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나에서 오피스텔로 옮겼지만 직원 없기는 여전

 

▲ 지난 2011년 사실상의 지주사 비글스가 페이퍼컴퍼니라는 논란을 겪었던 삼양식품그룹이 또 유사한 논란에 휘말릴 태세다. 사진은 전인장 회장(왼쪽)과 아버지인 전윤중 창업주(오른쪽). ⓒ삼양식품

국내 라면의 원조 기업으로 50여년 간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삼양식품그룹의 지주사가 페이퍼컴퍼니 의혹에 휘말린 지 수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달라진 게 없어 다시 논란이 예상된다.

24일 식품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 16일 <더팩트>는 삼양식품그룹의 지주사 ㈜비글스가 위치한 강남구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을 수 차례 찾았지만 간판도 없고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등 여전히 정상적인 기업활동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정황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사실상 페이퍼컴퍼니 즉, 유령회사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보도에 따르면 ㈜비글스가 위치한 오피스텔의 같은 층에는 기업 사무실이 한 곳도 없었고, 같은 층 입주민이나 관리인 등은 해당 오피스텔에 대해 “사무실이 아니다”, “정기적으로 출근하는 직원을 본 적이 없다”고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양식품그룹은 전인장 회장의 아들이자 오너가 3세인 전병우 씨가 지분 100%를 소유한 ㈜비글스가 내츄럴삼양 지분을 26.8% 보유하고 있고, 내츄럴삼양이 삼양식품 지분 33.26%를 갖고 있는 구조다.

내츄럴삼양의 지분은 전인장 회장이 21%, 부인인 김정수 삼양식품 사장이 42.2%를 들고 있어 ㈜비글스와 총수 일가의 지분은 90%에 달한다. 나머지는 자사주다. 삼양식품 지분 나머지는 둘째 아들인 전인성 이사, 부인인 김정수 사장, 사위 등 가족들이 절반 가량을 가지고 있다.

이어 삼양식품이 포장용 상자·골판지를 생산하는 프루웰을 비롯해 삼양THS, 에코그린캠퍼스 등기타 계열사들을 보유하고 있다. 비글스가 사실상의 지주사인 셈이다.

하지만 지난 2011~2012년에 이어 또 ㈜비글스가 위치한 사무실이 실체가 사실상 없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다시 한 번 페이퍼컴퍼니 논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엔 사무실 만들긴 했는데...
㈜비글스는 이미 지난 2011~2012년 비슷한 논란을 겪은 적이 있다. 법인 등기부등본이나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에 ㈜비글스의 주소로 명시된 서울 양천구 목동 목동파라곤 105동 지하 6층에 사무실은커녕 사우나가 위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이 사우나의 명칭은 ‘파라곤스파’였지만 찜질방이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비글스의 본사 전화번호로 등록돼 있는 번호에 전화해도 이 스파로 연결됐다.

가뜩이나 ㈜비글스의 실체에 대해 뒷말이 무성하던 당시라 사무실도 직원도 홈페이지도 없고 기업공개는커녕 외부감사와 공시도 하지 않던 ㈜비글스는 곧장 페이퍼컴퍼니라는 의심을 받게 됐다. 국세청은 페이퍼컴퍼니 여부를 판단할 때 사무실과 직원의 존재를 가장 먼저 파악하고 매출이 있는지, 허위 매출이 아닌지를 따진다.

㈜비글스는 농산물도소매 업체로 등록돼 있었지만, 이 스파의 주인은 ‘휴네트개발’이었고, 양사의 주소와 전화번호는 물론 대표이사까지 전인장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졌던 심의전 사장으로 동일했다. 세무당국에 등록된 ㈜비글스의 종업원은 1명이었다. 그룹의 지주사가 심의전 사장의 1인 회사였다는 얘기다. 심의전 사장은 현재도 ㈜비글스의 대표로 등기돼 있다.

당시 알려진 바에 따르면 ㈜비글스는 2008년 1000만원, 2009년 1억700만원, 2010년 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면서 인건비를 단 한 푼도 지출하지 않았다. 매출은 각각 5000만원, 6억1000만원, 6억원이었고, 2008년 800만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가 2010년 15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총자산은 같은 기간 1억900만원에서 29억8300만원으로 30배 가량 불어났다. 더구나 지분 100%를 보유한 전병우 씨가 설립 당시 출자한 5000만원의 실체도 불분명했다. ㈜비글스가 설립된 2007년 전병우 씨는 13살에 불과했다. 

