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 100% 긴급재난지원금은 구국일까 아니면 망국일까
장기적 경기 침체, 출산율 감소, 코로나19에 포퓰리즘까지
20~40 세대는 포퓰리즘 정치세력을 선호 "책임도 그들의 몫이다"

고 함석헌 선생은 <사상계> 1958년 8월호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표현했다. 2020년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그의 표현은 이렇게 바뀌어야 할 것 같다.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대한민국 정부는 2020년 4월29일은 역사책에 어떻게 기록돼야 할까. ‘망국으로 가는 포퓰리즘의 문이 활짝 열린 날’이라고 하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묘하게도 전날인 4월 28일은 나라를 구한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탄신일이고, 다음날인 4월30일은 월남이 패망한 날이다.)

국회는 오늘 ‘전 국민 100%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주는 추경예산’을 처리했다. 모든 국민에게 돈을 주는 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4.15 총선에서 승리한 집권 여당은 ‘국민에 대한 약속’이라고 밀어붙였다. 이건 구국의 결정일까 아니면 망국의 결정일까.

TV나 신문, 길거리의 플래카드를 보면 “대한민국은 이겨낼 수 있습니다.” 혹은 “우리의 힘을 믿습니다.”라는 글귀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냉철한 시각으로 실상을 짚어보면 그러한 구호들은 ‘희망 사고’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 경제의 어려움을 코로나19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진실이 아니다. 한국의 성장률은 장기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성장능력에서 실력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은 5%대,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4%대, 이명박 정부시절은 3%대,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2%대로 떨어졌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1%대로 떨어지는 상황인데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타이틀로 내걸고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 주 52시간제 도입, 탈원전 등을 밀어붙였다. 자영업자, 소상공인, 중소기업 등은 그 여파로 이미 경영에 큰 타격을 입었으며, 여기에 코로나19라는 쓰나미가 덮친 것이다.

한국의 더 큰 문제는 급격한 출산율 감소다. 적정한 인구는 국가 존속의 필수요건이다. 한국은 그러나 1971년 102.5만 명 탄생을 마지막으로 100만명 이하로 출생아 숫자가 줄어들더니 2002년에는 49.2만 명으로 50만 명 이하가 됐다. 급기야 18년 후인 2020년에는 29.2만 명으로 30만 명 이하로 떨어질 전망이다. 출생아가 이렇게 줄어들면 국가는 유지될 수 없는데 지금 대한민국은 그러한 망국의 길로 가고 있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은 ‘초초저출산’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지지층인 20~40세대 여성들이 출산에 대한 언급을 하면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급기야 집권 세력은 ‘전 국민 100%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이라는 포퓰리즘을 꺼내들었다. 포퓰리즘의 역사를 보면 참으로 기가 막힌다.

포퓰리즘의 대명사인 아르헨티나의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은 1952년 칠레 대통령에 이런 편지를 보냈다. “국민, 특히 근로자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십시오. 너무 많은 것을 준 것 같아도 더 주십시오...모든 사람들이 경제 붕괴라는 망령으로 우려를 표명할 겁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거짓말입니다. 경제보다 신축성이 좋은 것도 없습니다.”

그리스의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는 1980년 에 “국민이 원하는 것은 모두 다 해주라”는 사회주의 정책을 펼쳤다. 포퓰리즘으로 진입하는 순간이었고, 그 이후 그리스는 ‘유럽의 병자 겸 좌파 포퓰리즘의 대명사’가 되었다.

어떤 가정이나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상황이 계속되면 결국 파산하게 된다. 빚더미에 깔려 집안이 망하게 되는 것이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국가를 경영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게 ‘재정건전성’이라는 말을 한다. 곳간이 튼튼해야 나라도 튼튼한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복지정책은 필요하다. 다만 국가 살림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이 꼭 필요한 사람만 도와주는 ‘선별적(선택적) 복지 정책’을 편다. 모든 사람에게 돈을 퍼주는 보편적 복지는나라 곳간을 거덜내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포퓰리즘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간단하다. 미래를 망치는 달콤한 사탕과 미래를 준비하는 노력과 고통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물으면 모든 이들이 사탕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마치 학생들이 ‘공부할래 아니면 놀래?“라고 물으면 모두 노는 쪽을 선택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흔히 부모가 자녀에게 해줘야 할 것은 고기를 주는 게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남의 자식에게는 ‘고기를 그냥 나눠 줘!’라고 말하는 것은 무슨 심보일까?

포퓰리즘은 흡연이나 마약과 비슷하다. 한번 시작하면 멈추기도 어렵고 강도도 정치인들에 의해 더욱 세어지게 되어 있다. 한 번 ‘공돈’을 만져본 유권자는 더 많은 돈을 원한다. 오로지 오늘만 살고 내일은 모르겠다는 식이다. 그렇게 쌓인 빚더미는 결국 미래세대의 짐이 된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대한민국의 20~40 세대들이 자신들의 빚으로 돌아올 ‘포퓰리즘 세력들’을 선거를 통해 압도적으로 지지했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기성세대들은 굳이 미래세대에게 크게 미안함을 느끼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마하트마 간디는 “생각은 말을 바꾸고, 말은 행동을 바꾸고, 행동은 습관을 바꾸고, 습관은 인생을 바꾼다.”고 말했다. 말, 행동, 습관, 인생은 하나의 패키지이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포퓰리즘은 국가를 망가뜨리는 가장 나쁜 정치인데, 그 문이 오늘 열렸다. 그리고 포퓰리즘을 적극 밀어붙이는 정치세력을 국민들이 지지했다. 포퓰리즘을 선호한 국민의 이러한 선택이 ‘현명한 국민들’까지 피해를 주지 않으면 좋겠는데, 대한민국이라는 운명공동체의 일원이니 아무도 포퓰리즘의 해악을 피하기 힘들 것 같다. 2020년 4월29일은 우리 역사에서 ‘망국의 첫날’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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