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브랜드 론칭 주도…경영 행보에 업계 주목

▲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후계자로 낙점된 정의선 부회장이 경영 보폭을 넓히면서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후계자로 낙점된 정의선 부회장이 경영 보폭을 넓히면서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5일 현대차에 따르면 전날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차가 최초로 별도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를 론칭하는 계획을 밝히는 자리에서 프리젠테이션을 직접 진두지휘해 눈길을 끌었다. 정의선 부회장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이 행사에서 현대차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새 브랜드 론칭을 주도했다.
 
현대차는 이 자리에서 세계가 주목할 만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현대차는 고급차 독립 브랜드 제네시스를 론칭하고 앞으로 제네시스 브랜드에 속하는 차량에는 벤츠나 아우디처럼 숫자를 이용한 알파뉴메릭 방식으로 차명을 짓는다. 제네시스의 머릿글자인 G를 기본으로 차급에 따라 G80(기존 2세대 제네시스)이나 G70(2017년 하반기 출시 예정 중형 럭셔리 세단) 등의 이름을 갖는 식이다.
 
다만 국내에서 오랜 기간 고급차의 대명사로 꼽혀온 에쿠스 모델은 국내에서 EQ로 이름이 붙는다. 국내에서 에쿠스가 갖는 위상을 고려해서다. 내달 출시한 예정인 차기 모델도 글로벌 시장에서는 G90으로 명명되지만 국내에서만 EQ900라는 이름으로 출시된다.
 
현대차 측은 2020년까지 제네시스 브랜드의 라인업을 중형 럭셔리 세단과 대형 럭셔리 SUV, 고급 스포츠형 쿠페 등 6종으로 확장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로서 현대차그룹의 차 브랜드는 기존의 현대차와 기아차에 이어 제네시스까지 총 3개로 늘게 된다. 제네시스는 현대차 로고 대신 자체 로고와 엠블럼을 사용한다. 일본 도요타그룹의 최상위 브랜드 렉서스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또한 현대차는 디자인 경쟁력 강화를 위해 벤틀리 수석 디자이너 루크 동커볼케를 전무급으로 영입한다는 방침도 공개했다. 이에 따라 세계 3대 차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피터 슈라이어 사장에 이어 두 명의 디자인 거장이 제네시스 디자인을 지휘하게 될 전망이다.
 
◆예상 깬 정의선 부회장의 존재감
파격적인 청사진에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4일 현대차 주가는 전날보다 3000원(1.85%) 오른 16만50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기아차 주가 역시 장중 한 때 52주 신고가를 새로 쓰기도 했고, 현대모비스 주가도 2.23% 올랐다. 유수의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당장 목표주가를 올리지는 않았지만 역시 잇따라 호평을 내놨다. 질적 성장이 기대된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정의선 부회장이 역사적인 브랜드 론칭 행사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고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는 점에도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당초 업계에서는 이날 행사 직전까지도 정몽구 회장이 새 브랜드 론칭을 주도할 것으로 봤다. 과거 에쿠스나 K9, 제네시스 신차 발표회 등 굵직굵직한 행사는 모두 정몽구 회장이 직접 주도했기 때문이다. 정의선 부회장은 주로 이 과정에서 정몽구 회장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아 왔다.
 
하지만 이번 행사는 업계의 예상을 깨고 정의선 부회장이 브랜드 소개와 추구 가치는 물론 현대차의 장기적 비전까지 제시하며 존재감을 톡톡히 드러냈다. 국내에서 정의선 부회장이 수 백명 앞에서 행사를 진행한 것은 2009년 이후 처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그만큼 업계의 관심이 쏠리는 셈이다.
 
더구나 고급차 독립 브랜드 론칭은 정의선 부회장이 각별히 관심을 갖고 챙겨온 사안이다. 정의선 부회장은 제네시스 브랜드 출시의 초기 기획 단계부터 외부 인사 영입 및 조직 개편까지 모든 과정을 기획하고 주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상 그룹의 신성장 동력을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이날 행사에서 정의선 부회장은 “10년을 준비해 왔습니다”라는 멘트를 통해 남다른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차가 최초로 별도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를 론칭하는 계획을 밝히는 자리에서 프리젠테이션을 직접 진두지휘해 눈길을 끌었다.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부회장, 경영 보폭 “심상치 않네”
1세대 제네시스 개발에 착수하던 2004년부터 현대차가 염두에 뒀던 제네시스 브랜드 론칭이 글로벌 금융 위기와 라인업 확충의 필요성 등으로 번번이 좌절된 끝에 세상에 공개된 그 자리를 정의선 부회장이 책임졌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간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이 우리나라 양대 그룹으로 자리매김한 지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정의선 부회장은 아무래도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비해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후 본격적으로 그룹 재편과 신성장 동력 찾기를 주도하면서 승계 작업까지 착착 진행하던 것에 비해 정의선 부회장의 승계 관련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눈에 띠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차그룹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보폭을 넓히는 동시에 지분들의 교통 정리에 들어간 상황이다. 정의선 부회장이 조금씩 속도를 내고 있다는 평가다.
 
