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사건, 무죄 판결의 전말’ 방송 결방 논란

지난달 31일 예정된 KBS 추적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무죄 판결의 전말’ 편의 방송이 불방되자 이를 둘러싸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KBS제작진을 비롯한 언론노조는 정권의 눈치를 살핀다며 사측을 강력 규탄했고 여론도 이에 동조하는 모양새다. 불방된 방송의 내용은 무엇이고 문제점은 없는지 짚어봤다.

▲ 지난달 31일 예정된 KBS 추적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무죄 판결의 전말’편의 방송이 불방됐다. ⓒKBS

KBS, 국정원 간첩조작 ‘추적60분’ 불방 결정
제작진·언론노조 등 “정권 눈치 살핀다” 규탄
국정원관련 방송, 시기 부적절? 비판여론 확산

KBS는 애초 지난 8월31일 <추적 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무죄 판결의 전말’ 편을 방송할 예정이었으나 사전심의 내용을 근거로 불방시켰다.

KBS 언론노조 등에 따르면, 추적 60분 제작진은 지난 3개월 동안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을 취재해 왔다. 하지만 방송을 이틀 앞둔 지난달 29일 백운기 시사제작국장으로부터 방송보류를 통보했다.

불방된 ‘추적 60분’ 내용은?

 KBS <추적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무죄’편의 내용은 중국 국적의 화교 출신의 유모(33)씨 남매가 북한의 지령을 받아 탈북자 명단을 북한에 전달한 간첩 혐의를 받은 사건을 다뤘다.

검찰은 지난 2월 당시 공무원이었던 유씨를 구속 기소하고 징역 7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지난달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유씨에 대해 간첩 혐의는 무죄를 선고하고, 중국인이면서 북한 국적으로 속이고 탈북자 정착지원금을 받은 혐의 등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2565만원을 선고했다.

국정원이 수사한 이 사건에 대해 법원이 무죄 판결이 내리면서 무리한 혐의 적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재판부의 판결에 앞선 지난 4월, 유씨의 여동생이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에 의해 오빠의 혐의를 허위로 진술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KBS <추적60분> 제작진은 “국정원은 유 모씨가 지난 6년 간 수차례 북한을 오가며 간첩 활동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제작진은 지난 3개월 간 중국과 국내를 포괄하는 심층 취재를 통해, 국정원의 주장을 뒷받침할 물증이 없음을 밝혀냈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초 자백을 했던 여동생의 조사 과정이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점과 무리한 수사 의혹을 함께 제기했다”며 “이 사건은 국가의 권력기관이 한 개인을 충분한 근거도 갖지 않은 채 파국으로 몰고 간 사건으로 중대한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보도 가치가 충분할 뿐 아니라 시청자의 알 권리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방송”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송은 단지 취재 대상이 국정원이라는 이유로, KBS 사장 이하 간부들의 과도한 정치적 판단 하에 편성표에서 삭제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담당 최재호 심의위원은 심지어 본 방송의 영상파일도 확인하지 않은 채, 무슨 이유에서인가 급박하게 심의 의견을 게재했는데, 최종판결 전까지 ‘방송 시기가 부적절하다’는 내용이었다”라며 “그 말대로라면, 대법원 판결문 없이는 어떤 시사프로그램도 방송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 전국언론노조 김현석 KBS본부장은 “국정원 정치공작에 누가 될까봐 KBS는 방송을 불방시켰다”라며 질타했다. ⓒKBS노조

재판 전 사건은 방송 불가?

 <추적 60분> 결방에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2, 3심이 남아 있어 방송이 불가하다”는 사전 심의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KBS 측의 주장에 대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의혹 사건의 경우 아직 재판도 진행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중적 태도라는 주장이다.

실제 재판중인 이유로 방송을 금지해달라는 요청을 한 사례가 있었다.

