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한의원 등 장소 불문 ‘빈발’

 최근 의사나 한의사 등 의료에 종사하는 이들이 성폭행·성추행 등 각종 성 관련 범죄에 연루되는 사례가 많아 주의가 요망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진찰을 빌미로 신체 부위를 만진다든지 약제나 침구류 등을 이용해 환자나 병원 직원을 대상으로 상습적인 범행을 저지르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병원이나 한의원 등 의료기관에서 의사나 한의사가 저지르는 성추행이나 성희롱 등이 범죄 사례가 빈발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뉴시스

‘의사’ 직위 이용 동료‧간호사 대상 성범죄
“환자에 진료 명목으로 성추행, 죄질 나빠”
소아과 의사가 ‘아청법’ 위반하기도…‘충격’
의료기관 성범죄 최다 피해자는 ‘간호사’

최근 병원이나 한의원 등 의료기관에서 성추행이나 성희롱 등이 범죄 사례가 빈발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성 관련 범죄와는 달리 높은 수준의 ‘윤리성’이 요구되는 의료기관 종사자가 연루되는 경우가 다반사라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대형 종합병원’서 성추행 사건 터져

이에 대해 한 성 상담 전문가는 “의료 기관 종사자가 연루된 성 관련 범죄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전문가는 “첫 번째 유형으로는 주로 의사가 직위 등을 이용해 동료 의사나 간호사를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성범죄이며 두 번째 유형은 치료를 목적으로 방문한 환자를 대상으로 인면수심의 범죄를 저지르는 유형”이라고 분류했다.

이 전문가는 “첫 번째 유형의 경우는 좋게 보면 일반 직장에서도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직위의 상하 관계’를 이용한 성범죄로 볼 수 있어 사전 교육에 신경을 쓰면 얼마든지 예방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그런데 여기서 더욱 나아가 불가항력의 상태에 놓인 환자를 대상으로 진찰이라는 구실 아래 성추행을 하거나 심지어 마취제나 침 등을 이용해 성폭행까지 저지르는 두 번째 유형은 극히 죄질이 나쁜 범죄이기 때문에 정상 참작의 여지를 전혀 둘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최근 의료계 전체에 커다란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서울아산병원 지도전문의 성추행 사건’은 바로 의료 기관에서 발생하는 성범죄 가운데 첫 번째 유형에 포함되는 전형적인 사례로 꼽힌다.

대한전공의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2013년 10월 말 서울아산병원에 지도전문의로 근무하고 있는 A교수는 직원 회식이 끝난 뒤 본인이 교육을 담당하던 건국대병원 여성 전공의인 B씨를 자기 자동차에 탑승하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자동차에 함께 탑승한 A교수는 차내에서 B씨의 신체 일부를 접촉하고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발언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B씨는 “불쾌하다”는 분명한 거부 의사를 여러 번 밝혔지만 A교수는 물리적 힘을 가해 강제적으로 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정황을 보면 명백한 성추행 및 성희롱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B씨는 사건 직후 즉시 서울아산병원 측에 자신이 피해를 입은 사실 내용을 보고했다. 이 자리에서 B씨는 A교수의 법적 처벌을 강력하게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병원 측은 A교수에게 감봉 및 직위이동 처분만 내리는 선에서 그쳤다. 병원 측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B씨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A교수와의 화해를 시도했다고 한다.

소아과 의사 ‘아청법’ 위반하기도

하지만 지난 12월 30일 대한전공의협의회와 B씨가 소속된 건국대병원 교수협의회가 공동 성명을 발표하면서 사태는 단순히 병원 내부 차원을 넘어 의료계 전반으로 일파만파 확대됐다.

이 자리에서 발표된 성명은 “교육자로서 도덕적 자질을 상실하고 의료인 전체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 가해자에게 한시적 솜방망이 처분을 내린 데 그친 서울아산병원에게 적법하고 단호한 처벌을 강력히 요구한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A교수가 지난 1월 8일 합의서를 작성해 제출하면서 해결 국면에 접어들었다. 합의서에는 이번에 발생한 성추행 건으로 B씨가 형사고소나 법적 대응까지 하지 않는 대신 앞으로 B씨와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이날 서울아산병원은 인사위원회를 열고 A교수의 보직 해임과 감봉 등 징계를 결정했다. 또한 A교수는 맡고 있던 센터 소장 직위도 해임된 것으로 알려졌다. 법적 처벌은 겨우 모면했지만 한순간 그릇된 행동으로 오랜 기간 쌓아온 명예도 잃고 구설수에도 오르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아울러 두 번째 유형인 병원을 방문한 환자를 대상으로 저지르는 성 범죄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어 주의가 요망된다. 이에 대해서는 작년 10월에 일어난 사건이 최악의 사례로 꼽히고 있다.

지난 2013년 10월 21일 인천지방검찰청 형사3부(이헌상 부장검사)는 인천 남구 소아청소년과의원 의사 김모(36)씨를 ‘아동청소년성보호법(아청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의사가 ‘아청법 위반’으로 기소된 충격적인 사건이 터진 것이다.

