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두산그룹에 대한 막바지 수사 들어가

두산그룹 경영진에 대한 검찰의 사법처리가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두산은 이제 기업이미지 추락뿐만 아니라 전 임직원이 공황상태라고 해도 그 대과가 없다.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이 검찰에 소환되면서 이른바 ‘두산그룹 형제의 난’을 통해 4대째 한국의 대표적 재벌가로 그 명맥을 이어오던 두산그룹의 속내는 여실히 드러나 버렸다. 아울러 ‘알콩달콩’ 잘 지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도 보여주었다. 두산의 피를 나눈 형제들은 폭로전을 불사하고 심하게 맞붙기도 했다. 검찰의 마무리 수사시점에서 ‘두산그룹 형제의 난’을 재조명해 보았다. ‘두산그룹 형제의 난’의 발단은 지난 7월 21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차남)의 진정서 제출부터 시작된다. 진정서의 내용은 박용성(3남), 용남(5남) 형제가 20년간 모두 17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 그러나 이는 단지 외형적인 정황이었고, 내부적으로는 7월 17일 두산가(家) 긴급 가족회의에서 그룹 경영권을 박용오 전 회장에서 3남인 박용성 회장으로 교체를 결정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거기에 박용곤 그룹 명예회장(장남)의 장남 정원씨를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으로 승진시킨 것도 단초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철저하게 박용오 전 회장측을 배제해버리고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결정들에 대해 박용오 전 회장 일가는 섭섭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이는 엄청난 ‘후폭풍’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 결국 ‘피도 눈물도 없는’ 형제간의 전쟁은 박용성 회장측(용곤, 용성, 용만 형제)과 박용오 전 회장간에 시작된 것이다. ● 승자도 패자도 없는 형국 두산가 ‘형제의 난’은 다른 국내 재벌가의 형제간 경영권 분쟁과 궤를 달리한다. 대부분 재산과 ‘대권’ 싸움이어서 승자와 패자가 확연히 구분됐지만, 이번 두산가 분쟁은 승자가 없는 오직 패자만 있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비리 의혹을 폭로한 용오 전 회장 일가는 마지막 ‘무기’를 던짐으로써 가문에서 축출이라는 비애를 맛봤다. 또 지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두산산업개발 경영권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그야말로 ‘동생들과 조카의 사법처리’ 빼고는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용오 전 회장의 부인 최금숙 여사가 지난해 암으로 죽고 나서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어, 용오 전 회장이 극단적 행동을 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용오 전 회장 부부는 미국에서 만나 연애 결혼해 부부 금실이 아주 좋았다고 한다. ‘용곤-용성-용만’ 3형제도 ‘공동 소유, 공동 경영’이라는 집안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형제간 우애와 집안 망신,109년 전통의 명예, 경영 차질 등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또 자칫 집단 사법처리 가능성도 있어 위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단지 용오 전 회장 일가를 가문과 그룹에서 축출한 것이 유일하게 얻은 결과물이다. ● 검찰의 ‘칼’은 어디로 꽂히나?! 수사가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검찰의 칼이 과연 두산 심장부 어디까지 꽂힐지 관심거리다. 용오·용성·용만 형제와 박용성 회장의 장남인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까지 모두 소환해 검찰의 기소수위가 상당히 높으며 인신구속 사태까지 벌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검찰은 박진원 상무가 동현엔지니어링이 조성한 비자금 20억원을 건네받았고, 두산산업개발이 총수 일가의 이자대납을 위해 5년간 138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두산산업개발이 1995~2001년에 2800억원을 과다계상하는 방식으로 분식회계를 했다고 자진공시함으로써 분식회계 사실도 확인됐다. 무엇보다도 박용성 회장의 구속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단 검찰은 내주중(10월24~28일)에 비자금 조성 등에 대한 책임소재를 가린 뒤 오너 일가 중 1~2명에 대한 배임·횡령 등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박용오 전 회장이 박용성 회장을 타깃으로 한 것으로 추측돼 박 회장이 (검찰 조사에서) 빠져나가기 힘들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박 회장이 구속자 명단에 포함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될 경우 두산그룹은 총수가 구속되는 초대형 악재가 발생하게 된다. 박 회장은 뿐만 아니라 대한상의 회장, 국제유도연맹(IJF) 회장 자리마저도 내놔야 할 수도 있다. 다른 시각도 있다. 경영의 실세로 떠오른 박용만 부회장이 진짜 타깃이고 대외적 행사가 많은 박용성 회장보다 그를 구속하는 것이 대의명분에 합당하다는 주장이다. ● 빠른 변신으로 겨우 거듭났건만 ‘두산 형제의 난’이 벌어지면서 그룹 안팎에서 나온 일성은 ‘그룹 이미지 실추’였다. 그동안 두산은 주로 소비재(버거킹, KFC, 게스, 폴로)를 수입해 ‘막대한 로열티를 해외에 지급하는 기업’으로 비난받았다. 그러나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인수하면서 중공업그룹으로 탈바꿈했다. 아직까지 OB맥주 등 주류·식품에 주력하던 과거의 이미지를 다 벗지는 못했지만 발 빠른 변신을 거듭해 좋은 평판을 얻어왔다. 