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vs 투자자’에서 투자자 손 들어준 첫 판례

▲ 지난 28일 대우증권의 ELS상품에 투자한 투자자 3명이 “대우증권의 대량 매도로 상환금을 부당하게 받지 못했다”며 제기한 상환금 소송에서 대법원이 투자자 측의 손을 들어줘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KDB대우증권

대우증권이 지난 2005년 발행한 ELS(주가연계증권)를 운용하는 과정에서 중간 평가일 장 마감 직전 대량 매도로 종가에 영향을 준 행위에 대한 소송에서 대법원이 투자자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28일 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은 윤덕중 씨 등 3명이 대우증권을 상대로 낸 상환금 소송에서 원고가 패소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 보냈다.

대법원은 대우증권의 거래 행위 자체는 위법이 아니라면서도 “증권회사는 유가증권의 발행, 매매 기타 거래를 하면서 투자자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이나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해 투자자의 보호나 거래의 공정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면서 대우증권의 종가 조작 방법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음을 인정햇다.

이는 국내에서 증권사와 투자자의 이익이 충돌한 상황에서 투자자의 이익을 우선시해야한다는 첫 대법원 판례다. 그간 과거 판례에서는 투자자의 이익이 우선시된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대법원에서도 1·2심과 마찬가지로 증권사의 승리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지만, 이번 판결로 향후 유사한 소송이 빗발칠 것으로 전망된다.

◆대우증권의 장 마감 직전 대량 매도로 상환 무산돼
분쟁의 단초가 된 사건은 지난 2005년 3월 16일 대우증권이 삼성SDI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ELS상품으로부터 출발한다. 해당 ELS에 각각 3300만원에서 1억5000만원까지 투자한 윤덕중 씨 등은 2차 조기상환 평가일인 2005년 11월 16일 장 마감 직전인 오후 2시 50분까지 삼성SDI 주식이 상환 기준 가격인 10만8500원을 500원 넘긴 10만9000원을 기록하면서 수익 실현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이 상품은 4개월마다 중간평가를 실시해 기준가격보다 높을 경우 3%의 수익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상품이었다. 하지만 대우증권이 장 막판 무려 보유물량의 3분의 1이 넘는 9만8190주를 기준가보다 낮은 가격에 대량 매도하면서 결국 그날 종가가 10만8000원으로 마감됐다. 10분 새 대우증권의 대량 매도로 1000원이 떨어져 중간 상환이 무산된 셈이다. 평가일 전일 종가는 이미 10만8500원을 기록한 바 있다.

기준일 이후 삼성SDI의 주가는 상승세를 타며 11만8000원선을 기록했지만 2006년부터 삼성SDI의 주력상품인 PDP의 가격이 급락하면서 주가도 곤두박질쳤다. 결국 2008년 3월 윤덕중 씨 등 3명이 해당 ELS를 만기환급 받을 때는 처음 투자금액 2억1900만원보다 33% 가량 손해를 본 1억4633만원을 돌려받는 데 그쳤다.

이에 윤덕중 씨 등 3명은 대우증권을 상대로 상환금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1·2심에서는 모두 “대우증권의 매도 행위는 정당한 ‘델타 헤지’ 거래”라며 “ELS를 발행한 금융기관이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것”이고 판결하고 대우증권의 행위에 문제가 없다고 판결했다.

‘델타 헤지’란 파생시장에서의 포지션을 기존과 같이 유지하기 위해 기초자산의 가격변화에 따라 풋이나 콜을 사들이는 것을 가리킨다. 기초자산의 가격변화에 대한 옵션가치의 민감도를 표현하는 단위 ‘델타값’에 근거, 적정한 수량의 기초자산을 보유해 옵션의 손익과 보유하는 기초자산의 손익이 상쇄되도록 하는 거래 방법이다. 

▲ 대법원은 대우증권의 델타 해지 행위가 시세 조작 행위는 아니라면서도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게을리해 신의성실의 의무를 위반했다며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는 획기적인 판결을 내렸다. 사진 / 홍금표 기자

◆大法 “‘델타헤지’, 시세 조작 아니지만 배상 책임 있어”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1·2심과 달랐다.

