대 포함한 ‘준4군 체제로 개편’과 ‘해병회관 건립’이라고 자신의 공약까지 단문 메시지 형태로 올렸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연기금 주식시장 안정책임, 물적분할 후 재상장 금지, 주식공매도 형평성 확행, 주가조작 시장교란 엄벌 등 또 단문메시지를 올렸다.

이렇듯 윤 후보의 상승세에 상대방 전략마저 베끼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는 실정인데, 이 후보의 이 같은 변화가 유권자들에게 진정성 있게 와 닿을지 여부는 향후 대선 지지율 추이를 통해 가늠해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