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하던 쉰들러, 스위스 정부까지 동원해 압박 나서

▲ 쉰들러가 스위스 정부까지 동원해 현대그룹에 대한 재공세를 취하면서 양 측의 관계도 다시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현대그룹이 최근 수 년 간 주여 현안마다 발목을 잡아오던 쉰들러와 잠시 화해무드로 접어드는 듯했지만, 쉰들러가 스위스 정부까지 동원해 재공세를 취하면서 양 측의 관계도 다시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요르그 알로이스 레딩 주한 스위스 대사는 최근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을 만나 “현대엘리베이터와 쉰들러 간의 분쟁에 개입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스위스 정부 측이 스위스의 글로벌 엘리베이터 업체인 쉰들러홀딩AG사의 입장을 대변한 셈이다.
 
1874년 설립된 쉰들러는 스위스에 본사를 둔 세계 2위의 엘리베이터·에스컬레이터 제조사로 쉰들러코리아를 비롯해 세계 100여국에 지점을 두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만도 10조원에 달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2006년 현대엘리베이터에 투자해 현대엘리베이터 2대 주주가 됐다.
 
특히 지난해 말 현대엘리베이터와 쉰들러가 2년 넘게 벌여 온 법적 분쟁 중 하나를 조정으로 마무리하면서 양 측의 갈등이 봉합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도 나왔지만 이번에 쉰들러가 정부까지 동원한 압박을 가해오면서 이 같은 기대는 물거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 놓인 현대상선은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의 자금 지원에 다시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위기가 심화되는 모습이다. 이에 유일한 토종 엘리베이터 기업인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 주주 쉰들러와의 악연이 재조명되며 현대그룹의 고심도 깊어져 가고 있다.
 
◆난감한 정부…현대그룹은 ‘분통’
물론 정부는 현대엘리베이터와 쉰들러의 분쟁이 민간 기업 간의 분쟁인 만큼 섣불리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외국 기업의 어려움을 경청해 주는 차원에서 만남이 이뤄졌지만 정부가 직접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스위스 정부 차원에서 전달된 요청사항이니만큼 완전히 이를 무시하기도 쉽지 않다. 레딩 대사는 안종범 수석을 만나 현대상선이 부도 사태를 맞을 경우 대신 빚을 갚아주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레딩 대사는 이번 경우처럼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과의 분쟁 과정에서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우리나라의 투자 환경에 대한 국제적 평판이 나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레딩 대사는 산업통상자원부와 금융위 등에도 유사한 의견을 전달했다.
 
현대그룹은 이에 대해 쉰들러가 트집을 잡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 계약은 담보가 설정돼 있거나 콜옵션을 통해 추후 손실을 회피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는 것인데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을 노리고 지속적으로 딴지를 걸고 있다는 얘기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그룹의 순환출자 구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회사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위기는 곧 현대그룹 차원의 위기인 셈이다.
 
▲ 쉰들러 측은 현대엘리베이터가 그룹을 지원하기 위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하면서 분쟁을 본격화했다. ⓒ현대엘리베이터
◆현대그룹-쉰들러의 10년 악연
실제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 2대 주주에 오른 뒤 10여년 중 절반에 가까운 시간 동안 현대그룹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다. 이에 일각에서는 쉰들러가 아직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 확보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고 정부까지 동원한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2011년부터 쉰들러 측은 현대엘리베이터가 그룹을 지원하기 위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하면서 분쟁을 본격화했다. 쉰들러는 4년 간에 걸친 현대엘리베이터의 다섯 차례 유상증자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고 매번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쉰들러는 2011년부터 현대엘리베이터를 상대로 회계장부 및 이사회의사록 열람 가처분, 파생상품 신규 계약 및 연장 금지, 현정은 회장 등의 경영진을 상대로 한 수 천억 원 대의 주주대표 손해배상 청구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쉰들러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대부분의 분쟁에서 조정 또는 취하로 손을 뗐지만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은 아직 진행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 부당 지원으로 손해”
 
▲ 현대그룹 측은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를 적대적 M&A 대상으로 올리기 위해 트집을 잡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현대그룹
쉰들러가 지속적으로 문제를 삼고 있는 부분은 현대상선에 대한 부당한 지원으로 현대엘리베이터가 손해를 봤다는 점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지속적으로 현대상선 살리기에 개입하면서 쉰들러의 반발을 샀다.
 
