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장관 자리 내세워 野에 ‘러브콜’…野, 하나 같이 ‘진정성 의심’

[시사포커스 오훈 기자]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당대표를 예방하고 인사말을 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오훈 기자]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당대표를 예방하고 인사말을 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개각을 준비 중인 청와대에서 돌연 야권에도 일부 장관직을 내주는 ‘협치 내각’ 수용 의사를 공개 표명한 이래 정치권이 연일 들끓고 있다.

물론 야권에선 대체로 의심에 찬 시선을 보내면서 회의적 반응을 내놓고 있지만 그럼에도 각 야당마다 어느 정도 온도차는 있어 지지율 하락으로 국정 운영 동력이 떨어진 정부여당에 한 줄기 구원의 빛이 될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靑 “입법문제 협치 필요성 느껴 野에 입각 기회 줄 것”

앞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23일 정례브리핑에서 “적절한 자리에 적절한 인물이면 협치 내각을 구성할 의사가 있다”며 지방 선거 이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먼저 이런 요청이 왔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자리에서 김 대변인은 개각 폭과 관련 “협치의 폭과 속도에 따라 입각의 폭도 달라질 것”이라며 ‘보수정당의 입각을 생각하고 협치의 개념을 던진 것이냐’는 질문에도 “어디까지가 진보고 보수인지 모르겠지만 많이 열려있는 것 같다”고 개방적 의사를 내비쳤다.

다만 그는 야권 인사 입각 시 검증 기준에 대해선 “우리 정부가 표방하고 있는 기준이 적용될 것”이라면서도 “아직 모든 게 변수가 많은 것으로 여겨진다. 의원 입각도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여야 협상과정에서 좀 더 구체화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여당의 요청으로 협치 내각을 검토하게 됐다는 김 대변인의 발언에서처럼 이미 더불어민주당에선 지난 20일 취임 인사차 자당을 찾아온 자유한국당의 김병준 신임 혁신비대위원장에게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직접 ‘협치 수박’을 선물한 뒤 노무현 정권 때 장관을 지냈던 김 위원장을 상대로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대연정 구상을 다시 거론하기도 했다.

그래선지 김 위원장도 추 대표와 만난 직후 기자들에게 “진영논리를 앞세우기보다 국가적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놓고 같이 고민하고 풀 것은 풀고, 대립과 갈등할 것은 하고,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그때나 지금이나 갖고 있다”며 “여야가 협력해 국가의 풀어야 할 문제를 적극적으로 푸는 입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일단 긍정적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청와대에서 직접 ‘협치 내각’이란 발언이 나온 뒤 야권의 반응은 시큰둥한 수준을 넘어 싸늘하기 이를 데 없는 실정인데, 불과 지난달만 해도 문 대통령이 직접 야권의 총리추천제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하고 여당의 추 대표조차 연정 가능성에 대해 0%라고 줄곧 선을 그어오다가 갑자기 입장을 180도 선회했다는 점에서 그 저의를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 野, ‘협치 내각’에 의심 품은 채 조건 거는 형태로 응수

당장 제1야당인 한국당에선 김성태 원내대표가 24일 KBS라디오 ‘최강욱의 최강시사’에 나와 협치 내각 제안에 대해 “지금은 전혀 그럴 단계가 아니다. 아직 적폐청산의 미명 하에 정치보복을 계속하고 있다”고 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김 원내대표는 “정치 보복이 아닌 일방통행식 국정운용을 안 한다는 선언을 해야 한다. 보복 정치를 청산하고 제대로 된 협치를 통해 대한민국 미래를 새롭게 만들자는 반성과 진정성 있는 다짐이 있다면 당 차원에서도 검토될 수 있겠다”고 가능성을 열어두는 한편 “협치는 야당을 상대로 같이하자는 건데 거기에 따른 제안과 설명이 분명히 있어야 했다. 선의라고 하더라도 분명한 정치적 도의는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심스러운 건 분명하지만 그래도 일종의 조건을 내거는 모양새인데, 우선 김병준 혁신 비대위원장도 같은 날 상임전국위 직후 기자들과 만나 “장관 하나 들어가는 걸 갖고 협치라고 하는 건 너무 좁다”며 “단순히 입각한다고 해서 해결되겠나. 그 밑에 차관이하 관료들은 누구 눈치 보고 누구의 명을 따르겠는가”라고 꼬집었다.

한 발 더 나아가 김 위원장은 노 전 대통령 시절 자신이 제안했던 ‘대연정’과 관련해서도 “그때 대연정은 대통령이 필요한 정책적 사안 몇 가지를 제외한 모든 권한을 제1야당 대표에게 다 준다는 것”이라고 설명한 뒤 이번 정부의 협치 내각 제안에 대해선 “쉬운 문제가 아니다. 협치고, 대연정이고 그 내용과 정도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그 차이를 분명히 했다.

