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으로 점철된 2013년...마지막까지 ‘파행’ 국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대통령 사퇴 촉구’ 성명 및 시국미사에서 불거져 나온 ‘연평도 발언’이 엄청난 파장을 던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새누리당이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단독으로 강행처리하며 올 연말 정국은 또 다시 얼어붙고 있다. 단순히 여야 간 정쟁을 넘어서는 중대한 상황으로 비화되고 있어 민생에 전념해야 하는 청와대의 고민도 더 없이 깊어가고 있다.

▲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 파문이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특히, 박창신 원로신부의 ‘연평도 포격도발’ 발언에 보수진영에서는 종북 비난을 퍼붓고 나서 또 다른 이념갈등에 불이 붙게 됐다. ⓒ뉴시스

지난 28일 새누리당이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단독으로 강행처리하면서 정치권에 심각한 후폭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민주당은 단독 처리 강행에 항의해 정기국회 의사일정을 전면 거부하기로 결정을 내리기로 해 올 연말 정국에는 어두운 먹구름이 짙어져가고만 있다.

결국 소통이 실패한 한 해 아니냐?
“결국 올해 정국은 여야 간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교착 상태에서 마무리 될 공산이 커졌다. 청와대는 예의 침묵으로 일관한 채 소중한 시간만 흘러가게 생겼다”는 우려가 정계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상당수 정계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일 년이 다 되어가지만, 정국 상황은 어쩌면 이명박 정부 시절보다 더 답보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일 여지가 많다”며 우려를 감추지 않는다.

한 시사평론가는 “올해 정치 풍향계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혼란’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정부 출범 초기라면 당연히 기대해야 할 신속한 국정 운영이 처음부터 어긋났다”는 비판이다.

올해 초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등으로 비롯된 인사파동 및 추문으로 불미스럽게 시작한 정계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논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논란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 ▲채동욱 검찰총장 파문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 음모 혐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대통령 사퇴 촉구 및 시국 미사 ▲박창신 신부의 북한 연평도 포격 옹호성 발언 파문 등으로 한시도 잠잠할 틈이 없었다.

한 시사평론가는 “이러한 와중에 민생을 위한 정치, 경제민주화나 경제 활성화 같은 대책 마련은 현재까지도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라며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청와대의 태도”라고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 전체가 ‘소통’ 면에서 대단히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비판은 정계는 물론 국민 사이에서도 일정 부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 같은 불만이 내년으로 넘어가 계속 이어지면 나라 전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 도화선으로 변할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는 우려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 정치평론가는 “일각에서는 MB정부 때보다 더 꽉 막힌 불통의 자세를 보인다고 보고 있다”며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청와대가 유연하고 열린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평론가는 “지금처럼 각종 이슈와 야당 및 시민사회의 비판과 소통 요구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정부를 직접 공격하는 듯한 발언에 대해서만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라며 민첩하게 반응하는 자세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할 때 내세웠던 ‘국민 대통합’의 기치와도 정면으로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황찬현 감사원장 임명동의안 가결로 다시 ‘파장’
다른 시사평론가는 “물론 청와대와 정부 입장에서는 ‘국민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려 해도 야당이나 재야 시민단체가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다’라고 불만을 품을 수도 있다”며 “또한 국정원의 대통령 선거 개입 사건에 대해 조금이라도 수긍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 바로 ‘정통성 시비’에 휘말릴까 몸을 사리는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평론가는 “그러나 청와대가 침묵만을 지킨 채 ‘시간이 흐르면 알아서 진정되고 해결되겠지’라는 자세만 유지하는 태도는 진정한 민주주의 행보와 어긋나 보인다. 이런 상황이 고질화 되면 결국 국민 지지도 하락과 최악의 경우 조기 레임덕이라는 치명타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고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이렇게 완강한 청와대의 태도와 아울러 여야 국회 또한 한 치의 물러남 없이 팽팽한 대결 국면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지난 28일 국회는 새누리당과 일부 무소속 의원만 참석한 가운데 본회의를 열어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전격적으로 가결하고 말았다.

그동안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사퇴한 다음에야 인준 표결에 참여하겠다”는 태도를 견지했던 민주당은 표결에 불참한 상태에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요구했다, 그렇지만 강창희 국회의장은 “그런 전례는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결국 임명동의안이 가결되고 말았다.

