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잡아먹은 쥐, 그러나 배후에는 호랑이 있었나

금융은 산업의 젖줄이다. 금융이 투명하고 안전할수록 우리의 경제는 더 발전가능성이 크다. 윤증헌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8월 어슈어뱅킹을 부분 허용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가 전 사회적으로 강한 비난을 받은 것도, 정부가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불허를 경제 제일 원칙으로 삼은 것도 금융의 순수성을 지켜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산업자본을 향해서는 금융지배 금지 원칙이 있듯이 금융자본에 대해서도 금융주력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산업자본이 금융사를 좌지우지해서도 안되는 것처럼 반대로 금융권이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기업의 경영에 과도하게 간섭하는 것도 상식적으로 좋은 현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금융자본은 채권 회수 등 투자 이익을 보존할 목적으로 한시적으로 해당 기업을 지배할 수는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같은 원칙은 방카슈랑스와 관련 보험업계에서 어슈어뱅킹 허용을 요구하다 묵살됐을 뿐 아직까지 지켜지고 있다. 그러나 신호제지(대표이사 김종곤)와 국일제지(사장 최우식)의 경영권 분쟁을 신한금융지주회사의 라응찬 대표가 배후에 있다는 설이 퍼져있다. 신호제지와 국일제지의 경영권 분쟁과 관련 핵심은 배후에 신한금융지주가 있는가, 있으면 어디까지 관여하는가이다. 이에 대해 금융권 일각에서는 신호제지와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국일제지는 사실 대리인일 뿐이라는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국일제지가 신호제지의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신호제지의 경영권은 라응찬 회장에게 넘어가도록 돼 있다는 설이다. ▲신호제지 경영권 분쟁에 신한금융 개입 가설 이같은 가설은 지난 11월 25일 신호제지 노동조합협의회(이하 신호노조)가 서울역 광장에서 신한은행을 상대로 규탄대회를 개최해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신호제지와 국일제지의 경영권 분쟁의 실질적인 배후세력으로 신한은행을 지목한 것. 이에 대해 신호노조는 “건전한 신용 질서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신한은행이 대출 약정을 위반하고 일방의 의견만으로 신호제지 지분 11.8%를 취득해 신호제지의 경영권 분쟁 사안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쳤다” 며 “특히 페이퍼 컴퍼니에 불과한 아람FSI가 의결권을 남용해 회사 경영권을 넘기려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조합원 지분 11%를 전격 인수해 아람-국일제지를 옹호한 것 자체가 신한은행의 본래 의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호제지의 경영권 분쟁의 분수령이 된 13일 주총 이렇듯 신호제지는 2004년 12월 31일 워크아웃을 공식 졸업한 후 1년여간 경영권 다툼에 휘말리고 있다. 그리고 이번 분쟁의 하이라이트는 지난달 13일 평택에서 개최된 임시 주주총회. 그러나 신호제지 측은 이 주총 자체를 국일제지측의 음모로 규정하고 있다. 신호제지측은 이날 주총에 대해 ▲본사가 오산임에도 주총장소를 평택으로 결정한 점▲정문을 봉쇄했다는 점 ▲주총장소에 의결권 없는 경호원들로 가득 채워졌다는 점 등을 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신호제지측은 주총의 운용상 하자를 들며 국일제지측의 주총을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고 국일제지 측도 신호제지의 주총이 불법이라며 소송을 제기한 뒤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상태다. 이에 따라 이들은 29일 법원의 일차 심문을 마쳤으며 이를 토대로 내달 중순 경 최종 판단을 하게 된다. 그러나 국일제지의 조용식 이사는 대표이사를 막은 적도 없고 신호제지측의 주장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그는 주총 자체가 법원의 판결에 따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혔다. ▲경영권 분쟁에 대한 신호제지 측의 입장 현재 신호제지측 주주들은 현 경영권분쟁의 실질적인 당사자를 국일제지가 아닌 신한금융지주의 라응찬·라원진 부자로 지목하고 있다. 라응찬 회장의 개입설을 주장하는 측은 이번 경영권 분쟁을 지난 2004년 신한은행이 재일은행으로부터 신호제지의 주채권을 인수할 때부터 시작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채권인수 자체가 라응찬 회장의 신호제지 경영권 인수를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것이다. 그들에 따르면 아람 FSI 컨소시엄이 신호제지의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라응찬 회장은 신한케피탈을 통해 약 8% 내외의 지분을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라 회장은 신호제지의 주채권 은행 및 참여주주의 자격으로 아람 FSI 컨소시엄 대표로 이충식씨를 선임할 것을 요구, 이를 관철시켰다. 그런데 이충식 대표와 이준수 상무가 라응찬 회장의 3남 라원진씨와 절친한 사이로 신한은행에서도 근무했던 사이라는 것이다. 