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현대자동차와 카드사 간의 복합할부금융 수수료율 협상에서 서로 한 번씩 주고 받은 자동차업계와 카드업계가 향후 양 업계를 좌지우지할 ‘진짜’ 전쟁을 목전에 두고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카드업계 1위인 신한카드가 2월 15일 복합할부금융 계약 만료를 앞두고 최근 협상에 돌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오는 3월 계약이 만료되는 복합할부금융 시장점유율 1위 삼성카드도 협상을 앞두고 있고 롯데카드, 하나카드 등도 현대차와의 수수료율 협상을 앞두고 있는 상태다. 카드업계 1위 신한카드의 복합할부금융 취급액은 약 6000억원(13%)이고 복합할부금융 1위인 삼성카드의 취급액은 1조3000억원으로 28.2%에 달한다.

지난해 말 현대차는 KB국민카드·BC카드와 수수료율 협상을 벌여 성공과 실패를 한 번씩 맛봤다.

KB국민카드와는 계약 연장과 재연장을 수 차례 거듭한 끝에 결국 복합할부 수수료율을 체크카드 수준인 1.5%로 인하하기로 해 합의에 성공했다. 현대차는 KB국민카드의 원래 수수료율 1.85%에서 1.0~1.1%로 인하할 것을 요구했고 반면 KB국민카드는 여신전문금융법 위반 등의 소지 때문에 1.75% 이하로 낮추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한 끝에 1.5%로 합의됐다.

반면 BC카드와는 입장 차를 끝내 좁히지 못하고 가맹점 계약은 유지하되, 복합할부 취급은 중단키로 했다. 현대차는 BC카드 측에 BC카드 체크카드 수수료율인 1.3%로 카드복합할부 수수료율을 조정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BC카드는 1.5%를 주장했다. 기존 BC카드와 현대차 간 카드 수수료율은 신용카드 1.9%, 체크카드 1.3%였다.

다만 BC카드는 복합할부 취급규모가 연간 1000억원 안팎으로 다른 카드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미한 편이라는 점에서 당시 업계에서는 다음 협상인 신한카드·삼성카드와의 협상 결과에 주목해 온 바 있다.

지금까지 업계 반응을 살펴봤을 때 이번 협상도 쉽게 타결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현대차는 BC카드와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음에도 각 카드사의 체크카드 수수료율(1.3%) 정도로 할부금융 수수료율을 내리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고, 카드사들은 현대차와 KB국민카드가 합의했던 1.5% 수수료율을 적용하길 주장하고 있어 평행선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카드사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협상 결과가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카드사들이 명분을 잃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미 KB국민카드와 BC카드 사례에서 보듯 일관되지 않은 카드사들의 입장은 현재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신한카드가 은행 금융지주사의 자회사라는 점에서 갈등 국면을 오래 끌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현대차는 은행은 물론 증권, 보험, 카드 등의 분야에서 최우량 고객이기 때문이다.

반면 복합할부금융 취급액이 큰 삼성카드는 벌써부터 신용공여기간이 짧아 수수료율이 과도하게 높다는 현대차의 논리를 무력화하기 위해 신용공여기간을 늘린 새 복합할부 상품을 내놓을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카드사들이 애초에 적정수수료율을 정한 여신금융전문법 위반 소지를 내세우며 반대하던 것과 달리 협상이 닥치자 각자 이해관계에 따라 합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점은 스스로 명분을 잃게 만드는 일이다.

카드사들은 실제로 돈을 빌려주는 기간이 하루 정도이고 구매자가 카드로 차량대금을 결제하면 결제일로부터 3일 후 할부금융사가 카드사에 대금을 지불해 대손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기간에 비해 과도한 수수료를 부과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불필요한 공여기간 연장을 검토하는 것을 공감할 소비자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잇따라 수수료의 대폭적인 인하만을 고수하고 있는 현대차 역시 소비자의 불편을 야기하면서까지지 실적 악화에 따른 부담을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몇 차례의 계약 재연장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원안만을 받아들이기를 강요해오던 현대차의 행태도 결국은 소비자의 피해는 안중에 없는 것 아니겠냐는 생각이 든다. 카드업계는 현대차의 강압적인 행태를 이미 ‘갑질’로 규정하고 있다.

중재에 나서야 할 금융당국이 노골적으로 카드사들의 편을 들고 있는 것도 매우 실망스럽다는 평가다. 애당초 적격비용을 규정한 여신전문금융법 자체가 시장 논리를 무시한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더군다나 방카슈랑스 25%룰을 적용하겠다는 입장까지 나오자 현대차를 마녀사냥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와중에도 여전히 중재 노력에 나서지 않는 금융당국까지 새 판짜기에 가세하면서, 복합할부금융 전쟁은 각자 이해관계만을 우선시하는 각 당사자들의 입장 때문에 기본이 돼야 할 소비자들의 피해 최소화와는 더욱 멀어지고 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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