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한 국내 반응, 해외 기업 관심 ‘변수’

▲ 애초 순탄할 것으로 전망됐던 대한전선 매각에 빨간불이 켜졌다. 오는 10월로 예정된 본 입찰을 앞두고 매각공고를 내걸었지만 시장의 반응은 전반적으로 싸늘하기만 하다. ⓒ뉴시스

애초 순탄할 것으로 전망됐던 대한전선 매각에 빨간불이 켜졌다. 오는 10월로 예정된 본 입찰을 앞두고 매각공고를 내걸었지만 시장의 반응은 전반적으로 싸늘하기만 하다. 최근 담합 행위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추징 받은 과징금 또한 만만치 않아 향후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대한전선매각공고, 싸늘한 시장분위기
물망에 오른 기업들 전부 ‘손사래’ 쳐
‘비밀유지협정’ 체결 한 기업 스무 곳

LS전선에 이어 국내 2위 전선업체로 꼽히는 대한전선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가 터진 이후 보유하던 부동산 및 증권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는 바람에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인수 관심 보이던 국내 기업들 모두 ‘부정적’ 입장 보여

이에 대한전선은 지난해 말 3세 오너인 설윤석 사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우리·하나·외환은행 등 채권단이 6,719억 원 규모로 출자전환한 뒤 일괄 지분 매각을 결정하면서 매물로 나왔다.  마침내 대한전선은 오는 하반기로 예정된 본 입찰을 앞두고 매각공고를 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시장의 반응은 영 시원치 않은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매물로 나온 대한전선의 매각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는 분위기다.

대한전선 매각 주간사인 하나대투증권과 JP모건은 오는 9월 15일 예비입찰을 마감하고 숏 리스트를 선정할 계획이다. 사전실사는 숏 리스트가 나오면 데이터룸을 공개해 실시된다. 이후 10월 말 본 입찰을 거쳐 우선협상 대상자가 결정된다. 현재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여러 기업들이 대한전선 인수에 대해 하나같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업계 1위이자 그동안 상당히 유력한 인수 후보로 꼽혔던 LS전선의 경우, 최근 구자열 LS그룹 회장까지 직접 나서서 “인수 계획은 없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이에 대해 업계 일각에서는 “아무래도 LS전선이 업계 1위다 보니 2위인 대한전선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가는 자칫 독과점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마음을 접은 것”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아울러 금호전기·일진그룹 등 국내 주요 전선업체 역시 대한전선 인수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무엇보다 “7,000억 원이라는 만만치 않은 인수대금을 충당할 상황이 못 된다”며 곤란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자업계 일각에서는 투자 면에서 여력이 있는 현대중공업·SM(삼라마이더스)그룹·호반건설·풍산 등을 인수후보군 물망에 올리기도 했지만 해당 업체들은 전부 긍정적이지 않은 반응을 내놓고 있다. 특히 이들 후보군 중 현대중공업과 SM그룹은 대내·외적으로 인수전 불참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처럼 후보군 물망에 오른 기업들이 전부 대한전선 인수 건에 대해 손사래를 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사실 대한전선은 전선업종 전반에 만연하고 있는 불황에도 불구하고 본업인 전선 사업은 해마다 흑자를 내고 있어 인수 대상 기업으로서 매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들어 대한전선은 초고압·해저케이블 등 고부가가치 품목의 판매량을 대폭 늘렸으며 이와 같은 결과 올해 1/4분기에는 약 100억 원이나 되는 상당히 양호한 영업이익을 올리기도 했다.

‘우발채무’ 부담도 만만치 않아

이와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업계 일각에서는 “사실 대한전선이 주력인 전선 사업에서만 이익이 나고 있으며 다른 계열사 실적은 양호하지 못하다”며 “이 같은 사실이 상당한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부도가 난 티이씨건설을 비롯해 티이씨앤알·티이씨엔코 등 전선업종 이외의 계열사 실적과 상황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이 같은 결과로 연결기준 2년 연속 당기순이익 적자를 기록했다.

▲ 대한전선 지분을 보유한 채권 은행들이 입을 수 있는 투자금액 손실 규모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섣불리 분리매각을 추진하기도 다소 힘든 상황이다. ⓒ대한전선

