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러지던 野 결속력 재복원 조짐…지방선거 판 흔든다!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인 사이 속전속결 처리된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 심판청구 파문이 정국을 온통 뒤흔들고 있다. 통합진보당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정권을 상대로 결사항쟁 의지를 다지며 전에 없을 만큼 강력한 투쟁에 나서고 있으며, 이를 지켜보는 여야 정치권도 파장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진보당은 지난 8월 이석기 내란음모 혐의 사건이 터졌을 때는 다소 수세적 자세였지만 이번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요 인사들은 삭발투쟁까지 단행하고 정권과 전면전을 벌이겠다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내년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논란은 정국의 메가톤급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 통합진보당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 계단에서 '민주주의 수호 통합진보당 사수 결의 대회'를 열고 대변인을 맡고 있는 김재연 의원 등 소속 의원들의 삭발식을 열었다. 사진 / 원명국 기자

지난 5일, 정부는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심판 청구안을 의결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인 상황에서 헌정사상 최초의 정당 해산심판 청구안이 일사천리 처리된 것이다. 이 때문에 통합진보당을 비롯한 야권에서는 사실상 박 대통령이 순방 길에 오르기 전 모든 지시를 내려놓고 떠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보내고 있다.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문제에 박 대통령이 직접 관여하지 않으려 했다는 의혹이다.

이와 관련,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6일 오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순방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미리 준비됐던 것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 심판 청구안이 국무회의에서 긴급안건으로 처리됐다. 불행한 일이고, 유감스런 일이다”고 의혹의 시선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이날 민주당 문재인 의원에 대한 검찰 참고인 조사 문제까지 맞물리면서 이 같은 야권의 비딱한 시선은 더욱 커졌다. 게다가 법무부는 해산심판 청구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자, 해외 순방 중인 박 대통령에게 전자결재를 통해 재가를 받기까지 했다.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를 그야말로 속전속결 처리했던 것이다.

박 대통령으로부터 전재결재를 통해 재가를 받은 법무부는 곧바로 헌법재판소에 ‘해산심판청구 및 정당활동정지가처분신청’을 제출했다. 이에 따라, 헌재는 180일 이내로 판단을 내리게 됐다.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정당해산이 결정되며, 해산 효력은 헌재 결정이 내려진 직후 발생하게 된다.

문제는 정당에 대한 해산심판 청구가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 헌재도 쉽게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다양한 해외 사례들까지 검토해봐야 할 상황으로,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헌재의 판단 결과가 180일 이내에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고 있다. 6개월이면 지방선거가 코앞인 시기이다.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내년 지방선거는 통진당 해산 문제를 중심으로 한 이슈가 판을 점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셈이다.

통진당 해산시키려는 이유는 무엇?
그렇다면, 정부는 어떤 근거로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키려 나선 것일까?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혐의가 직접적 계기가 됐지만, 야권에서는 그렇다고 소수 인원의 문제로 정당 자체를 해산시킨다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이와 관련해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5일 발표한 ‘통진당 해산 심판 청구건 발표문’을 통해 “법무부는 2012년 5월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 청원이 접수된 이후 지속적으로 관련 자료를 수집 분석해왔다”며 “금년 8월 RO사건이 발생한 후 지난 9월 6일 법무부에 위헌정당단체 관련 대책 T/F를 구성하여 해외사례를 수집하고, 국내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왔다”고 밝혔다.

황 장관은 그러면서 “통합진보당의 강령 및 그 활동을 집중적,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등 종합적으로 검토해 왔다”며 “그 결과, 통합진보당은 강령 등 그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것이고 통합진보당 핵심세력인 RO의 내란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되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황 장관은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우리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면서 “헌법에 따라 국무회의에 상정했고, 정부는 국무회의를 개최하여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 심판 청구안건을 심의 의결했다”고 밝혔다. 황 장관은 “정부는 앞으로도 헌법가치수호와 국가정체성 확립을 통해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가 이 땅에 굳건히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여 강조했다.

법무부는 아울러, 통합진보당의 중심 세력이 종북성향의 NL(민족해방)계가 장악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당 최고 이념이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점도 북한의 건국이념과 매우 흡사하다는 판단을 했다. ‘일하는 사람(민중)이 주인 된 세상’이라는 표현 또한, 모든 사람이 주권을 가진다는 ‘국민주권주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봤다.

이 뿐만 아니라, 그동안 통진당이 북한의 3대 세습 문제에 대해 북한을 옹호하거나 핵실험에 대한 규탄결의안에 불참했던 점들도 문제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법무부는 “개인에 대한 처벌과 제명, 자격심사만으로는 반국가 활동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통진당 해산의 적법성을 주장했다.

즉, 정부는 통합진보당이 사실상 북한의 대남혁명 전략에 따른 남한 교란을 위해 건설된 정당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 통진당 해산 청구안을 계기로 진보진영이 다시 결집 조짐을 보이고 있다. 뿔뿔이 흩어진 진보진영이 이석기 사태 후유증을 극복하고 내년 지방선거까지 힘을 모으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통합진보당 진보정치

다시 결집하는 진보진영
정부의 이 같은 해산 청구안에 통합진보당은 불을 뿜듯 반발했다. 통진당 이정희 대표는 해산 청구안 국무회의 통과 직후 서울시청 광장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급기야 온 국민이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박근혜 정권이 노골적으로 유신독재체제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며 “박근혜 정권의 2013년판 유신독재 공식 선포이자, 1979년 해제된 긴급조치들에 이은 긴급조치 제10호”라고 분노를 토해냈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이 땅에서 헌정질서를 유린한 세력은 불의한 권력을 동원하여 부정한 방법으로 정권을 차지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이라며 “오늘 이들의 정치적 후계자들이 모여서 만든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유신의 망령을 부활시켜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있다”고 거세게 비난했다.