라 회장은 이충식씨를 아람 FSI(주) 대표로 앉힌 뒤 신한은행을 통해 신호제지와 맺은 대출약정서에서 아람 FSI 컨소시움의 신호제지에 대한 지분 비율이 33% 미만일 경우 대출계약상 기한이익을 상실한다고 적시했다. 또 신호제지 한 주주인 김 모 사장은 “신한은행은 이 뿐 아니라 신호제지가 증자를 할 경우 신한은행 및 아람FSI(주)의 허가를 얻어야 하는 등 신호제지 죽이기를 계속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또 “실제로 아람 FSI의 중요 관계자가 우호지분 모집을 위해 사무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자신들 뒤에 신한은행이 있고 그 총괄 지휘를 은행장을 포함한 고위인사가 직접 관여하고 있다고 했다”고 밝혔다.. ▲신호제지 대표이사, 금감원에 진정서 제출 이에 따라 신호제지 현 경영진측은 국일제지와의 경영권분쟁에 관여하고 있는 신한은행에 대해 금융감독원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진정서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지난 11월 14일 장내매매를 가장하여 아람FSI로부터 종가 7,220원보다 높은 주당 7,500원에 신호제지 주식 11.8%를 매입했다. 이에 대해 신호제지 측은 “신한, 아람, 국일 측이 치밀하게 모의한 불공정 통정매매이며 고객과 소액주주에 대한 업무상 배임혐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진정서는 보유 주식으로 국일측과 라응찬 회장측에 힘을 실어주는 것에 조합원들이 반대하여 이충식 대표 등과 신한은행이 공모하여 치밀한 작전을 벌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관련 신호제지측은 아람 FSI 조합의 우호세력과 함께 아람FSI(주)와 신한은행을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횡령 또는 배임 혐의로 형사고소한 상태다. 또 진정서는 신한은행이 국일제지(주)와 아람FSI(주)로부터 부정한 이익을 보장받는 대가로 주당 1만 1,000원 +a로 되산다는 이면계약을 채결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신한은행 지원으로 국일제지 우세 이같은 일들은 자금력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냉엄한 시장경제 논리 속에서 적대적 M&A 관계에 있는 신호제지와 국일제지간 생존경쟁차원에서 얼마든지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의혹의 핵심은 신한금융지주의 태도에 대한 사실규명에 있다. 현재 국일측이 보유하고 있는 신호제지의 지분 중 대략 11.8%는 신한은행에 의해 위임받은 것이다. 신한은행은 신호제지의 주 채권은행으로 신호제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 신호제지측의 우호세력인 아람FSI 컨소시엄측 지분을 아람FSI(주)(대표이사 이충식)로부터 구매하여 국일제지측에 지원했다. 이에 따라 국일제지로 건너간 11.8%의 지분은 실제로는 23.6%였으며 아람FSI(주)의 돌발행동에 우왕좌왕하던 우호세력의 상태까지 감안하면 효과는 그 이상이다. 그러면 신한은행이 신호제지를 국일제지로 넘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이에 대해 신호제지의 한 대주주는 “전혀 그렇지 않다”라며 잘라 말했다. ▲신한은행의 신호제지 인수 1라운드 이 관계자는 라응찬 회장이 처음부터 신호제지를 개인 소유하기 위해 작년 말 신한은행을 통해 신호제지의 채권을 제일은행으로부터 인수받았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며 당시만 해도 라 회장의 계획 속에 국일제지는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신호제지가 워크아웃에서 졸업하며 새로운 주인을 찾기 시작하던 2004년 말. 신호제지측에 따르면 이 소식을 들은 현 신호제지 엄정욱 부회장은 신호제지의 당시 주채권은행인 제일은행 담당자를 찾아가 신호제지를 인수의사를 밝혔다. 이 때 신호제지건에 대한 실무 책임자였던 양모 부장은 엄 부회장에게 신호제지 인수를 도와주는 조건으로 컨소시엄 관리사의 대표로 이충식씨를 채용할 것을 요구하게 된다. 그리고 이충식씨 밑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아람FSI의 이준수 상무는 라 회장과 신한은행 기업구조조정팀의 김정익 팀장 사이에서 조율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엄정욱 부회장은 신호제지 인수를 위해 120억원을 출자, 40억원을 출자한 안심우유측과 신호제지와 거래관계에 있는 32개사로 구성된 출자규모 176억원의 구조조정조합 등을 포함 총 680억원의 자본금으로 아람FSI(주)를 설립하고 제일은행의 추천을 받은 이충식씨가 대표이사로 앉으면서 신호제지를 인수하게 된다. 이 때 이충식씨는 잘못 됐을 경우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로 엄 부회장에게 차용증을 써 주게 된다. 그런데 이 차용증이 엄부회장에게 전혀 생각지 못했던 화근으로 다가온 것. 엄정욱 부회장측은 아람FSI(주)의 이충식 대표가 신한은행측과 공모, 컨소시엄 회원들의 의견을 묵살한다고 판단하여 이 대표의 사임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엄 부회장에게 써준 차용증을 증거로 엄 부회장측의 120억원이 지분참여를 위한 투자 개념이 아니라 자신이 신호제지를 인수하기 위해 엄 부회장으로부터 빌린 것이라고 주장하며 신호제지와 국일제지의 합병을 계속 추진하게 된다. 이에 엄 부회장은 이 대표를 대상으로 법정 소송을 진행중에 있다. 