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암물질과 각종 환경호르몬 검출됐지만 개선 못 해

환경호르몬과 다이옥신의 주범으로 알려진 ‘PVC 수액백 국내 주요병원 사용실태’가 지난 5월 서울환경연합에 의해 밝혀진 바 있다. 서울·경기 소재 300병상 이상 병원을 PVC 수액백 사용비율에 따라 A등급(0%)부터 E등급(91~100%)까지 구분해 조사한 환경연합은 국내 최고의 의료시설을 자랑하고 있는 삼성서울병원을 비롯해 노원을지병원, 한양대(구리)병원, 위생병원 등은 PVC 수액백을 90% 이상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산부인과로 유명해 분만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제일병원이 PVC 수액백을 90% 이상 사용하고 있어 임산부와 유아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수액백을 만드는 소재인 PVC(플라스틱의 일종)에서 환경 호르몬 DEHP가 녹아나오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도 PVC 소재 사용을 줄이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대체할 수 있는 “NON-PVC 소재”가 개발되었는데도 병원들이 PVC 소재의 수액백을 여전히 사용하는 데 의문을 제기한 것. 또한 PVC 수액백 사용 후 소각처리할 때 유해물질인 다이옥신도 발생하기 때문에 유해폐기물 생성을 원천봉쇄한다는 차원에서 PVC 수액백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환경연합의 주장. PVC 수액백과 관련한 논쟁이 국내에서 불거진 지는 이미 7~8년 됐다. 국정감사의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연합이 5월 기자회견을 한 것은 PVC 수액백 사용이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현재 국내 병원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PVC 수액백은 정말 인체에 유해한 것일까. 또 PVC 수액백보다 환경호르몬이 더 많이 용출되는 PVC 혈액백이나 각종 PVC 의료용구에 대해서는 왜 상대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것일까. PVC(Poly Vinyl Chloride)는 플라스틱의 대명사다. 하지만 생산과 사용, 처리과정에서 유독물질을 배출한다. 연질 PVC 제조에는 프탈레이트 가소제(열가소성을 증대시켜 고온에서 성형가공을 용이하게 해주는 물질)인 DEHP 및 산화안정제, 그리고 가공성 향상을 위해 납, 카드뮴 등의 물질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소각과정에서 다이옥신, 퓨란 등 유해물질이 배출되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 결과 전 세계적으로 PVC 사용량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 추세다. 이미 영유아용 PVC 장난감에서 환경호르몬으로 추정되는 물질이 확인됨에 따라 이에 대한 유해성으로 미국, 유럽 등에서는 PVC에 사용되는 가소제인 DEHP 사용한도에 대해 규제하고 있다. DEHP 즉 디에칠헥실프탈레이트는 플라스틱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사용되는 가소제로, PVC 재질을 사용하는 모든 물질에서 검출된다. 우리나라도 내년부터 모든 PVC 재질의 완구와 어린이용 제품에 DEHP 등 3종의 프탈레이트계 가소제 사용이 전면 금지된다.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은 유럽연합위원회가 DEHP, DBP, BBP 3종의 프탈레이트계 가소제가 동물실험에서 생식독성이 있는 물질로 최종 확인됨에 따라 사용 금지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유럽연합위원회는 올 가을부터 이 3종 가소제가 사용된 완구 및 어린이용 제품의 유럽연합 내 생산 및 수입금지 방침을 정하고 이를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각국에 통보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DEHP 유해성 평가 결과를 살펴보면 WWF(세계자연보호연맹)는 DEHP를 내분비교란물질(환경호르몬)로 규정했고, 하버드대학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서는 남성 정자의 수와 운동성을 저해하는 등 인체에 대한 유해성이 밝혀졌다. 