▲ 야당 의원들의 거센 반발 속에서 강창희 국회의장이 황찬현 감사원장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표결에 상정해 가결시켰다. 이로 인해 정국은 더욱 꽁꽁 얼어붙고 있다.사진/유용준 기자

이처럼 임명동의안이 가결되자 민주당은 ‘천재지변과 국가 비상사태로 제한한 직권상정 요건 위반’ ‘국회법에 규정된 무제한 토론신청 수용 거부’를 이유로 들어 국회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위법 표결은 무효”라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측은 “인사 청문 특위에서 청문심사 경과보고서가 채택되어 동의안이 본회의에 부의됐기 때문에 이는 직권상정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의안을 상정한 것”이라고 강하게 반박하고 나섰다.

지난 29일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연 자리에서 “의회주의 정신을 부정하고 야당을 국정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전포고”라며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김한길 대표는 “이렇게 임명동의안을 날치기 처리한 것은 대한민국 의정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며 “국회의장과 새누리당이 국회를 청와대의 거수기로 전락시켰다”고 격한 표현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울러 김 대표는 “오늘부터 민주당은 국회 의사일정을 중단한다”고 선언하며 “이는 오만과 독선에 빠져 안하무인한 작태를 벌이는 집권세력의 행태를 막을 단 하나의 길”이라고 격앙된 태도를 보였다.

반면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같은 날 개최된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 측의 국회 의사일정 중단 선언에 대해 “무책임하게 민생을 내팽개치는 것 아니냐”고 날카롭게 비판하고 나섰다. 이처럼 여야가 정면충돌 양상을 보임에 따라 이미 올해 중반 무렵부터 장기화 조짐을 보였던 여야 대치 구도는 더 이상 이보다 나빠질 수 없는 극한 대결의 양상으로 멈춤 없이 흘러가고 있다.

대통령이 또 나서기에는 무리?
정계 관계자 대다수는 “이런 상황 때문에 국회는 연말연시까지 공전을 거듭할 가능성이 거의 확실해졌다”며 “과연 어디서부터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답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이에 따라 국회 예산 심의 등을 앞두고 있던 국회 일정은 다시 한 번 마비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전체회의를 열어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진행하지만 ‘반쪽 회의’가 될 가능성도 커졌다.

이렇게 파행으로 치달은 정국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상황이 이 정도 되면 결국 ‘대통령이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게 마련이지만 이제는 그런 요구가 나올 확률이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이 평론가는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내용을 보면 결국 여야 간 대화와 타협을 통한 국면 전환은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며 “오히려 현재 종북 논란 등 ‘공안 정국’으로 방향을 돌리려는 모습이 두드러져 내년 초는 되어야 갈등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듯싶다”고 전망했다.

또 다른 시사평론가는 “결국 대통령 차원에서 현 교착 상황이 타개되려면 여론 악화라든지 지지도 하락 등의 요인이 결정적으로 작용해야 한다”며 “또한 박근혜 대통령이 내심 화해의 몸짓을 보일 의도가 있더라도 현 상황에서는 아직 나설 때가 아니라고 여기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정계 일각에서는 “여야 간의 대치 상황은 일단 올해까지는 지속되겠지만, 내년이 되면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난 10월 재·보궐 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한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의 행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한 정계 관계자는 “최근 서청원 의원은 민주당 문재인·이해찬 의원 등을 잇달아 만나 식사를 같이 했다고 한다”며 “여야를 초월해 두루 인맥이 넓고 유연한 태도를 지닌 서 의원이 앞으로 경색된 정국이 해빙되는 데 상당 부분 역할을 맡지 않겠느냐”고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또 다른 시사평론가는 “현재 새누리당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친박계 의원들이 정부 출범 첫해라 그런지 청와대 의중에 지나치게 좌지우지 되는 경향이 있다. 민주당 역시 ‘강경파’의 목소리에 크게 좌우되고 있다는 면에서는 대동소이하다”고 설명했다.

이 평론가는 “내년이 되면 ‘안철수 신당’의 본격 출범 및 6월 지방선거라는 중대 사안에 직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현재 여야의 일대일 정면 대치 국면은 상당 부분 누그러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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