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 후보들, 노조 인수전 참여 선언 파장에 촉각

▲ KDB대우증권 인수전이 본궤도에 오른 가운데, 노조가 전 직원과 함께 인수전에 뛰어들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판세가 요동치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마지막 남은 대형 증권사 매물로 평가받는 KDB대우증권 인수전이 본궤도에 오른 가운데, 노조가 전 직원과 함께 인수전에 뛰어들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판세가 요동치고 있다.
 
10일 KDB대우증권 노동조합에 따르면 노조는 지난달 19일부터 지난 1일까지 약 10일간 대다수 직원을 대상으로 ‘회사 매각 시 노동조합 참여 및 종업원 지주회사 동참’에 대한 서명 운동을 진행해 총 2500명이 찬성의사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4일 산업은행은 이사회에서 대우증권 매각 추진 계획을 의결한 바 있다.
 
2500명이라는 숫자는 사실상 전 직원에 가깝다. 서명운동 대상자는 총 임직원 3000여명 중 임원이나 특정부서 직원을 제외한 2702명이었으며 이 중 97.4%인 2632명이 서명에 참여했고 참여자 중 92.5가 찬성했다는 점에서다.
 
노조가 내세우고 있는 안은 전 임직원들이 자금을 출자해 전략적 투자자(SI)와 함께 직접 회사를 인수하는 방안이다. 사실상 대우증권 인수전에 직접 뛰어들겠다는 얘기다. 이자용 노조위원장은 매각추진실무위원회에 노조 위원장을 참여시킬 것을 요구했다고 밝히는 한편 종업원 지주회사를 통해 국내외의 다양한 전략적 투자자들과 접촉할 계획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직원 1인당 1억 대출?…현실성 떨어져”
일단 노조의 제안은 일견 무리해 보이는 면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조가 예측하고 있는 대우증권 인수 대금은 1조4000억원이다. 이를 외국계 금융사나 사모투자펀드 등과 반반으로 나눌 경우 종업원 지주회사가 대야 할 금액은 7000억원 정도다.
 
노조는 이를 조달하기 위해 직원들이 1인당 1억원 수준을 투자해 이 중 절반을 모으고 동일한 금액을 대우증권 보증으로 임직원들이 대출받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직원들이 1인당 1억원을 투자하고 1억원을 대출받는다는 안인 셈이다. 노조는 매각 대상인 43%(1억4048만1383주) 전부가 아니라 ‘30%+1주’(9801만268주)만 인수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실제로 대우증권 인수 금액은 2조원을 훌쩍 넘는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노조 측의 예상금액과는 제법 차이가 난다. 대우증권 매각 대상 지분의 장부가는 지난해 말 기준 1조7758억원이고 경영권 프리미엄도 30% 수준으로 따질 경우 최소 2조5000억원대로 평가받고 있다. 노조가 ‘30%+1주’만 매입한다고 해도 10일 종가 1만2700원 기준으로 1조7500억원이 필요하다. 이 경우 직원들의 부담이 더욱 늘어날 것은 자명하다.
 
물론 노조 측은 임직원 인수의 경우는 가점을 부여받아야 한다며 경영권 프리미엄을 제외하고 시가 기준으로 인수를 허용해줄 것을 요청한다는 계획이다. 지금까지 대우증권을 실질적으로 경영해온 것이 임직원이라는 이유에서다. 노조는 인수시 우선적 지위도 부여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이 경영권 프리미엄을 제외한다면 물론 1조4000억원을 밑돌게 되지만 최대한 매각가가 높아지기를 바라고 있는 산업은행의 입장을 고려해보면 아무리 종업원 지주회사라고 해도 낙찰 가능성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최대한 투자금을 회수해야하는 산업은행 입장에서 통매각이 아닌 일부 매각을 허용할 리도 없다.
 
직원들 역시 노조가 제안한 방안이라는 점에서 찬성을 하기는 했지만 실제 이들이 얼마나 투자에 참여할지도 미지수다. 제대로 된 파트너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지 방향성에 공감하고 서명만 했을 직원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산은 “적격 조건 갖추면 문제 안 돼”
 
