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백신 여유 없어” 반응에 높아지는 이재용 역할론…다급한 與 ‘러시아 백신’ 도입 주장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좌)과 문재인 대통령(우). 사진 / 오훈 기자, ⓒ청와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좌)과 문재인 대통령(우). 사진 / 오훈 기자, ⓒ청와대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한미 간 백신 스와프를 협의 중이라던 정의용 외교부장관이 불과 하루 만인 21일 “(미국 측에서) 집단면역을 이루기 위한 국내 백신 비축분이 여유가 없다는 입장을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다”고 실토해 사실상 문재인 정부가 기대를 걸고 있던 백신 스와프가 진전 없이 난항에 빠진 상황임을 내비쳤다.

◆ 文 “중국 어려움이 우리 어려움”…백신 필요하니 美에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

정 장관은 이날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백신 스와프의 현실성에 대한 질문을 받자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백신의 어려움을 도와줄 수 있길 희망하고 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임을 (미국 측에) 강조하고 있다”면서도 이같이 밝혔다.

이 뿐 아니라 정 장관이 미국을 향해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호소했지만 지난해 2월 20일 한중 정상 간 전화통화 중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에 있어 가장 가까운 이웃인 중국 측 노력에 힘을 보태고자 한다”고 강조했던 데다 시진핑 중국국가주석이 정 장관과 동일한 표현으로 화답하기도 했던 만큼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국면 속에 이 같은 행보는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미국은 올 여름까지 자국민의 코로나19 집단면역을 달성하기 위해 추가 접종 여부도 검토하고 있어 미국으로부터 백신을 얻기는 더더욱 어려워진 실정인데, 그래선지 정 장관은 “반도체는 미국 측이 관심을 갖고 있고 전기자동차 배터리 등 여러 협력 분야가 있을 수 있다. 지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에서 우리가 미국을 도와줄 수 있는 분야가 많기 때문에 여러 가지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반도체나 전기차 배터리 등을 반대급부 삼아 백신을 얻기 위한 협상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내비쳤다.

하지만 그는 민간 기업 영역에 정부가 개입하려 한다는 우려가 나올까 의식한 듯 “이런 협력은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미국 측과 협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고 덧붙였는데, 표면상 정부가 나설 수 없다면서도 정 장관이 굳이 이 같은 발언을 내놓은 것은 사실상 반도체나 전기차 배터리 관련 기업들 스스로 정부의 백신 확보를 위해 적극 역할을 하라는 우회적 압박 메시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 높아지는 이재용 사면 요구…반도체-백신 ‘딜’ 고심 중인 문 정부, 李 풀어줄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에 대한 알앤써치의 찬반 여론조사 결과 ⓒ알앤써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에 대한 알앤써치의 찬반 여론조사 결과 ⓒ알앤써치

이미 일각에선 메모리반도체 부문에서 세계 1위인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을 사면해 백신-반도체 ‘딜’에 있어 역할을 할 수 있게 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데, 김영환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백신과 반도체, 한미동맹 귀가 확 트인다. 이를 위해 이 부회장을 원포인트 사면하고 하이닉스 최태원 회장도 동행해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 미국에 20조가 넘는 반도체 공장 증설을 조건으로 백신스와프를 이끌어 내라”라고 주문했으며 오규석 부산 기장군수는 앞서 지난 15일 “이 부회장을 사면해 코로나와 경제전쟁에 참전시켜 줄 것을 대통령에게 읍소한다”고 문 대통령에 호소문을 보내기도 했다.

여기에 여론 역시 이 부회장을 사면하는 데에 여론의 공감대도 형성되어 있는 상황인데, 데일리안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알앤써치에 의뢰해 지난 19~20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58명에게 실시한 이 부회장 광복절 특사 찬반 여부 조사 결과(95%신뢰수준±3.0%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은 찬성 70%(매우 찬성 51.8%, 찬성하는 편 18.2%), 반대 26%로 성별·연령·지역을 막론하고 찬성 의견이 압도적 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민주당 지지가 높은 40대에서도 찬성이 과반인 55%로 나왔으며 정치성향별로도 중도진보에서조차 55.8%로 과반 찬성을 기록한데다 진보층 역시 반대(46%)보다는 찬성(48.1%)이 더 높은 것으로 나왔고 정치성향이 특정되지 않은 계층에서도 찬성이 70.6%를 기록하는 등 대부분 이 부회장의 사면을 반대하지 않고 있는 만큼 정치권 화두로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 문제가 오른다면 금방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비록 박범계 법무부장관은 지난 19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이나 사면 가능성을 묻는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검토한 적 없다”고 했지만 “대통령께서 반도체와 관련한 판단과 정책 방향을 말씀한 것과 (별개로) 이 부회장의 가석방 내지 사면 문제는 실무적으로 대통령이 특별한 지시를 하지 않은 이상 아직 검토할 수 없다”며 대통령에 공을 넘기는 모습을 보인 바 있고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도 “경제 회복 관련 의견 청취를 위해 가진 간담회에서 (이 부회장 사면) 건의가 있었는데 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관계기관에 전했다”고 밝혔던 만큼 이제 사면 여부는 사실상 문 대통령의 결단에 달린 모양새다.

