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증권 판결과 상반된 판결에 혼선 가능성 지적

▲ 대법원이 ELS소송에서 이번에는 BNP파리바은행과 신영증권 대상 소송에서 금융사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BNP파리바그룹
대우증권의 주가연계증권(ELS) 시세조종 소송과 관련해 두 차례에 걸쳐 금융사의 책임을 인정한 바 있는 대법원이 이번에는 BNP파리바은행과 신영증권 대상 소송에서는 금융사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16일 법원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김모 씨가 BNP파리바은행과 신영증권을 상대로 “시세조종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액 9200만원을 지급하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종가가 상환기준 가격 이상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커 은행은 주식보유량 조절과 상환자금 마련을 위해 100만주를 매도할 필요가 있었다”면서 “ELS의 조건성취 여부는 상환기준일 종가로 결정되므로 델타 헤지는 장 종료 직전 수행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시했다.
 
또한 재판부는 금융사의 헤지거래가 시세에 영향을 주더라도 거래의 공정성이 훼손됐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시세조종이라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앞서 대법원은 대우증권의 델타 헤지 거래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최초로 인정한 바 있어 유사한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투자자들은 볼멘 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증권가에서도 혼선이 빚어지는 등 당황한 모양새다.
 
◆BNP파리바, 장 마감 직전 대거 매도
이번 소송은 2006년 신영증권이 발행한 ELS 상품과 연관돼 있다. 김 씨는 당시 신영증권의 ELS 상품 1억원 상당을 매입했다. 이 상품은 하이닉스 보통주와 기아자동차 보통주를 기초자산으로 만기 3년에 6개월마다 총 5회의 조기상환 기회를 부여했던 상품이다. 투자자들은 중간평가일에 기초자산의 주가가 최초 기준가의 75%를 넘게 되면 연 16.1%의 수익을 볼 수 있었다.
 
신영증권은 조건 충족시 투자자들에게 확정수익금을 지급할 목적으로 BNP파리바은행 등 외국계 금융사들로부터 ELS와 동일한 구조의 파생금융상품을 매입하는 스왑계약을 체결했다.
 
첫 중간평가일인 2006년 9월 4일 당일 BNP파리바은행인 장 마감 전 모두 7차례에 걸쳐 기아차 주식 140만주를 대거 매도했고 그 결과 해당일 기아차 주가는 조건을 밑돌았다. 장 마감 전까지 기준가격의 75%인 1만5562.5원을 넘어 1만5950원에 거래되던 기아차 주가는 BNP파리바은행의 매도 이후 1만5500원으로 장을 마감, 기준가를 넘지 못했다.
 
이에 투자자들은 조기상환 수익을 받지 못했고 3년 후 만기일에 해당 종목들 주가는 최초가의 절반까지 추락, 김 씨는 2950만원 돌려받게 됐다. 3년간 투자한 결과 투자금의 70%가 날아간 셈이다. 김 씨는 이를 BNP파리바은행의 시세조종행위로 인한 피해라고 보고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대우증권 소송과 유사한 구조
이는 대법원이 대우증권의 책임을 인정했던 소송과 유사한 구조다.
 
지난해 5월 대법원은 최초로 ELS 시세조종 소송에서 투자자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당시 윤모 씨 등 3명이 대우증권을 상대로 낸 상환금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낸 바 있다.
 
윤 씨 등은 2005년 3월 대우증권이 삼성SDI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ELS상품에 투자했다. 이 상품은 4개월마다 중간평가를 실시해 기준가격보다 기초자산의 주가가 높을 경우 3%의 수익을 되돌려 받는 상품이었다.
 
윤 씨 등은 2차 조기상환 평가일이던 2005년 11월 16일 장 마감 10분 전까지 삼성SDI 주식이 상환기준가격인 10만8500원을 500원 넘긴 10만9000원을 기록하면서 수익 실현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대우증권은 장 막판 보유물량의 3분의 1이 넘는 9만8190주를 기준가보다 낮은 가격에 대량 매도했고 삼성SDI 주가는 당일 10만8000원으로 장을 마감, 기준가격을 하회했다. 이후 삼성SDI 주가는 등락을 거듭하다 추락, 윤 씨 등 3명은 투자금액 2억1900만원의 33% 가량을 날리게 됐다.
 
