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굴지의 미술관들이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이른바 ‘신정아 게이트’에서 금호미술관이 거론된데 이어 성곡미술관이 사건의 전면에 부각된 탓이다. 특히 신정아씨가 횡령혐의를 성곡미술관 관장이자 김석원 쌍용그룹 전 회장의 부인인 박문순씨에게 떠넘기며 파문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대기업이 직간접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미술관은 7~8개 정도다. 기업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왔지만, 이번 ‘신정아 게이트’의 연장선에서 곱지 않은 시선도 나온다. 하나같이 대기업 안방마님들이 운영을 맡고 있는 것도 뒷말을 높인다. <시사신문>이 집중 조명했다.

그룹 경영 참여 대신 미술관 운영 유행, 재벌 간 자존심 대결(?)
‘신정아 게이트’로 의혹 산 미술관 관장자리, 성곡미술관 도마 위

삼성의 리움미술관, SK의 아트센터 나비, 대우의 아트선재센터, 금호의 금호미술관, 쌍용의 성곡미술관은 국내 미술계를 쥐락펴락하는 곳이다. 이 가운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62)씨가 관장하고 있는 리움미술관은 수성을 자랑한다.

한국 미술계 움직이는 인물 ‘홍라희’

홍라희씨가 관장하고 있는 미술관은 총 3곳이다. 국내 최대 사립미술관인 호암미술관과 로댕갤러리, 리움이다. 특히 홍 관장은 삼성미술관의 3곳 중 착공 8년 만에 문을 연 ‘리움’에 애착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삼성미술관 ‘리움’ 의 홍라희 관장.
알려진 바에 따르면 1970년대 중반부터 매일 10만원 한도를 정해놓고 인사동에서 마음에 드는 골동품을 사오라는 고 이병철 회장의 심부름으로 미술품을 보는 안목을 길러왔던 홍 관장은 이병철 회장의 뜻대로 지난 1995년 호암미술관을 맡게 됐다. 이후 1년 뒤인 1996년엔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이 되면서 예술계를 대표하는 우먼파워 1위를 차지했다.

재벌 미술관 관장으로서는 유일하게 미대출신인 홍 관장은 각종 설문조사에서도 한국 미술계를 움직이는 인물 1위로 꼽히고 있다. 지난 1990년대 초 어느 인터뷰에서 홍 관장이 “미니멀리즘 미술 계열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하자 미국에서 1960년대 말 유행했던 미니멀리즘이 국내에서 갑자기 유행을 한 것은 홍 관장의 파워를 실감할 수 있는 사례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부이사장 겸 금호미술관 관장인 박강자(66)씨는 ‘신정아 게이트’ 사건을 지켜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정아씨가 지난 2000년경 금호미술관에 큐레이터(아르바이트)로 몸담았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예일대 한국동문회 회장이었던 고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이 신씨의 허위학력을 알아채고 사표를 받도록 한 것이 ‘신정아 게이트’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는 계기가 된 셈이다.

금호미술관은 지난 1977년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창업자인 고 박인천 회장의 사재 2억원으로 출발한 장학재단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982년 장학사업을 문화사업으로 확대해 문화재단을 출범시킨 박인천 회장은 1989년 관훈동에 금호갤러리를 개관한 뒤 평소 문화예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차녀 박 관장에게 갤러리를 맡겼다. 이후 1996년 현 위치인 종로구 사간동에 갤러리를 확장해 미술관 건물을 설립했다.

‘신정아 게이트’ 주무대 성곡미술관

‘신정아 게이트’ 사건을 통해 유명세(?)를 탄 성곡미술관은 쌍용그룹 전 회장인 김석원씨의 부인 박문순(53)씨가 관장을 맡고 있다. 이번 ‘신정아 게이트’가 불거지기 전까지 성곡미술관의 위상에 비해 박 관장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 ‘신정아 게이트’로 곤혼을 치루고 있는 성곡미술관 박문순 관장.
중학교 교사 출신인 박 관장은 미술관 설립의 목표를 ‘젊은 작가 지원’과 ‘관람객에게 문턱 없는 미술관을 만드는 것’으로 밝혀왔었다. 박 관장과 김석원 전 회장 부부가 미술관 3층에 거주하면서 박 관장이 1주일에 2∼3번 직접 쿠키를 구워 미술관 내 찻집에 내놓는다고 한다.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들은 한 달에 3천여명으로 꽤 많은 편. 이에 따라 박 관장은 ‘문턱 없는 미술관’은 성공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한편 성곡미술관은 수령이 수십 년 넘는 1백여종의 나무와 조각품들이 전시된 조각공원이 인기를 얻으며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로 꼽히고 있다.

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부인 정희자(67)씨는 그룹이 해체된 가운데서도 선재미술관과 아트선재만은 놓지 않았다. 정 관장은 1990년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장남 선재씨의 이름을 따서 1991년 선재미술관을 설립했으며 국내외 우수한 현대 미술작품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SK그룹도 지난 1984년 워커힐 미술관을 설립했다. 박물관법에 의거해 미술관 1호라는 명예를 얻은 워커힐 미술관은 고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의 아내인 고 박계희씨가 관장했으나 현재는 대를 이어 며느리인 노소영(46)씨가 관장하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이기도 한 그는 지난 2000년 워커힐 미술관을 개관, 아트센터 ‘나비’로 공식 오픈했다.

▲ SK그룹의 아트센터 ‘나비’ 노소영 관장.
노 관장은 공대출신이지만 경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로 있을 만큼 예술적 자질이 뛰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나비’는 워커힐 미술관 시절 모았던 4백51점의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으며 노 관장의 의도대로 전시회보다는 미술교육 위주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가 사교장으로 전락 우려

이처럼 사립 미술관 관장 중에는 기업 총수의 부인이나 직계가족이 많다. 작품을 파는 게 목적인 갤러리와 달리 공익의 목적을 둔 미술관은 문화재단이나 기업의 후원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재벌가 안주인들이 미술관 관장직을 하는 것에 대해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사회환원으로서의 기능보다는 “재벌 간의 자존심 대결이 아니냐”는 날선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까닭이다. 재벌가 안주인 사이에서 그룹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대신 그룹의 문화사업차원에서 미술관을 운영하는 것이 유행 아닌 유행이 돼버렸다는 게 그 이유다.

일각에선 미술관이 재벌가 안주인의 사교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신정아 게이트’로 재벌가 안주인들이 미술관을 운영하는 것에 “딴 속셈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가 나오는 것도 어쩌면 이런저런 우려의 연장선이 아닐까. 재벌 기업 안방마님들의 예술계 열전에 관심이 모아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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