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대응도 형식수준, 원금회수 의지 전혀 없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기관은 국가경제의 심장 역할을 하고 있다. 심장이 피를 제멋대로 순환시킬 경우 우리 몸의 시스템은 일대 혼란을 일으켜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듯 금융기관도 자금을 적제 적소로 순환시켜줘야 경제와 산업이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투명금융을 위한 감시 시스템이다. 그래서 정부는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을 금융감독원으로 일원화 한 후 재정경제부의 권력을 일부 이양하는 등을 통해 금융권에 대한 지도·감독 기능을 강화했다. 금융시스템의 건전화와 투명화의 중요성은 모든 국민이 인정하는 바이다. 이에 따라 IMF외환위기시절 이후 우리 국민들은 보험, 증권 제2 금융업계에 비해 은행에 대한 신용과 관심은 상당히 높다. 하지만 때때로 신용을 먹고 사는 금융기관에서 국민들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들이 일어나곤 한다. 그러나 금융기관에서 오는 사기, 횡령, 우월적 지위 남용 등이 일어날 경우 금융감독위원회와 검찰, 공정거래위원회 등 국가기관에 의해 제재를 받게 된다. 최근 우리은행, 국민은행, 농협 등 대형 은행에서 일어난 횡령 및 사기사건 등이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적발되고 처벌받아왔다. 그러나 금융기관과 금융감독기관의 양심이 동시에 마비됐을 경우에는 대책이 없다. ▲수출입銀, 고소 후에도 "나 몰라라" 지난 2004년 발생한 수출입은행의 대출 사기사건도 이같은 경우에 해당한다. 현재 서울남부지법 민사 9부에서 진행 중인 이 사건은 유일산업이라는 곳에서 (주)동진글로벌섬유(이하 동진)라는 유령회사를 세워 수출입은행으로부터 17억원을 착복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은 당시 대출을 담당했던 수출입은행 직원 A씨와 B씨 등 내부인 동조 속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이에 따라 수출입은행측은 여타 은행의 횡령사건의 액수와 비교해 사고 금액이 적고, 내부자 공모에 대한 의혹이 퍼질 경우 회사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판단에 따라 해당 직원에 대해 경고 등 가벼운 징계만으로 덮었던 사건이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의 수시감사를 통해 사건이 드러나고 직원들의 입을 통해 알음알음 소식이 전해지자 2005년 6월 해당 사건을 서울 남부지검에 고소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업계는 “수출입은행의 이번 고소목적이 피해자금 환수나 책임자 처벌 등에 있기 보다는 언론 등 대외기관에 대한 면피성 조치일 뿐”이라는 해석을 보였다. 실제로 이 사건을 처음 접수한 남부지검 관계자는 “초동수사는 일단 끝낸 후 광주지검에 인계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번 수사가 끝나려면 몇 년은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에 대해 금융권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고소 당사자인 수출입은행도 내심으로는 사건 자체를 유야무야 끝나길 바랄 것”이라며 “서울남부지검에서 광주지검으로 그리고 광주에서 다른 곳으로 몇 번 이송하는 도중 사건 자체가 잊혀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출사기사건의 전모 이 사건은 지난 2004년 7월부터 시작된다. 동월 21일 동진은 한국 수출입은행으로부터 포괄수출금융으로 17억원을 대출받은 후 162일이 지난 12월 29일 부도를 내게 된다. 동진은 모기업인 (유)유일기업이 은행 자금을 끌어들일 목적으로 설립한 유령회사다. 동진은 동년 우리은행으로부터 26억원을, 수출입은행으로부터 17억 등 총 43억원을 대출받아 유일기업에 전달했다. 그리고 유일은 본 임무를 다 완수한 동진을 계획대로 고의 부도를 냈고 우리·수출입 은행은 광주지법 여천지원에서 임의경매를 시작했다. 그런데 임의경매 과정에서 수출입은행이 동아감정평가법인에 재의뢰한 결과 2005년 2월 3일 기준 동진글로벌의 감정가액이 31얼 1,500만원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동진 부지 매각 대금의 대부분이 우리은행으로 넘어가고 수출입은행은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한 채 손실계정으로 처리했다. ▲금감원, 적발코도 쉬쉬 그리고 6개월 후 수출입은행은 금감원으로부터 수시 감사를 받던 중 이 문제를 지적받게 된다. 금감원은 은행, 보험사, 증권사, 자산운용사, 대출회사 등 모든 제도권 금융기관들을 상대로 수시 혹은 정기적으로 감사해 오고 있다. 당시 수출입은행은 금감원에서 감사를 나온 직원으로부터 신랄한 지적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금감원도 이러한 사실을 적발하고도 수출입은행에 대해 주의, 경고 등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에서 어떠한 조치가 나갔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이 사건을 담당했던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사안의 경중에 걸맞은 조치를 수출입은행에 취했다. 다만 어떠한 조치가 나갔는지는 수출입은행 차원에서 중대한 영업상 비밀일 뿐 아니라 기자에게 말해줄 법적 의무가 없기 때문에 은행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대답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주의를 받았는지, 기관 경고를 받았는지 등의 차원과 영업상의 비밀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또 같은 질문을 수출입은행측에 확인해 본 결과 “지금은 그냥 넘어가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 되서는 안 될 것”이라는 사적인 꾸중 차원에서 무마된 것으로 밝혀졌다. 즉 금감원의 답변은 영업상 비밀을 보호해 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해 줄 말이 없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금융계 관계자는 “모 은행에서는 일개 여직원이 몇 천억 원을 횡령하는 등 은행의 대규모 대출사고에 비해 너무나 미미한 사건으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금감원이 이를 적발하고도 아무런 조치도 없이 넘어간 것은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내부직원 공모된 사기사건 의혹 이 사건을 전해 사람들은 수출입은행의 이번 대출이 신용조사 후 대출을 해 줘야 하는 원칙을 지키지 않은 체 동진글로벌의 담보물 감정평가서만을 믿고 대출해 준 것과 동진글로벌섬유의 실적과 창립일시 등 일상적으로 해 오던 기본적인 기업정보 확인을 전혀 하지 않은 사실 등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이러한 의구심은 동진글로벌을 세운 유일기업과 동진글로벌 담당자, 그리고 수출입은행 대출직원의 유착관계에 대한 의심으로 쉽게 발전된다. 사건 자체가 공모에 의해 짜고친 고스톱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수출입은행은 내부적으로 아무런 조치 없이 쉬쉬하며 6개월은 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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