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은 재계에 녹록치 않은 해였던 것으로 보인다. 돌이켜보면 지난 1년은 바람 잘 달(?)이 없을 정도로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터졌다. 그중에서도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 으뜸이었다. 남양유업 영업직원의 욕설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돼 촉발된 ‘갑의 횡포’ 논란, 뉴스타파의 공개로 숱한 의혹을 남긴 조세피난처 페이퍼컴퍼니,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국민이 분노하게 만든 원전비리 등이 5월 발생한 주요사건들이다. 이외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들이 큰 어려움을 겪는가하면, 재벌총수들이 줄줄이 법정에 섰다. 재계로서는 연말까지도 녹록치 않은 셈이다. 시사포커스에서는 2014년을 앞두고 올 한해 재계를 뒤흔든 주요사건 7가지가 무엇이었는지 되짚어봤다.

▲ 5월 남양유업 본사 앞에서 남양유업 대리점주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이광철 기자)

곪았던 ‘갑의 횡포’, 터졌다

올 한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키워드는 ‘갑(甲)의 횡포’다. 사회적 강자가 약자에게 횡포를 부린다는 의미로 이 논란을 점화시킨 기업은 남양유업이었다. 지난 5월 유튜브에는 남양유업 영업직원이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밀어내기를 하는 정황이 담긴 음성파일이 올라왔다. 이를 들은 소비자들은 분노하며 ‘남양유업 불매운동’을 전개했고 남양유업의 매출과 주가는 급락했다.

남양유업은 밀어내기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123억원을 부과받는가하면 검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받았다. 최근 김웅 대표는 검찰로부터 징역 1년6개월을 구형받았다. 아모레퍼시픽도 영업직원이 대리점주들에게 욕설 및 대리점 운영포기를 강요하는 내용이 담긴 음성파일을 공개돼 홍역을 앓았다. ‘제2 남양유업 사태’가 예고될 정도로 논란이 상당했다.

손영철 전 아모레퍼시픽 사장이 지난 10월 공정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전통주 형제기업인 배상면주가와 국순당도 ‘갑의 횡포’ 논란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배상면주가는 한 도매점주가 본사의 밀어내기 압박에 시달렸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어 충격을 줬다.

잇달아 논란이 일자 정치권에서도 ‘갑의 횡포’ 근절에 나섰다.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을, 민주당은 을지로위원회를 각각 발족했다. 민주당에서 ‘남양유업방지법(대리점거래 공정화법)’을 발의하는 등 ‘을(乙)’을 위한 논의는 탄력을 받았다. 하지만 남양유업방지법이 입법으로 이어지진 않은 상태다.

▲ 5월 뉴스타파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명단을 발표했다. ⓒ뉴시스

숱한 의혹 ‘조세피난처 페이퍼컴퍼니’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는 지난 5월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명단’을 발표했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은 245명으로 이중에는 대기업 총수, 사회지도층 인사 등이 대거 포함됐다.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는 것이 불법은 아니지만 조세피난처가 금융거래 익명성이 보장되는 곳이라는 점에서 탈세 및 비자금 조성 의혹이 제기됐다. 명단이 공개될 때마다 관련기업들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고 주가가 급락했던 것도 이 같은 부정적 시각과 무관치 않았다.

국민안전 나 몰라라? ‘원전비리’

5월에는 원자력발전소 부품비리도 발생했다. LS전선과 자회사인 JS전선 등 8개 업체가 위조성적서로 승인을 받은 부품을 원전에 납품하면서 고장이 잇따랐다. 원전비리로 부품 서류를 조작하거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검찰이 기소한 원전업계 관계자는 100여명에 달했다.

그 결과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1부(부장판사 김문관)는 지난 6일 JS전선 엄모 고문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하고 JS전선과 공모하고 성적서를 위조한 한전기술 김모 전 처장과 한국수력원자력 송모 부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는 등 17명에게 중형을 내렸다.

불량부품으로 인한 원전 가동중단 피해액만 약 10조원에 달하고 상당수 국민이 전력수급 불안을 겪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원전비리에 연루된 한국수력원자력은 이와 방만경영 행태가 맞물려 큰 질타를 받았고 내년 전방위적이면서 강도 높은 경영혁신을 추진키로 했다.

▲ KT 이석채 전 회장이 12월 19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 뉴시스)

MB맨들의 쓸쓸한 말로

올해는 MB맨들이 대거 자리에서 떠났다. 대표적으로는 ‘MB정부 금융권 4대천왕(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이 거론된다. 지난해 3월 물러난 김승유 전 회장을 필두로, 강만수 전 회장(3월), 이팔성 전 회장(4월), 어윤대 전 회장(7월·연임포기)이 차례로 자리에서 떠났다.

