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대출·거액 횡령 치명타…경영진까지 불똥

최근 KB국민은행에서 횡령 관련 사건이 잇따라 터지고 있어 금융계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렇게 KB국민은행 내부통제 문제가 부실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금융감독원은 국민은행에 대한 특별검사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도쿄지점 부당대출, ‘국제 망신’ 상황 치달아
직원 간 공모해 90억 횡령…“규모 더 클 것”
이건호 대국민 사과했지만…수뇌부 ‘책임론’
금감원, 국민은행 계기로 시중은행 긴급 점검


지금 KB국민은행은 돌이키기 힘든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명실상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은행으로 오랜 기간 ‘리딩뱅크’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던 KB국민은행은 이제 과연 어디부터 손을 대야할 지 난감할 정도로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 상황에 놓여있는 것으로 드러나 금융계 전체에 충격을 주고 있다.

▲ KB국민은행은 잇단 악재가 겹치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시스

도쿄지점 부당대출 ‘파문’

최근 국민은행은 잇따른 악재로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 11월 중반에 터진 도쿄지점 부당대출 사건을 기점으로 △카자흐스탄 BCC 투자부실 △보증부대출 이자 부당수취 △베이징지점 인사 파문 △국민은행 본점 직원의 90억 원 상당 국민주택채권 횡령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비위사실이 터져 나왔다.

‘KB국민은행 사태’의 발단은 지난 11월 10일부터 비롯됐다. 국민은행 도쿄지점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이 부당대출이라는 수법을 통해 거액의 비자금을 만든 정황이 포착되어 금융당국이 조사에 나서게 된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국민은행 도쿄지점에 대한 검사에 착수, 이 지점에 근무하는 일부 직원이 부당대출을 해주며 거액의 수수료를 챙긴 사실을 확인했다. 이 가운데 20억 원이 넘는 금액이 국내로 몰래 들어온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으로는 국민은행 도쿄지점의 부당 대출 규모는 무려 1,700억 원 대나 된다고 한다. 현재 이 금액 대부분에 담보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지만 국민은행 입장에서는 담보가치와 실제 대출액 차이 액수만큼 충당금을 쌓을 수밖에 없고 그만큼 순익이 크게 감소한다는 점이 문제다.

이에 대해 한 경제평론가는 “현재 KB국민은행 도쿄지점의 부당대출로만 400억 원이 넘는 충당금이 쌓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이로 인해 자칫 우리나라 ‘1위 은행’의 위치까지 놓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보다 심각한 점은 이와 같은 조사에 앞서 일본 금융청이 최근 금융감독원을 방문, 국민은행 도쿄지점의 자금세탁 조사 경과를 설명하면서 심각성을 경고해 ‘국제 망신’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5월 일본 금융청은 KB국민은행 도쿄지점이 한 사람에게 부여된 기본 한도를 초과한 액수의 금액을 대출해 주려는 목적으로 다른 사람 명의로 된 유령법인을 내세우는 방식을 통해 무려 수천억 원대의 부당 대출을 한 혐의를 포착, 전격적으로 강도 높은 조사를 실시했다.

일본 금융청이 조사에 나서기 전에 국민은행 측은 이미 두 차례나 조사를 실시했지만 이렇다 할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일본 금융청이 나선 다음에야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로 인해 KB국민은행 내부 통제 면에서 심각한 하자가 있음을 스스로 시인한 꼴이 되고 말았다.

특히 이번 부당대출 사건은 단순히 도쿄지점 일부 직원의 소행이 아닌 전·현직 국민은행 경영진까지 연루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자칫 사건이 더욱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대규모 횡령사고까지

KB국민은행의 악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민은행 본점에 근무하는 일부 직원들이 서로 공모해 무려 수십억 원 규모의 금액을 횡령해온 대형사고까지 터졌다.

지난 11월 23일 KB국민은행 측은 “신탁기금본부에 소속된 국민주택채권 담당 직원들이 자신들이 관리하던 국민주택채권을 위조한 다음 친분이 있는 영업점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채권을 시장에 내다 판 뒤 현금으로 상환하는 수법으로 횡령을 저지른 사실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 이건호 국민은행장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고객 피해가 있다면 배상 하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이들 직원은 이 같은 수법을 통해 약 90억 원이나 되는 금액을 횡령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한 직원의 제보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지난 11월 19일 국민은행은 본부 차원의 조사를 실시해 두 명의 직원에 대해 대기발령 조치를 내리고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소했다.