대법원은 ‘델타 헤지’ 거래 자체에 대해서는 문제를 삼지 않았다. 대법원은 1·2심과 같이 이러한 매매 행위는 시세를 조종하려 한 불법 행위는 아니라고 판결, 형사 책임에 따른 손해배상은 청구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즉 시세 조종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범법 행위는 아니라고 본 셈이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1·2심과 달리 대우증권이 이 매매 행위를 중간평가일 당일 장 종료에 인접한 시간대에 실행한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해 조건 성취를 방해한 것”이라며 투자자 보호에 소홀한 것이기 때문에 손해배상 책임 등 민사적 책임이 있다고 판결하는 획기적인 판결을 내렸다.

즉, ‘델타 헤지’ 자체는 상관없지만, 이것을 앞서 분산해 매도하거나 당일 접속 매매 시간대 전체에 걸쳐 분산하는 것이 아니라 장 종료 직전에 ‘몰아치기’로 매도한 것은 아무리 ‘델타 헤지’ 거래라도 옳지 않으며 투자자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행해져야 한다는 판결인 셈이다.

대법원은 “삼성SDI 보통주 중 상당량을 이 사건 중간평가일의 접속매매시간대 전체에 걸쳐 분산하여 매도해 종가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의무가 있었다”며 “그러나 피고(KDB대우증권)는 단일가매매시간대에 전체 매도 주문의 약 79%에 관하여 매도 주문을 하면서 그 중 9만4000주는 기준가격에 미치지 못하는 호가를 제시, 결국 중도상환조건 성취가 무산됐다”고 꾸짖었다.

이어 대법원은 “이 사건은 중간평가일의 기초자산 종가에 따라 중도상환 조건이 성취될 가능성이 커서 증권사와 투자자 사이의 이해관계가 서로 상충하는 상황”이라며 “이 경우 증권사는 중도상환 조건의 성취 여부에 최소한의 영향을 미치는 방법으로 헤지 거래를 함으로써 투자자를 보호해야지, 그 반대로 중도상환 조건의 성취를 방해함으로써 투자자의 신뢰를 저버리는 헤지 거래를 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 당시 대우증권의 행위는 ‘중도상환 조건의 성취를 방해한 것’으로 규정했다.

◆증권사들, 획기적 판결에 ‘충격’
투자자의 이익 보호를 우선시한 첫 판례인 만큼 이날 대우증권의 패소는 증권사들에게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선적으로 일각에서는 KDB대우증권이 배상할 금액이 100억원을 훌쩍 넘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윤덕중 씨 등 3명이 2심에서 청구한 금액 1억1767만원에 만기 상환 시점이었던 2008년 기준 연 20%의 이자를 적용하고, 파기 환송된 재판이 마무리될 때까지 2015년 기준 배상액은 4억원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150억원 규모가 판매된 같은 상품에 투자한 다른 투자자들의 만기 수익의 손실 45억원 정도에 연 20%의 이자를 붙일 경우 100억원이 훌쩍 넘는다는 계산인 셈이다. 다만 이렇게 전부 인정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적어도 재무적으로 적지 않은 타격이 발생할 것은 확정적으로 보고 있다.

또한 ELS 상환기준일 주식 대량매도행위와 관련된 소송을 겪고 있는 다른 증권사들도 파기환송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06년 12월 현대증권의 SK텔레콤·하이닉스 주식을 기초주식으로 판매한 상품은 현대증권이 2008년 6월 12일 조기상환 기준일에 SK텔레콤 주식 7만5000주를 집중 매도해 소송이 제기됐고, 2007년 10월 11일 현대증권이 삼성전자와 신한금융지주 주식을 기초주식으로 판매한 상품은 2009년 10월 7일 신한금융지주 주식 50만주를 집중매도해 역시 소송이 제기된 상태다.

한화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등도 비슷한 소송을 겪고 있다. 현재 이 같은 사례들을 포함해 10건 이상의 민·형사 소송이 진행 중이며, 소송 규모는 ELS 발행액 기준으로 300억원 안팎에 달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 4월에는 대법원에 의해 한화투자증권의 ‘한화스마트 주가연계증권(ELS) 제10호(원금비보장형)의 집단소송마저 허가된 상태다.

한 전문가는 “굳이 주가 조작이 아니어도 투자자에게 신의성실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배상 책임이 대법원에서 인정된 것은 향후 관련 소송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지난 2009년 하반기 ELS 종가 조작 논란이 불거지자 금융감독원이 상환 평가일에 증권사가 매도할 수 있는 물량을 제한하고 상환 기준가격에 적용되는 주가를 직전 3거래일 평균으로 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대부분의 소송은 2010년 이전에 발행된 ELS 상품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따라서 2010년 이후 발행된 ELS 상품의 경우에는 거의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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