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부터 심지어는 내 집 안방에까지도

하루에 얼마나 많은 성범죄가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는 누구도 정확한 수치를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추정하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수치심으로 인해 신고접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성범죄에 시달리고 있는 여성의 수는 예상보다 상당할 것으로 추측하지 않을 수 없다. ◆육체를 죽이는 살인, 정신을 죽이는 강간 각종 일간 신문이나, 뉴스를 연일 장식하고 있는 성폭력 사범들, 그들에 대한 보도를 접하고 있는 국민들은 이제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어느 순간부터 ‘의붓아버지’라는 단어의 어감은 길러준 은혜를 생각하기 보다는 파렴치한 성폭력 범죄자의 이미지로 더욱 굳어버리게 되었음은 물론이고, 옆집 아저씨의 이미지 또한 정감 있는 이웃사촌보다는 항상 경계하고 조심해야만 할 존재로 인식되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남자라고 해서 모두가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 이성적 판단을 일으키는 범죄는 사전예방도 어려울 뿐 아니라, 사건 현장 또한 대처하기 난해한 경우여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 4일 경남 함안경찰서에서는 이웃집 정신지체 장애 여성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74세 박 모씨를 긴급 체포하는 일도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해 8월 말부터 이웃집에 살고 있는 정신지체 장애 1급인 A(20.여)씨를 인근 빈집과 마을회관 등으로 유인해 지금까지 20여 차례에 걸쳐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해 왔다고 밝혔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수치스런 행동을 일삼아 온 박 씨는 결국 인륜을 무시한 대가로 법에 의한 심판은 물론, 사회적 비난까지 한 몸에 떠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이 법의 처벌만으로, 사회적 비난만으로 끝이 난다면 좋겠지만, 피해를 입은 여성의 입장은 그렇지만은 못하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은 피해 여성들은 무엇으로 보상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한 순간의 육체적 쾌락을 위해 다른 사람의 생 전체를 피폐하게 만드는 범죄, 성폭력 범죄는 또 하나의 살인죄와 다름없는 중죄인 것이다. ◆아버지도 못 믿어? 정신적 피해를 생각한다면, 이 보다 더 한 피해도 있기 힘들 것이다. 어느 누구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있었다. 지난 9월 22일 인천 남동경찰서에는 친아버지에 의해 3년여 간에 걸쳐 성폭행을 당해 온 여고생의 사건이 접수 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의붓아버지도 아니며, 옆집 아저씨도 아닌 자신의 친아버지에 의한 성폭력 범죄라니, 이 것은 단적으로 성범죄가 결코 집 밖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러주고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에 의해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해 온 A양(16세)은 자신의 아버지를 아버지로 보아야 할지, 강간범으로 보아야 할지 가치혼란 속에서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A양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공황을 그 누가 달래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인가. 결국 일어날 수도, 일어나서도 안 될 일이 가져온 결과다. A씨의 가족은 더 이상 가족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힘들게 되어버린 것이다. “아버지만 빼고 세상 남자들은 모두 다 늑대다.”라고 말하던 우리의 ‘아버지’들, 아버지마저 늑대로 변해버린 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한다는 말인가. 물론, 극히 소수의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는 이들을 바탕으로 모든 ‘아버지’들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극히 소수의 이들이 하루라도 빨리 정신을 차리지 못 한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말 못 할 성폭력 범죄들은 점점 더 늘어만 갈 것이 자명한 현실이다. ◆목적은 ‘돈’만이 아니다 부녀자 등을 상대로 성폭행을 하는 경우, 이들은 보통 20대 초의 젊은 범죄자들이 많다. 