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석대 (신경정신과 전문의, 의학박사) 성로요양병원
나이가 들면 기력이 쇠하고 몸이 약해진다고 한다. 병도 많이 생기는 것으로 알고, 누구나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나이가 들면 몸이 약해지고 병을 앓게 된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함께 믿고 있는 편견이고, 이러한 편견이 있어서 그렇게 믿고, 그러한 믿음이 병을 가져오기도 한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누구나 병을 앓게 되는 것은 아니다. 늙는다는 것은 변화일 뿐이고 때로는 늙었기 때문에 병을 이길 수도 있다.

나는 요즘에는 노인환자를 주로 만난다. 의사도 나이에 따라 치료하는 경향이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내가 젊었을 때는 청소년 정신의학에 관심이 많았었다. 40대에 접어들어서는 부부의학에 관심을 가지고 원만한 부부생활을 돕는 일에 정성을 쏟았다.
 
지금은 노인의학에 몰두하고 있다. 나이를 먹으니 먹는 대로 또 할 일이 있다. 내가 만나는 분들 중에는 점점 기억력이나 사고기능을 잃어가는 분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그런 분들은 정신기능이 흐려져서 세상일을 잊어가면서 오히려 몸이 건강해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서 몸에 생기는 병들이 있다. 정신신체질환 (Psychosomatic disease)이라고 하는데 위궤양, 고혈압, 당뇨, 류마치스, 천식 등이 대표적인 병이다. 성인병이라고 하여 나이가 들면 이들 병중에 한 두가지는 피해가기 어려운 유명하고도 흔한 병이다. 그런데 지능이 떨어지고 사고기능이 약해지면서 오랫동안 갖고 있던 만성병들이 낫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입맛이 좋아지고 혈압이 내려가고 잠도 잘 잔다. 복잡한 생각이 적어지니까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어지고, 마음이 편해지고 어린애처럼 순수한 마음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분 중에 12년 전에 방광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분이 계신다. 지금 연세가 아흔 넷인데 여든 두 살 되던 어느 날 아침에 변기에 새빨간 선홍색 소변을 보고서 깜짝 놀라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니 방광에 암이 생겼는데 벌써 많이 진행되어서 손쓸 수없이 퍼져 버렸던 것이다. 나이도 있는데다 암이 넓게 퍼진 상태라 잡수시고 싶은 것 드시면서 보고 싶은 사람 만나고 하고 싶은 일 하시면서 편히 지내시라는 것이 당시 진찰했던 비뇨기과 교수의 처방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분은 지금도 즐겁게 살고 계신다.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이유는 그분이 연세가 많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은 모든 생체활동이 왕성하다. 새살이 돋아 상처가 낫는 것도 빠르고. 근육이 자라는 것도 빠르고, 암세포가 자라는 것도 빠르다. 나이가 많으면 모든 것이 느리다.
 
움직임이 느리고, 생각하는 것이 굼뜨고, 운동을 열심히 해도 근육이 젊은 사람처럼 쑥쑥 돋아나지 않는다. 그래서 암세포도 느리게 성장하는데, 덕분에 그분이 지금도 천수를 누리고 계신다.
 
젊게 오래 즐겁고 건강하게 살려면 늙어서 못해라는 편견을 버려야한다. 앞에서 늙음이 오히려 병을 이기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 글 제목 뒤에 번호가 붙어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늙으면 약해진다는 부정적 패배의식을 버리고 긍정적인 젊은 마음을 갖는 방법에 대해서 다음 호에도 같은 얘기를 해보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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