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에 공개 후, 11월 17일 북한에 안치될 예정

이국 땅에서 원혼을 달래며, 환국을 기다렸던 북관대첩비가 10월 20일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서 100년 만에 고궁 땅을 밟은 데 이어 10월 28일 국립중앙박물관 개관과 함께 일반 관람객을 맞이했다. 북관대첩비는 일정기간의 일반 공개 이후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 앞뜰로 옮겨져, 받침돌과 지붕돌을 복원한 뒤 을사늑약 100년이 되는 11월17일 대 국민 기념행사를 갖고 북한 측과 협의해 북한에 되돌려 질 예정이다.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때 함경도 경성과 길주에서 당시 정문부 의병장이 왜군을 물리친 승리를 기려 숙종 34년(1707년)에 길주군(현재 함경북도 김책시 임명동 )에 세운 전승기념비로, 높이187cm, 너비66cm 두께 13cm에 1500자가 새겨져 있다. 이 북관대첩비는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 육군소장 이케다 마사스케가 강제로 ‘약탈’해 가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에 버려져 있었던 것이다. 일본에 의해 약탈돼 그동안 야스쿠니 신사의 한 구석에 있던 이 비를 발견한 이는 유학생이었던 조소앙이다. 조소앙은 메이지 유신40년(1907년)에 마침 야스쿠니 신사에 들렀다가 당시 재일본 조선유학생 잡지로서 그 해 5월에 발간된 ‘대한흥학보 제5호에 ‘소해성’이란 필명으로 기고해 ‘함경도 임진의병 대첩문’이라는 글에서 이 비를 언급했다. 그는 이 글에서 '용사의 난'(임진 · 정유왜란) 당시에 의병장 이붕수와 정문부 공이 길주에서 적병을 대파한 내용을 기록한 비가 야스쿠니 신사에 있다고 하면서, 이 비를 가져 온 일본을 꾸짖었다. 이후 북관대첩비는 1970년 후반 재일학자인 최서면 국제한국학연구원장이 조소앙의 기고문을 발견하고, 야스쿠니 신사 현지 답사를 통해 북관대첩비 실물을 확인하면서 반환운동이 시작됐다. 이밖에 민간부문에서 반환운동에 나섰던 한국의 초산스님과 일본의 가키누마 센신 스님으로 지난 1997년 황세손 이구씨의 환국을 추진하면서, 환국선물로 북관대첩비를 돌려주자고 주장하며, 일본과 한국에서 여론을 형성해 나갔다. 이후 지난해 7월에는 북관대첩비 환국 범국민운동본부를 조직하면서 남북한이 공동으로 추진한 가운데 초산스님과 북한의 조선불교도연맹은 지난해 12월 북관대첩비는 먼저 남한에서 반환받은 뒤 북한으로 돌려보내고, 북관대첩비 환국을 기념하는 한민족대축제를 서울과 평양 함경북도 길주에서 연다는 내용에 합의하기도 했다. 이와함께 남·북한이 함께 북관대첩비 환국절차를 담은 합의문을 채택하면서 본격화되었고 지난 6월 6· 15공동선언 5주년 기념 통일대축전정부대표단 일원으로 방북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북한대표단측에 북관대첩비 반환문제를 장관급 회담 주요의제로 채택하자고 제안하면서, 반환이 급속히 가시화되기 시작해 정부가 공식적으로 북측에 제의한 지 4개월여 만에 ‘감격스런 북관대첩비 환국’이 이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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