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수사 난항-공약 후퇴 등 민심이반 위험 높아져

박근혜 정부가 출범 8개월이 되도록 사실상 국정에 대한 비전이 보이지 않아 이에 대한 우려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공약이행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에 놓였다. 국정원의 대통령 선거 개입 수사를 두고 여야는 교착상태에 빠졌고 해결될 기미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에 대한 여파로 대통령 리더십까지 흔들리고 있다. 이 때문에 현 정부로부터 ‘이상 징후’를 감지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또한 이를 ‘총체적 난국’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 8개월에도 이렇다 할 국가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국정 난맥상 등과 함께 조기 레임덕의 단초가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제기되고 있다. 사진 / 청와대

상당수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이 반드시 나서 ‘교통정리’를 해야 할 상황임에도 어쩐 일인지 나서지 않고 관망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게 사실이다. 바로 이것이 근본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유의 애매모호한 태도가 난맥상으로 이어져

한 정치평론가는 “요즘 나라 전체를 흔들고 있는 국정원 대선 개입 이슈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이 초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최소한 유감 선의 코멘트만 했어도 이렇게 정국 전체가 꽁꽁 얼어붙는 상황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평론가는 “박 대통령이 지금까지 거리를 두는 자세에서 벗어나 보다 명확하게 국정원 선거 개입 건에 대한 입장을 과감하게 밝혀야 정국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국민들도 현재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주는 완고한 기색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지난 10월 24일 종편방송 JTBC는 전국 만 19세 이상의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 대통령 선거 개입 의혹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과 관련해 여론조사를 긴급 실시했다.

여론조사 결과 “현직 대통령으로서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대답이 전체 응답자의 절반을 넘는 56.5%가 나온 것으로 집계됐다. 아울러 “대통령이 굳이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라는 의견은 34.2%에 머물렀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9.3%로 나타났다.

정계에서는 이 같은 박근혜 대통령 특유의 애매모호한 분위기가 나라 전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은 본래 신중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첨예한 사안일수록 말을 아끼고 대응 방안을 장기간 모색하는 타입”이라며 “하지만 이번 건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 나머지 다소 타이밍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라고 지적한다.

여기서 ‘타이밍을 놓치고 있다’는 비판은 곧바로 ‘대선불복 논란’이라는 형태로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 대선 강력한 경쟁자였던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박 대통령의 긴 침묵을 틈타 일종의 ‘선제공격’에 나선 것이다.

지난 10월 23일 문재인 의원은 ‘박 대통령의 결단을 엄중히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지난 대선이 불공정했고 민주주의가 위기“라며 “이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문재인 의원은 성명을 통해 대선 불복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기는 했지만 정가에서는 “사실상 대선 불복을 선언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 민주당 내에서도 대선 불복이라는 강경 기류가 공공연히 흐르고 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표면적으로는 강력하게 비판하는 자세를 취하고는 있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불만이 적지 않게 형성되어 있기도 하다. 비박(非朴)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 정치적 책임을 인정하고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최악의 경우 내년 ‘조기 레임덕’ 악몽 맞을 수도”

아울러 정가에서는 “지금 같은 상황이 연말까지 계속 이어지면, 최악의 경우 내년에는 조기 레임덕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일부 정계 관계자를 중심으로 “레임덕의 징후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자칫 조기 레임덕이라는 극한 상황으로 갈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요인은 바로 현 정부의 공약이행 여부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 대선 기간 박근혜 후보를 가장 돋보이게 만들었던 양대 공약인 복지와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이 정부 출범 이후 크게 후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전격 사태라는 파국을 일으킨 기초노령연금 전면 실시 공약을 둘러싼 난항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정계 인사 상당수는 “기초연금은 물론 무상보육·고교 무상교육·4대 중증질환 진료비·군 복무기간 단축 등이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한 공약 사례로 꼽힌다”며 “이밖에도 복지와 관련된 공약 대부분 내용이 변경되거나 표류중이다. 정부 출범 첫해부터 꼼꼼한 여론 수렴 과정 없이 예산을 문제 삼아 복지정책이 흐지부지된다는 인상을 준다면, 이는 최근 공공요금 및 물가 인상 추세와 증폭효과를 일으켜 자칫 민심이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를 감추지 못한다.