이와 동시에 관련자들의 예금 인출 및 부동산 등 기타재산에 대한 가압류를 전격적으로 실시해 현재까지 약 50억 원을 회수했다. 하지만 금융권 일각에서는 “국민은행이 공식적으로 주택기금 횡령액을 90억 원이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 금융계 관계자는 “지금 밝혀진 90억 원이라는 횡령액은 사건이 접수된 지 하루 만에 해당 직원들의 구두 진술을 통해서만 드러난 것”이라며 “본점 직원과 영업점 직원이 서로 치밀하게 공모한 사건임을 염두에 둔다면 횡령 금액 규모는 100억 원을 훨씬 넘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횡령을 대범하게 저지른 국민주택채권 담당직원들은 부부 사이로, 사내 연애를 통해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 2009년 1월부터 국민주택채권 업무를 담당해 왔으며 특히 지난 몇 년 동안 집중적으로 치밀한 수법과 직원 간 은밀한 협력을 통해 횡령을 저질러온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번 거액의 횡령사고에 연루된 직원들이 처음 알려진 인원보다 훨씬 많은 숫자인 열 명이 넘는 규모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감찰반 직원까지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횡령사고에 대한 조사가 계속 진전되면 단순히 일부 비도덕적인 직원들이 저지른 개인 차원의 비리라는 범위를 뛰어 넘어 회사 조직 차원에서 벌어진 범죄로 걷잡을 수 없이 비화될 가능성도 상당히 높아 보인다.

이와 관련해 벌써부터 KB국민은행 내부에서는 “본부 부장급 등 윗선 인사까지 연관되어 있다”는 루머성 소문도 퍼져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금융가 전체가 이 사건의 전모가 과연 어디까지 드러날 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환골탈태’ 가능할까

이렇게 국민은행 부실대출·횡령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자 금융당국은 KB국민은행이 새로운 모습으로 업무에 임할 것을 강력하게 주문하고 나섰다. 최근 금융감독원 고위 임원은 이건호 국민은행장을 불러들여 ‘내부 기강 확립에 사활을 걸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이건호 국민은행장은 “최근 일련의 사태에 대해 무척 개탄스럽게 생각한다”며 “머지않아 혁신적인 내부 개혁 방안을 내놓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이렇게 최근 KB국민은행이 금융기관으로서는 치명적인 사건사고가 연달아 터지는 배경에 대해 한 경제평론가는 “KB국민은행 내부 인력은 국민은행 출신(이른바 ‘1출신’)과 지난 2001년 합병한 주택은행 출신(‘2출신’)으로 나누어져 있다 보니 서로 간에 상당한 대립이 있는 것 같다”며 “내부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에는 이 같은 요인도 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지난 11월 27일 이건호 국민은행장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고객 피해가 있다면 배상 하겠다”고 밝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또한 다음 날인 11월 28일 오전 KB국민은행은 서울 여의도 본점 대강당에서 긴급 임시조회를 개최했다.

이날 임시조회에는 국민은행 경영진을 포함한 임직원 100여명이 대표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들은 고객신뢰 및 임직원 윤리 회복을 위한 실천을 결의했다. 나머지 국민은행 임직원은 은행 내 위성방송을 통해 결의에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조회에서 이건호 은행장은 “실천 결의가 잇따른 비리와 사고의 수습을 위한 표면적인 선언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국민의 은행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전 임직원이 솔선수범해 행동으로 실천 하겠다”며 “임직원 모두 윤리적 책무와 주인의식을 가지고 맡은 바 본분을 다할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잇단 비리 사건에 대해 다급하게 대국민 사과는 했지만 사태가 쉽사리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회의적 시각도 팽배해 있다.

한 경제평론가는 “사태 수습과 국면 전환 측면에서도 결국 KB금융 전·현직 경영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상황이 불가피하게 오지 않겠느냐”며 “어윤대 전 회장이나 민병덕 전 행장은 물론 올해 취임한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도 이 같은 책임론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렇지만 KB금융 내부에서는 “최근 드러난 비리사태는 일차적으로 과거 국민은행의 내부통제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수사당국과 감독당국의 조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임영록 회장까지 책임 범위를 확대 하는 건 무리”라고 보는 분위기로 전해지고 있다.

▲ 금융감독원은 국민주택채권을 포함한 모든 시중은행의 내부통제 운용 실태를 긴급 점검하기로 했다. ⓒ뉴시스

한편 국민은행 사태를 계기로 금융당국이 국민주택채권을 포함한 모든 시중은행의 내부통제 운용 실태를 긴급 점검하기로 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 11월 28일 금융감독원은 국민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하나은행 등 시중은행에 대해 내부통제 운영 실태를 조사하기로 했다.

금융감독원은 국민은행에서 비롯된 도쿄지점 비자금 조성 의혹·국민주택채권 횡령·보증부대출 부당이자 수취 허위 보고 등의 비리 사건은 다른 시중은행에서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문제라고 여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실시하는 조사는 KB국민은행에 대한 특별 검사와는 별개로 모든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금융감독원은 금융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내부 운용 및 인력 현황을 중점적으로 점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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