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논쟁 과열…실효성 있는 ‘근본대책’ 수립 우선돼야

▲ 곳곳에 유기되어 갓 태어난 영아들이 목숨을 잃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면서 2007년 독일에서 최초로 도입된 ‘베이비박스’ 제도가 2009년, 한 교회 목사에 의해 국내에 최초 도입돼 운영중이나 찬반논란에 몸살을 앓고 있다. ⓒ 주사랑공동체교회

서울시가 지난 1월 발표한 ‘2013 서울시 유기아동 현황’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동안 유기된 아동 수는 총 222명이며 이 중 종교단체 등 민간이 설치한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는 무려 208명에 달해 총 유기영아 인원의 90% 이상을 육박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수치는 전년도 67명과 비교했을 때 3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베이비박스의 본 취지에서 벗어나 ‘합법적인 아동보호시설’이라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한다.

지난 9일에는 우리나라 아동이 두 번째로 많이 입양되는 것으로 알려진 스웨덴 정부에서 한국의 베이비박스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방한해 조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끄러운 현실”이라는 자각의 목소리가 커지는 등 이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현재 우리나라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의 실태와 현황, 문제점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베이비박스’ 설치 후 유기영아 4년 새 9배 ↑
“유기 영아 생명 구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
“아기 버릴 수 있는 환경 제공해 유기 조장”
유기영아 복지현실 ‘냉혹’…정부지원 급선무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베이비박스로 버려진 아이는 총 208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 2010년 처음 베이비박스가 설치된 후 근 4년간 4명(2010년), 24명(2011년), 67명(2012년)으로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다가 2013년 208명이라는 급격한 수치로 늘어났다.

이 증가세에 맞춰 전체 유기아동 수 역시 2010년 24명에서 2013년 222명으로 4년여간 약 9배 이상 증가해 베이비박스를 합법적인 아동보호시설의 하나로 오해하는 시각이 빈번하다 보니 유기아동이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한다.

서울시 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당시 현황을 밝히면서 “입양에 필요한 출생신고를 피하려고 아이를 유기하는 미혼모와 버려진 신생아의 처지가 온정적으로 다뤄지면서 베이비박스가 일부 부모들에게 하나의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비박스(Baby Box)’란 지난 2007년 독일의 가브리엘 스탠글(Gabriele Stangle) 목사가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없는 부모들이 비밀리에 아이를 두고 가게해 애꿎은 어린 생명을 잃지 않게 하자는 취지로 최초로 창안해 설치했으며 현재 유럽 주요 10여개국과 일본·중국·한국 등에서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009년 서울 관악구 난곡동 한 교회의 이종락 목사가 교회 앞 대문에 버려진 신생아가 저체온증으로 사망 할 뻔한 사건을 겪고 난 후 설치한 것으로, 가로 70cm·높이 60cm·깊이 45cm의 공간으로 교회 벽 담장을 뚫어 만든 곳이 최초이자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담장 벽에는 ‘미혼모 아기와 장애로 태어난 아기를 유기하거나 버리지 말고 여기에 넣어 주세요’라는 안내문이 쓰여 있으며 아이를 두고 가면 자동으로 벨이 울려 이 목사가 아기를 방으로 데리고 가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 목사는 당시 베이비박스를 설치하면서 국내 언론사들과의 인터뷰에서 “집 앞에 심심찮게 버려지는 영아들을 보니 추운날씨에 자칫하면 사체로 발견되겠구나 싶었다”면서 “영아들을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을지 연구하던 끝에 발견한 것이 바로 베이비박스”라고 밝힌 바 있다.

베이비박스 운영, 현행법상 ‘불법’

당시 국내 언론과 방송은 베이비박스가 유기된 영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이 목사의 취지를 살려 긍정적으로 보도했다. 당시 보도된 언론을 종합하면 ‘버려진 아기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베이비박스’로서 ‘아기를 맡길 수 있는 시설이 현실적으로 부족하고, 시설이 있더라도 신분 노출을 꺼리는 부모들이 있어 이는 사실상 아기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베이비박스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찬성측의 주장이다.

▲ ‘베이비박스’의 설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베이비박스는 영아보호소가 유기행위의 실질적 내용은 변함없이 방식만 바뀌도록 종용하고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서, 이는 영아유기를 금지하는 법률의 요구와도 부합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 뉴시스

베이비박스를 설치한 이종락 목사는 당시 인터뷰에서 “현실적으로 미혼모 등이 아이를 버리다시피 하고 가버리면 갓난아이의 생명이 커다란 위협을 받게 되는데 이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라고 지적하면서 베이비박스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영아유기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베이비박스 설치를 극구 반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베이비박스 설치 직후 이 목사측에 “부모들이 아이를 유기한다는 죄책감을 덜어줘 영아유기를 조장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베이비박스를 철거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린 바 있다. 이처럼 일부에서는 베이비박스가 영아유기를 조장함은 물론이며 ‘아기를 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며 베이비박스의 운영을 반대하고 있다.

