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로 살펴본 심각한 우울증 실태

며칠 전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으로 열연한 헐리우드 영화배우 로빈 윌리엄스(63)가 우울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그 밝고 유쾌한 이미지 뒤에 끔찍한 우울증의 고통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팬들의 충격은 받아들이기 힘들 만큼 컸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소식이 알려진 때를 즈음하여 한국의 군인 3명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최근에 연이어 터진 사병들의 이탈과 자살 사건이 우울증과 관련 있다는 증거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는 비단 군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진실 등 예능인들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최근 헐리우드 영화배우 로빈 윌리엄스(63)가 우울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전세계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문제는 비단 서양의 문제만이 아니다. ⓒ뉴시스

이제 ‘피로·불안사회’란 말이 더는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연령별로는 노인층과 청소년층, 그리고 계층별로는 빈곤층의 우울증 환자들, 그리고 특수사회 군대 내에서 관심병사들이 표현만 못할 뿐 홀로 속앓이를 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잇단 관심병사들의 자살 사건은 일차적으로 개인의 아까운 목숨의 손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군과 사회에까지 미치는 연쇄 파장을 고려해 볼 때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관점의 변환이 필요하다.

◼ 우울증상에 대한 한국인의 오해

로빈 윌리암스의 우울증 자살 소식이 알려지자 <스터프>지가 12일 ‘로빈 윌리엄스와 광대의 저주’란 제목의 기사를 내고 호주 시드니에서 활동하는 코메디언 니콜슨(Rhys Nicholson)이 “걱정과 불안이 큰 문제입니다…우리는 모두 낙담한 사람들입니다”라고 한 말을 인용했다. 여기서 ‘우리’는 물론 코메디언이란 직업을 가진 일단의 사람들이다. 코메디언은 자신의 현재 감정과는 별개로 대중 앞에서 타인을 웃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이다. 그 압박감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광대의 저주’란 말을 붙였을까. 그러나 이러한 저주가 OECD 국가 가운데 10년째 자살률 1위를 고수하고 있는 한국사회를 휩싸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홍진 교수팀은 최근 하버드의대 정신건강의학과 모리죠 파버 교수팀과 함께 한국과 미국의 우울증 환자 5300여명을 상대로 한 비교연구 결과를 국제임상정신약리학회 최근호에 게재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는 총점이 14.58점으로 미국 환자의 19.95점보다 확실히 낮았지만 우울증 심각도는 한국 환자가 39.15점으로 미국의 37.33점과 비슷했다. 이런 결과는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들이 미국 환자들보다 같은 우울증을 앓고 있으면서도 우울증이라고 느끼는 정도가 낮기 때문인 것으로 설명됐다.

대신에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는 불면증, 식욕저하, 불안증, 체중감소, 건감염려증 등의 증상을 더 많이 호소하면서 실제 자신의 우울증상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우리나라 환자들은 자신의 우울증에 대해 표현하는 것을 금기시하거나 억압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다음과 같은 연구결과로 분명해진다.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 중 자살을 고려하고 있거나 최근 자살을 시도했다고 하는 비율이 6.9%로 나타나 우울증 심각도에선 비슷한 결과가 나왔던 미국 환자들 보다 두 배 가까이 더 자살과 관련된 생각이나 행동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통계로도 입증된다. 미국이 2012년에 발표한 2010년 기준 자살한 사람은 인구 10만명당 12.4명이었고, 우리나라 통계청이 발표한 자살자 수는 같은 기간 31.2명으로 미국의 약 2.5배였다.

전 교수는 우울증 체감도에 비해 자살률이 미국보다 높게 나타난 이유에 대해 “(한국 환자들은) 우울증을 치료하러 와서도 본인의 우울증 정도에 대해 과소평가할 정도로 자신의 병을 표현하는 데 인색하다”며 “감정이 억압이 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는 해석하면 한국인은 자신의 우울증에 대한 표현을 삼가기 때문에 실제로는 통계로 잡히는 숫자보다 더 많다는 얘기가 된다. 앞서 언급한 ‘불면증, 식욕저하, 불안증, 체중감소, 건감염려증’ 등을 우울증에 수반되는 증세로 보게 된다면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들은 상당한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2년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59만1276명으로 국민 100명 중 한 명꼴로 7년 전인 2005년 43만5000명에 비해 약 36% 늘어났다. 여기에 우울증을 앓고 있으면서도 증상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한국인들을 고려해 보면 사태는 심각하다.

▲ ⓒ 뉴시스

◼ 우울증 취약층-노인·청소년·빈곤층·군인

2001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건강보고서’에서 우울증을 21세기를 괴롭힐 주요 질병으로 꼽았고, 2020년이 되면 모든 연령에서 발병하는 질환 중 1~2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원 생명의과학센터 뇌질환과가 2009년에 작성한 ‘노인우울증 관련 인자 분자’ 문서를 보면 2008년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의 34.5%가 60세 이상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00세를 맞는 노인 수가 2009년 884명에서, 2010년 904명, 2011년 927명, 2012년 1201명으로 늘어 고령화 시대에서 초고령화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처한 한국 사회에 노인 우울증 환자의 자살도 증가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자살율은 10만명당 2000년 43.2명에서 2010년 80.3명으로 10년 동안 거의 두 배 증가해 OECD 국가 가운데 노인자살률도 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10월 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목희 민주당 의원이 통계청과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8년부터 5년 동안 노인 자살자 수는 2만439명에 달해 하루 평균 11명 꼴로 목숨을 저버린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증에 의한 노인 자살율이 높게 나타나는 가장 큰 이유는 앞서 언급한 낮은 우울증 인지도에 의한 것으로 분석된다. 대구한의대학교 보건대학원 한삼성 씨의 ‘노인의 우울증 경험에 관한 관련 요인 분석’ 논문을 보면 “노인 우울증의 특성으로 무기력감과 절망감을 말할 수 있다. 무기력이란, 개인들의 중요한 생활 사건들을 도저히 통제할 수 없다는 느낌을 경험하는 특성을 가졌으며, 타 연령층보다 무기력감을 크게 느끼기 쉽다. 또한, 절망감이란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나 심리적 상태”라고 말한다.