구체적으로 정의선 부회장은 최근 고객들과의 소통을 강조하고 이미지 회복을 위해 안티팬까지 끌어안으려는 시도를 강화하고 있다. 정의선 부회장은 국내 영업본부에 커뮤니케이션실을 별도로 신설하고 이곳으로 들어오는 소비자들의 이메일을 직접 체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해 풀기에 나선 셈인데 정의선 부회장은 부정적인 내용이라도 가감없이 보고하라고 주문하고 최대한 의혹을 해명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정의선 부회장은 온라인 공간에서 현대차그룹에 대해 부정적인 분위기가 만연해 있는 상황을 고객과의 소통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판단하고 본인을 포함한 고위 경영진들이 잇따라 동호회 회원들을 초청해 충돌실험을 단행하는 등의 소통에 나서고 있다. 수입차들의 거센 공세 속에 하락세를 면치 못하던 현대차·기아차의 내수 점유율도 정의선 부회장의 적극적인 소통 행보에 반등의 조짐을 보인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기에 아직까지 그룹 재편을 주도하는 이재용 부회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정의선 부회장이 이번 행사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추락하는 내수 점유율과 대중차로서의 이미지 등 때문에 성장 동력이 바닥났다는 평가를 받았던 현대차가 고급차 브랜드로 새롭게 도약하는 자리의 대미를 정의선 부회장이 장식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얘기다.
 
◆현대글로비스 주가는 걸림돌
다만 아직까지 정의선 부회장의 승계 작업은 더딘 상황이다. 최근 현대중공업이 보유하던 현대차 지분을 인수하기는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우선 승계의 핵심이 될 것으로 전망되는 현대글로비스 주가가 우호적이지 않다. 5일 현대글로비스는 전날보다 5500원(2.77%) 오른 20만4000원으로 장을 마감했지만 아직 연초 블록딜 실패 직전 주가인 1월 12일의 30만원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 주가가 중요한 이유는 정의선 부회장이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구조의 한 축을 차지하는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현대글로비스의 역할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인데 정의선 부회장은 현재 현대모비스 주식이 한 주도 없다.
 
대신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 23.29%(873만2290주)를 갖고 있다. 5일 종가를 기준으로 1조7813억 가량이다. 업계에서는 정의선 부회장이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현금화하거나 현대모비스와의 합병을 추진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어떤 경우든 현대글로비스 주가가 더욱 오르고 현대모비스 주가가 더욱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의선 부회장이 지분을 현금화한다면 현대글로비스 주가가 올라야 더 많은 실탄을 쥘 수 있고 현대모비스 주가가 더욱 떨어져야 제한된 실탄으로 더 많은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가 합병한다고 하더라도 합병 비율 산정에 있어서 현대글로비스 주가가 더욱 오르고 현대모비스 주가가 더욱 낮아져야 지배력을 높일 수 있다.
 
다만 블록딜이 한 차례 무산된 이후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블록딜을 재시도하는 과정에서 주주들의 실망감이 표출되자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처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정몽구·정의선 부자는 2017년 2월까지 현대글로비스 잔여 지분을 팔지 못하게 락이 걸린 상태이기도 하다.
 
이에 업계에서는 현대모비스와 현대차, 기아차를 투자 부문과 사업부문으로 인적분할한 뒤 3개 회사의 투자부문을 합병하고 지주사 체제를 정비한 후에 이 지주사를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방안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현대모비스가 9월 말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한 것도 지주사 전환 후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따라서 지분 정리가 쉽지 않다면 결국 현대글로비스의 기업 가치를 높이는 방법은 M&A 등이 유력하다. 가뜩이나 안정적인 현대글로비스는 딱히 주가를 반등시킬 모멘텀이 없어 결국 인수합병이나 유코카캐리어스와의 배선권 조정 등이 주가 띄우기의 수단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바 있다.
 
실제 지난달 30일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와 기아차로부터 각각 6000~7000억원 가량의 완성차 운송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 때 현대차와 기아차의 해상 수송 물량의 100%를 책임졌던 유코카캐리어스의 물량을 꾸준히 줄이고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처럼 정의선 부회장이 당분간 현대글로비스 주가 띄우기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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