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 너는 /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이제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연탄재이지만 70~80년대 골목길에서는 흔한 풍경이었다. 시인은 자신을 태워 우리를 따뜻하게 했던 연탄재를 보며 이러한 시를 지었다. 이 시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었던 것은 자아성찰이라는 주제 때문이다.

안 시인은 지난해 대선 당시 트위터에 안중근 의사 유묵은 2011년까지 박근혜 소장이라는 확증이 있다며 박근혜 후보에게 사실을 밝혀달라는 트윗을 올렸다. 이후 안 시인은 허위사실 공표와 후보자 비방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재판 과정에서 변호인 측은 안중근의사기념관이 2001년 간행한 <대한국인 안중근> 등 여러 건의 문헌과 도록에 안중근 유묵의 소장자가 박근혜로 기록돼 있다는 사실을 증거와 함께 제시했다.

이에 지난달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들은 안 시인에 대해 전원일치 무죄 평결을 내렸다. 하지만 재판부는 선고일을 연기했다.

7일 다시 열린 선고기일에 재판부는 일부 유죄를 선고했다. 허위사실 공표 혐의는 무죄이지만 후보자 비방 혐의는 유죄라고 판결하며 벌금 100만원 형에 대한 선고를 유예했다.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를 높이기 위해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 평결과 재판부 판결의 일치율이 올해 93.4%에 이르렀다. 이에 대법원은 배심원 평결의 기속력을 높이는 내용의 참여재판법 개정의견을 내놓았고 법무부는 이를 실행하기 위한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상태다.

일부 언론들은 안 시인의 국민참여재판 판결을 두고 공정성을 잃을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정치적 사건의 경우 참여재판 대상에서 배제하자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인 사건이야 말로 시민들의 감시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사법부 역사에는 권력에 편향된 잘못된 판결이 있어 왔었다.

최근 재판부는 긴급조치 9호와 관련된 재심사건 신청에서 잇따라 무죄를 선고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36년 세월이 지난 뒤였다.

지난달 25일 재판부는 유신시대 긴급조치와 관련된 재심에서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재판부는 경계하고, 두려워하고, 애써서 피고인 같은 처지를 만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공정해야 할 재판이 정치논리에 의해 오욕의 길을 걸었다는 재판부의 자기성찰은 국민들을 감동시켰다.

안 시인은 재판이 끝난 뒤 명백한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이라도 박근혜에게 질문하면 안 된다. 질문하면 비방죄가 성립된다, 그래서 검찰은 박근혜를 조사하지 않고 질문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었구나!”라고 꼬집었다.

재판부의 이번 판결을 두고 권력의 눈치보기라는 비난여론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공정하지 않은 정치적 편향이라는 것이다.

재판부의 이번 결정이 법과 양심에 기반을 둔 공정한 결론이었는지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지난 역사에서 보여줬던 권력에 편향된 재판부의 판결이 다시는 재연되지 않길 바란다. 안 시인의 말처럼 법이라는 거미줄에 걸린 한 마리 나비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자기성찰의 계기가 되길 간절히 염원한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