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소비자들, 금융당국 수수방관 언제까지

▲ 복합할부금융 전쟁이 현대카드와 삼성카드의 협상으로 클라이막스에 접어든 가운데 상품 자체가 존폐 기로에 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사진 / 홍금표·맹철영 기자

지난해 말부터 자동차업계와 카드업계의 대리전 양상으로 번져 온 ‘복합할부금융’ 전쟁이 치킨게임으로 치달으면서 애꿎은 소비자들의 피해만 늘게 됐다.

지난 6일 기아자동차는 하나·롯데카드와 자동차복합할부금융 취급을 중단하고 삼성·BC·KB국민카드와는 일주일여 간 협상을 연장한다고 밝혔다. 기아차는 지난 4일에도 신한·현대카드와 복합할부금융 상품의 취급을 중단했다.

이미 BC카드·신한카드와 취급을 중단하기로 한 현대차는 현재 삼성카드와 협상을 진행중이지만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협상 결렬의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복합할부금융 취급률이 높은 삼성카드마저 현대차와 상품 취급을 중단하게 되면 사실상 복합할부금융의 비중이 크게 줄어들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카드사들이 잇따라 현대·기아차로부터 각개격파당하고 있는 와중에 현대차그룹은 공세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현대차는 이달부터 아반떼의 할부 금리를 기존 연 3.9%에서 연3.5%로 0.4%p 인하하고, 여기에 국내 최초로 3년간 아예 할부원금 상환을 유예하는 혜택도 제공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지난 1월 기아차는 전 차종을 대상으로 할부금리를 평균 1%p 낮췄다.

복합할부의 가장 큰 장점이 일반 할부금융상품보다 낮은 할부금리인데 금리가 낮아지면 소비자로서는 굳이 복합할부를 선택할 이유가 없어진다. 업계에서는 현대·기아차의 이 같은 조치를 카드사와의, 특히 삼성카드와의 복합할부금융 협상을 의식한 조치로 보고 있다.

현재 현대·기아차는 체크카드 수준인 1.3%의 수수료율을 삼성카드에 요구하고 있지만, 삼성카드는 기존의 1.9%를 유지하거나 적격비용 하한선인 1.7%대까지만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현대차와 삼성카드의 계약은 오는 19일 만료되며, 현대차는 이후 롯데카드와의 협상을 맞이하게 된다.

◆급성장한 복합할부, 현대차 명분 있지만...
복합할부금융 상품은 지난 2009년 도입됐다. 이 상품은 소비자가 자동차값을 카드로 결제하면 캐피털사가 해당 금액을 1~2일 안에 카드사에 갚아주는 구조다. 대신 캐피털사는 소비자에게 오토론 대출을 내주고 소비자는 캐피털사에 할부로 차값을 갚는다.

할부 상품을 카드사와 캐피탈사가 함께 팔기 때문에 복합할부금융은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다. 이런 저금리의 장점 때문에 복합할부금융은 출시 이후 급격한 성장세를 기록했다.

2013년 신규할부금융실적 10조8000억원 가운데 자동차 할부금융은 88.9%인 9조6000억원에 이르는데 이 중 복합할부금융이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2010년 4.4%에 불과했던 비중이 2013년에는 14.8%까지 늘었다. 취급액도 2010년 8654억원에서 2013년 4조5905억원으로 급증했고 연간 이용자수도 15만 명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카드사는 자동차회사로부터 수수료를 받아 70%는 캐피털사에 주고 일부는 캐시백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돌려준다. 캐피탈사는 받은 수수료 중 일부를 자동차 영업사원에게 떼주고 나머지는 금리를 낮추는 데 활용한다.

자동차업계는 신용공여기간이 1~3일에 불과해 정상적인 신용카드 거래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현재 신용카드 수준인 1.9%의 수수료율을 체크카드 수준인 1.3%로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카드업계는 여신전문금융업법상 적격비용 때문에 최대 1.5% 이하로는 낮춰줄 수 없다고 반발해 왔다.

현재까지 아무래도 명분이 좀 더 서는 쪽은 자동차 업계 쪽이다. 카드사들은 신용공여기간이 1~3일에 불과해 리스크가 거의 없다시피하는데도 일반할부와 마찬가지의 수수료를 챙기는 것에 대해 뚜렷한 반박 논리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의 논리는 쉽게 말해 길어도 3일만 돈을 빌려주면서 한 달간 빌려준 것과 똑같은 수수료를 챙기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얘기다.

카드사들은 삼성카드의 주도로 이러한 현대차의 논리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강제로 신용공여기간을 한 달로 늘리는 신(新) 복합할부 상품을 준비해 왔지만, 신용공여기간이 늘어나면 카드사와 캐피탈사가 나눠 부담해야 할 이자 등 원가가 0.2% 정도 올라가기 때문에 캐피탈사와의 협의가 필요하다.

삼성카드는 애초에 3월 중으로 신 상품의 출시를 계획했지만 캐피탈사와의 협의가 난항에 빠지면서 이마저도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다. 수수료를 챙기기 위해 억지로 돈을 빌려주는 기간을 늘린다는 발상에 대한 여론도 좋지 않다. 현대차 관계자는 “원가가 낮아 수수료를 낮춰달라고 했더니 일부러 원가를 높이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 이론적으로는 복합할부금융이 없어지더라도 실제 금리면에서 큰 변화가 없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으나, 장기적으로 선택권이 줄어들고 금리 경쟁이 약화돼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으로 피해가 돌아간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사진 / 홍금표 기자

◆독점 체제되면 소비자 선택권 줄어
이처럼 카드사와 자동차회사들이 소위 ‘피터지게’ 싸우는 와중에 복합할부금융 상품 자체가 존폐 기로에 접어들게 되자, 그 피해가 애꿎은 소비자로 돌아갈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애당초 현대차가 주장하는 취지가 조금 더 명분이 서기는 하지만 막대한 규모의 가맹점 계약을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면서 잇따라 카드사들과의 협상을 결렬시키는 모양새가 연출되자 소비자들이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로써는 전체 카드 매출의 60~65%를 차지하는 현대차가 가맹점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압박을 가할 경우 카드사들이 반격을 할 여지는 거의 없다.

