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특검·국정조사 등 ‘야권 공세’ 나날이 거세져…與 ‘막말’ 자충수까지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2일 기자회견을 열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 / 오훈 기자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2일 기자회견을 열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 / 오훈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청와대가 KT&G 사장 교체를 시도하고 적자 국채 발행을 강요했다는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를 놓고 정치권에서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이 2가지 폭로에 대한 진위 여부를 놓고 논란이 격화된 끝에 급기야 신 전 사무관이 유서를 남기며 자살 소동을 벌이는 상황에 이르자 그의 부모와 대학 동문들까지 나서서 사태 진화에 나섰지만 김태우 수사관의 청와대 관련 폭로를 계기로 국회 운영위에서 한 차례 진실공방을 벌였던 여야는 이제 신 전 사무관 폭로를 소재로 2라운드에 본격 돌입한 모양새다.

이번 격돌이 12년 만인 민정수석의 국회 출석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승기를 잡지 못했던 야권에 반전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인지 벌써부터 세간의 이목이 국회에 쏠리고 있다.

◆ 한국당, ‘국정조사·특검’ 요구에 靑 방문까지 총공세

김태우 전 특별감찰반원의 청와대 민간인 사찰 의혹 폭로를 바탕으로 운영위까지 열고 정부여당을 거세게 압박했으나 오히려 대통령 지지율 상승이란 역효과에 직면했던 야권이 또 실패하진 않겠다는 듯 신 전 사무관의 의혹 폭로와 관련해선 보다 철저히 전열을 갖추고 총공세에 돌입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에선 나경원 원내대표가 3일 비대위 회의에서 적자 국채 의혹을 제기한 신 전 사무관의 폭로를 들어 “(문 정권이) 나라살림을 조작하려 했던 게 드러나고 있다.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죄”라고 주장한 데 이어 같은 날 오후 국회에서 정무위원회 및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자당 의원들과 긴급회의를 열고 “국정조사와 특별검사를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나 원내대표는 4일 긴급 의원총회까지 열어 “문 정부 출범 2년도 안 돼 공익제보에 의해 비민주적, 독선적 실체가 드러났다”며 신 전 사무관의 자살 소동에 대해서도 “진실을 위해 사력을 다했던 용기 있는 고백이 한순간 물거품이 되니 선택한 것 아니겠나. 문 대통령이 답할 때”라고 청와대에 대한 압박수위를 한층 높였다.

특히 이날 총회에서 한국당은 ‘나라살림조작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의혹을 직접 파헤치기로 하고 지난 3일 요구한 정무위·기재위 등 5개 상임위 뿐 아니라 이번 의혹과 관련된 모든 상임위의 소집을 추진하는 것은 물론 신 전 사무관이 지목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차영환 전 청와대 경제비서관, 홍장표 전 경제수석이 진실을 밝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발 더 나아가 이들은 의총 직후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와 이만희, 추경호 의원을 내세워 ‘문 대통령께 드리는 서한’이란 제목의 항의서한도 청와대에 직접 전달하는 등 조 수석을 국회 출석시키고도 도리어 역풍을 맞았던 전례를 만회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분명하게 보여주듯 원내외를 막론하고 거물급 원외인사부터 소속의원들에 이르기까지 개별적 차원에서도 속속 지원사격에 나서는 총력전 양상으로 접어들고 있는데, 심재철 의원은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신 전 사무관이 폭로한 ‘KT&G 관련 동향 보고’엔 KT&G 사장 교체를 위한 이사 추가 선임 등 기재부의 구체적 대응방안까지 포함돼 있었으며 이를 실제로 실행에 옮겼다고 발표했으며 같은 당 조경태 의원은 4일 공무원의 공익신고에 대한 기밀 누설죄 적용을 최소화하는 ‘신재민법’을 대표 발의하겠다고 예고했다.

여기에 김병준 비대위원장도 4일 페이스북을 통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할 공무원에게 국가채무비율을 조작하게 하고, 바이백을 취소해 시장을 혼란스럽게 하고, 민간기업의 사장 자리까지 전리품으로 삼아서 끼리끼리 나누어 먹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이게 나라냐’라고 물었을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고 홍준표 전 대표까지 같은 날 페이스북에서 “신재민 사건의 정점은 김 전 부총리와 홍장표 전 수석”이라며 “국정조사와 특검을 통해 경제도 정략에만 이용하는 문재인 정권의 후안무치 국민 농단을 국민 앞에 밝히라”고 일침을 가했다.

◆ ‘대여 공세’ 경쟁 붙은 野…평화당까지 與 맹공 나서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등이 출석하는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 / 오훈 기자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등이 출석하는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 / 오훈 기자

이 같은 대여 총공세 기류는 비단 한국당 뿐 아니라 다른 야당들에서도 마찬가지란 점에서 정부여당의 부담감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는데, 지난 2일 신 전 사무관의 폭로와 관련해 기재위 등 상임위를 소집키로 한국당과 합의했던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당시만 해도 특검과 국정조사까지 요구하는 나경원 원내대표의 주장에 대해 “일단 검찰 수사 상황을 지켜보고 나서 하자”며 일부 온도차를 보였지만 불과 이틀 뒤인 4일엔 “단순히 기재위 회의를 열 게 아니라 기재위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돌연 강공으로 선회했다.

