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현대 ‘성과’, 동부 ‘총체적 난국’…올해 마무리 될까

▲ 선제적 구조조정 3사 중 가장 먼저 자구안을 발표했던 동부그룹은 채권단 등과 잇단 갈등을 빚으며 전체적으로 구조조정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뉴시스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 1년여간 선제적 구조조정을 진행해온 한진그룹, 현대그룹, 동부그룹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최근 금융당국은 전반적으로 기업상황이 악화하고 있다고 판단, 추가적인 구조조정 기업이 생길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현대, 한진 등 대기업 구조조정 상황을 점검하는 등 올해에도 기업 구조조정에 상당한 무게 중심을 두고 업무를 추진할 계획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경기악화가 지속되면서 동부 외에 현대, 한진 등 선제적 구조조정 대상 기업들도 쉽지 않은 한 해를 보낼 것으로 보인다”며 “또 신용등급 추가 강등 등에 따른 구조조정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부그룹, 기업 정상화 과제 남아
지난 2013년 STX와 동양그룹 사태를 겪었던 금융당국은 유동성 위기가 우려되는 대기업들의 정상화를 통해 금융시장 불안요인을 사전에 차단한다는 명목으로 '선제적 구조조정'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그리고 그 대상으로 동부그룹과 현대그룹, 그리고 한진그룹이 지목됐다. 이에 따라 동부그룹이 가장 먼저 3조원 규모의 자구안을 발표했고, 현대와 한진이 뒤를 따랐다. 1년이 지난 지금 ‘선제적 구조조정’ 효과를 둘러싼 평가는 엇갈린다.

3개 그룹 중 최근 구조조정과 관련해 가장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곳은 단연 동부그룹이다. 동부그룹은 2015년까지 3조원을 마련하겠다는 자구 계획안을 발표했었지만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잡음을 빚었다. 가장 먼저 자구안을 발표했던 동부그룹의 구조조정은 당초 계획에서 크게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13년 11월부터 시작된 동부그룹의 구조조정은 주력 회사인 동부제철과 동부건설이 각각 채권단 관리와 법정관리 체제로 들어가면서 사실상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동부화재 등 금융계열사를 지켜냈지만 동부제철과 동부익스프레스, 동부특수강 등은 잃게 됐다.

특히 지난달 31일 법정관리를 신청한 동부건설은 지난 7일 법정관리가 개시됐다. 현재 동부건설과 거래 비중이 높은 협력사들의 동반 부실화 가능성이 난제로 남아 금융당국은 향후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동부제철의 경우 지난 7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을 감자하면서 김 회장은 경영권을 잃고 채권단이 대주주로 올라섰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한전과 단전 조치에 대한 공방을 벌이며 세간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인천공장 등 자산 매각을 통해 정상화를 추진했던 동부제철은 최근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체결했다. 채권단 주도로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당진발전 패키지 매각을 추진하다 실패한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밖에 앞서 동부그룹 계열사 가운데 동부LED는 법정관리를 받게 됐고, 동부익스프레스는 재무적투자자(FI)들에게 팔렸다. 동부그룹은 농업·바이오 부문의 동부팜한농과 전자 부문의 동부대우전자를 중심으로 그룹 체제를 재편하고 있다.

이중 동부하이텍 매각은 IA컨소시엄를 우선협상자로 선정한 상태고, 패키지 매각이 좌절된 동부당진발전은 최근 SK가스가 인수하기로 결정됐다. 당초 기업공개를 추진했던 동부특수강은 현대제철에게 매각될 예정이다.

아직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메탈 매각은 이뤄지지 않았다. 동부메탈 매각은 속도조절에 들어간 상태고, 인천공장은 매각작업이 재개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당초 구조조정 계획이 크게 어긋나면서 동부그룹은 지난 1년간 적지않은 마음고생을 했다. 다른 그룹들과 구조조정의 속도나 성과가 비교됐기 때문이다. 구조조정 방안을 놓고 채권단과의 마찰도 적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동부그룹에게는 선제적 구조조정의 상처가 크게 남았다. 이제 동부 제조계열사로는 동부팜한농, 동부대우전자, 동부건설 정도가 남았다. 앞으로 금융계열사 중심의 사업재편이 불가피해 보인다는 평가다.

구조조정은 일단락됐지만 올해 기업 정상화 과정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동부메탈과 동부팜한농 등은 올해 각각 1000억원 이상의 회사채 만기가 도래해 상환계획 마련에 분주하다. 동부그룹의 대외신인도가 낮아지면서 자본시장 접근성이 점차 악화하고 있는데다가 채권단의 추가 지원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 김 회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패키지딜 실패와 자산의 헐값매각, 억울하고 가혹한 자율협약, 무차별적 채권회수 등 온갖 불합리한 상황들을 겪으며 동부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지난 반세기동안 땀 흘려 일군 성과들이 구조조정 쓰나미에 휩쓸려 초토화되고 있다”며 작심하고 산업은행을 비판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도 유독 산업은행이 동부그룹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 아니냐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반면 채권단 측은 동부그룹의 탓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구조조정은 결국 타이밍"이라며 “동부는 4~5년 전부터 구조조정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산업은행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는 이미 타이밍을 놓쳤다”고 설명하고 있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이에 대해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2013년 11월 자구계획을 가장 먼저 발표할 당시만 해도 산업은행은 동부그룹의 자구안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면서 “이제와 말을 바꾸는 것은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산업은행이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에 김준기 회장 등 동부그룹의 진정성이 부족했다는 설명도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동부익스프레스 진성매각(트루세일) 부문이다. 동부는 동부익스프레스를 KTB PE 컨소시엄에 매각하면서 지분을 되살 수 있는 권리인 ‘콜옵션’을 확보했다.

