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이준 열사의 교육보국 이념 실천 위해 외길

못 배운 것처럼 사람에겐 한(恨)이 없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또는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놓친 이들에게 불학(不學)은 평생의 멍에가 된다.

특히 나라글자조차 익히지 못한 이들에겐 마치 공기가 없는 진공상태를 다니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다. 버스를 타려해도 글자를 모르니 가고자 하는 곳을 갈 수 없다.

그렇다고 ‘나는 한글을 못 깨우쳤으니 좀 알려 주세요’라며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의 깊은 치부를 드러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빛 한줄기 없는 어둠 속을 걷는 느낌이라고 한다.

배움에 목마르고 불학의 한을 지니고 사는 이들을 위해 배움의 등불을 밝히고, 한풀이의 터전을 마련하여 늦깎이들의 향학 열기를 풀어주는 곳이 있다.

서울 마포구 대흥동에 소재한 양원초등학교, 양원주부학교, 일성여자중고등학교가 바로 그곳이다. 양원·일성학교를 반세기여 오랜 세월동안 이끌어 오고 있는 이선재 교장선생님을 만나봤다. 그는 원칙과 참을 앞세워 이준 열사가 생전에 못 다 이룬 교육보국과 교육을 통한 국권 수호의 이념을 오랜 기간 실천해 오고 있다.

갖가지 제도권 내의 문제점을 온몸으로 해결하고 또 미답(未踏)의 사회 교육제도를 개선, 현실화시키면서 불학과 무식(無識)을 타파하는데 한평생을 받쳐오고 있다.

양원학교의 입구에는 이런 글이 박혀져 있다. ‘세상에 제일 위험한 것은 무식이요, 또 천하에 제일 위험한 것은 불학이다’라는 이준 열사의 말이다.

그는 희수(喜壽)를 넘긴 나이임에도 “배움에 한이 있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단 한 명도 없을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라고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 양원‧일성학교 이선재 교장


제도권 내 문제점 온몸으로 해결
미답(未踏)의 사회교육제도 개선
불학과 무식(無識) 타파에 한평생

다음은 이선재 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우선 일반인들이 알 수 있도록 양원·일성학교가 어떤 곳인지를 소개해 주십시오.

양원.일성학교는 6.25동란 중 함경남도 북청에서 피난 온 분들이 자신들의 자녀와 전쟁고아를 가르칠 목적으로 세운 야학이 그 효시(嚆矢)였습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헐벗고 굶주리면서도 배워야만 산다는 생각이 불꽃처럼 훨훨 타오른 것입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따라서 복창하라고 했습니다. ‘한 두 끼니를 굶을 지언정 결코 배움은 건너뛰지 말자’고요.

이준 열사의 가르침이신 ‘세상에 제일 위험한 것은 무식이요, 또 천하에 제일 위험한 것은 불학이다’라는 교육 유훈을 실현하기 위해 서울특별시장의 인가를 받아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청소년을 지도하는 일성고등공민학교(1953~1988)로 출발했습니다.

-구로 공단 등지에서 배움에 목마른 여성 근로자들을 위한 교육의 장도 열었는데 이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병설로 배움에 목마른 근로 여성을 위한 일성일요학교(1978~1988)를 만들어 10년간에 걸쳐 무상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나이 먹은 주부만을 따로 모아서 성인 여성을 위한 일성주부반(1983~1987)을 편성했고, 사회교육법의 제정으로 고등학교에 진학 못한 청소년들을 위한 일성여자상업학교(1985~1992)를 운영했습니다.

-양원주부학교는 졸업식, 입학식 등을 통해 언론에 많이 보도됐습니다. 이번 기회에 양원주부학교에 대해서 좀 더 소개해 주십시오.

그동안 일성주부반으로 운영해 오던 주부반을 사회교육법에 의해 서울시 교육청에 등록하면서 학교 이름을 양원주부학교(1988~현재)로 변경하였고, 2011년 서울시 교육감 지정 문자해득프로그램 운영기관으로 지정되면서 초등학교 과정은 검정고시 없이 학력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2000년 평생교육법의 발효로 성인 여성을 위한 서울시 교육감학력인정 2년 6학기제 일성여자중고등학교(2000~현재), 2005년에는 한국 최초의 성인을 위한 4년제 학력인정 양원초등학교(2005~현재) 설립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양원주부학교는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성인 여성들에게 기초학력을 배양하고 시민교양교육을 실시함으로써 건실한 가정을 이끌어갈 주부의 역할 뿐 아니라 능동적인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양원주부학교의 교육목표는 무엇입니까?

양원주부학교는 홍익인간 이념을 바탕으로 인격을 도야하고 개척정신을 함양하고 자주적 생활능력을 갖게 하며 미래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민주대한 발전에 봉사할 유능하고 선량한 역군을 육성하는 것이 학교 교육의 목표입니다.

-그렇다면 양원주부학교의 교과과정은 주로 어떻게 짜여져 있습니까?