특히, 정부의 이번 해산 청구안 의결에 대해 “지난 대선의 불법 부정선거 의혹을 어떻게든 덮어보려는 파렴치하고 치졸한 정치 보복”이라며 정권의 정치적 목적에 따른 사태로 규정하기도 했다.

6일에는 진보진영의 분노가 더욱 거세졌다. 통합진보당 뿐만 아닌, 진보진영 주요 인사들까지 가세하며 反정부 전선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날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 전원은 국회의사당 본관 계단 앞에서 ‘민주주의 수호 통합진보당 사수 결의대회’를 진행하며 삭발식까지 거행하며 전면적 투쟁의 깃발을 들어올렸다.

또, 이날 오전 민주노총을 비롯해 전농, 한국진보연대, 참여연대,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사회진보연대 등 59개 단체가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정당해산 심판청구 의결을 전면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는 65년 헌정 사상 초유의 엄청난 일을 다룸에 있어 어떠한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나 사전 여론 수렴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며 “심지어 국무회의 안건으로 사전에 고지조차 하지 않은 채 마치 군사작전 하듯이 긴급 안건으로 몰래 상정, 몰래 의결했다”고 맹성토했다.

이에, 이들은 “정부의 국무회의 의결이 헌법과 법률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위헌적이고도 불법적인 행위로서, 원천적이고도 전면적으로 무효라는 점을 엄중히 지적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은 정부가 정당해산 심판청구 사유로 내세운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란음모 사건은 아직 1심조차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이와 관련해 이들은 “그야말로 혐의를 적용받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상태”라며 “따라서 법률에 따라 당연히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돼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정원 대선개입 정치공작 사건에 대해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민주적 기본권리라며 한사코 주장하면서 통합진보당에 대해서는 똑같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철저히 부정하고 있다”며 “이 같은 정부의 처사는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가 앞뒤도 맞지 않는 엉터리 논리에 초라하게 의지한 치졸한 정치보복임을 입증한다”고 일갈했다.

아울러, 이들은 “노동자와 민중은 표현이 다를 뿐 결국 ‘국민’을 뜻하며, 따라서 ‘국민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강령이 어떻게 위헌이란 말이냐”면서 “그리고 위험천만한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여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온 다음 자연스럽게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이 너무나도 당위적인 명제를 위헌이라고 한다면 그들이야말로 우리나라의 국가정체성을 부정하는 위헌세력이 아닐 수 없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덧붙여서는 “이러한 문제의식과 상황진단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 여부나 친소관계와는 아무 관계도 없으며, 오직 이 나라 민주주의를 지키고 민주공화국을 수호하려는 민주 시민의 정체성과 책임의식의 발로임을 우리는 분명히 밝힌다”면서 “따라서 우리는 위헌적인 정당 해산 심판 청구가 철회되고, 헌법재판소의 재판이 중단될 때까지 민주역량을 모아 강력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선포했다.

민주당 이번엔 어떤 정치적 판단을?
결국, 진보세력은 다시 결집하기 시작했다. 이석기 사태를 계기로 사실상 공중분열 상태로 치달았던 통합진보당도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모습이다. 통진당을 중심으로 야권의 분노가 모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통진당 해산 이슈가 정국을 집어삼키게 되면서는 야권의 이슈 주도권 또한 민주당에서 통진당으로 넘어갈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게 돼버렸다.

이 때문에 여권 일각에서조차 ‘꺼져가던 불씨를 들쑤셔 다시 불을 지핀 꼴이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통진당은 현재 정당 지지율 2%대 미만을 얻고 있어, 내년 지방선거나 차기 총선을 거치며 자연 소멸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미 이석기 사태 등으로 치명상을 입었기에 굳이 정당 해산 등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통진당은 다시 부활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까지도 통진당은 지금의 분노를 이어갈 것이며, 진보진영의 모든 세력들도 여기에 힘을 보탤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솥밥을 먹다가 길을 달리한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도 성명을 내고 “통합진보당 결성에는 반대했지만, 진보당 강령은 해산의 이유가 될 수 없다”며 “국민의 정치적 선택의 권능을 침해하는 해산청구에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한다”는 뜻을 밝혔다. ‘해산청구’를 계기로 통진당에 다시 힘을 실어주기 시작한 것이다.

노회찬 전 정의당 공동대표 역시 마찬가지다. 노 전 대표는 한 라디오방송에서 “선거 이외의 과정으로 정당해산을 하는 것은 사실 쿠데타가 아니면 독재국가에서나 하는 일”이라며 “비례대표 부정경선이나 최루탄 투척 등이 정당해산 사유가 된다면 과거 한나라당도 차떼기 사건 때 해산했어야 한다”고 거들었다.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정당해산’ 문제를 놓고 ‘진보’가 다시 결합하며 반정부 전선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중요하다. 만일 헌재가 지금으로부터 6개월을 꽉 채워 통진당의 손을 들어주게 될 경우, 그 후폭풍은 고스란히 여권이 맞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도 결코 여유부릴 수 없는, 거대한 도박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시작된 셈이다. 

결국, 민주당만 다시 골치 아픈 상황이 됐다. 이석기 체포동의안 처리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통진당과 선긋기를 했던 민주당이 이제 다시 통진당과 연합전선을 구축하기도, 방관자적 태도를 취하기도 애매한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어떤 정치적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야권이 총결집한 反정부 전선의 크기가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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