이에 따라 신한은행과 아람FSI(주)는 48% 가량의 주식을 확보하여 신호제지 경영권 확보를 목전에 둔 상태. ▲신호제지 인수 2라운드 금융감독원의 등장 그러나 엄정욱 부회장은 한 발 물러서 있던 신안그룹 박순식 회장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게 됐고 신안그룹으로부터 백기사 역할을 확답은 후 페이퍼러스 측이 5.7%가량의 지분 확보에 성공하면서 신한은행과 신호제지의 M&A 싸움은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지분경쟁에서 신호제지측이 불리한 상황. 이에 신호제지 김종곤 사장과 경영진은 유상증자를 추진하게 된다. 만약 유상증자가 성공한다면 신한은행 측은 동일한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자금이 소요된다. 그러나 무리하게 자금을 끌어들이게 되면 당장 감독당국으로부터 감사 및 경고 등 제재가 따를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금융감독원에서 신호제지의 감시를 증자를 불허하면서 유상증자는 무산된다. ▲신호제지 인수 2라운드 국일제지의 등장 유상증자가 무산되면서 신호제지측과 신한은행측은 한동안 소강상태를 보이게 된다. 그리고 이 때 등장한 곳이 국일제지. 국일제지는 양 측의 진검승부한 한차례 끝난 틈을 타 신호제지 인수에 본격 뛰어들게 된다. 국일제지는 경남은행으로부터 235억원을 대출받아 신호제지의 지분 19%를 확보하며 중요 변수로 떠오르게 되고 신한은행측의 전략도 변화되기 시작했다. 신호제지의 경영권 분쟁을 계속 지켜보던 한 투자자는 “신한은행측은 신호제지의 경영권을 무리하게 뺏어올 경우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것을 고려하여 일단 국일제지가 신호제지를 인수하게 한 후 되찾는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투자자는 “신한은행과 아람FSI(주)가 돕는다면 국일제지의 신호제지 인수는 성공하겠으나 그 다음이 문제”라고 밝혔다. 그 이유는 국일제지가 신호제지를 품에 않을 만한 역량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더 결정적인 이유는 신호제지의 지분을 인수한 자금이 경남은행에게 대출받은 자금이라는 사실이다. 즉 경남은행에서 대출금을 회수할 경우 어쩔 수 없이 신호제지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신한은행측이 국일제지측에게 취득가액에 사채업자보다 더 높은 이익을 더한 가격에 되사겠다는 이면계약을 채결한 것도 마지막 신호제지를 포기할 수 밖에 없을 때를 대비한 포석이며 이 계약에서 신한은행은 국일제지의 신호측 주식을 후순위 담보로 잡았다는 설이 있다”고 말했다. 이 투자자는 국일제지가 신호제지를 인수한 뒤 한 회사로 만들어 자체 시너지를 발휘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국일제지가 2004년 중국 진출 실패로 얻은 손해와 경남은행의 대출금 회수까지 겹치면 최우식 사장은 국일제지든 신호제지든 둘 중 하나를 포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 라응찬 회장을 대리해 셋째아들 라원진 회장이 신호제지의 대주주로 입성한다는 것이다. ▲신한금융, "신호제지건은 Private Equity식 투자일 뿐“ 그러나 라응찬 회장의 지시를 받아 신한금융그룹의 신호제지 인수를 진두지휘한다고 지목받은 신한은행 기업구조조정팀의 김정익 팀장은 “신호제지건은 Private Equity식 투자의 한 형태일 뿐”이라며 음모설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Private Equity식 투자란 기업의 능력과 잠재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기업의 주식을 매입한 후 구조조정과 기업개선 등을 통해 가치를 극대화 한 다음 지분을 되팔아 시세차익을 내는 적극적인 투자기법이다. 김 팀장은 “신호제지의 기업가치가 극대화 된 후 보유지분을 처분해야 이익이 남을 수 있는데 국일제지와의 구조조정 때문에 기업 가치가 하락하고 있다. 이에 따라 더 이상의 손해를 방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경영에 개입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또 이충식 대표와 이준수 상무는 신한은행에 근무했던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개인적 친분이나 회사대 회사간 거래관계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아 여운을 남겼다. ▲신한은행 개입의혹에 대한 사실여부 가려야 그러나 신호제지의 경영권 분쟁에 대한 의혹의 핵심은 신한은행의 고의적 개입여부이다. 나머지 부분은 적대적 M&A과정에서 상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과정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약 이번 의혹이 적대적 M&A 과정 속에서 일어난 소문일 뿐이라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이것이 만약 사실로 드러날 경우 금융자본의 사욕에 의한 산업자본의 교란에 대한 최초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경제 시스템을 뒤흔드는 사건이 된다. 재벌그룹이 은행 등 금융시스템을 소유할 경우 예상되는 여러 문제점들과 같이 금융자본이 제조업 등 산업자본을 좌지우지 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부작용의 대표적일 사례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역할이 산업의 젖줄의 역할을 하는 것임을 감안하면 이를 무조건 금지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 일은 사실관계를 자세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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