양원주부학교는 우선 실용교육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아울러 더불어서 함께 사는 방식을 교육합니다. 다시 말해 사회적 관계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인문학적 교양을 가르칩니다.

이를 위해 교육봉사를 생명으로 삼는 사명감 넘치는 교사들이 나서서 새 국민상의 형성을 위한 충효교육과 예절교육에도 주력하고 있습니다.

또 개척정신을 기르도록 해 자주적 생활능력을 함양하고, 학과에 전력을 기울여 급격한 사회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양원주부학교는 학생들의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다양한 교육환경을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국제화,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나날이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한자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급수를 취득할 수 있는 시험제도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알아야 교양인이 된다는 인식 하에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고적지를 선정하여 연 1회 현장학습을 통해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키워나가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 양원‧일성학교 학생들이 노래자랑 행사에 참가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양원주부학교의 특색 있는 커리큘럼에 대해서 소개해 주십시오.

학생들의 재능을 함양하기 위해 컴퓨터반, 문예반, 한문반, 영어암송프로그램반, TOSEL영어인증시험반 등 다양한 특활반이 존재합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매달 팝송 한 곡을 선정하여 배운 실력을 뽐내는 팝송경연대회, 학생들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는 양원가족노래자랑 등 학생들이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행사로 즐거운 학교생활을 위한 동기부여도 하고 있습니다.

또 학생들이 학교생활과 사회생활에서 체험한 순박하고 솔직한 외침을 모아 매년 ‘빛을 향하여’를 발간하는데2013년 26권이 되었고 시인과 수필가로 74명이나 등단하였습니다.

양원주부학교는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1993년 11월 2일에 창립된 양원지역봉사회는 현재 2,000여 명의 회원들이 매달 5,000원의 회비를 모아 소년소녀가장, 무의탁노인 및 장애인 등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찾아 나누고 베푸는 사랑을 실천하는데 모든 회원이 앞장서고 있습니다.

-학교 졸업 후에도 평생교육 차원에서 다양한 분야로 진학한다고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양원주부학교를 졸업한 후 학생들은 일반 4년제 대학이나 전문대, 사이버대학, 방송통신대학 등에 진학해 뜨거운 학구열을 불태우며 평생교육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비록 늦깎이로 시작한 공부이지만 새로운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며 전문가의 삶을 살기 위해 저마다의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2005년 한국 최초로 성인대상 학력인정 초등학교로 지정을 받은 양원초등학교는 배움의 기회를 놓친 성인들에게 나이에 관계없이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학생들의 평균나이는 69세로 6년 과정을 4년만에 걸쳐 이수하는 단축 교육과정을 구축해 놓고 있습니다 .

-양원‧일성학교 등을 통해 배출한 졸업생 수와 진로 등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그동안 우리학교를 졸업한 5만여 졸업생들은 사회 각 분야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면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수료한 후에 더욱 학문에 매진하여 박사가 되어 대학 강단에 선 이도 있고, 은행원으로, 시인으로, 서예가로, 시민단체의 임원으로, 사업가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졸업생들이 많습니다.

이들 졸업생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졸업생 모두가 소중한 보물로 여겨지며 자랑스럽게 생각됩니다. 모두들 하나같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공부한 특별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성공은 그 누구보다도 빛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졸업생의 혁혁한 진로개척은 역시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과 동문의 헌신이 있었다고 보는데 어떻습니까?

맞습니다. 이 같은 결실은 졸업생들이 사회에서 당당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지난 52년 동안 일성과 양원에 근무하면서 정규 학교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한 그들을 지도한 선배, 동료, 선생님들의 헌신적인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들의 헌신과 기여에 항상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현재 이곳에서 공부하는 3400여 학생들도 언젠가는 향학열에 대한 보상을 반드시 받으리라 확신하며, 우리 교직원들도 이들의 열정에 화답하여 항상 최선을 다해 교육에 임하고 있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나라에서 하지 못하는 소외계층 교육을 위해 평생 헌신해 오셨는데 이 같은 길을 걷게 되면서 참으로 어려움이 많으셨을 줄 믿습니다. 이 기회에 애로 사항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요즘 복지문제가 사회적 관심의 중심에 있습니다. 다양한 복지에 대한 논의가 있으나 교육 소외계층에 대한 교육 복지 논의는 들리지 않아서 조금은 서운한 감이 있습니다.

정상적인 교육 기회를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학습경험을 갖지 못함으로써 자신이 잠재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실생활을 영위하는 데도 불편을 느끼는 우리 이웃의 문제인데도 말입니다.

특히, 어르신들의 경우는 자신들은 잘 먹지도 못하고, 잘 입지도 못하고, 따뜻한 잠도 못 자고, 배우지도 못하고, 손발이 닳도록 일해서 오직 자식교육에 온 힘을 바쳐 교육 시켜 놓았습니다. 이러한 부모님들의 희생 위에서 그 자식들은 짧은 기간에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경제발전을 이루어 냈습니다.