그러나 이제 ‘형제의 난’으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게다가 프로야구에서 쌓은 두산의 깨끗한 이미지도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가 삼성 라이온즈에 4연패로 힘없이 무너진 것을 이러한 두산그룹의 최근 우환과 연결시키기도 한다. 어쨌든 두산그룹은 최근의 사태로 모래성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109년 역사의 최고(最古)기업인 두산그룹은 ‘가족경영’을 모토로 오너일가간에 잡음없이 이끌어온 것이 자랑거리였다. 두산은 재계에서는 드물게 ‘가족경영’이 성공적으로 뿌리 내린 기업으로 알려져 있었던 것. 그러나 이러한 외양이 신기루에 불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두산이 과연 이 사태를 수습하고 재기할 수 있을까. 두산그룹의 임·직원은 거의 공황 수준이다. 언제 이 사태가 끝나고, 어떻게 마무리를 할지 망연자실한 상태다. 게다가 박용성 회장측, 박용오 전 회장측으로 갈라진 임·직원의 줄서기도 슬기롭게 봉합해야 한다. ㈜두산이나 두산종합개발에 들어올 적대적 M&A(기업인수·합병)의 공격에도 대비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두산그룹이 공중분해되는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형제의 난’이 발생한 후 이미지는 실추됐지만 ㈜두산, 두산산업개발 등 두산그룹의 대표적인 기업의 주가는 오히려 큰 폭으로 올랐다. 적대적 M&A로 대주주간에 지분경쟁이 예상돼서다. ● “한 마리의 미꾸라지가 물을 흐려놓았다” 두산, 재계의 ‘미꾸라지’로 전락 이번 사태로 두산그룹의 이미지만 나빠진 것이 아니다. 두산그룹이 오너 형제간에 이전투구를 하면서 전체 재계의 평판까지 나빠졌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모든 재벌, 즉 재계가 함께 도마에 오른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 일가가 이 정도로 싸우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라며 “재계가 얼굴을 들 수 없게 했다”고 탄식했다. 한 중견그룹 임원은 “우리 그룹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두산은 솔직히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꼬집었다. 전경련 등 재계에선 두산을 회원 명부에서 삭제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한 재계원로는 “박씨 형제 중에 최근 상처한 이가 많아 싸움을 조정해줄 부인들이 없어 내분을 키운 것 같다”는 견해를 보였다. 그는 또 “오너 경영의 좋지 않은 단면을 보여줘 오너 경영을 하고 있는 다른 재벌그룹에까지 피해를 끼쳤다”면서 “한 마리의 미꾸라지가 물을 흐려놓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계속되는 두산의 악재 이번 ‘형제의 난’ 외에도 두산가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던 악재는 더러 있다. 대표적인 예가 두산중공업 노조원인 배달호씨 분신자살 사건과 낙동강 페놀 사태를 꼽을 수 있다. 2003년 배달호씨의 분신 자살은 두산가와 노조의 악연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용성 회장은 “결코 원칙을 저버릴 수 없다.”면서 “지금 당장 손실을 보더라도 불법 파업의 뿌리를 뽑겠다.”며 강경 대응을 천명했었다. 이는 노조의 극한 투쟁으로 이어졌고, 배씨의 자살이라는 비극을 낳았다. 인화를 5대째 강조하는 두산가와 노조의 궁합이 맞지 않은 것도 꽤 아이러니하다. 두산가로서는 노사 합의만 되면 불법이 합법화되는 노조의 관행을 더 이상 둘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번 굳어진 노조와의 악연은 두산가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올 초 인수한 두산인프라코어(옛 대우종합기계)의 노조도 한동안 두산 인수를 격렬히 반대했다. 또 두산 계열사 노조는 이번 ‘형제의 난’과 관련해 그룹 회장직을 둘러싸고 형제들끼리 이전투구를 벌여 사회적 파장을 야기하고, 두산의 도덕성을 바닥에 추락시킨 책임을 지고 박용성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즉각 퇴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두산가가 다시 기억하기 싫은 사건으로 낙동강 페놀 사태가 있다. 여전히 반세기 최대의 환경오염 사건으로 꼽힌다.1991년 ‘맥주로 돈 번 회사가 먹는 물을 망쳐 놓다니….’라는 구호가 전국을 들끓게 했으며,2차 페놀 사건이 터지면서 당시 박용곤 회장이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났었다. 또 두산 불매운동으로 매출액이 급감했으며, 당시 환경처 장관과 차관이 경질된 초유의 사건이었다. ● 경영구도 변화는 불가피할 것 용오 회장과 자제들이 경영에서 빠진 만큼 두산의 경영구도에서 용만 부회장과 장손인 정원 부회장의 ‘파워’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용성 회장은 사실상 그룹의 상징적인 존재로 활동하고, 내부 살림은 용만 부회장과 정원 부회장이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용만 부회장이 용성 회장에 이어 두산의 향후 ‘대권’을 잡을지도 관심사다. 정원 부회장은 두산가가 장자 상속의 전통을 이어온 점을 감안하면 미래의 그룹 총수 1순위다. 그는 올 초 그룹 사장단 회의로부터 ‘2004 두산 경영대상’ 특별상을 받을 정도로 경영능력도 인정받고 있다. 용만 부회장의 4세 경영 과외도 ‘형제의 난’이 마무리되면 빨라질 전망이다. 용만 부회장은 현재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사장과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 등 두산 4세들의 경영수업을 총괄 지휘하고 있다. 반면 가족간 우애는 예전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두산가는 계속 ‘공동 소유, 공동 경영’을 원칙으로 가족경영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용오 전 회장 일가가 빠진 가족회의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최근 물밑에서 용곤 명예회장과 용오 전 회장간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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