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 지배에서 벗어나 세계영화계를 뒤흔든 다국적 영화들의 정체를 알아보자

말할 것도 없이, 전세계 영화계는 헐리우드가 장악하고 있다. 세계영화의 흥행성적표에서 이런 사실이 잘 드러나고 있는데, 현재까지 역대 흥행성적 100위 내의 영화들은 90% 이상이 헐리우드 산이며, 나머지도 영어권인 영국·호주·뉴질랜드의 '헐리우드 합작' 영화들이 차지하고 있다.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선 '영어'가 기본이라는 기괴한 사고방식까지도 나올 법한 일인데, 다행스럽게도 이런 '영어권 영화'들의 전세계 장악에서 벗어나, 나름의 전략과 노하우로 세계로 뻗어나간 영화들이 최근 5, 6년 사이에 크게 급증하고 추세이다. 이번에는 이들 '비영어권' 히트작 흥행순위를 살펴보며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세계로 어필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우리의 세계전략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돼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기로 하자 1.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 전세계 흥행: 약 2억 3930만 달러 비영어권 영화들 중 전세계 흥행 1위작은, 역시 '일본의 월트 디즈니' 미야자키 하야오의 재패니메이션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90년대 들어서서 점차 아시아권의 지지층을 확보하고 <모노노케 히메>로 미국 입성에 성공했는데, 사실 아직까지는 '디즈니의 나라' 미국 시장에서 고군분투 중이지만 미국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재패니메이션의 세계정복이 이미 완성점에 도달했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2. <인생은 아름다워> (1997) - 전세계 흥행: 약 2억 2270만 달러 이태리의 대표적 코미디언 로베르토 베니니의 메가 히트작 <인생은 아름다워>의 경우, 그 성공 과정이 몇 단계로 나뉜다. 일단, 이태리 본국에서의 대대적인 히트가 적어도 유럽 시장에서는 화제가 되어 있었다. 다음 해 5월, 이 영화는 깐느 국제영화제에서 가장 큰 이변으로 작용해 2위격인 심사위원대상을 차지했고, 이 뉴스가 전세계 영화관계자들과 영화팬들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생은 아름다워>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7개 부문 노미네이트되었고, 다음 해 3월 남우주연상과 외국어영화상, 음악상을 차지하면서 전세계 영화팬들의 '초관심사'로 급부상하게 된 것이다. 이 케이스는 '미국에서의 성공이 결정타'라는 공식을 만들어내게 되었고, 외국어영화의 흥행비결은 흔히 가장 어려운 비평적 단계인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 선정'이라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3. <와호장룡> (2000) - 전세계 흥행: 약 2억 910만 달러 <와호장룡>은 <인생은 아름다워>와 마찬가지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까지 오른 사례이지만, 정작 미국 내에서의 흥행성적은 <인생은 아름다워>의 2배 이상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비평적 관심이 아니라, '쿵후 영화 쟝르'가 미국에 확실히 상륙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미 성룡, 이연걸의 미국 상륙으로 미국의 일반대중들도 쿵후 영화 쟝르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황이었는데, 여기에 미국 매스컴의 집중적인 비평적 호의가 쏟아지자 가속을 받고 흥행에 대성공한 것. 아이러니컬한 점이라면, 미국 외의 나라에서는 이 영화의 '부드럽고 우아한' 액션 장면들에 다소 실망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는 사실이다. 4. <모노노케 히메> (1997) - 전세계 흥행: 약 1억 6590만 달러 재패니메이션이 세계로 뻗어나간 시발점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영화의 경우 '일본 역대 흥행 1위'라는 타이틀이 주된 선전효과를 담당했던 듯하다. 사실 영화 자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치고는 '범작'에 속하지만, 그간 차곡차곡 쌓아진 미야자키의 명성과 거친 액션 장면 등이 세계 영화팬들의 '핫 아이템'으로 떠오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야자키의 영화들 중 최초로 미국 시장에 '제대로' 상륙한 영화이기도 하다. 5. <포케몬 The First Movie: 뮤투의 역습> (1999) - 전세계 흥행: 약 1억 5570만 달러 <포케몬>의 성공은 'TV용 재패니메이션'마저도 전세계를 정복해버린 현상을 보여준다. 그간 극장용 재패니메이션 만이 관심의 대상이었을 뿐, TV용의 경우 낮은 완성도와 얄팍한 상업주의 탓에 부단히 저평가되는 상황이었지만, 성인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사이 TV용 재패니메이션은 아동층을 확실히 사로잡고 있었던 것이다. 구색 맞추기처럼 등장한 극장판 <포케몬 The First Movie: 뮤투의 역습>의 대성공은 이 사실을 분명히 증명하고 있다. 여기에 재패니메이션 특유의 '멀티미디어 전략'이 맞아떨어져 <포케몬>을 소재로 한 비디오게임과 코믹, 악세사리들까지도 동시에 대폭발을 일으키는 사회문화적 현상이 일어나 버렸다. 과연 재패니메이션의 위력은 강력했다. 6. <아멜리에> (2001) - 전세계 흥행: 약 1억 3320만 달러 <아멜리에>의 감독 쟝-삐에르 주네는 이른바 '헐리우드에서 물먹은' 감독이었다. <델리카트슨>,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를 통해 세계영화계의 '뉴웨이브' 선두주자로 발돋움했던 주네는, 첫 헐리우드 입성작인 <에이리언 4>의 대대적인 실패로 헐리우드에서 추방되는 수모를 겪었는데, 4년 뒤에 등장한 재기작 <아멜리에>는 이런 모욕을 깨끗이 지워버릴 수 있는 대히트작이 되었다. <아멜리에>의 성공은 아카데미상 시너지 효과도, 쟝르상의 부흥도, 아동층 전략마저도 아닌 '순수한' 영화 자체의 매력에 힘입은 것이어서, 가장 정통파 성공을 거둔 케이스로 꼽힌다. 잘 만들고, 범세계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면 그 어떤 국가의 영화더라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7. <아스테릭스 - 미션 클레오파트라> (2002) - 전세계 흥행: 약 1억 220만 달러 유럽의 히트 코믹을 원작으로 한 <아스테릭스>는 비록 미주와 아시아에까지 그 영향력을 떨치지는 못했지만, 원작 만화에 열광하던 유럽인들에게는 충분히 히트 아이템이 될 만 했다. 1편 <아스테릭스>는 별다른 매력도 없고 완성도도 떨어지는 상황에서 대대적인 히트를 기록했는데, 그 속편인 <아스테릭스 - 미션 클레오파트라>마저도 기껏해야 비슷한 수준의 완성도로 전편 이상의 히트를 거두어 전세계 영화관계자들의 놀라움을 샀다. 흔히 미국의 수퍼 히어로물 코믹 원작의 영화들이 대히트를 기록하는 모습을 보곤 하는데, 유럽에서만 유명한 코믹이 있는 만큼, 이들 '유럽' 코믹의 영화판도 유럽에서만큼은 완성도와 상관없이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는 듯하다.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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