사퇴한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이들은 최근 금융당국의 조사대상에 나란히 올라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김승유 전 회장은 최근 하나은행 종합검사에서 재직 시 과도한 미술품을 구매한 것과 퇴임 후 지나친 고문료를 받은 것이 논란이 됐고, 강만수 전 회장은 산업은행이 대주주인 대우건설의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 ‘현 정권의 강 전 회장 정조준’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팔성 전 회장은 우리은행의 파이시티 사업 신탁상품 불완전 판매의혹과 관련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가 떠돌고 있고, 어윤대 전 회장은 최근 국민은행이 도쿄지점 비자금 조성의혹으로 금융당국의 조사를 받으면서 사법처리 가능성에 대한 우려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석채 전 KT 회장과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도 빼놓을 수 없다. 두 사람은 박근혜 정부 출범이후 사정당국 수사, 경제사절단 제외 등 여럿 정황으로 ‘사퇴설’에 시달려왔다.

결국 이석채 전 회장은 KT가 세 차례 압수수색을 받고 정치권에서 무궁화위성 불법매각 의혹이 제기되는 등 연일 논란에 휩싸이다 지난달 사퇴했다. 이달 들어서는 자신이 받고 있는 횡령·배임 의혹과 관련 두 차례 검찰 소환조사를 받은 뒤 3차 소환조사를 앞두고 돌연 입원한 상태다. 정준양 회장도 지난달 사의표명을 했으며 내년 주주총회 즈음 회장직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 동양채권자 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이 10월 9일 금융감독원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사진 뉴시스)

피해자 5만명 양산 ‘동양사태’

10월은 일명 ‘동양사태’로 전국이 떠들썩했다. 동양그룹은 그간 재무부실을 해소하기 위해 ‘돌려막기’식으로 기업어음(CP) 및 회사채를 발행해왔다. 9월 금융감독원이 증권사의 계열사 부실채권 판매를 금지하면서 자금조달 길이 막히게 됐고 동양그룹은 9월부터 차례로 오는 CP와 회사채를 갚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결국 동양그룹 계열사들은 잇달아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CP 개인투자자들은 들고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사기성 CP 발행 의혹이 제기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피해 개인투자자가 4만9900여명, 피해규모만 2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들은 지난 11월 첫 집단소송을 냈다.

최근에는 ‘동양사태 진실규명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하고 현재현 회장 등 동양사태 관련자들을 26일 검찰에 고소할 예정임을 밝히기도 했다. 한편 현재현 회장은 지난 20일 검찰에 세 번째로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현 회장은 본인이 받고 있는 의혹들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동성 위기’ 기업들의 결단

6월 유동성 위기를 겪던 STX그룹이 사실상 공중분해됐다. 이후 자금난에 시달려온 기업들이 고강도 구조조정에 나서 눈길을 끈다. 동부그룹은 지난달 동부하이텍·동부메탈 등 주요 계열사 및 자산매각과 김준기 회장의 사재출연으로 3조원을 마련한다는 내용의 자구계획안을 내놨다. 이로써 재무구조개선약정을 2015년까지 졸업한다는 복안이다.

한진그룹과 현대그룹도 해운업 불황에 따른 해운계열사(한진해운·현대상선)의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최근 고강도 자구계획을 내놨다. 한진해운은 계열사인 대한항공으로부터 유상증자와 차입 방식으로 6500억원을 지원받고, 벌크 전용선 사업부문을 매각하는 등 방법으로 2조원을 확보한다는 자구계획을 발표했다.

이어 현대그룹은 현대증권·현대자산운용·현대저축은행 등 금융계열사를 매각하고, 내부 구조조정과 반얀트리호텔 매각을 추진하는 등 3조3400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첫 공판을 받기 위해 12월 17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 뉴시스)

재벌총수들, 줄줄이 법정 行

재벌총수들이 법정에 줄줄이 선 모습도 놀라움을 안겨줬다. ‘재벌이면 집행유예’라는 공식이 성립되지 않았던 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회삿돈 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2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은 배임 등 혐의로 2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됐다. CJ그룹 이재현 회장과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도 비슷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수술을 이유로 구속집행 정지된 상태다. 조세포탈과 횡령·배임 등 혐의를 받고 있는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은 두 차례 소환조사를 받은 뒤 최근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검찰은 이와 관련 기각사유를 검토하면서 영장 재청구를 위해 보완할 사안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재벌들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으려는 조치들도 법률로 만들어졌다. 대표적으로 일감몰아주기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현재 하위법령 개정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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