못 배운 한을 가진 어르신들은 이들 세대를 키워내고 뒷받침해 주신 숨은 공로자들입니다. 이들 어르신들도 교육 기본법에 보장된 교육 받을 권리와 헌법에 보장된 행복추구권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일곱 나라밖에 없는 2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2만 불, 인구 5천만 명)에 가입한 나라도 되었으니 이제 숨은 공로자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봅니다. 이에 교육당국의 지원책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들 교육 소외계층에 대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방치 한다면 교육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무지의 대물림, 가난의 대물림으로 이어져 개인은 물론 국가·사회적으로도 큰 어려움을 가져올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라도 교육소외계층에 대한 복지정책이 시급히 마련되고 실현되어 그분들의 어려움이 해소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이선재 교장은 배움에 목마르고 불학의 한을 지니고 사는 이들을 위해 배움의 등불을 환히 밝히겠다고 강조했다.

-양원‧일성학교에는 배움의 기회를 놓쳐서 배우지 못한 것에 한이 있는 사람들이 여기에 모였습니다. 대체로 어떤 학생들입니까?

못 배운 이들의 배움터 여기 양원‧일성학교에는 시대의 빠른 변화에 부응하기 위하여 시대 탓, 부모 탓, 여건 탓하지 않고 평생 학습을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 모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양원초등학교, 양원주부학교, 일성여자중고등학교의 학생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교장선생님은 문해(文解) 교육에 평생을 바쳐 오셨는데 이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현재 성인 비문해(非文解) 비율은 약 15% 정도라고 봅니다. 이들을 위한 교육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실효성 없는 정책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성인 문해교육 예산은 해마다 점점 삭감되고 있습니다.

교육당국은 우리 일성여중고와 양원초등학교는 성인교육기관인데도 불구하고 학력인정 기관이라는 이유로 10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정규교육과정을 그대로 적용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반 학생들과 같이 체력 신장, 정신력 강화 등을 위한 체육수업을 받으라는 것은 50대 이상의 중년 여성들의 입장을 한 번이라도 배려한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세상이 온통 영어인 환경에서 그들은 식당에 가서 밥을 시켜먹기 위해서, 출가한 자녀들의 아파트를 찾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해야 하는 입장이며, 이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정책이 필요한 것입니다.

세계 최대의 교육 강국이라는 대한민국 교육정책이 좀 더 다양화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국민은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교육시기를 놓친 사람들이 다시 교육을 받기란 쉬운 현실이 아닙니다.

공부가 한이고, 서러움, 불편, 고통, 수치로 느껴 찾아온 분들을 위한 교육정책 강화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 주길 바랍니다.

-교장선생님 얘기를 듣고 보니 우리 주위에 교육에서 소외된 성인들이 의외로 많다는 생각입니다. 구체적인 통계를 통해 말씀해 주십시오.

한국 성인의 평생학습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평생학습 참여율은 (2013년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인 핀란드 64.8%, 덴마크 60.1%, 스웨덴 59.2%, 영국 53.7%, 노르웨이 53.5% 등에 비해 매우 낮으며 평균치인 40.8%보다 10.3%p나 낮은 30.5%라고 합니다.

그것도 중졸이하 19.3%, 고졸 25.2%, 대졸이상 38.4%로 중졸 이하 자와 대졸 이상 자의 평생학습 참여율 격차까지 가져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평생교육 참여율 제고에 대한 해법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평생학습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서도 중졸 이하 저학력 비문해자들의 교육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문해학습이 모든 학습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문해 교육지원 특별법을 마련해서 일정 기간이라도 의무교육예산에서 지원해 주면 좋겠습니다.

정부가 주창하고 있는 창조경제의 창의성은 평생교육을 통해 기술을 개발하여 신제품으로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것입니다. 모방의 시대는 끝났으며 평생교육을 통한 R&D에 투자해야 된다고 봅니다.

평생교육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해서 선진국 진입을 할 수 있도록 국가예산 지원이 절실합니다. 100세 시대에 스스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평생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사업계획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한마디로 배움에 대한 한을 품은 자가 우리 사회에 한 사람도 없을 때까지 저는 이 사업을 계속하겠습니다.

못 배운 것처럼 사람에겐 한(恨)이 없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또는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놓친 이들에게 불학(不學)은 평생의 멍에가 됩니다.

특히 글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이들의 한을 풀어주고 싶습니다.

배움에 목마르고 불학의 한을 지니고 사는 이들을 위해 배움의 등불을 환히 밝히겠습니다. 배움의 기회를 놓쳐버린 늦깎이들의 향학 열기를 말끔하게 풀어주도록 앞으로도 계속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끝으로 우리 양원·일성여중고가 필요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의무교육을 받지 못한 약 600만 명의 성인들이 국가의 지원 아래 마음 놓고 교육 받을 수 있는 그날에 명예롭게 은퇴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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