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사태로 꼬리 잡힌 진보, 새누리 파상공세

▲ 진보정치의 중심축을 담당해 오던 통합진보당이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혐의 사태로 인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보수진영에서는 연일 통진당 해산 촉구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 / 원명국 기자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혐의 파문으로 인해 통합진보당이 존폐의 귀로에 서게 됐다.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통합진보당 해산 목소리가 불을 뿜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 내부적으로도 해산 필요성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 지난 2000년 통진당 전신인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지 13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일부 정치 전문가들은 정당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 강제 해산에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기도 한다. 통진당에 대한 여론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황에서 굳이 메스를 들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법무부는 통진당 해산에 대한 법리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통진당이 강제 해산되기에 앞서 스스로 자정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다. 뼈를 깎는 쇄신책으로 당이 환골탈태하지 않는다면, 정의당을 비롯한 소수 진보정당이 있긴 하지만 이 땅에서 진보의 꽃을 피우기란 어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정치권이 더욱 더 보수화의 길을 걷게 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한국 정치의 균형과 건강한 견제 발전을 위해서라도 깨끗한 진보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종북’이 말끔히 제거된 진보정치, 유권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새 진보정당이 건설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새누리, 연일 통진당 두들기 왜?
새누리당에서는 연일 통합진보당 해산 촉구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헌법적 가치를 부정하는 세력으로서, 단 하루라도 세비가 종북세력에게 주어지는데 대해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당초, 새누리당의 통진당 해산 목소리는 지금처럼 강력하지 않았다. 이석기 의원에 대한 징계안 처리 등에 방점을 뒀지, 정당 해산까지 주장하는 데는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있었다.

보수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서명운동이 확산되는 등 통진당 해산 여론몰이가 외부에서 강력하게 몰아치자, 새누리당도 그 기세를 이어받아 원내에서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이석기 의원 사태 이후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지지도가 급격히 상승했다는 갖가지 여론조사 결과도 중요했다. 더욱 강력하게 종북 근절, 보수 결집을 이루면서 정국을 휘어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새누리당이 공세 포인트를 카운트파트너인 민주당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닌, 불과 1~2%대의 지지율을 얻고 있는 군소정당 통합진보당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슈가 확전되면서 민주당을 종북의 숙주세력으로 싸잡아 공격하려는 전략도 드러나고 있긴 하지만, 관심은 통진당에 더 쏠려 있다.

두더지잡기 게임하듯 통진당을 때리면 때릴수록 지지율이 쑥쑥 올라가니, 힘들여가며 민주당과 말싸움 벌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원내 제1당 거대 여당이 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한 13석에 불과한 군소정당을 상대로 이처럼 날을 세우는 경우도 보기 드물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통진당과 선 긋기를 하고 있는 민주당은 이슈의 전면에 나서기도, 그렇다고 통진당을 대신해 새누리당과 맞서 싸우기도 어려운 어정쩡한 상황이다. 국정원 개혁 이슈를 끌어가고 있긴 하지만, ‘이석기’ 이슈에 묻혀버린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러다보니,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치솟고 있는 것과 달리, 민주당은 약간의 하락을 동반한 답보상태에 있다. ‘이석기 정국’에서 새누리당에 완전히 정국 주도권을 빼앗겨버린 것이다.

민주당보다 더 심심한 것은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다. 이전처럼 트위터나 성명 등을 통해 현안에 목소리를 낼 수도 있지만, 이번 판에서는 굳이 적극적으로 ‘훈수’를 둘 의지가 없어 보인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자칫 껴들어 역풍을 맞을 우려가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 때문인지 안 의원은 이석기 이슈를 비켜서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세몰이나 1호 입법 법안 등에 더 신경 쓰고 있는 모습이다.

◆새누리당도 처음엔 신중했다?
새누리당 의원들 사이에서 통합진보당을 해산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산발적으로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난 3일, 김진태 의원은 “이번에 상당수 당 인사들이 내란음모에 연루되고 있다. 사실이 드러난다면 단 하루도 통합진보당과 마주 앉아서 국회의사당 안에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라며 “이런 정당을 어떻게 우리 제도권 안에 둘 수 있나. 정당 해산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날 당 중진인 이인제 의원도 “지금까지 나타난 증거에 의하면 정당 주요 간부들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는 것은 명백한 것 아니냐”면서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면 정당 해산 사유가 된다”고 지적했다.

4일 열린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도 통진당 해산 요구가 봇물을 이뤘다. 이 자리에서 원유철 의원은 “통진당의 혐의가 모두 사실로 밝혀진다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통진당은 더 이상 대한민국에 존재할 하등의 가치가 없으며 이유도 없다”고 포문을 열었다. 원 의원은 그러면서 “그들이야말로 그들이 말한 것처럼 바람처럼 사라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자리에서 정우택 최고위원도 “우리 헌법에 나와 있는 것처럼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당연히 해산을 요구할 수 있고, 또 해산 돼야 한다”며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통해, 또 그 수사결과에 따라 이런 정당 해산문제까지 거론되고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문종 사무총장도 한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통진당은 만약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의 혐의가 확정된다면”이라는 단서를 확실하게 달았다. 홍 사무총장은 “(만약 그렇다면) 자발적으로 해체 수순을 밟아야 하고 아니면 나라에서 해체 수순을 밟아줘야 한다”며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할 뿐 아니라 전복하고 내란을 음모한 그런 정당이라면 없애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홍 총장은 ‘정당해산 심판 청구권도 신청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혐의가 확정되면”이라는 단서를 확실하게 붙였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새누리당 의원들은 정당 해산 문제를 거론하면서도 ‘사실이라면’, ‘수사결과가 드러나면’ 등 단서를 붙이며 조심스러움이 있었다.