보통의 경우 유흥비 마련이나, 카드 빚의 청산을 위해 부녀자만 있는 한적한 주택가를 표적으로 해서 범죄를 저지르는데, 범행 중 충동적인 욕구에 의해서나 경찰에 신고할 것을 염려하여 성폭행을 하는 것으로 분석되어진다. 지난 달 11일 강동구 천호동에서 발생한 부녀자 성폭행 사건도 마찬가지다. 강동경찰서에 구속된 이(28.남)씨는 새벽 3시께 김 모(27.여)씨 집에 침입해 김씨를 성폭행하고, 현금 10만 원과 신용카드를 빼앗은 후 인근 편의점에서 20만 원을 인출해 달아나기도 했다. 또한 그보다 이틀 앞선 9일에는 역시 비슷한 시각에 강동구 암사동 박 모(42.여)씨 집에 침입해 박씨를 성폭행 하려다 실패하고 현금 50여만 원과 신용카드를 훔쳐 인근 편의점에서 60만 원을 인출해 달아나는 등 부녀자만 사는 집을 골라 새벽에 침입해 금품을 훔치고 성폭행을 저질러 온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러한 사건의 유형을 보았을 때, 부녀자 성폭행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던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돈을 훔치기 위한 과정에서 혹은 훔치는 것과 동시에 욕구를 충족하고자 하는 범죄 심리가 상호 작용한 이유인 것이다. 문단속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당위성을 일깨워주는 범죄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고민해보면 방법은 있다 다방, 출장 안마, 인터넷 채팅 등은 이미 성범죄의 온상이 된지 오래다. 다방이나 출장 안마 등이 암암리에 불법적인 성매매 거래를 해 오고 있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직종 계통에서 잦은 성폭력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이미 남성들은 ‘그래도 괜찮다’라는 인식이 박혀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넷 채팅 등을 통해 일어나는 성폭력은 충분히 예방도 가능하고 적절한 조치도 가능하다. 철저한 신분 공개 및 실명을 사용하도록 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또한 10대의 청소년과 30대나 40대 중․장년층의 남성이 만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이 채팅을 통해 만나야만 하는 정당한 목적과 이유는 아무리 구색을 갖추려 하더라도 통속적인 사유를 갖추기는 힘들다. 결국 예견 되어 있는 범죄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사후약방문’식의 범죄 뒷수습은 하나마나인 것이다. ◆남성들이여, 화이트 타이맨이 되자! 10일 오후 3시부터 9시까지 대학로에서는 ‘대학가의 성문화 개선 화이트 타이 페스티벌’이 열렸다. 여성가족부가 성매매방지법 시행 1주년을 맞아 실시하는 화이트 타이 캠페인은 “앞선 남자의 근시한 생각”이라는 슬로건을 내 걸고 성매매나 성폭력에 침묵하지 않는 남성을 “화이트 타이맨”으로 상징화해 여성을 존중하는 남성의 신사도 정신에 호소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이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9월 19일부터 29일까지 정부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서울시내 주요 번화가와 유흥가, 지하철 등지에서 티저 방식의 캠페인을 선보여 관심을 끌기도 하였다. 11월 10일 이번 행사에서는 참가자들이 화이트 타이를 매고 늑대 탈을 쓴 도우미들과 함께 대학로를 돌며 행사를 홍보하고, 시민들의 동참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번 페스티벌은 탈 성매매 여성들의 자활기금 조성을 위한 바자회를 시작으로 탈 성매매 여성의 증언을 담은 비디오 상영, 대학생들이 직접 참가하는 연극과 노래, 콘테스트 등이 펼쳐졌다. 여성을 대하는 앞선 남자들의 생각! 모두가 동등하고, 인권이 존중되어지는 사회가 이룩되길 꿈꾸는 목소리들의 어우러짐으로 의식의 확산을 꾀하고 있다. 수요가 없다면 공급이 끊기는 법칙은 되물어봐야 구차스러운 이론이다. 성 구매를 원하는 남성들이 사라진다면, 성매매 문제가 사라질 것은 물론, 성폭력 문제도 수그러들게 될 것이다. 남성들이 건전한 의식을 갖는 것이 우선이다. 정부 및 관련 부처들은 성매매 업소에 대한 단속보다, 성 구매자들에 대한 단속보다, 남성들에게 올바른 성의식의 확립을 위한 교육 등을 우선으로 해야 할 것이다. 근본은 치료하지 못 하고, 가지치기만을 하는 모습은 결코 이 사회를 위해서도, 여성들을 위해서도 그 어느 쪽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 한다는 것을 반드시 상기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