현대엘리베이터는 백기사로서 자금난이 본격화되고 있던 현대상선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5개 금융사에 현대상선의 우호지분 매입 대가로 현대상선 주가가 하락할 경우 이를 보전해주는 파생상품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곧바로 현대상선 주가가 급락하면서 현대엘리베이터는 수 천억 원 가량을 보전해줘야 했다.
 
지난해 현대엘리베이터는 대규모 손실 부담을 우려, 현대그룹 차원의 자구안에 따라 현대상선과 연계된 파생상품 계약을 모두 종결키로 했다. 이후 현대그룹은 자구안을 내놓은 뒤 만기가 돌아온 넥스젠캐피탈, 구 NH농협증권, 대우조선해양 등과 맺었던 계약들을 잇따라 종료했다. 또한 신규 계약 및 연장도 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이에 양 측은 2012년 쉰들러가 제기했던 위법행위유지 청구 소송에서 지난해 조정을 받아들이고 이 건에 대한 분쟁을 종결한 바 있다.
 
하지만 쉰들러는 여전히 현대엘리베이터가 잦은 유상증자를 통해 현대엘리베이터를 지원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쉰들러 측에 따르면 현대엘리베이터는 2011년 이후 5번의 유상증자를 단행했지만, 배당도 하지 않고 수 천억원 대의 유상증자를 했음에도 오히려 자기자본이 감소하는 등 1조원 가량을 그룹 지배권 유지에 쓴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달 초 2050억원 규모의 사모 전환사채를 발행한 현대엘리베이터는 같은 달에도 현대상선의 현대엘앤알·현대아산 지분을 총 600억원에 사들이고 1392억원의 운영자금을 차입해주기로 한 바 있다. 조달한 2050억원의 대부분을 현대상선에 지원한 셈이다.
 
특히 현대엘리베이터는 그간 현대상선 연계 파생상품 때문에 2011~2013년 매출·영업이익 증가에도 불구하고 적자를 벗어나지 못한 바 있다.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가 그룹을 지원하느라 손해를 봤다고 보고 2대 주주로서 문제를 제기한다는 입장이다. 쉰들러는 유상증자에 잇따라 불참하면서 지분율이 18%까지 희석됐지만 여전히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 주주다.
 
◆현대그룹 “이중적인 쉰들러, 경영권 노리고 딴지”
하지만 현대그룹 측 역시 할 말이 많다. 유상증자는 모두 법적인 문제가 없는 경영 활동이고 높은 할인율 등에 힘입어 시장 반응도 실제로 좋았다는 얘기다.
 
또한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부터 파생상품 계약을 해지하는 등 재무건전성 회복에 공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2013년 652%에 달했던 부채비율은 지난해 188%로 수직낙하했다. 국내에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면서 매출도 꾸준히 상승곡선이 유지되고 있고 해외 진출에도 적극적이다.
 
현대그룹 측은 쉰들러가 파생상품으로 이득을 얻을 때는 가만 있다가 손실을 입을 때만 문제를 삼는 등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입장이다. 소송에서도 대부분 쉰들러가 패소한 만큼 스위스 정부까지 동원해서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은 현대엘리베이터를 적대적 M&A 대상으로 올리기 위해 트집을 잡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현대그룹은 이번 대출 계약 후에 오히려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는 상승했다는 점을 근거로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쉰들러의 행태는 경쟁업체가 주식을 매입해 이사회에서 사안마다 딴지를 거는 것과 다름없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쉰들러가 좋은 실적을 내고 있고 향후에도 전망이 좋은 기업의 지분을 보유하고도 유상증자에 잇따라 불참하는 것 또한 자사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쉰들러가 노리는 것은 지속적인 압박을 통해 경영진을 상대로 제기했던 주주대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한 후 경영진을 검찰에 배임 혐의 등으로 고발하고 경영권을 장악하는 것이라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이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의 압박까지 동원됐다는 주장이다. 업계에서는 손해배상 소송에서까지 쉰들러가 패소할 경우 그간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취한 만큼 주식을 매도하고 떠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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