◆보수결집, 치솟는 박근혜-새누리 지지율
하지만, 지난 6일 운동권 출신이지만 사상전향을 통해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된 하태경 의원이 이석기 의원에 대해 여적죄와 예비음모죄를 예비적 공소로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한 뒤 새누리당의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여적죄는 내란죄와 함께 형법상 가장 엄하게 처벌하는 외환죄 중 하나로, 형법 제93조에 따르면 여적죄를 범한 자는 사형에 처하도록 돼 있다.

하태경 의원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이석기 사건은 반드시 처벌돼야 하지만, 판례가 없어 법리적 공방이 치열할 것이기 때문에 부가기소를 함으로써 법망을 빠져나가는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여적죄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특히, 하 의원은 “여적죄에 부가되는 예비음모죄가 있다”며 “이 사건은 북한과 합세해 대한민국을 공격하려고 한 예비음모라는 측면에서 예비음모죄가 이 사건에 상당히 부합한다”고 덧붙여 주장했다.

하 의원의 이 같은 기자회견 이후, 야권을 중심으로는 이석기 의원에 대한 혐의 입증이 불충분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내란음모 혐의 입증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예비적 공소를 추가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정원은 이 같은 관측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8일, 국정원 또한 여적죄 적용을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 나왔다.

그런 가운데, 새누리당 지지도는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 6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은 43%를 기록, 1주 전 대비 3%p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조사에서 국민 61%는 이석기 의원에 대한 혐의 내용과 관련해 사실일 것으로 생각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여론이 절대적으로 새누리당에 유리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이날 법무부는 통진당에 대한 해산 심판 청구를 검토하기 위한 T/F팀까지 꾸렸다. 국민수 법무부 차관 직속으로 구성된 ‘위헌정당 대책 특별팀’으로, 단장은 차관이 맡고 팀장은 정점식 서울고검 공판부장이 맡았다.

이어, 9일에는 새누리당 지지도가 무려 50%대를 돌파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리얼미터>가 이날 발표한 9월 첫째 주(2~6일)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은 1주 전 대비 4.8%p나 뛰어 올라 53.3%를 기록했다. 반면, 민주당은 4.2%p 하락한 21.8%로 조사됐다. 양당 간 격차는 무려 31.5%나 됐다.

또 중앙일보 조사연구팀이 여론조사를 실시해 9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통진당을 해산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도 62%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모든 여론 정황이 새누리당으로 하여금 목소리에 힘을 싣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새누리당 의원들 뿐 아니라, 보수 시민단체들까지도 불을 뿜듯 통진당 해산을 요구하고 있고 있는 상황이다. 새누리당 홍문종 사무총장은 10일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만약 통진당이 스스로 해산하지 못한다면 정부는 통진당 해산을 요구해야 한다”며 정부를 압박하기까지 했다.

◆통진당, 강제해산 아니라면 선택지는 둘 중 하나
한편, 민주당 지도부는 통합진보당 해산 문제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에는 함께 찬성표를 던졌어도, 통진당 해산 문제에 있어서는 수사 결과 등을 면밀히 지켜본 후에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도부의 이 같은 공식적 입장과 달리 당 내부적으로는 해산 필요성에 공감하는 목소리들이 삐죽삐죽 새어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민병두 전략홍보본부장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과 같이 정치를 할 수 없다”며 “민주적 절차를 위반했다면 해산해야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민 본부장 역시 “해산 여부를 우선 확인해야 되지 않겠냐”면서 수사 결과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덧붙였다.

4선 중진인 추미애 의원도 6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진보진영은 이번 사건을 반성하고 ‘해쳐 모여’로 자신을 재창조해야 한다”며 “새누리당에서는 통진당 해산을 주장하지만, 외부 개입 이전에 자진해 스스로를 정리하는 ‘클리어런스’(재고정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진당 해산 문제에 대해 강제성과 자율성을 두고 새누리당과 인식의 차이를 드러내기는 했지만, 본질적으로 통진당 해산이 필요하다는 데는 입장이 같은 것이다.

추 의원은 그러면서 “만약 통진당의 주도세력이 경기동부연합이라서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해산을 결단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며 “(통진당은)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거부하는 세력임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당법 제44조 1항에는 ‘임기만료에 의한 국회의원선거에 참여하여 의석을 얻지 못하고, 유효투표총수의 100분의 2 이상을 득표하지 못한 때’ 선거관리위원회는 정당 등록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통진당은 이석기 의원 사건 이전까지 2%대 안팎의 지지율을 보였지만, 사건 이후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1%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굳이 정부에서 통진당 해산 절차를 밟을 필요가 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결국 통진당은 총선에서 국민적 외면을 받아 자연 소멸하게 되든가, 그에 앞서 말끔하게 쇄신을 이뤄 재창당하든가 선택지는 둘 중 하나로 좁혀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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