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 발탁에서 ‘전관예우’ 논란, 결국 후보직 사퇴까지

한때 국민검사로 신망 높았던 안대희(59) 전 국무총리 후보자는 원칙주의를 강조하고 청렴한 이미지로 각인돼있었다. 그는 2003~2004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진두지휘해 당시 한나라당을 존폐위기에 빠뜨리기도 했던 강골 검사 출신으로, 대법관 퇴임 후 박근혜 대통령의 삼고초려를 받아 새누리당에 입당해 대선 캠프에서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새 국무총리 후보자, “공직사회 부패척결의지 다져
변호사 수임료 5개월간 16억 고소득 전관예우논란
여론 악화·사퇴 압박 못 견디고 국무총리후보 사퇴

 

▲ 새 국무총리로 내정된 안대희 전 대법관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내정 소감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안대희 전 국무총리 내정자는 스무 살에 사법고시를 패스한 이후 대법관까지 지낸 인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동기이기도 했다. 24살의 어린나이에 검사가 돼 해외 우수 법정 시스템을 돌아보고, 대한민국의 법정 시스템을 지적하기도 하는 당찬 인재였다. 그는 유명 입시학원의 고액수강료 및 탈세 비리를 적발하는 등 여러 활약을 펼쳤고, 검사장이 된 이후에도 대기업비리 및 불법 정치 자금 등을 수사하는 우두머리였다.

강직하기로 소문난 안대희 전 대법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당시 한광옥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영입하려 하자 비리 인사 영입 시 사퇴하겠다며 각을 세운 바 있어 소신 있는 인사라는 이미지를 갖게 됐다. 그러나 안 전 대법관은 새 국무총리 내정과 동시에 거론되기 시작한 각종 의혹들과 악화되는 여론에 결국 엿새 만에 후보사퇴를 선택했다. 그의 엿새를 살펴보기로 했다.

부패척결 앞장설 새 국무총리로 내정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2일 새 국무총리로 안대희 전 대법관을 내정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을 열어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를 통해 드러난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과 공직사회의 적폐를 척결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국가 개조를 추진하기 위해 새 국무총리를 내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내각 개편은 박 대통령이 신임 총리의 제청을 받아 진행할 것이라고 언급해 개각 의사를 전한 바 있다. 지난 22일 차기 총리로 지명된 안 전 대법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헌법과 법률에 따라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해 국가가 바른길, 정상적인 길을 가도록 소신을 갖고 대통령께 가감 없이 진언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제 개인적 삶을 모두 버리고 비정상적 관행의 제거와 부정부패 척결을 통해 공직사회를 혁신하고 국가와 사회의 기본을 바로세우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이어 안 전 후보는 박근혜 대통령이 본인을 차기 총리로 지목한 것에 대해 제게 국무총리를 맡긴 것은 수십 년 적폐를 일소하라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뜻을 전했다.

그러나 총리 후보 지명 다음날인 23일부터 안 전 대법관은 전관예우에 관해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안 전 대법관은 법조인 시절 25년간 서울 홍은동 낡은 아파트에서 거주했었는데, 대법관 퇴직이후 지난해 7월 서울 용산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뒤, 5개월 동안 변호사 수임료로 16억 원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면서 전관예우를 통한 고소득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고 여론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에 안 후 보는 “16억 원 중 6억 원은 세금으로, 47000만원은 기부를 했다고 언급하며 논란을 잠재우러했지만 의혹은 더 불어나기 시작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안 후보는 지난 26일 오후 국회 임명동의안이 제출되는 때에 맞춰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해 승부수를 띄웠다.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고소득 논란에 대해 국민정서에 비춰봐도 너무 많은 액수라고 인정하며 변호사 활동으로 늘어난 재산 11억여원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자회견을 강행한 안 전 후보의 승부수에도 여론은 호전될 기미 없이 악화됐다. 기자회견에 앞서 청와대 측은 안 후보의 기자회견이 이른 감이 있는 것 같다며 만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설상가상 국무총리 지명 사흘 전인 지난 19일 안 전 후보가 유니세프에 기부금 47천만 원을 별도로 기부한 것이 밝혀졌다. 이에 내정 사실을 알고 미리 인사청문회에 대비하려 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또 국세청 세무조사감독위원장을 역임했을 당시 민간사의 법인세취소소송 항소심 변론을 맡은 것과 농협이 국세청을 상대로 세무소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안 후보와 올해 초 수임 계약을 체결한 것도 또 다른 전관예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대법관 출신인 안 전 후보자가 퇴임하고서도 대법원 상고사건 4건을 맡은 것도 문제가 아니냐며 안 전 후보는 야당의 사퇴 압박을 받아왔다.

돌아설 수밖에 없었던 국무총리 후보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안 전 대법관은 28, 오전 출근길에 기자들을 만나 청문회에서 말씀드리겠다고 전했다. 이어 임명동의안이 제출됐는데 무슨 사퇴냐. 표결하면 되지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 안대희 전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 도착해 굳은 표정으로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계속되는 여론 악화에 안 전 대법관은 몇몇 새누리당 의원에게 도움을 구하려 했지만 전화조차 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와 야당 의원들에게 전화해 부탁한다며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그러나 호전되지 않는 여론에 국무총리 후보자를 사퇴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안 전 대법관은 청문회 준비를 돕던 주변인들에게 내가 젊었을 때 너무 건방졌던 것 같다. 나는 총리를 할 만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폐를 끼쳐 죄송하다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안대희 전 국무총리 후보자는 28일 오후 5시께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로비에서 자청해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총리로 지목된 지 엿새 만이었다. 기자회견을 통해 안 전 후보는 국무총리 후보자 사퇴 의사와 11억원에 대한 사회 환원계획을 밝혔다.

