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과 외환은행에 불고 있는 애국주의

지난 1998년 9월 당시 임창렬 경제부총리는 침통한 표정으로 IMF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전 국민의 금 모으기 운동 등 정부를 중심으로 일치단결하여 국가 파산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다. 반면 우리는 IMF의 구제금융을 수혈받는 대가로 동 기구로부터 기업과 금융기관의 투명성을 국제 표준에 맞출 것을 요구받았고 우리 경제계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기를 겪어야 했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우리 금융기관들도 외국자본이 정식으로 터를 잡았다. 토종자본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사회는 “돈에는 국적이 없다”는 말이 상식으로 통했다. 제일은행이나 하이닉스 반도체 등이 국내 경제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기업들이기 때문에 해외에 매각하면 안된다는 의견을 제시하면 당시 기준으로 전문적 상식마저도 갖추지 못한 근시안적 시각을 가진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이는 우리나라 국고가 완전 고갈 직전에 있던 당시 상황에서 외국자본을 유치하려는 노력은 당위적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지 소로스 펀드 등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자본들이 우리나라 국가 신용등급이 상승한 후 투자이익 실현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국내 경제에 대한 무 배려와 사회적 파장 IMF 외환위기에서 가장 크게 변화된 것들 중에 은행과 대기업은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이 깨졌다는 것과 개별 우량 기업들에 대한 외국자본의 지배력이 한층 높아졌다는 것이다. 전 세계가 인정하는 매출액 부문 대한민국 1등 기업 삼성전자의 경우 전체 지분의 60% 이상이 외국인 기관투자자에게로 이미 넘어간 상태다. 또 우리는 지난 5년여간 조지 소로스와 최태원 일가 사이에서 벌어진SK 그룹의 경영권 분쟁 등 외국계 자본가들이 그들의 이익 실현 과정을 본 국민들은 “돈에는 국적이 없다”는 말에 심각한 회의를 가지게 됐다. 그리고 이같은 주장을 현실적으로 증명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어 토종자본 옹호론 확산에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지난 주 헤지펀드로 인한 환율 급등 지난주 우리나라는 환율이 급등락하는 대란을 겪으면서 한덕수 부총리와 박 승 한국은행 총재가 긴급 회동을 갖는 등 비상 대책마련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 환율대란은 외국계 투기세력인 헤지펀드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세어나오고 있다. 현재 정부 당국자와 민간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환율 급등의 원인을 미국의 금리인상 중단과 수출호조 등 달러화 과잉공급만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측면이 있다는데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일부 정책 당국자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아시아 통화가 대부분 일제히 급락세를 타는 것을 비춰볼 때 국제적 투기성 자본의 작전이 개입된 것일 수도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또 외환은행 경제연구팀의 강지영 연구원도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매도 분위기가 확산되는 현상도 헤지펀드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주로 외국계 투자은행을 통해 달러매물을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환율 움직임에 대해 행동에 나서면 먼저 빠져나가는 것도 헤지펀드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원화는 투기자본의 매력적인 투자대상으로 지목받고 있어 헤지펀드에 의해 외환시장이 교란될 가능성은 언제든지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금융권에 불고 있는 토종자본론 IMF 위기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계 자본들은 주로 금융시장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지난달 말 금융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SC제일은행, 한국시티은행, 외환은행과 외국은행들의 국내지점 등 외국계 은행들의 국내 은행시장 점유율은 1998년 6.0%에서 2000년 18.7%, 2003년 31.9%, 2005년 33.7%로 나타났다. 지난 7년간 무려 5배 이상 급등한 것. 이들의 자산규모도 일반은행 총자산의 33.7%에 달하는 규모다. 또한 은행중심의 4대 금융그룹 중 우리금융지주만 11.6%로 상대적으로 미미한 지분율을 보이고 있을 뿐 국민은행이 85.2%, 신한지주가 64.3%, 하나은행이 76.4%에 달해 실질적 주인이 외국계로 넘어갔다. 그러나 우리은행의 경우도 지난 국민의 정부시절 금융계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막대하게 투입된 공적자금이 대부분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또한 지방은행도 외국계 지분율이 대구은행이 59.8%, 부산은행이 61.3%에 달해 실질적 소유권이 넘어간 상태. 그리고 정부가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우리은행과 외환은행의 보유지분 매각 계획을 천명한 바 있어 두 은행의 향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두 은행의 지분이 외국계 자본에게 매각된다면 우리나라 은행시장이 실질적으로 외국의 손에 떨어지게 되는 셈이다. 우리은행의 황영기 행장이 신년사 등에서 밝힌 토종자본 수호론과 효도론 등도 이같은 상황인식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지방은행도 경각심 한편 수도권 지역 금융시장에서 외국계 자본의 활약을 지켜보던 지방은행들은 외세가 지방으로 서서히 확산될 것으로 판단,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대구은행의 이화언 행장은 “외국계 은행의 지역시장 진출 본격화가 시작됐다”며 영업력 극대화와 수익기반 다변화 등에 역점을 둬야 한다며 위기론을 펼쳤다. 이를 위해 이 행장은 DGB 세일즈 슈퍼스타제 도입 및 인터넷·모바일 뱅킹 활성화 등을 통한 채널믹스 전략을 강조했다. 부산은행은 “비가오면 작은 우산이라도 함께 나눠 쓰는 상생의 자세로 지역발전을 선도하는 향토은행이 되겠다”며 지역밀착영업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경남은행은 ▲영업기반 확충 ▲영업역량 강화 ▲수익구조의 선진화 ▲자산건전성의 지속적 확보 ▲지역밀착경영 등 5대 과제를 통해 지역에서 외국계 자본에 대한 경쟁력을 키운다는 방침이다. 광주은행의 정태석 행장은 “우리 지역에서 어떠한 경쟁을 벌이더라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다. 이제는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지속적인 내부혁신과 지역밀착경영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전북은행의 홍성주 행장은 “지방은행이 외국계 은행 등 초대형 은행과 동일시하는 착시현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선 고비용 저효율 구조 타파에 주력해 기초체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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