이 부회장 사면에 대한 사면 요구는 이미 지난 12일 대한불교조계종 25개 교구 본사 주지들의 모임인 주지협의회가 문 대통령에 탄원서를 보내 호소한 데 이어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지난 16일 홍남기 경제부총리와의 간담회에서 건의하는 등 각계각층에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문 대통령이 아직 이에 대해 직접 답한 적은 없지만 21일 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과 청와대 상춘재에서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대통령 사면권 행사와 관련한 그의 생각은 간접적으로 읽어볼 수 있다.

이 부회장 사면에 대해선 거론되지 않았지만 국민의힘 소속인 박형준 부산시장이 이날 간담회에서 이명박, 박근혜 등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문 대통령에 건의했었는데, 앞서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 당시 “사면의 대전제는 국민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는 대통령은 이날 박 시장의 건의에도 “국민 공감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국민통합에 도움이 되도록 작용돼야 한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언급한 여론조사기관 알앤써치가 함께 실시한 두 전직 대통령 사면 여부와 관련해선 반대(50.2%)가 찬성(44.8%)보다 높게 나왔던 만큼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읽혀질 수 있겠지만 이와 달리 이 부회장의 사면에 대해선 찬성한다는 반응이 압도적이었다는 점에서 ‘국민 공감대’를 사면 여부를 결정할 기준으로 내세워온 문 대통령도 더 이상 이 부회장 사면을 반대할 명분이 없고 지난 1월18일 파기환송심에서 확정된 징역 2년6개월 중 이 부회장이 이미 형기의 3분의1를 보내 가석방 요건까지 갖췄다는 점에서 최소한 사면 혹은 가석방하는 것 외엔 별 다른 대안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정치권에선 이미 한 발 더 나아가 여당 의원인 안규백 민주당 의원조차 반도체·백신 문제 등과 관련해 “국익을 생각해 역할이 있으면 (사면이) 필요하다”며 이 부회장 사면을 촉구한 것은 물론 국민의힘 김근식 비전전략실장은 아예 “오는 5월 말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에 문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임시 석방해 대동하고 미국으로 가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구체적 방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 美 ‘백신 협조’ 난색에 속 타는 文…李 사면 안 할 경우 러시아 백신 도입 뿐

러시아 스푸트니크V 백신 도입 검토 필요성을 제기한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더불어민주당 당권주자인 송영길 의원. 사진 / 시사포커스DB
러시아 스푸트니크V 백신 도입 검토 필요성을 제기한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더불어민주당 당권주자인 송영길 의원. 사진 / 시사포커스DB

일단 백신 확보가 급선무더라도 미국의 대중국 포위망인 ‘쿼드 가입’엔 여전히 선을 긋고 있는 문 정부로선 이 부회장을 통해 미국과 반도체·백신 ‘딜’에 나서지 않을 경우 아직 검증되지 않은 러시아 백신을 도입하는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미 민주당 일각에선 당권주자인 송영길 의원이 21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화이자, 모더나 등 기존 계약 외에도 러시아의 스푸트니크V 백신 도입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플랜B 추진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등 군불을 떼는 움직임이 일부 감지되고 있다.

특히 지난 15일 “다른 나라들이 개발해 접종하고 있는 (국내 미도입) 백신들을 경기도에서라도 독자적으로 도입해서 접종할 수 있을지 실무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던 이재명 경기도지사 역시 러시아의 스푸트니크V 백신 도입에 힘을 싣고 있는 상황인데, 경기도는 21일 이 지사가 백신 조기 도입 방안과 관련해 주재한 관계부서 대책회의 결과를 전하면서 “스푸트니크 백신을 포함한 백신 공개 검증의 장을 열어 조속히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게 필요하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경기도는 정부와 방역당국에 이 의견을 전할 예정”이라고 역설했다.

한편 정부도 같은 날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이 정례 브리핑에서 러시아 백신과 관련 “아직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현재 세계적으로 스푸트니크V에 대해 허가와 검증 절차가 병렬적으로 일어나서 이 부분을 주목하고 있다. 유럽의약품청에서도 검토하는 것으로 아는데 상세한 데이터를 확보하면서 외국의 허가 사항도 참고하겠다”고 도입 가능성을 열어뒀는데, 이 경우 문 대통령보다는 러시아 백신 도입을 먼저 제안한 이 지사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점이나 미국으로부터 백신 도입하는 데 실패한 대안으로 러시아 백신을 접종시키는 모양새가 된다는 점에서 정부에 여러 고민을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일단 상기 거론한 알앤써치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은 국면전환용 개각에 힘입어 부정평가는 전주보다 1.6%P 하락하고 긍정평가는 1.8%P 상승한 만큼 친문과 거리를 두고 있는 이 지사에 자칫 힘을 실어줄 러시아 백신 도입이란 손쉬운 선택보다는 과거 이명박 정부 당시 열세였던 동계올림픽 유치전 과정에서 특별사면을 대가로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 역할을 맡겨 결국 평창올림픽 유치를 성사시켰던 사례처럼 이 부회장에 대한 특사를 통해 미국과의 백신 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과연 문 대통령이 어느 쪽 방안에 힘을 실을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