▲ 1980년대 말 우지 파동 직격탄을 맞고 몰락했다 겨우 살아난 삼양식품은 전인장 회장이 단독 경영을 시작한 2010년부터 각종 구설수에 휘말리고 있다. ⓒ삼양식품

◆국민들의 아픈 기억과 정면 배치 빈축
물론 삼양식품 측은 ㈜비글스가 지주사가 아닌 관계사에 불과하고, 원래 라면 스프 재료의 수급을 원할하게 하기 위해 만들었다가 신통치 않아 경영보다 소유로 남아 있다며 의미를 축소하거나 가타부타 답변을 내놓지 않아 어느새 논란이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2012년 논란이 불거지자 조용히 자리를 역삼동으로 옮겼음에도 여전히 사무실의 실체 여부가 논란이 되면서 또 한 번 집중포화를 맞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비글스를 둘러싼 의혹은 국민들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삼양식품의 흥망에 대한 동정심을 정면으로 배반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비판의 소지도 크다.

현재는 농심이 부동의 라면 시장 1위지만 1963년 국내 최초로 라면을 출시한 삼양식품은 과거 오랫동안 부동의 1위를 지켜 왔다. 하지만 1989년 공업용 쇠뼈로 만든 기름(우지)을 라면에 썼다는 투서가 날아들면서 검찰 수사가 개시돼 부도덕한 기업으로 추락했다. 그 유명한 ‘우지 파동’이다.

이후 정부에서는 해가 없다고 발표했지만 아직도 삼양식품은 과거의 명성을 찾지 못하고 있어 국민들 마음 한 켠에 애잔한 미안함이 남아 있는 상태다. 이후 사업 다각화까지 실패하면서 IMF 당시 화의를 신청했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 끝에 2005년 기사회생했다.

하지만 국민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라면을 만들 생각을 했다던 전중윤 창업주와 달리 전인장 회장이 2005년 부회장에 부임하고 2010년 회장에 취임하면서 구설수가 부쩍 잦아졌다. 

▲ 삼양식품은 허위 보도자료를 내고 주가가 급등한 틈을 타 주식을 내다 판다거나 계열사에 통행세를 몰아줬다는 의혹으로 수 차례 비판을 받았다. ⓒ삼양식품

◆모럴 해저드 논란, 언제까지?
특히 대부분의 의혹들은 ㈜비글스를 향하고 있다. 총자산만 수 천억원에 이르는 그룹의 지배구조 최정점에 페이퍼컴퍼니가 있다는 비판은 차치하고서라도 13살이던 전병우 씨가 2007년 과연 무슨 자금으로 5000만원의 설립 자본금을 대 ㈜비글스를 설립했는지, 매출이 거의 없다시피 한 ㈜비글스가 2009년 내츄럴삼양(구 삼양농수산) 지분 26.9%를 인수하면서 2대 주주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어떤 루트로 이 자금을 댔는지는 끊임 없는 논란을 만들고 있다.

모럴해저드 논란도 수 차례 일었다. ㈜비글스는 지난 2011년에는 이마트 판촉 정보를 내놓고 나가사끼짬뽕이 신라면을 제치고 1위를 했다는 허위 보도자료를 내고 주가가 급등한 틈을 타 주식 12만4690주를 장내 매도해 40억원의 시세 차익을 거둬 호된 질타를 받았다.

같은 해 앞서 ㈜비글스는 평창 개발 이슈가 부각돼 삼양식품 주가가 급등하자 전병우 씨로부터 넘겨받은 신주 인수권을 행사해 19만주를 발행, 다음 달 모두 내다팔고 30억원 가까운 차익을 올리기도 했다. 그룹이 나서 오너 3세의 재테크를 도와줬다는 의혹이 쏟아졌다. 2011년 전병우 씨는 17살에 불과했다.

지난해에는 ‘통행세’ 논란으로 공정위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공정위는 삼양식품이 이마트에 라면류를 공급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실질적 역할을 하지 않는 내츄럴삼양을 거래단계 중간에 끼워 넣어 일종의 ‘통행세’를 수취하도록 했다며 과징금 27억5100만원을 부과했다. 내츄럴삼양 지분 90%가 ㈜비글스 및 전인장 회장과 부인 김정수 사장에 집중돼 있는 것을 감안하면 부당하게 총수 일가의 배를 불렸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5년간 몰아준 금액은 1612억원이었고 내츄럴삼양이 올린 수익은 70억원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전형적인 오너 계열사의 치고 빠지기식 경영권 승계”라며 “아직 10대에 불과하던 아들이 지분을 팔고 사기로 시세차익을 남긴 것에는 내부자 거래와 오너 차원에서 지원한 것”이라며 경영승계 과정을 둘러싼 꼼수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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