만약 인수자가 대한전선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상환 부채 문제가 남아있어 그만큼 매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채권단이 보유한 대한전선 지분 72.7%를 인수한 뒤에도 상환해야 될 부채가 상당히 남아있다는 점도 골칫거리다.  대한전선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부채는 총 2조317억 원으로 이 중 1년 내 갚아야 하는 유동부채는 6,800억 원에 달한다. 인수대금 자체도 많지만 인수 후 갚아야 하는 금액도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또한 우발부채 문제도 발목을 잡고 있다. 강남 테헤란로 빌딩 건설 사업·남부터미널 개발 사업 등의 프로젝트파이낸싱은 여전히 우발채무 상태로 남아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다행히 인수자가 나서 대한전선을 인수하더라도 3,000억 원이나 되는 우발채무까지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엄계에서는 남아있는 우발부채 대부분을 프로젝트파이낸싱 보증을 통해 완전하게 해결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 때문에 대한전선과 채권단은 일단 이를 인수자에게 사후정산 방식으로 보상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렇게 대한전선을 둘러싼 복잡한 상황 때문에 일각에서는 “대한전선을 전선계열사와 비전선계열사로 쪼갠 다음 그나마 실적을 내고 있는 전선계열사만을 따로 팔아야 그나마 매각 성사 가능성이 높아지고 바람직하지 않겠느냐”는 이른바 ‘분리매각설’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만약 분리매각을 추진할 경우, 대한전선 지분을 보유한 채권 은행들이 입을 수 있는 투자금액 손실 규모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섣불리 분리매각을 추진하기도 다소 힘든 상황이다.

이렇게 여러모로 쉽지 않아 보이는 상황에 대해 대한전선 측은 말을 아끼고 있다. 인수전이라는 극도로 민감한 시기에 자칫 불필요한 오해를 살까봐서다. 한 대한전선 관계자는 “채권단에 매각권한을 전부 위임한 상황으로, 본사는 오로지 실적개선에만 주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이렇게 대한전선이 안팎으로 그다지 긍정적이지는 못한 상황에 처해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한편 업계 일각에서는 “상황이 마냥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이야기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바로 해외 여러 기업들이 대한전선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의외로 인수전 활기 보일 수도’

최근 중국계 기업 및 유럽계 기업을 위시한 해외기업들과 재무적투자자(FI)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면서 대한전선 인수전이 돌연 활기를 보이고 있어 관련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아울러 인수에 있어 고질적인 요인으로 꼽히는 우발채무와 관련된 조건도 인수자에 유리하게 변경될 것으로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어, 당초 만연된 부정적인 우려와는 달리 인수전에 뛰어들 예비입찰자는 상당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19일 고압전선 및 인수합병 업계에 따르면 “중국계 기업 및 유럽계 기업이 매각 주간사와 비밀유지협정(CA)을 체결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재무적투자자 몇 곳도 이미 인수전에 뛰어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현재까지 대한전선 매각 주간사와 비밀유지협정을 체결하고 IM(투자안내서)를 가져간 곳은 스무 군데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에는 이미 그동안 인수전 후보로 거론되어온 국내 기업들도 있으며 해외기업과 재무적투자자들도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 그동안 업계에 만연된 우려와는 달리 대한전선 인수전이 의외로 ‘핫’한 양상을 보일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와 아울러 대한전선 인수에 적지 않은 걸림돌로 평가되고 있는 우발채무 문제에 대해서도 어떤 극적 타결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금융계·투자금융계 에서는 관계자에 따르면 “향후 해결되지 않은 우발채무에 대해서는 매각자 쪽에서 보상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분위기다.

▲ 중국계 기업 및 유럽계 기업을 위시한 해외기업들과 재무적투자자(FI)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면서 대한전선 인수전이 돌연 활기를 보이고 있어 관련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한전선

한편 상황이 이렇게 어수선한 가운데 지난 8월 19일 대한전선이 한국전력공사 발주 전력량계 구매 입찰에서 17년 동안 이른바 ‘물량 나눠먹기’를 통해 담합한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부과 받고 장기간 담합을 주도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할 위기에 놓이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993년부터 2010년까지 무려 17년 동안 한국전력공사가 발주한 기계식 전력량계 구매입찰에서 가격 경쟁을 피하기 위해 사전에 물량을 배분하고 투찰가격과 낙찰 예정자를 합의한 14개 제조사와 2개 전력량계조합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13억 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LS산전(38억7,500만 원) ▲대한전선(19억4,300만 원) ▲피에스텍(24억500만원) ▲서창전기통신(17억2,400만 원) ▲위지트(6억4,700만 원) ▲두레콤(1억8,800만 원) ▲남전사(3억2,100만 원) ▲와이피피(4,300만 원) ▲한국제1·2전력량계조합(각 2,300만 원) 등에 과징금이 부과됐다.

이와 아울러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들 기업 중 특히 장기간 담합을 주도한 LS산전·대한전선·피에스텍·서창전기통신·위지트 등 다섯 개사에 대해서는 법인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이들 다섯 개사는 지난 1993년부터 2007년까지는 각 사별로 10~30%의 물량을 나눠 갖는 방식을 활용했다. 이후 2008년부터 2010년까지는 자기들의 물량을 신규 업체에 일부 나눠주는 방식으로 담합행위를 저질러 왔다. 이들 업체는 전자입찰 당일 청계산 백운호수 주변 식당 등지에 모여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유해 투찰을 서로 감시하기까지 한 것으로 조사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아울러 이들 업체는 새로운 업체가 등장하면서 더 이상 물량 배분이 어려워지자 2009년부터 두 개 조합을 아예 따로 설립해 담합 창구로 활용해왔다. [시사포커스 / 하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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