매각가격은 3100억 원이었지만 김 회장이 콜옵션 욕심을 버리고 진성매각을 했다면 1000억 원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동부그룹 측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이같은 지적에 대해 “동부익스프레스의 매각이 체결될 당시는 2014년 5월인데 당시는 유동성 문제가 크게 불거질 시기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까지는 산업은행이 추진했던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 패키지 매각이 기정 사실화되고 있는 분위기였고 거기에 동부건설도 동자동 오피스텔 매각, 유상증자 완료 등으로 유동성이 충분히 확보된 상태였다”며 “따라서 굳이 진성매각을 추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매각 대금을 조금 낮추더라도 추후 지분을 되살 수 있는 ‘콜옵션’을 확보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업계의 평가도 이러한 선택에 지지를 보내는 분위기가 우세했다”고 덧붙였다.

◆자구안 달성 앞둔 현대그룹

▲ 현대그룹(회장 현정은·사진)은 핵심 계열사를 적극 매각하는 등 적극적인 구조조정 의지 표명으로 상당 부분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

한편 2013년 12월 3조3000억원 규모의 자구안을 발표한 현대그룹은 계획 발표 1년만에 3조400억원을 이행하며 92% 이상을 달성하는 등 일정 부분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그룹의 자구안은 현대증권 등 금융계열사와 현대상선 등 계열사들이 보유한 각종 자산 등을 매각한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금액으로는 3000억원 가량만이 남은 셈인데, 남은 것은 현대증권 등 금융3사의 매각뿐이다. 업계에서는 오는 26일 이들 계열사의 매각을 위한 본 입찰 결과에 따라 자구안이 마무리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중국의 푸싱그룹, 일본 오릭스,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PEF)인 파인스트리트 등이 현대그룹의 금융계열 3사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대그룹은 이번 매각이 일정대로 이뤄지지 않더라도 현대상선이 3월25일까지 238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나설 계획이라 매각성사와는 별도로 자구안 이행은 달성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현대그룹의 구조조정은 비교적 원활하게 진행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증권 등 금융계열사 매각은 일단 미뤄진 상태지만 당초 계획과 비교하면 85% 수준을 달성했다는 평가다. 특히 그룹 지배구조의 연결고리였던 현대로지스틱스를 일본 오릭스에 매각한 부분이 크게 작용했다. 당초 현대그룹은 현대로지스틱스 상장을 추진했지만 지분매각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 결과 ‘현대로지스틱스→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로지스틱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를 가지고 있던 현대그룹은 ‘현정은 회장→현대글로벌→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기타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도 완성했다.

현대글로벌과의 지분 맞교환을 통해 현정은 회장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율도 높아졌다. 과거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맺은 파생 상품을 놓고 쉰들러와 갈등을 겪었던 사례가 재연될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평가다.

구조조정 결과 현대그룹의 부채비율, 유동성 등 지표가 개선되며 '급한 불은 껐다'는 관측이다. 현대상선은 2013년 9월 기준 1214.2%에 달했던 부채비율을 지난해 9월 기준 763.7%까지 낮췄다.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1년 만에 거둔 성적치고는 양호하다. 다만 과거보다 성장기반이 약해졌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주력계열사인 현대상선이 아직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다. 해운업종에 대한 정책적 지원 등을 확대해 선제적 구조조정 결과가 빛을 볼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 한진그룹(회장 조양호·사진) 역시 한진해운의 경영권까지 찾아 오고 2조원대의 에쓰오일 지분 매각을 완료하는 등 90% 이상의 구조조정 달성률을 보이고 있다. 사진 / 홍금표 기자

◆‘소리없이 강한’ 한진그룹
현대그룹과 비슷한 시기에 3조5000억원 규모의 자구안을 발표한 한진그룹의 구조조정은 별다른 잡음없이 진행됐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동부나 현대와 달리 채권단의 관여도 거의 받지 않았다. 바로 에쓰오일 지분이라는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구안의 내용 중 에쓰오일 지분의 가치만 2조2000억원으로 평가됐다. 여기에 부동산과 노후항공기 매각도 진행됐다. 당시 독립경영을 하던 한진해운도 2조원에 육박하는 자구안을 내놨다.

한진은 지난 7월 에쓰오일 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석유회사 아람코의 자회사 AOC(Aramco Overseas Company)에게 보유하고 있던 에쓰오일 지분을 약 2조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다만 아람코의 지분 인수 절차가 늦어져 20일 매각이 완료됐다.

또한 한진해운 전용선 사업부문을 매각해 약 1조6000억원의 유동성도 확보했다. 한진해운의 경우 스페인 터미널 매각이 임박하면서 자구계획 이행이 사실상 마무리 됐다. 2013년까지 3년째 적자 상태였던 한진해운은 지난해 3분기에 누적 영업이익 275억원을 기록하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전년 동기에는 2666억원 적자였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독립경영체제에 있던 한진해운 경영권을 가져온 것도 한진그룹 전체에는 희망적인 요소다. 업계 관계자는 “한진그룹은 한진해운 경영권 확보로 육-해-공으로 이어지는 물류 채널을 확보하게 됐다”며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면서 도약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조양호 회장의 동생인 조수호 회장이 타계한 후 최은영 회장이 이끌던 한진해운이 경영상 어려움에 처하면서 한진그룹이 유동성지원에 나섰고, 결국 최 회장은 경영권을 조 회장에게 넘겼다.

대한항공과 한진해운 등 주력계열사의 상황도 점차 개선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한항공은 경영환경이 개선되면서 영업이익 규모가 늘어나고 있고, 한진해운도 조 회장이 직접 경영에 나서며 적자에서 벗어난 상태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