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얻는 비주류, 박 대통령 ‘조기 레임덕’ 신호탄?

최근 새누리당 내에서는 이른바 ‘비박계’가 ‘친박계’를 압도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국회의장 후보로 친박계로 분류되는 황우여 의원을 제치고 비박계 정의화 의원이 선출되는 대이변이 일어났다. 이에 따라 지방선거 이후 새누리당 내 역학 관계에 적지 않은 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19대 후반기 국회의장에 새누리당 비주류 정의화 의원이 친박 핵심 황우여 전 대표를 압도적인 표차로 따돌리며 선출된 것을 두고 당내 친박계 위기론이 돌고 있다. ⓒ뉴시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하락하고 인사 쇄신 바람이 불어오면서 새누리당 내에서는 친박계에 대한 견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6·4지방선거 이후를 기점으로 친박계 의원들이 일종의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친박 핵심 예기치 않은 참패 ‘파란’
이러한 ‘몰락’의 조짐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된 것은 지난 5월 23일. 이날 새누리당에서는 국회의장 후보 경선을 진행했는데, 이른바 비주류로 분류되는 정의화 의원이 압승을 거두는 대이변이 일어났다.

이날 경선은 “당대표를 역임한 황우여 의원이 우세할 것”이라는 당초 예상을 깬 것이라 그만큼 중대한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의화 의원은 새누리당 의원총회 투표에서 총 투표수 147표 가운데 101표를 얻어 46표에 그친 황우여 의원에 압승을 거두었다.

본회의 무기명 투표에서 과반 찬성으로 선출되는 국회의장은 다수당 소속 의원이 단독적으로 출마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에, 정의화 의원은 사실상 차기 국회의장으로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정의화 의원이 지닌 특유의 친화력 등도 많이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이른바 ‘친박 핵심’으로 분류되는 황우여 의원에 대한 당내 반발이 만만치 않게 일어났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즉 “청와대와 친박 주류에 대한 반발 심리가 이번 경선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경선 투표 며칠 전에 “친박 주류 중 일부가 황 의원을 물밑 지원한다”는 이야기가 나돌며 이른바 ‘박심(朴心)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결과는 정 반대로 나왔다.

이 때문에 정계에서는 “청와대와 친박 주류의 독주로 인한 폐해와 반감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부각되면서 당내 표심이 집단반란을 일으켰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비주류의 반란과 더불어 초·재선 의원의 반란까지 함께 일어나는 바람에 결국 당내에서 친박 세력의 영향력이 감소하기 시작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황우여 의원이 너무 ‘박심’만 믿고 방심했던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황 의원은 이른바 ‘대세론’을 믿고 방심했던 반면 정의화 의원은 전반기 의장선거에서 패한 직후 의원들과 직접적인 대면 접촉을 늘려가면서 무려 2년 동안 꾸준하게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덧붙여 당 대표 시절 여야 합의 없이는 입법이 불가능한 국회선진화법을 만든 주역인 황우여 의원에 대한 새누리당 내 의원들의 누적된 불만도 상당 부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정계 일부에서는 황우여 의원의 참패 원인을 두고 “더 이상 주류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초선과 비주류의 경고의 의미가 담긴 것 아니겠느냐”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에 따라 당내 역학구도의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곳곳에서 ‘탈박’ 움직임 가시화
또한 지난 5월 27일 개최된 상임위원장 경선에서도 친박계 의원들이 간신히 승리를 거두며 친박 세력에 대한 반감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날 새누리당이 국회에서 실시한 여당 몫 후반기 상임위원장 경선 결과,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에 친박계 핵심으로 직전 사무총장을 지낸 홍문종 의원이 진영 의원을 누르고 선출됐다.

모양새는 이렇게 홍 의원의 승리로 끝났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71표 대 63표로 불과 8표차밖에 안 되는 신승이었다. 진영 의원은 원래 친박 핵심 인사 출신이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기초연금법 공약 수정에 반대해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중도에 사퇴하는 바람에 사실상 ‘탈박’ 대열에 합류했다.