한씨는 노인들뿐 아니라 주변 친지들도 우울증상을 “자연적인 노화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신체적인 질환에 따른 것인지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방치하고 있어 이에 대한 시급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청소년 자살율도 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4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12년 청소년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었다. 청소년 10만명 당 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청소년들이 자살하는 가장 큰 이유 역시 우울증 등의 정신문제와 관련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012년 ‘청소년 우울증 및 자살예방사업의 국내외 연구동향’에 나온 “제5차 청소년 건강행태 온라인 통계 결과(2009년)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청소년은 전체의 19.1%, 최근 1년 동안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 청소년은 4.6%”로 나왔다. 또한 같은 보고서는“1년 동안 2주 내내 일상생활을 중단할 정도의 슬픔이나 절망감을 느꼈다고 보고하는 청소년이 중학생의 34.5%, 고등학생의 40.6%”로 집계됐다.

고령층과 청소년층과 더불어 빈곤층도 우울증으로 자살을 할 가능성이 높다. 통계청 발표 실업률은 3.9%지만 지난 6월 참여연대에 기고한 전준희 화성시정신건강증진센터장에 따르면 사실상의 실업자가 포함된 실질 실업률은 11.1%다. 자살률과 실업율의 상관관계를 고려해 볼 때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자살률이 내려갈 거라는 전망은 공염불로 끝날 공산이 크다.

한국빈곤문제연구소 서병수 소장은 지난 1월 <주간경향>에서 “해가 지날수록 우울증을 앓는 빈곤층들이 점점 더 늘어가고 있다”며 “빈곤층 우울증에 대한 대처가 방치돼 있는 수준이다”고 지적했다.

지난 13일 A,B급 관심병사가 2만명에 육박한다는 국방부 발표가 있었다. 관심병사 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병이 우울증을 앓고 있느냐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국방부의 ‘군 사망사고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4년부터 2012년까지 군 내에서 자살한 장병의 수는 821명로 집계됐다. 2004부터 2008년까지 5년간 자살자 수는 연평균 72.6명이었으나 2009부터 2013년까지는 82.2명으로 늘어났다. 일반인의 경우 우울증을 앓는 비율을 6~7%로 볼 때 실제 우울증을 앓는 비율은 군대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면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는 최근 관심병사의 자살과 총기사건이 대두하면서 사병급에서만 우울증에 걸린다고 자칫 잘못 생각할 수 있다. 상황은 그보다 심각하다. 지난 해 9월 30일 당시 김광진 민주당 의원은 BBS <아침채널>과의 인터뷰에서 “장병수가 훨씬 많지만 10만명당 비율로 봤을 때 간부들의 자살율이 두 배가 나온다. 기본적으로 초급간부들이 인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발언까지 고려해 보면 군 내 우울증을 앓는 군인들은 훨씬 더 많이 잠복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우울증의 원인이 되는 절망감은 미래에 대한 어두운 생각에서 비롯된다. 밝고 환한 생각이 우울증을 예방하는 첩경이다. ⓒ 뉴시스

◼ 우울증, 에볼라가 되지 않으려면…

5월 11일 오전 1시 40분쯤 안산시 세월호 정부합동분향소 인근에서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단원고 학생의 아버지 ㄱ(51)씨가 자살을 시도했다. 앞서 단원고 학생 어머니 ㄴ(44)씨도 가족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 메시지를 남긴 뒤 자살을 시도하다 가족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만약 세월호 참사가 없었다면 이들이 자살을 시도했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서병수 소장은 앞서 매체에서 “지금 캐나다 같은 경우는 우울증 치료를 위해 국가 규모의 큰 병원까지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는 정신보건센터라고 해서 각 지역에 있기는 한데, 인력이나 예산지원이 적절치 않아서 접수받고 한 번 면담하는 정도에 그치지 그 이상 진전이 안 되고 있다”며 “우울증에 대해서는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2012년 군인 자살자 수가 아프가니스탄 전사자 295명보다 많은 349명으로 집계된 데 놀랐다. 당시 신시아 스미스 국방부 대변인은 “국방부가 인력을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생각한다”며 자살 방지를 위해 모든 조치를 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해 <메디컬옵저버> 10월 10일자는 군인의 자살을 막기 위해 우울증 연구를 포함해서 1000만 달러 규모의 3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그 성과는 좀 더 두고봐야겠지만 캐나다든 미국이든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문제에 대해 예산 책정과 전문 시설 등의 수단으로 적극 대응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전준희 센터장은 한국처럼 변화성이 높은 사회에서 아노미 현상으로 야기되는 우울증 환자의 급증과 전 영역에서 늘어나고 있는 자살 위험성에 대해 앞서 기고한 글에서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했다. “사회복지와 보건의료 전달체계의 확대가 필요하며 특히 정신건강전달체계의 확대와 내실이 중요하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정신건강서비스를 쉽게 이용하기 어려운 국민들에게 접근성 높은 정신건강서비스체계를 구축하고 활성화시켜야 한다.”

앞에서 통계를 통해 충분히 확인한 우울증 등 심인성 자살 실태에 주목하지 않고 임시처방에 급급하는 동안 우울증이 마음의 에볼라 같은 전염병으로 악진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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