▲ 노조 측은 전략적 투자자와의 제휴로 직접 경영에 참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다양한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결사적으로 매각을 막을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의 선언은 여러 면에서 나름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일각에서 충돌설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산업은행은 노조의 참여를 굳이 꺼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투명성 제고 차원에서다. 노조 측의 제안에 대해 산업은행 매각추진위원회 측은 “종업원 지주회사가 적격한 조건을 갖춘다면 인수전 참여 자체는 문제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노조 측은 종업원 지주회사에 대한 의견이 수렴된 뒤 산업은행이 실사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라 여전히 산업은행과의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책임감이 결여된 경영에 대한 비판이나 금호산업 헐값 매각 논란 등으로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산업은행이 노조 측의 제안을 일종의 투명성 제고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종업원 지주회사가 시도된 바는 없지만 그나마 비슷한 예로 최근 인수전이 완료된 동양시멘트 인수전에 레미콘·아스콘사들이 연합을 통해 인수전에 당당히 참여해 본입찰까지 완주하면서 ‘을들의 반란’ 시도로 주목을 모은 바도 있다. 산업은행이 매각추진위원회에 노조위원장을 참여시키는 방안이나 우선 협상 지위를 부여하기는 사실상 힘들겠지만 노조가 타 후보들과 동등한 자격을 갖춰 참가한다면 그만큼 산업은행도 얻는 바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노조 측이 “대우증권 직원들의 의사를 개진하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소통 채널이 필요하다”는 요구에 대해 현재 산업은행은 대우증권 경영진과 노조가 서로 충분히 소통해 합의된 내용은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산업은행이 굳이 노조의 제안에 대해 선을 긋지 않는 것이 투명성 제고 차원이 아니겠냐는 얘기다.
 
◆노조, 임직원들 주체성 재조명…여파는?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대우증권 역사에서 임직원들이 갖는 의미가 재조명되면서 인수 후보들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다.
 
일반적으로 인수전에서 노조가 부각되는 것은 악재로 작용한다. 강성 노조에 대한 부담은 인수 후보들이 인수에 부담을 느끼는 한 요인으로 특히 인수자가 막대한 투자금을 들였을 경우에도 이를 회수하기 위해 시행하는 구조조정 등이 여의치 않게 되는 등의 걸림돌이 발생하기도 한다.
 
대우증권 노조 측은 이번 선언의 배경으로 임직원들이 꾸준히 대우증권 경영에 참여해 왔다는 점을 들고 있다. 대우증권 우리사주조합은 지난 2000년 산업은행의 대우증권 주주 우선 공모를 위한 유상 증자 당시 다른 구주주들의 불참에도 420억원(청약율 99%)를 투자했다. 2011년 자본시장법상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단행됐던 유상증자에서도 우리사주조합은 2110억원을 투자했다. 산업은행의 3860억원에 크게 밀리지 않는 규모다.
 
이자용 노조위원장은 이를 바탕으로 “대우증권 임직원들은 대우그룹 해체 이후 산업은행 체제에서 각고의 노력 끝에 회사를 반석 위에 세웠다”면서 산업은행의 독자적인 인수 주체 선정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물론 노조 측은 전략적 투자자와의 제휴로 직접 경영에 참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다양한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결사적으로 매각을 막을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특히 노조는 매각가가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 구조조정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는 점을 막기 위해 우려하고 있다. 여러모로 임직원들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인수자가 부담을 느낄 만한 상황이다.
 
◆피인수 후 국면 위한 포석 가능성도
가뜩이나 과거 전세계를 누볐던 대우그룹 출신들의 ‘대우맨’에 대한 자부심은 업계에서도 평판이 자자하다. 최근 포스코를 뒤흔들었던 ‘대우인터내셔널’ 항명 사태 역시 포스코에 인수된 대우인터내셔널 직원들의 ‘대우맨’이라는 정체성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많다. 옛 대우그룹 계열사들은 그룹 해체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직원들 스스로 인수기업 측에 완벽히 융화되기보다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15년여 간의 산업은행 체제에서도 초대 김창희 사장부터 지속적으로 대우증권 출신을 사장으로 선임해 오다 외부 출신인 김성태 사장과 임기영 사장을 선임하고 나서 임직원들의 신뢰를 잃었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현재 대우증권 사장은 다시 대우맨 출신인 홍성국 사장이다. 인수 후 그룹 내의 화학적 결합을 도모해야 하는 인수후보들로서는 임직원들이 대우증권을 지켜왔다는 인식이 재조명될수록 득이 될 것이 없다.

노조 측도 15년 만에 주인이 바뀌는 상황에서 이 같은 효과를 노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피인수 후 고용 승계나 구조조정 등의 국면이 벌어질 경우 주도권을 쥐고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지를 비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편, 산은 측은 대우증권 매각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점을 전제로 내달 경 매각 공고를 내고 올해 말에서 내년 초 쯤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뒤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으로 매각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매각 0순위로는 비은행 부문의 강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KB금융그룹이 꼽혀 왔지만, 9일 미래에셋증권이 발행주식 총수의 100%, 총 1조2000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하면서 본격적으로 판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밖에 신한금융투자나 하나금융지주, 한국투자금융지주, 중국의 시틱에 기타 사모펀드들의 참여 가능성도 제기된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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