결국 진영 의원은 경선에서 패했지만 친박 핵심에 맞서 접전을 펼친 것은 예상 밖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당에서는 지방선거 공천을 담당했던 홍문종 의원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면서 이와 동시에 세월호 참사 대응 등 주류의 국정 운영에 대한 의원들의 비판 여론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처럼 일련의 상황을 두고 당내 안팎에서는 “비주류의 입김이 점차 거세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상황이다. 새누리당의 한 비주류 의원은 “당이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에 무기력하게 끌려 다니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 같은 ‘탈박’ 움직임은 6·4지방선거에 나선 후보들의 언행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여권 내부에서 '친박계‘의 약세가 집중적으로 부각되면서 지방선거에서도 '친박 마케팅'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비박계로 분류되는 후보들은 “청와대를 향해 쓴 소리를 하겠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즉 ‘쇄신 후보’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모습이다. 반면 친박계 후보들은 청와대 인사 쇄신 등 현안에 대해 가급적 발언을 삼가면서 대신 ‘지역 일꾼론’을 전면적으로 앞세우고 있다.

예를 들어 경기지사 선거에 나선 남경필 후보는 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직후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강조했지만,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점차 부정적인 결과를 얻자 “그동안 대통령께 쓴 소리를 계속 해 왔다"며 태도를 바꾸는 모습을 보였다.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도 청와대를 향해 “대통령이 정치를 멀리하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등 쓴 소리를 연일 계속하는 바람에 당내 친박 의원들과 적지 않은 갈등을 겪기도 했다.

이에 비해 친박 후보들은 청와대와 관련된 언급을 피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서병수 부산시장 후보는 지난 5월 27일 P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청와대에 인적쇄신이나 개편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안보실장이라든가 주요 인사들이 사표를 냈고 처리가 된 상황”이라고 답변했다.

서병수 후보는 야당이 문제 삼고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퇴진 여부에 대해서도 "비서실장의 인사문제에 대해 개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말씀드릴 수 없다"며 말을 줄였다.

▲ 지방선거 이후 치러질 새누리당 차기 전당대회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비박계가 최근 당 안팎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어, 김무성 의원이 당권을 잡게 될 경우 당청 관계에 변화가 오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뉴시스

지방선거 이후 당·청관계 주목
정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친박계의 몰락 현상이 6·4지방선거 이후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향후 당·청 관계는 물론 7·14 전당대회 등 당내 역학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당내에서는 서청원 의원과 김무성 의원 등이 격돌하는 7·14 전당대회에서 친박계가 원하는 구도를 잡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경선 결과를 당대표 경선 구도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친박계 핵심 주류인 서청원 의원과 비주류인 김무성 의원이 맞붙는 대결구도에서 김무성 의원에게 힘이 쏠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만약 여당이 6·4지방선거에서 패한다면 이는 고스란히 국정운영을 책임지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친박계에게 화살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인 서청원 의원과 당대표로 나서는 카드가 그리 만만치 않다”며 “차기 대권주자군 중 한 명인 김무성 의원이 대표가 되면 청와대로서도 정치적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지방선거에서 이기더라도 친이계 등 비박계 인사들의 분전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크며 이 또한 친박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당 대표 경선에서 친박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요소는 현재로서는 없을 가능성이 크다. 상황이 이러한 가운데 지난 5월 24일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은 “무능하고 소신 없는 청와대 비서실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 시선을 모으기도 했다. 이는 사실상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김무성 의원은 이날 오후 대구 칠성동 칠성시장에서 열린 새누리당 권영진 대구시장 후보 지원 유세에서 “무능한 이 나라의 국무총리와 행정부 모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김무성 의원은 “총리를 비롯한 행정부와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비서들이 국민의 안전과 관련된 비정상적인 부분을 정상화하는 데 앞장섰다면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권 내에서는 김무성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을 놓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미 대대적인 청와대 비서진 개편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여당 의원들의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어 김 의원이 총대를 메고 발언했다”는 해석이 있다. 또한 정계 일각에서는 “향후 7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김무성 의원이 본격적으로 본인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설득력을 갖고 제기되고 있다. “존재감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결국 6·4지방선거와 전당대회 결과에 따라 친박계가 기사회생하거나 소멸 단계로 접어드느냐가 달려 있는 것”이라며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다 보면 최악의 경우 친박계로 분류되던 의원들도 결국 ‘탈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자칫 정부·여당과의 관계가 위태로워지면서 뜻하지 않은 ‘레임덕 정국’이 초래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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