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탄압 의혹 재조명…사측 “무효화 후 재진행, 문제 없어”

 

▲ 과거 노조 및 근로자와 대립각을 세워 온 HMC투자증권 김흥제 사장이 이번엔 지역 센터장이 지난 1월 취업규칙 변경 과정에서 부당하게 압박을 행사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HMC투자증권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HMC투자증권이 올해 초 하위 평가자에 대한 복지를 줄이는 내용의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기록된 녹취록이 공개되자 부당한 압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6일 <경향신문>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입수한 녹취록에 근거, HMC투자증권 경인센터장이 지난 1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대한 의사 표시를 센터장실에서 하도록 해 자유로운 의사표시를 할 수 없도록 했다고 보도했다.

HMC투자증권은 지난 1월 ‘복지 부문 확대를 통한 임직원 사기진작 및 성과중심 조직문화 활성화’라는 이유로 복지규정을 개정한 바 있다. 심상정 의원이 입수한 녹취록은 이 당시 경인센터에서 일어난 일에 관한 것이다.

당시 HMC투자증권이 변경을 시도한 취업규칙은 직전 인사평가에서 D등급을 받은 직원에게 차량구입비, 의료비, 학자금, 명절귀성비 등의 복지혜택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직원들한테 불리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노조원 중 한 명이 센터장실에 들어가 이에 대해 항의했다. 이 직원은 센터장에게 “(동의서를) 센터장 앞에서 쓰게 하면 어떻게 하느냐”라며 처음부터 찬반의사 파악을 다시 해달라고 주문했지만, 센터장은 “자유롭게 들어와서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결국 이 직원이 본사 담당자에게 연락한 뒤에야 해당 절차가 무효화되고 다시 동의 절차가 새로 진행돼 취업규칙이 변경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여직원이 돌아다니면서 진행했던 새로운 절차 진행 방식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동의 여부 파악이 공개되기 때문에 불이익이 가해질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노조 “성과를 복지와 연동하는 경우 있나”
노조는 HMC투자증권 김흥제 사장이 지속적으로 ‘노조 탄압’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경인센터의 일도 그 일환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HMC투자증권은 이미 취업규칙 변경으로 의혹을 받은 전례가 있다. 지난 2013년 말 실적이 부진한 영업사원에 대해 임금을 삭감하는 내용이었다. 이처럼 근로자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내용의 취업규칙 변경안이었지만 찬성률은 99% 이상이었다.

이번에 진행됐던 취업규칙 변경 역시 결국 91.1%의 찬성률로 통과됐다. 노조 측은 직원들에게 불리한 내용의 취업규칙 변경이 이렇게 높은 찬성률을 보인다는 점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HMC투자증권은 노조 인원이 200명 가량으로 전체 임직원 700여명의 50%가 채 되지 않기 때문에 취업규칙 변경은 노조와의 협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전체 직원들의 찬성률이 50%가 넘어야 이루어진다. 이같은 점 때문에 개별 직원들이 찬반을 모두 표해야 하는데, 사측이 동의 여부 결과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불이익이 두려워 되도록 찬성을 해주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셈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상황 역시 이 같은 우려의 일환에서 부각됐다는 얘기다.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취업규칙은 성과에 따라 복지를 제한한다는 내용 때문에 적용 대상이 아무리 적다 하더라도 갈등의 소지를 다분히 담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노명래 HMC투자증권 노조지부장은 “증권업계는 물론 어느 기업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복지제도의 성과 연동’”이라면서 “사실상 급여를 볼모로 직원들을 길들이기 위한 행태”라고 비판했다. 실질적인 혜택 감소라는 피해는 물론이거니와 직원들 사이에서의 박탈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지속적인 김흥제 사장의 일방통행에 근로자들은 노조를 설립하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HMC투자증권은 지난해 7월 희망퇴직을 단행한 데 이어 2개월 뒤 노조원 17명을 ODS 부서로 발령해 지난 3월 부당노동행위 판정을 받았다. 성과에 따라 복지와 임금을 줄이는 취업규칙 변경도 두 차례 단행했다. ⓒHMC투자증권 노동조합

◆HMC투자증권, 근로자 탄압 의혹 재조명
이 같은 의혹의 중심에는 과거 HMC투자증권의 행보가 자리잡고 있다.

앞서 지난해 7월 임직원 940명 중 252명을 희망퇴직 시키는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은 결국 부당노동행위 판정으로 끝났다.

HMC투자증권은 희망퇴직 두 달 후 직원 20명을 방문판매 등 외부영업 활동 부서인 ODS(Outdoor Sales)로 발령냈는데, 이 중 17명이 노조 조합원이었다. ODS 부서는 증권가의 새로운 수익 모델로 각광받던 시기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일반적으로 구조조정 거부자 등에 대한 정리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 3월 30일 부당노동행위 판결을 내리면서 “방문판매조직에 핵심 노조원의 대부분을 투입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했다. 즉, ODS 조직을 신설해 노조 지도부와 핵심 조합원을 배치한 사측에 잘못을 지적한 셈이다.

노명래 지부장은 “HMC투자증권은 지난해 7월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강압적인 명예퇴직을 강행했고, 같은 해 9월 방문판매법 통과에 대비한다며 방문판매조직을 신설하고 노동조합 지부장, 수석부지부장, 사무국장 등 핵심 조합원 등을 배치했다”며 “방문판매조직은 직원퇴출프로그램”이라고 지적했다.