[시사포커스 오훈 기자]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오훈 기자]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바른미래당에서도 24일 김관영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를 통해 “현재로선 그 진정성에 의문이 있다. 장관 자리 한 두개 내주면서 협치의 포장을 하려는 의도라면 안 된다”며 “청와대가 먼저 진정성을 보여야 하고 여기엔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 있어야 한다”고 한국당 측과 비슷한 입장을 내놨다.

특히 바른미래당 역시 한국당처럼 일종의 조건을 내걸었는데, “진정성 있는 협치는 정책 협치가 먼저고 더 중요하다. 바른미래당이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나 개헌, 선거제도 개혁 등에 대해 그동안 줄곧 요구한 것들이 있는데 이에 대한 청와대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며 “공은 여전히 청와대가 쥐고 있다. 야당을 국정 파트너라 생각한다면 협치 내각 형식이 아니라 협치 내용에 대한 대화를 통해 신뢰부터 쌓아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김 원내대표는 2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선 “무작정 장관부터 보내라고 하는 것은 지금 적절하지 않다. 장관을 보내놓고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하기 어렵지 않나”라며 “몇 명의 허수아비 장관을 세워놓고 야당의 비판을 무마시키려는 그런 의도가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럼에도 김 원내대표는 “서로 연정을 하려면 연정에 관한 협약서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며 “들어간 장관이 소신을 갖고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고 협치에 관한 최소한의 계약이라고 할까, 그런 것들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여 구체적 연정 형태가 되면 조건부 수용할 수도 있다는 견해를 표하기도 했다.

이렇듯 청와대의 태도 변화를 먼저 요구하는 이런 기조는 같은 당 김동철 비대위원장도 비슷했는데, 25일 비대위 회의에서 김 위원장은 해당 제안을 언론보도로 접하게 된 점을 들어 “이게 올바른 소통 방식이고 협치의 진정성 있는 태도인가. 그건 협치가 아니라 협박”이라며 “협치는 양보와 타협을 전제로 한다”고 날선 비판을 가했다.

이 뿐 아니라 범여권 개혁연대를 주장하고, 여당과 같은 진보진영으로 분류되어온 민주평화당조차 협치 내각 제안에 의외의 반응을 보였는데, 지난 24일만 해도 이용주 원내대변인을 통해 “공식 제안이 들어와야 논의 가능하다”며 유보적 태도를 취했던 평화당은 25일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선 조배숙 대표가 “협치를 제도화하지 않은 채 장관자리로 야권을 떠보는 것은 현행 헌법정신에도 맞지 않고 정당 민주주의와도 어긋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그나마 조 대표는 “청와대가 진심으로 협치를 바란다면 선거제도 개선과 대통령제 개헌 논의에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며 “협치 내각을 하려면 선거제도 개선과 개헌합의 이후에야 가능하다”고 여지는 남겼는데, 당초 다른 야당과 달리 평화당은 정의당과 더불어 정부여당에 어느 정도 협조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렇게 나왔다는 점에서 협치 내각이 실제 성사되기까지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시사포커스 오훈 기자]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오훈 기자]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심지어 평화당 일부 의원은 정부여당의 갑작스러운 제안이 사실상 보수당과의 연대를 추진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까지 보내고 있는데, 박지원 의원은 25일 “완전히 정체성이 다른 정당들과 함께 연정하겠다는 것은 제2의 YS식 3당 합당이라 본다”고 말했고, 천정배 의원도 지난 24일 페이스북을 통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이것은 정확히 말해 한국당과의 대연정 시도”라고 주장한 바 있다.

◆ 고민 깊은 靑, 협치 내각 제안 ‘용두사미’ 되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와대도 화두는 던져놨지만 난감해 하는 표정인데,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4일 오후 기자들과나 만나 협치 내각 제안에 야권이 미온적 반응을 보이는 것과 관련 “청와대 또는 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성격은 아니다”라며 “여러가지가 맞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쉬운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집권 2년차로 접어든 올해엔 정책성과를 내야하고 이를 위해선 여러 개혁입법도 처리해야 하는 만큼 야권과의 협치는 좋든 싫든 불가피한 형국이기 때문인데, 그래도 여당에 우호적이던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이란 원내교섭단체까지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사망으로 정족수 미달돼 교섭단체 지위를 잃게 되면서 정부여당에게는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으로 흐르고 있다.

또 여당을 이끌게 될 차기 당권주자들 사이에서도 야권과의 협치는 모두 공감하지만 연정에 대해선 저마다 시각차를 보이고 있어 민주당에서 논의를 진행 중이란 청와대 측 발언에도 불구하고 아직 여당 안에서조차 통일된 입장이 마련되지 않은 게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은 실정이다.

과연 청와대가 거론한 ‘협치 내각’ 카드가 야권의 실질적 협조를 이끌어낼 신의 한 수가 될 것인지, 아니면 정부 실패를 야당의 비협조 탓으로 돌릴 만한 또 하나의 구실로 활용하는 데 그칠 것인지 그 결과에 벌써부터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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