복합할부금융 상품이 없어지면 우선적으로 소비자들이 자동차를 구매할 때의 선택권이 줄어들게 된다. 카드사 중 일부는 복합할부가 없어지더라도 카드사에서 자체 운영하는 할부상품이 있기 때문에 소비자 선택권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카드사 자체 상품은 대부분 할부기간이 최대 36개월까지라 제약이 크다.

또한 같은 금리라 해도 복합할부금융 상품은 소비자에게 캐시백 등으로 일부 혜택을 돌려주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더 낫고, 캐피탈사의 일반 할부는 개월수가 길어질수록 금리가 높아지기 때문에 더 불리하다.

이렇게 되면 현대캐피탈의 독점 체제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복합할부가 중단되면 현대차 대리점은 우선적으로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에 고객을 연결해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렇게 되면 당장 금리에서 큰 차이가 없더라도 결과적으로 금리 경쟁이 줄어들어 장기적으로 소비자의 혜택이 감소하게 된다.

이론상으로는 캐피탈사들은 기존 일반할부상품으로 공백을 메우면 되지만, 복합할부금융 상품이 탄생한 것 자체가 현대캐피탈의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 독과점의 시정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복합할부금융 상품이 출시되기 전 이미 현대·기아차는 유일하게 현대캐피탈과 자동차 할부금융 제휴계약을 맺어 나머지 캐피탈사의 시장 점유율은 13%에 불과했다. 상품이 출시된 후인 2013년에도 현대캐피탈은 현대·기아차 전체 할부금융매출액의 74.7%를 차지할 정도로 독보적인 위치를 유지해 왔다.

다른 캐피탈사 관계자는 "복합할부보다 금리가 높은 일반할부만 취급하게 되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대부분의 고객을 현대캐피탈에 빼앗기게 될 것"이라면서 "결과적으로 현대캐피탈의 독과점이 강화되고 나머지 캐피탈사들의 시장점유율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현대캐피탈은 오토론 규제 완화로 호재를 맞은 상황이다. 지난해 하반기 입법예고를 마친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현대캐피탈은 현재 규제로 취급을 줄인 오토론 비중을 확대할 수 있다. 현대캐피탈은 본업인 할부·리스보다 부대업무인 오토론 등 신용대출 비중이 커지면서 금융감독원 제재를 받고 취급을 줄였으나 지난해 금융당국이 오토론 규제를 풀어주기로 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할부 금리는 상품 및 업체 간 경쟁을 통해 내려간 건데 특정 기업의 장악으로 경쟁이 없어지면 다시 금리가 올라가고, 서비스는 후퇴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어느 시장에서나 독점 체제가 강화되면 소비자에게 돌아갈 몫이 줄어든다는 것은 진리 불변의 법칙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시장에 엄연히 존재하는 상품을 대기업에서 상품 존폐 자체에 영향을 끼치는 것 자체가 불공정 행위”라면서 “업계에만 놔둘 것이 아니라 금융당국도 일정 부분 개입을 해서 시장의 올바른 질서가 형성 유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소비자 피해가 우려되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지난해 말과 달리 협상 결과부터 지켜보겠다는 입장으로 선회,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 / 홍금표 기자

◆오락가락 금융당국, 외양간 고칠 준비부터 하나
하지만 금융당국은 카드사들의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적극적 개입은 하지 않은 채 수수방관, 오히려 더욱 싸움을 부채질하고 있다.

애당초 금융당국은 여신전문금융업법상 적격비용 개념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현대차보다는 카드사들의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를 취해 왔다. 현대차의 요구가 법적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명분이 없다는 비판을 받던 카드사들의 신 복합할부금융 상품의 출시 계획이 논란이 되자 금융당국은 “문제 없다”며 이를 별도의 허가나 등록 없이 용인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상품은 현재 캐피탈사와의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출시조차 안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캐피탈사가 현대차를 의식해 선뜻 협의를 해주지 않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더불어 카드사들로서는 현대차가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딱히 반격할 수단이 없다.

아울러 현대차와 신한카드와의 협상이 결렬되고, 삼성카드와의 협상 역시 난항을 겪고 있는데도 금융당국은 협상력을 갖춘 삼성카드가 현대차와 어떻게 협상하는지를 지켜보고 난 후 움직이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 미리 소를 잃고 외양간 고칠 준비부터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협상 경과를 지켜보고 위법사항이 있는지를 따져볼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삼성카드와 현대차의 협상마저 결렬되면 이미 때는 늦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금융당국은 현대차와 KB국민카드와의 협상이 한창이던 지난해 11월 현대차를 검찰에 고발하거나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며 압박을 가했으나 이마저도 흐지부지돼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당시 금융당국은 거래상의 지위를 이용해 계속 거래관계에 있는 사업자와의 거래를 중단하는 행위를 불공정행위로 규정하고 2년이하 징역 또는 1억5천만원 이하 벌금을 처벌규정으로 담고 있는 공정거래법을 근거로 삼았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시장에 필요에 의해 생겨난 상품이 없어지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소비자”라며 “금융당국이 적정 수수료에 대한 조사 등을 통해 중재나 조정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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