경제민주화 방안도 기착점을 찾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정치 및 경제평론가 상당수는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와 경제 활성화 사이에서 방향을 못 잡고 갈팡질팡 하는 게 큰 문제”라며 “이런 난맥상에서 박 대통령이 오로지 ‘창조경제’나 ‘4대 사회악 근절’만 강조한다고 해서 돌파구가 마련되리라고 보기 어렵다”고 비판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통치 철학 가운데 하나인 ‘창조경제’도 그 참뜻을 놓고 현재까지도 여러 말이 오가고 있다. “창조경제의 의미가 과연 뭐냐”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야권 성향 인사들 사이에서는 “창조경제의 뜻을 아는 이가 희귀하니 구체적 실천 방안도 나올 리가 없다”며 “창조경제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해석되며 정책 방향이 뚜렷하게 형성되지 못한다”라고 비판한다.

일각에서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한 이른바 ‘제2의 새마을운동’에 대해서도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지난 10월 20일 박 대통령은 전남 순천에서 열린 ’2013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해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위해 새마을운동 정신을 살려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계기를 마련할 때”라며 “새마을운동을 시대에 맞게 변화시켜 미래지향적인 시민의식 개혁운동으로 발전시켜 나가길 기대한다”고 천명했다.

이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새마을운동이 1970년대에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라며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새마을운동처럼 관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방식은 큰 효과를 보기 힘들다. 또한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박 대통령이 부친의 대표적인 업적을 시대에 맞게 개량하는 과정 없이 거의 그대로 주창하는 데 아무런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다소 복고적인 시각을 지닌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 박근혜 대통령은 2인자를 두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국정운영을 보면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과 남재준 국정원장 등이 2인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사진 / 유용준, 이광철 기자
“소통의 자세로 직언 기피하지 말아야”

정가에서는 “최근 실시하는 여론조사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서서히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북핵 위기를 극복하며 치솟았던 국민 지지도가 국정에 대한 불확실성과 난맥상으로 인해 점점 식어가는 모양새”라고 지적한다.

또한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면 내년 6월 실시될 지방선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라며 “만약 여당이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 이후 정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돈 양상으로 치달을 것이다. 이 와중에 박근혜 리더십은 완전히 방향을 잃을 확률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와 더불어 일각에서는 “현재 여당 내에서는 ‘차기 대권 주자’에 대해 이야기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나 김무성 의원·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등이 그 예”라며 “집권 1년차부터 차기 주자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오는 것은 이례적인 상황으로 조기 레임덕의 징후로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만큼 박근혜 리더십이 미묘하지만 분명히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최악의 경우 조기 레임덕을 맞을 수도 있는 현재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나가야 할까. 여기에 대해 정계는 물론 언론계에서도 수많은 의견과 조언이 난무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지금까지 유지하던 정국 운영 방식을 크게 바꿔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이 추구하는 통치 스타일이 현 시국과 맞지 않는다는 분석이 많다. 한 정치평론가는 “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기본적으로 제왕적·카리스마적 리더십”이라며 “이러한 통치술은 박 대통령의 부친인 고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상당히 위력을 발휘하는 면이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가 확신으로 찬 강한 리더십을 매개로 빠르게 발전해야 할 시기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평론가는 “하지만 이는 오늘날 민주주의 체제가 정착한 국가에는 다소 맞지 않는다”며 “박 대통령이 이를 조속히 절감하고 국정 운영 스타일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향후 정부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아울러 “시대변화상을 빠르게 읽고 직언을 아끼지 않는 참모진을 대거 확충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일각에서는 “현재 청와대의 분위기는 너무 완고하며 장관 등 각료는 운신의 폭이 좁은 게 사실”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정계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은 정당한 비판과 충고를 본인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대통령이 원래 ‘2인자’를 두는 것을 꺼려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막상 정부 출범 이후 남재준 국정원장이나 김기춘 비서실장 같은 인물들이 ‘행동대장’ 노릇을 자임하는 것 아니냐. 이 분들이 사실상 2인자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라며 “방대한 국정을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해 보다 객관적인 통찰력을 갖춘 인재들을 청와대에 영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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