당시에도 노명래 지부장은 HMC투자증권의 경영정책을 지적했다. 노명래 지부장은 “HMC투자증권은 일방적인 취업규칙 변경을 통해 상식 이하의 차별적 성과연동복지제도를 신설했다”면서 “저성과자는 명절귀성비, 의료비, 학자금지급까지 제한 받는데 이는 상식 이하의 경영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저성과자의 차별 내용은 앞서 이번 녹취록이 공개된 해당 변경 건에 의해 결정된 부분이다.

또한 이번에 녹취록을 입수한 심상정 의원은 “일반 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지침이 만들어지면 회사는 노조 조합원을 저성과자로 만들고 낮은 인사고과를 문제삼아 징계한 뒤 해고할 가능성이 크다”며 “HMC투자증권 사례를 보면 노동부가 독자 추진하는 노동시장 구조 개혁의 위험성을 분명히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흥제 사장, HMC투자증권의 명예를 훼손”
이 같은 갈등이 김흥제 사장 부임 이후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도 노조 측의 불만이다.

지난 3월 노명래 지부장은 중앙노동위원회의 ODS 배치 부당노동행위 판결 당시 “김흥제 사장이 취임한 후 6개월 만에 증권업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살인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면서 “사측이 일방적인 취업규칙 변경을 통해 상식 이하의 차별적 성과연동복지제도를 신설, 저성과자에게는 명절귀성비, 의료비, 학자금지급까지 제한하는 등 상식이하의 경영정책을 강행하고 있다”며 김흥제 사장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노조 측은 이 같은 이유를 바탕으로 김흥제 사장이 HMC투자증권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며 회사 경영과 노사 관계의 정상화를 위해 김흥제 사장의 용퇴를 촉구하기까지 했다.

아울러 지난 1월 노조는 “HMC투자증권은 2008년 설립 이후 임금 인상률이 1%에도 미치지 못하며, 이익잉여금은 1000억원이 넘는데도 직원들의 복지와 임금이 사실상 마이너스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김흥제 사장은 6년간 자리를 지키던 제갈걸 사장이 성과 미비로 인해 교체된 후 2013년 12월 취임한 후 끊임없이 노조 및 근로자와의 대립각을 세워 왔다.

김흥제 사장은 노조 설립 직후 성명서를 바탕으로 노조 위원장을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했고, 지난해 6월에도 대표교섭을 위해 방문한 노조 간부 5명을 상해 및 업무방해 등으로 고소했다.

아울러 취임 후 두 차례의 취업규칙 변경, 200여명이 넘는 구조조정, ODS부서 발령 등 고강도의 구조조정을 통해 직원들의 큰 불만을 사기도 했다.

김흥제 사장은 보복성 인사 논란에도 휩싸인 바 있다. 지난해 말 김흥제 사장이 참석한 회의에서 한 직원이 구조조정과 근로환경에 대해 발언했는데, 이후 이 직원에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리고 동조한 직원 1명에 감봉 2개월 및 정직 처분을 내린 것이다. 당시 사측이 밝힌 징계 이유는 회사의 기본 예절을 파괴했다는 것이었다. 

▲ HMC투자증권 측인 이날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해당 동의 절차가 논란 이후 재진행됐으며 전체 91.1%의 찬성률로 통과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양식 자체가 개인신상 공개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의사표시자의 확인 가능성 역시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HMC투자증권

◆사측 “무효화 후 재진행, 높은 찬성률로 통과”
한편 15일 HMC투자증권 관계자는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경인센터의 취업규칙 개정 절차에서 불거진 문제에 대해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1차적으로 센터장실에서 하게 한 것은 맞지만, 센터장 앞에서 찬반 동의 여부를 선택하게 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센터장실은 그저 제공된 장소였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다만 센터장실이라는 공간에 대해 노조 측에서 자꾸 말이 나왔기 때문에 아예 해당 결과를 무효화하고 새로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여직원이 직접 돌아다니며 찬반 서명을 진행한 것과 관련해서도 “원래 찬반 동의는 비밀 투표가 아니라 의사를 표현하는 사람의 선택이 서류를 통해 공개되도록 돼 있다”라면서 “동의 양식 자체에 개인 신상을 쓰게 돼 있기 때문에 문제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울러 그는 변경되는 내용에 관해서도 “회사 전체 직원 716명 중 650명이 찬성해 91.1%의 찬성률을 보여 통과됐고, 경인센터에서는 이보다 상당히 낮기는 하지만 71%의 찬성률로 통과됐다”고 설명했다. 구성원 대다수가 찬성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해당 내용에 적용을 받는 근로자는 정확하게 밝히기는 힘들지만 한 자리 숫자를 넘지 않는다”며 일각에서 제기되는 우려는 근거가 없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앞서 HMC투자증권 측은 “원래 회사 직원들이 1000명이 넘었지만, 구조조정을 통해 700명 가량으로 줄어들었음에도 복지규모는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면서 “오히려 1인당 돌아가는 복지는 커진 셈”이라고 해명하고 “10명도 채 되지 않는 최저성과 인원들에게도 평생 복지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성과에 따라 회복을 시켜준다”고 답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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