국내 유일하게 베이비박스가 설치되어 있는 관악구청 복지과 관계자는 11일 <시사신문>과의 통화에서 “복지부에서 운영하는 129 콜센터를 통해 아이를 기를 수 없는 미혼모나 부모가 상담을 통해 대책방안을 마련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음에도 베이비박스가 무조건적인 대안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유기아동 복지 시설·인력 충원 급선무

한편,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동의 경우 대부분이 종교시설에서 양육되거나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시설로 보내지게 된다. 이는 2012년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유기아동은 버려진 지역의 지자체가 책임을 지도록 한다’는 규정에 따른 것으로, 현행법에서 베이비박스를 정식 아동보호 시설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베이비박스가 설치된 서울시가 이 부담을 모두 떠안아야 하는 실정이다.

▲ 관계자들은 실효성없고 무의미한 ‘베이비박스’의 찬반논쟁에 열을 올리기 보다는 유기영아 수용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 SBS

서울시 아동청소년복지부 관계자는 10일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일반 가정 아동들에게는 국가에서 무상보육비를 지원하지만 유기영아들은 대상이 아니라서 시 예산으로 100% 충당하다 보니 부족함이 많다”고 밝혔다.

이어 “게다가 입양특례법이 개정되면서 입양이 어려워져 유기되는 영아가 더 늘어남에 따라 정부에서 이에 대한 개선책을 내 놓거나 지자체에 유기영아 지원을 위한 보조금을 지급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유기아동과 관련한 아동복지시설 등에 배정된 예산 463억원에 20억원을 추가 투입하기도 했으나, 올해 역시 유기영아의 수가 대폭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며 편성된 예산에 추가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아동복지협회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국내 유일하게 서울시 관악구에만 베이비박스가 설치되고 있는 탓에 전국 유기영아가 서울시로 몰려드는 실정이다.

특히 정부가 베이비박스에 대해 불법으로 규정지으면서도, 막상 베이비박스로 수용되는 유기영아가 많아 이를 대체할 수단이 없어 강제 철거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인 만큼 실효성없고 무의미한 찬반논쟁에 열을 올리기 보다는 유기영아 수용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이어 “서울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아동 복지시설은 사실상 과포화 상태”라면서 “인력이 부족해 사무직원들까지 총 출동해 아이들을 보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고충과 불만은 높아져 가고 있고 인력과 시설을 충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막상 아이들의 생필품을 구매하기 조차 빠듯한 예산이라는 것을 알기에 감히 그런 말을 할 수도 없는 실정”이라며 씁쓸해 했다.

또한 로스 옥 해외입양인모임(TRACK) 공동대표 역시 지난 7일자 <프레시안>에 올린 기고문에서 “베이비박스는 영아유기 문제의 미봉책일 뿐 아동유기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며, 그 원인도 없애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로스 씨는 “아동유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베이비박스’가 생겼지만, 그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것은 다양한 국가의 지원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스웨덴 “한국, 아기 생명·인권 무관심…매우 충격”

앞서 지난 9일에는 스웨덴 정부 인사들이 한국의 ‘베이비박스’를 방문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베이비박스가 다시금 주목을 받기도 했다. 스웨덴은 우리나라 아동이 두 번째로 많이 입양되는 나라로서, 스웨덴 현지 언론에서 한국의 유기아동 증가추세에 한국 베이비박스의 실태와 입양제도를 파악하기 위해 방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입양국 관계자들은 베이비박스를 살펴본 뒤 이 목사와의 면담에서 “한국은 매우 잘 사는 나라로 알고 있는데 아기의 생명과 인권에 대해 무관심한 것 같다”며 충격을 금치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들은 “스웨덴에서는 미혼모가 혼자 아기를 키우더라도 국가가 나서 경제적·사회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데 이렇듯 아기가 버려지는 한국의 현상을 스웨덴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고 이 목사는 10일 전해왔다.

당시 스웨덴 입양국의 한 인사는 베이비박스를 본 후 “아기가 버려지는데 정말 한국 정부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느냐”고 재차 반문했다.

그러면서 어느 한 쪽에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닌 미혼부·모 양쪽 모두와 어린나이에 임신한 조산부 역시도 편견 없이 학업을 마칠 수 있는 스웨덴의 인식과 직장에 아이와 함께 출근해 국가가 운영하는 보호시설에 위탁했다가 함께 귀가하는 등 스웨덴의 미혼모·한 부모 복지 사례를 한국이 배워야 한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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