2012년 9월9일 저축은행 회장의 사기행각을 다룬 ‘KBS스페셜 어떤 인생-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편이 방송될 때 김찬경 회장 측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당시 재판부는 방송금지 가처분 판결문에서 “방송사업자는 기본적으로 공적 사안에 대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방송편성의 자유를 가지고 있고, 형사 재판이 진행 중이라 하여 시사보도가 일체 금지된다고 볼 근거가 없는 점, 형사 재판을 담당하는 법원은 이 사건 프로그램 등 언론의 보도와 관계없이 해당 사건에 제출된 근거를 바탕으로 공정한 재판을 할 것인 점을 고려하면, 위와 같은 신청인 측의 사정만으로 이 사건 프로그램의 방영이 위법하여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정리하면 재판 중인 사건도 보도를 금지할 근거가 없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판례로 비춰보아 KBS의 심의실의 방송금지 사유에 대해 “정치적 사유가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힘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 전국언론노조 김현석 KBS본부장은 2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 정치공작에 누가 될까봐 KBS는 방송을 불방시켰다”라며 “길환영 사장은 오로지 정권의 안위, 정권에 잘 보여서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려는 것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홍기호 KBS본부 부위원장도 “국정원 관련 아이템이 KBS에서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국정원 비판 보도는 금기?

 KBS가 국정원 관련 보도에서 보인 태도는 조심스럽다 못해 우호적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KBS는 7월1일자로 자사의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관련 보도를 비판한 내용을 내보낸 옴부즈맨 프로그램 담당 국장과 부장을 보직해임 한 바 있다. 옴부즈맨 프로그램 ‘TV비평 시청자데스크’ 제작을 담당하고 있는 시청자본부 시청자국 고영규 국장과 시청자서비스부 홍성민 부장을 보직해임하고 대기발령 인사를 한 것.

당시 제작을 담당한 PD는 보복인사라고 주장했다. 기자협회를 비롯한 언론 관련 시민단체들은 “KBS의 인사는 문책성 인사이며 자사 비평 프로그램에 재갈을 물리는 처사”라고 반발했다.

국정원을 다룬 방송이 불방되거나 관련 인사가 징계받는 사태는 KBS만이 아니다. 지난 6월에도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국정원에서 무슨 일이’ 기사가 보도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지만 당일 통편집을 당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해당 꼭지는 검찰의 ‘국정원 정치 대선 개입 사건’과 관련하여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검찰의 수사결과 내용, 국정원과 원 전 원장의 반론, 이를 둘러싼 여야의 목소리 등을 다룰 예정이었다.

MBC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시사매거진 2580’ 국정원 아이템 불방 사태와 관련해 해당 취재기자가 돌연 ‘업무배제’ 조치를 당한데 반발하며 사내에서 피켓시위를 벌인 기자 4명에 대해 지난달 13일 징계를 내려 여론의 뭇매를 맞기고 했다.

공정한 방송을 국민들에게 알리려는 언론인들의 노력이 좌절되는 상황에서 9월 2일 ‘방송의 날’을 하루 앞두고 ‘제50회 방송의 날 축하연’이 열렸다. 언론 3사는 방송의 날 기념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말을 보도했으나 방송협회 회장의 인사말은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다. 방송의날의 주인공은 박 대통령으로 비춰졌다.

행사가 진행된 서울 여의도 63빌딩 앞에서는 방송의 공정성과 방송 정상화를 촉구하는 전국언론노동조합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에서 강성남 언론노조 위원장은 “공영방송의 공정성을 주장하다가 해직 된 기자들이 10명이 넘고, 해직 기간도 5년이 되어 간다”면서 “이 땅의 방송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기자들이 내쫓기는 상황에 무슨 방송의 날 기념식이 열린다는 것이냐”며 강하게 항의했다.

한편 국정원 관련 방송이 결방되자 트위터에서도 비난이 일고 있다. “@ahnsarang : 국정원의 간첩조작사건을 다룬 <추적 60분> 결방사태로 시사프로그램의 방영 독립권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얼마나 시급한 일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방송국 수뇌부가 여당과 국가기관의 눈치를 보는 한, 언론의 자유는 요원한 일입니다” “@hanurio : 서울시청공무원 간첩조작사건의 진실을 밝힌 KBS 추적60분의 돌연불방... 제 2의 김재철, 길환영 KBS 사장의 ‘알아서 기기’가 시작되었다” 는 등 방송에 대한 불만을 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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