윤 씨 등 3명은 이에 대우증권을 상대로 상환금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1·2심에서는 대우증권의 델타헤지 거래가 정당하다고 판시했지만 대법원은 다른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은 델타 해지 거래 자체는 문제가 될 것이 없다며 형사 책임에 따른 손해배상은 제기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시세 조종 행위는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대법원은 장 마감 직전 대량 매도한 행위에 대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 행위라고 판단하고 민사적 손해배상 책임은 있다고 판시했다. ELS 소송과 관련해 최초로 금융사의 책임을 인정한 획기적인 판결이었다.
 
같은 상품을 두고 벌어진 또 다른 소송에서 대법원은 지난 8일 또 한 차례 대우증권에 패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장모 씨 등이 대우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상환금 청구소송에서 대법원은 대우증권이 원고에 1억2748만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역시 마찬가지의 취지에서였다.
 
▲ 대법원이 상판된 판결을 내놓자 전문가들과 투자자들의 표정도 엇갈리고 있다. 불공정 거래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뉴시스
◆일부 차이 있지만 현장에서는 혼선
따라서 대법원이 이번 BNP파리바은행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앞선 대우증권의 책임을 인정했던 소송과 대비되며 혼선을 빚고 있다. 큰 차이가 없는 데도 불과 10여일 만에 대법원이 상반된 판결을 내렸다는 지적이다.
 
이번 소송에서 재판부는 BNP파리바은행의 장 마감 전 주식매도 행위가 시장요인에 의한 정상적 주식매매라고 판시했다. ELS운영사인 신영증권이 델타헤지 거래로 인한 위험성을 사전에 고객에게 고지했고 원래 델타헤지 거래가 단일가 매매 시간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또한 종가가 상환기준 가격 이상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델타헤지 거래는 당연한 것이고 장 종료 직전 수행되는 것 역시 합리적이라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반면 대우증권 소송에서 재판부는 “증권사는 중도상환 조건의 성취 여부에 최소한의 영향을 미치는 방법으로 델타 헤지 거래를 해야 한다”면서 장 종료 직전의 몰아치기 매도는 투자자의 신뢰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같은 행위에 대해 다른 판단이 내려진 셈이다.
 
다만 양사의 매도 과정은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BNP파리바은행은 100만주 중 60만주를 시장가에 매도 주문했다. 반면 대우증권은 기준가격보다 저가에 집중 매도했다. 즉, 호가를 감안할 때 BNP파리바은행은 시세조종의 의도가 없었고 대우증권은 있었다는 판결이 아니겠냐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대량 매도 행위 자체가 주가를 떨어뜨릴 확률이 높다는 점에서 대법원이 델타헤지 거래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해 이 같은 판결이 나온 것 아니냐는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시장가로 매도 물량을 내놓는 것이 주가를 오히려 더 떨어뜨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정가 주문은 미체결될 가능성이 있지만 시장가 주문은 바로 체결된다는 점에서다.
 
또한 대법원은 이번 소송에서 앞선 소송과 다른 잣대를 적용한 부분이 있다. 대우증권 소송에서 대법원은 대우증권이 ELS 중도상환 조건이 갖춰질 경우 대우증권은 상환금을 지급해야 했기 때문에 ‘투자자의 이익은 곧 대우증권의 손해’라고 여기고 이를 시세조종의 유인이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번 소송에서 대법원은 BNP파리바은행이 중도상환을 방해하더라도 만기까지 남은 중도상환일에 더 많은 원리금을 지급해야 하는 부담이 있기 때문에 시세조종의 유인이 없다고 봤다.
 
한편 대체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상판된 판결을 내놓자 전문가들과 투자자들의 표정도 엇갈리고 있다. 불공정 거래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ELS 상품의 특성상 한 쪽에서 델타 헤지 거래가 이뤄지면 투자자들이 중간상환조건을 충족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 이를 앞선 판결과 다른 잣대로 볼 경우 혼선이 크게 빚어질 수 있다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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