김 씨는 감기 치료 등을 목적으로 진찰을 받으러 온 A양 등 여중생 세 명에게 다리를 벌리고 다가가 피해자의 무릎에 성기 부위를 밀착시키거나 청진기를 가슴에 대는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등 파렴치한 행위를 여러 차례 반복하는 방식으로 성추행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조사 결과 김 씨는 심지어 진료를 목적으로 병원을 방문한 여중생 B양을 침대 위에 눕히고 복부 부위를 진찰하던 도중 팬티 속으로 손을 넣기도 한 인면수심의 혐의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성추행 피해자 중 한 명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자 병원을 찾아가 항의했지만 김 씨가 사과는 커녕 “그런 사실이 없다”며 강하게 부인하자 결국 경찰에 신고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아동청소년성보호법에 따르면 의료인이 성추행 혐의를 인정받아 형을 확정 받게 되면 향후 10년 동안 의료기관 개설은 물론 취업도 할 수 없게 되어있다. 또한 경찰에 따르면 2012년 8월 아청법이 시행된 이후 성범죄 혐의로 처벌을 받은 의료인은 의사와 한의사 각각 한 명 씩 모두 두 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 여간호사 347명 가운데 55.3%는 2년 안에 성희롱 피해를 입은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는 등, 간호사를 상대로 한 성범죄가 위험수위에 다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뉴시스

간호사 대상 성범죄 가장 흔해

병원뿐만 아니라 한의원에서도 심각한 성범죄가 발생하여 세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1월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4단독부(신명희 판사)는 본인이 운영하는 한의원에 근무하는 여직원들을 대상으로 성추행한 혐의(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등으로 기소된 한의사 서모(80)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100만 원을 선고하고 보호관찰과 40시간의 성범죄예방강의 수강을 명령했다.

조사 결과 서 씨는 2012년 11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간호보조 업무를 하는 20대 여직원들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특히 서 씨는 “침을 놓아주겠다”며 여성들에게 접근해 침을 놓고 꼼짝 못하게 한 뒤 몸을 더듬고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거나 강제로 키스를 하는 등 뻔뻔한 행동을 저질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서 씨는 1961년 한의사 면허를 취득한 이후 지난 2009년 관할 관청에 신고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울시 동대문구에 한의원을 개업하고 지금까지 버젓이 운영해 온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서 씨를 모함하기 위해 위증이나 무고의 벌을 감수하면서까지 거짓말을 할 만한 사정이 없어 보이고 그들의 진술도 일관되고 구체적“이라며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서 씨에게 성욕을 자극·흥분·만족시키려는 주관적 동기나 목적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의 고의가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재판부는 “서 씨는 ‘여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키스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회 경험이 거의 없는 20대 초반 미혼 여성들이 80세가 넘는 고령인데다 틀니까지 낀 서 씨에게 일부러 먼저 접근해 키스까지 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어 보인다"며 서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기서 보듯 병원이나 한의원 등에서 일어나는 성범죄 발생 빈도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지난 해 동아대 간호학과 고진희 씨가 발표한 석사학위 논문인 ‘병원 간호사의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인식과 경험실태 및 관련요인’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참여한 여간호사 347명 가운데 55.3%에 해당되는 192명이 “최근 2년 안에 성희롱 피해를 입었다”고 답변해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는 간호사들은 “주요 가해자는 의사와 환자”라고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당한 성희롱 유형을 보면 언어가 53.9%로 가장 많았으며 ▲신체적 성희롱(33.7%) ▲시각적 성희롱(23.9%)이 뒤를 이었다.

성희롱을 당한 구체적 내용으로는 “원하지 않는 은밀한 장소로 유인됐다” “성적 서비스를 요구하는 듯한 행동을 당했다” “억지로 성관계를 시도 당했다” 등이 있었다. 성희롱 사건이 발생한 시간대는 근무시간 외 업무 관련 자리(51.6%)가 제일 높게 나타났으며 ▲근무시간(38.5%) ▲근무시간 외 사적 자리(9.4%) 순으로 나타났다.

성희롱 가해자로는 의사(38%)가 가장 많아 직위 관계를 악용한 성범죄가 빈발하게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밖에 ▲환자(35.9%) ▲환자 보호자(17.7%) ▲병원 직원(15.6%) 순으로 파악됐다.

이처럼 성희롱에 시달리는데도 피해자들 가운데 43.2%만 직·간접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으며 나머지 다수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거나 심지어 모르는 척하고 그냥 지나가는 것으로 조사되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피하자가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 이유로는 “대응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다”라거나 “인간관계가 껄끄러워질까 봐” 등 주로 인사 상 불이익을 받거나 후환이 두려워 침묵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가운데에는 심지어 성희롱 분위기에 동조하는 척하는 최악의 경우까지 상당수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앞으로 의료계에서 보다 체계적인 성범죄 방지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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