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의류 특구 청평화 24시

작년부터 우리나라는 황우석 박사의 신화탄생과 몰락, 증시의 급등과 환율 급락, 북핵 관련 6자회담 타결, 노충국씨의 억울한 죽음 등 등 순간순간 다이나믹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특히 경제가 IMF 이후 점차 회복세에 있으면서도 서민 체감경기는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점은 정치권 및 시민단체의 큰 이슈가 되고 있다. 그러나 작년 한 해 영욕이 교차하는 와중에서도 대다수의 중소 상인들은 6자회담, 사학법 등 국가적 이슈와 무관하게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50년대 개발독재시대 이후부터 TV뉴스와 신문지면 등 모든 언론매체의 톱 이슈는 경제다. 박정희 정권이 내세운 최고의 명분도 경제발전이었고 군정종식을 외쳤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두고두고 욕을 먹는 이유도 임기 중 IMF 외환위기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또한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권을 공격하는 가장 큰 명분도 경기침체다. 작년 배아복제 세포의 신화와 몰락, 북핵위기와 6자회담 극적 타결, 증시 활황에 환율급락 등으로 우리 경제는 희망과 절망을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 그러나 서민 시장과 영세 중소기업의 상인들은 이같은 이슈들과는 관계없이 시장에서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국내 경제를 부양하고 있다. ▲우리나라 의류산업의 매카 동대문 의류산업은 3공화국 이후 우리나라 경제를 견인해 온 대표적인 사업이자 친 서민적 산업이다. 현재 의류산업은 상류층을 대상으로 한 맞춤옷 시장을 제외하고 이랜드, 크로커다일, 뱅뱅 등 특정 브랜드와 전용 매장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기업형과 데코, 엘르 등 백화점 등에서 판매하는 점포형, 그리고 동대문시장 등을 거점으로 하는 시장형이 있다. 이 중 시장과 인터넷 등에서 판매되고 있는 서민형 옷들은 대부분 동대문 시장의 도매 의류타운을 거친다. 이곳에는 청평화시장, 동평화시장을 비롯 4~5개의 의류타운이 낮시간과 밤시간을 교대해 가며 대한민국 서민들의 옷을 유통시키고 있다. 이 중 낮 시간 도매 유통을 책임지고 있는 청평화시장은 우리나라 옷 시장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남대문시장, 동평화시장 등 대부분 의류 도매상가들이 밤 8시부터 새벽까지 운용되는 밤 시장이 주류인 것을 감안하면 의외로 평가될 만 하다. 그러나 청평화시장 관계자는 “밤 시장의 경우 남대문·동대문 등 많은 도매시장들과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하지만 낮 시간대 장사는 아직까지 청평화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간대를 옮겨 의류도매시장의 블루오션을 개척하고 있다는 얘기다. 청평화 시장의 낮시간 영업으로 동대문과 명동 일대에는 24시간 의류 유통 시스템이 갖춰져 대한민국 의류 중심지로 발돋음 하고 있다. 먼저 하청공장들은 청평화·동평화 시장 점포들이 의뢰한 디자인과 원단 및 악세사리 등을 넘겨받아 완성품 옷을 만든다. 시장 상인들은 그 옷을 넘겨받아 소매시장과 인터넷, 홈쇼핑 거래처에 납품한다. 이 때 청평화 시장은 새벽 4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동평화시장은 오후 4시부터 새벽 4시까지 영업을 하면서 24시간 시스템이 완성되게 된다. 그리고 명동 등에 위치한 두타, 밀리오레 등 소매점포들은 각자의 영업시간에 맞춰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한 후 일반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것이다. 이처럼 동대문 의류특구에는 하청공장, 청평화시장, 밀리오레, 소비자로 이어지는 의류유통 인프라를 완비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서민들이 입고 있는 옷들 중에는 인터넷, 홈쇼핑, 지방 소매상점들 등을 막론하고 이 곳들을 거치지 않은 옷이 별로 없다. ▲청평화 시장, 고용효과 2만여명 이 중 낮 도매를 책임지고 있는 청평화 시장은 청계천 맞은편에 지하 1층 지상 5층 건물을 지칭한다. 