이 뿐 아니라 바른미래당 의원들은 저마다 신 전 사무관을 돕겠다고 입장을 표하기도 했는데, 하태경 최고위원은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제가 앞장서 신 전 사무관을 보호하겠다. 신 사무관 무료 변호인단 구성한다는 소식을 전한지 세 시간도 안 되었는데 벌써 두 분의 젊은 변호사께서 자원하겠다는 연락이 왔다”고 밝혔으며 같은 당 이언주 의원은 4일 아예 22명의 ‘자유를 수호하는 변호사들’과 함께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용기 내 목소리 냈으니 앞으로 공익제보자는 저희가 보호해주겠다”며 이를 위한 범국민 연대를 조직하겠다고 공언했다.

심지어 그동안 범여권으로까지 칭해졌던 민주평화당마저 선거법 개혁이 지지부진해진 이후론 정부여당과 본격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했는데, 정동영 평화당 대표는 4일 최고위원-국회의원-상임고문 연석회의에서 “공익제보자, 내부고발자는 철저히 보호돼야 한다”고 한 데 이어 “필요하다면 국채발행 조작 의혹에 대한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는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실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미 지난달 31일 신 전 사무관의 폭로와 관련해 “민영화된 기업 KT&G 사장 교체까지 권력이 개입했다는 것은 ‘박근혜 정부 시즌 2’가 아니고 무엇인가”라며 문 정권을 직격했던 정 대표는 이날 회의에선 과거 이명박 정권이 경제 실패를 지적하던 ‘미네르바’ 청년을 정보통신법 위반을 걸어 구속시킨 사례와 이번 사태를 비교하면서 “우리 당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집 요구와 함께 ‘공익 제보자 보호와 문재인 정부의 국채발행 조작의혹 진상조사단’을 당내에 꾸려서 법률가들이 참여하도록 하겠다”고 천명했다.

실제로 평화당은 공무상비밀누설 등 혐의로 신 전 사무관을 고발한 기재부를 겨냥해 ‘문제 지적하면 고발부터 하는 기재부, 악덕기업과 다를 바 없어’란 입장문을 내놨었던 자당의 유성엽 의원을 진상조사단장으로 임명했다고 홍성문 대변인을 통해 전하면서 법률가 중심으로 조사단을 구성키로 의결했다고 이날 입장을 내놨다.

다만 바른미래당과 평화당 등 중소야당들은 잇따른 청와대 관련 내부자 폭로가 정국 이슈로 부상하면서 자당의 명운이 달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의 선거제 개혁 문제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어 고민이 커지고 있는데, 자칫 이번 사안까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식의 정략적 대응에 나설 경우 정부여당에 불만 있던 유권자들이 모두 한국당 지지층으로 합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처럼 정부여당 비판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이런 기회를 한국당만 독점하도록 좌시할 수도 없어 일단 저마다 뒤처질까 대여공세엔 나서고 있으나 이미 이학재, 손금주, 이용호 등 거대 양당으로 속속 합류하는 의원들의 이탈 추세를 저지하기 위해 어떻게든 선거제 개혁까지 이뤄내야만 하는 이들 정당으로선 나날이 심경이 복잡해지고 있다.

◆ 野 총공세에 진화 나선 정부여당…‘망언 리스크’에 발목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페이스북을 통해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을 비난했다가 역풍을 맞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페이스북을 통해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을 비난했다가 역풍을 맞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이런 가운데 이들 야권의 총공세에 직면한 정부여당은 이번 폭로 사태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의도적인지 여부를 차치하고 의외의 자충수를 두면서 1라운드였던 ‘김태우 폭로’ 때와 달리 점점 궁지에 몰리는 모양새다.

더구나 개인 비위자란 논리로 대응할 수 있었던 김태우 수사관 폭로사건 때와 달리 신 전 사무관에 대해선 이런 방식도 쓸 수 없는데다 신 전 사무관의 자살 소동 이후 일부 동정여론까지 형성되면서 이제 여론전까지 야권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신 전 사무관이 자살 시도까지 했었던 만큼 후폭풍을 우려해 대응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던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이번 사건을 언급하면 할수록 국민의 관심도만 높아지기에 이해찬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 모두 4일 회의에선 가급적 관련 발언을 삼갔으며 이해식 대변인 논평을 통해서도 “야당의 불필요한 정치공세와 언론의 자극적 경쟁보도는 자제돼야 한다”는 반응을 내놓는 정도에 그쳤다.

기재부 역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같은 날 ‘경제관계장관회의’ 주재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신 전 사무관의 폭로에 대해 “진정성 있는 문제를 제기했다”고 평하면서도 “팩트(fact)에 있어선 외압이나 압력은 없었다. 기재부 내부 프로세스 과정이 전체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탓”이라고 해명하는 수준의 입장만 표명했을 뿐 얼마 전 신 전 사무관을 고발할 때와 같은 강경대응 기조는 더 이상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는데, 신 전 사무관이 의혹을 폭로했던 유튜브 방송에서 후원계좌를 써놨던 점을 꼬집어 “신재민은 돈 벌러 나온 것이다. 나쁜 머리 쓰며 의인인 척 위장하고 순진한 표정을 만들어 청산유수로 떠는 솜씨가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고 비난하는 내용의 페이스북 글을 올렸다가 신 전 사무관의 잠적 소식이 보도된 뒤 이를 지웠던 손혜원 민주당 의원이 4일 글 삭제 이유에 대해 “본인이 한 행동을 책임질 만한 강단이 없는 사람이라 더 이상 거론할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다.

즉각 야권은 손 의원의 발언에 대해 ‘인신공격’이라며 한 목소리로 비판했고 손 의원실엔 ‘18원 후원금’이 쇄도하는 등 여론의 뭇매까지 쏟아졌는데 이 같은 민주당의 자충수가 야권 반등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인지 그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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