안 전 후보는 기자회견에서 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더 이상 국무총리 후보로 남아있는 것은 현 정부에 부담이 될 것이다라며 저의 버팀목과 보이지 않는 힘이 돼준 가족과 저를 믿고 사건을 의뢰한 의뢰인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너무 버겁다며 전격 사퇴의사를 밝혔다.

그는 저를 믿고 지명한 대통령께도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박대통령에 대한 미안함을 드러냈다. 한편 안 후보는 전관예우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의혹들로 인해 국민여러분을 실망시켜드려 죄송하다며 논란을 일으킨 점에 대해 사죄했다.

이어 그는 전관예우 논란과 관련해 전관예우를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고 오해와 비난을 받지 않도록 조심했다억울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늘 잊지 않았고 이들의 편에 서는 것도 잊지 않았다고 토로하며 억울한 심경을 내비치기도 했다.

안 전 후보는 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더 이상 국무총리 후보로 남아있는 것은 현 정부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사퇴 이유를 밝혔다.

또 안 후보는 앞서 약속했던 기부금 11억과 관련해 이제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평범한 한 시민으로 돌아가 조용히 지내려 한다국민여러분께 약속한 기부는 성실히 이행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그가 야당의 압박과 여론의 악화에 심리적 부담감이 컸을 것이며, 주위 지인들이 자신으로 인해 피해 입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면서 국무총리 후보를 사퇴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예상치 못한 안대희 전 후보의 사퇴 결정에 안타까움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창성동 정부서울청사별관에서 긴급 국무총리 후보자 사퇴 기자회견을 하며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야당 슈퍼갑 횡포” vs 野  “김기춘 책임”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은 세월호와 같은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고 국가 대개조를 해야 하는 시대적 소명과 국민의 여망을 부응하지 못해 애석하다고 밝혔다. 박대출 대변인은 28일 이와 관련한 브리핑에서 안 후보자는 강직한 성품으로 공직 사회의 개혁을 이끌 적임자였다면서 국민검사에서 국민총리로 가는 길을 통과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안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 앞서 정치적 난도질과 장외난전에 휘둘려 능력과 자질을 검증받을 기회조차 박탈 당했다야당이 이처럼 모든 것을 정쟁 거리로 삼아 슈퍼갑()’으로 행세하면서 횡포를 부리는 마당에 과연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공격했다.

박 대변인은 공직자를 검증하는 데 있어서 개인의 신상 문제에 집중돼, 개인의 자질과 능력을 충분히 검증하지 못하는 현재의 시스템에 대해서는 미래전향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현주 대변인도 구두 논평을 통해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 안 후보자가 스스로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이라고 밝혔다. 김현숙 원내대변인은 안 후보자의 결정을 존중한다. 청문회에서 소명기회가 있었는데, 가족들의 고통을 감안해 그만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반면, 야당은 안 전 후보가 사퇴의사를 밝히자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검증 최종 책임자인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을 겨냥하며 책임을 묻고 있다. 박영선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이 출범 2년차가 지났는데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민국 미래에 많은 걱정이 든다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의 최종 확인자는 김 비서실장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안대희 후보자 사전검증팀 간사 김기식 의원도 안 후보자의 재산형성과정·전관예우 문제는 충분히 검증 가능했던 사실이라며 김 비서실장을 포함해 청와대 인사검증라인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의원은 “(사전인사팀이) 이틀 만에 확인한 사실을 김 비서실장이 상식적으로 몰랐을 것 같지는 않다면서 이런 문제를 알고도 추천해 대통령에게 지명토록 한 구조야말로 반드시 개혁해야할 사항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사안은 안 후보자의 검증 실패를 떠나 국가적으로 고위공직자의 인사검증시스템을 전면 재점검하고 개혁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김 비서실장도 안 후보자처럼 스스로 결단해달라고 촉구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변인은 29, 새누리당의 야당 탓과 관련해 오로지 패착에 패착을 거듭하는 대통령의 불통인사를 감싸돌기 급급하다며 맞불을 놓았다. 논평을 통해 이 대변인은 일당 천만 원의 전관예우를 비롯해서 수도 없는 불법비리 의혹이 드러난 상황이라며 그래서 안대희 후보자는 스스로 자격상실임을 고백하고 물러난 것이다. 그런데 정작 박대출 대변인은 무엇이 억울한지, ‘슈퍼갑 횡포를 운운하니 기가 막힐 따름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도덕교과서 수준에도 이르지 못하는 박 대변인의 인식이 집권여당 새누리당의 인식이라면 정말 심각하다일단 상대를 공격하고 물어뜯고 책임 떠넘기는 전형적인 네거티브로, 차분하게 진행되어야 할 정책선거의 물을 다 흐려놓는 새누리당 행태에 국민들은 이제 신물이 나고 있다고 날선 비난을 가했다.

이 대변인은 여당을 향해 대통령 주변에 인의 장막을 치고, 언로를 차단하고 민심을 왜곡하는 가신정치의 또 다른 모습이며 청와대와 집권여당의 태도가 계속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도 제대로 된 인사, 국민과 야당의 동의를 받는 인사는 험하고 멀기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사포커스 /권노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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