이 곳에는 각 층당 300여개의 점포가 입주해 총 1,800여 점포를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각 점포마다 주인 부부, 판매원, 디자이너 등 총 3~4명이 팀을 이뤄 일하고 있다. 여기에 하청공장과 청평화 시장, 소매 고객들 사이에 물건을 운반하는 일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도 전체 500여명 가까이 된다. 또 경비 및 사무보조자 등 100여명을 포함할 경우 청평화 시장 내에서만 총 7,800여명이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각 점포마다 부부가 나와서 일한다는 점을 감안할 경우 4,200여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생긴다는 것이다. 여기에 각 점포마다 직·간접적으로 연계를 맺고 있는 각 하청공장과 인터넷 의류 쇼핑몰 등 간접 고용효과까지 감안한다면 총 고용효과는 2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동대문 도매시장은 IMF 외환위기 이후 하청공장을 인건비가 싼 중국으로 옮겼었으나 최근에는 국내 하청업체로 다시 거래선을 바꾸고 있다. 이에 대해 한 매장 디자이너는 “중국에 디자인과 의뢰대금을 보낸 후 완성품을 받아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아무리 빨라도 보름가량이다”며 “고객의 니즈와 디자인이 일주일에도 몇 번씩이나 바뀌는 시장 현실에 맞지 않다”고 말한다. ▲청평화 상인들의 하루 일과 이들은 4시까지 출근한 다음 4시 30분까지 매장을 정리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그러나 주인, 디자이너, 판매관리자가 각자의 역할을 나누는 시간은 아침 7시가 넘어야 가능하다. 청평화의 한 관계자는 “이 시간대에는 유동인구의 60% 이상이 몰려있기 때문에 열심히 장사한다기 보다는 매장을 사수한다는 각오로 거래에 임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루 유동인구가 대략 1만여명 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이 시간대 각 층당 1,000여명의 소매상들이 몰린다는 계산이다. 실제로 새벽 4시경 청평화시장에는 발 디딜 곳이 없다. 이 시간대에는 사람들에게 휩쓸리기 쉽기 때문에 잠시 긴장을 풀면 깔려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빽빽하게 움직이고 있다. 또한 각 소매상들은 자신이 봐 둔 물건을 서로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기도 하고 때로는 고성이 오가기도 하는 등 치열한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한 상인은 “이 시간대에는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길이 없어서 꼼짝없이 갖혀 있어야 한다”는 말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오전 7시가 넘으면 소매상들이 자신의 물건을 주문·구입한 후 장사하러 서서히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면 각 점포는 잠시 티타임을 가지면서 하루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8시 즈음해서 각자의 역할에 따라 헤어지게 된다. ▲청평화 상인들의 역할분담 이 때부터 구성원들은 각자 역할에 따라 나눠지게 된다. 상점 주인은 대체로 재정 및 하청공장 관리와 소매시장 개척 등 전반적인 경영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우선 하청업체 등을 방문하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매장에는 매장 관리자 혼자만이 남아있다. 이에 대해 한 상점 주인은 “나는 하청공장과 소매시장 고객을 관리하고 재정을 책임지는 등의 업무가 쌓여있기 때문에 전적으로 매장에만 붙어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디자이너는 백화점, 소매상점, 길거리 노점상 등을 순방하면서 디자인을 구상한다. 그리고 점심시간 즈음해서 각자 만나 중간점검을 하고 4시 경 결산을 한 후 퇴근 하게 된다. 한편 청평화 상인들 사이에서 사입자로 불리는 이들은 매장과 하청공장, 소매 소비자들 사이에서 물건을 나르는 일을 전담하면서 때때로 각 지역의 디자인 정보 수집 및 시장조사, 소매상가나 인터넷 시장 개척 등의 임무를 띠며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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