동물실험에서 장기 노출시에 폐와 간의 무게를 증식시키는 것으로 나타났고, 동물의 입에 노출시켰을 경우 출산 기형과 같은 발생독성 및 고환의 무게 감소와 관상 위축 등과 같은 생식독성을 일으켰다. 2001년 EU는 DEHP를 인간의 번식력을 손상시킬 수 있고 성장에 독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해야 할 물질그룹으로 분류했다. ■ 완구·어린이용 제품엔 사용 금지 PVC 수액백 논란도 PVC의 유연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가소제인 DEHP의 유해성 때문에 불거졌다. 1971년 처음 소개된 PVC백은 유연성으로 인해 원하는 형태로 성형할 수 있으며 특히 유리병과는 달리 파손의 우려가 적어 지금까지 수액과 혈액용 용기로 가장 많이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그 유해성에 대한 연구와 논란이 끊임없이 진행돼 왔고 유해성이 입증되면서 유럽의 많은 국가에서는 사용금지 및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반면 유럽 국가 중 영국, 벨기에, 스위스 등에서는 주로 미국 박스터(Baxter)사의 PVC 수액 용기를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 PVC백의 시장점유율이 98%에 달한다. 국내의 경우에도 1970년대부터 PVC백을 사용해오다 중외제약이 1997년 12월 NON PVC 수액백을 선보이면서 변화가 일었고 PVC 수액백 논란도 불거지기 시작했다. 수액백은 현재 중외제약과 CJ제약, 대한제약이 제조, 판매하고 있고 종근당에서도 완제품 수입을 통해 수액백을 일부 납품하고 있다. 수액제 시장규모는 800억 원대로 국내에서 연간 9000만 백이 소요되고 있다. 각사의 시장점유율은 중외제약이 45~48%, CJ제약이 30%, 대한제약이 20% 정도다. 이중 병원에 납품되는 대다수의 PVC 수액백은 CJ제약이 미국 박스터사로부터 PVC용기를 공급받아 생산, 공급해온 것이다. ■ 사용상의 주의사항 표기 의무화 PVC 수액백의 인체 유해성에 대해서는 약간의 시각차가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2000년부터 2003년까지 독성연구소 및 KIST에서 수액백과 혈액백의 DEHP 용출실험을 실시했고 그 결과 PVC 수액백의 DEHP 노출로 인한 유해 영향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결론내렸다. 또 올 1월엔 임산부와 사춘기 남자에게 혈액 제제를 주로 사용하는 치료과정 수행시 대체제 사용을 권고하였으나 수액백의 경우는 거의 위험하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PVC 수액백의 DEHP 용출량이 국제기준에 훨씬 못미치는 0.012~0.035ppm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나 올 6월엔 DEHP를 함유한 PVC 수액백의 사용 자제를 권고했다. 또 9월 1일부터 가소제로 DEHP가 첨가된 PVC 용기를 사용한 수액제에 대해 사용상의 주의사항 및 용기 등의 기재사항을 표기토록 했다. 그 내용은 ‘DEHP는 어린 동물을 이용한 시험에서 수컷 생식기의 발달 및 정자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PVC 용기의 경우 DEHP가 극미량 용출될 수 있으나 DEHP에 노출돼 나타나는 위험성은 없거나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의약품을 사용하지 않아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은 DEHP에 의하여 우려되는 위험성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사용을 기피할 필요는 없습니다’이다. 반면 환경연합은 “PVC 대체물질이 나와 있고 PVC 수액백과 NON PVC 수액백의 의료수가가 거의 차이가 없어 고가 비용으로 병원에 부담을 주는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내 병원에서 PVC 수액백을 사용하는 것은 의료기관과 정부가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무관심한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PVC 수액백을 생산, 판매하는 CJ제약은 설비투자 및 생산라인 보강을 실시해 NON PVC 수액백을 점진적으로 생산할 계획이다. CJ제약 최영미 마케팅실 부장은 “생산라인을 전면적으로 변경하는 데 많은 시간과 설비투자가 필요하므로 1차적으로 NON PVC 용기를 수입해 9월 말까지 약 10~20%의 물량을 대체하고 올해 말까지 50% NON PVC 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며 내년 6월까지는 전량 교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의 PVC 수액백이 안전하지 않아서 교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CJ의 입장이다. ■ 종합병원 사용률 여전히 높아 40년 이상 전 세계적으로 PVC 수액백을 사용하면서 안전성은 국제적으로 충분히 검증됐다는 것. 최 부장은 “PVC 용기가 문제라면 수액투여시 반드시 사용하는 IV세트도 PVC재질이므로 대책마련이 필요한 것 아니냐”면서 “오히려 NON PVC 수액백의 경우 기술적으로 아직까지는 안정화가 안 돼 있고 충격에 약해 유통과정에서 미세한 구멍이 생겨 감염의 위험이 있는 등 향후 최상의 품질 확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소제 DEHP를 사용하는 PVC는 수액용기뿐만 아니라 혈액백, 수액세트 등 다양한 의료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수액세트는 중소기업고유업종으로 분류돼 대부분 영세업체에서 생산, 판매하고 있다. 현재 PVC 수액백을 사용하는 병원(표)은 여전히 많다. 삼성서울병원, 원광대병원, 의정부성모병원 등은 사용하는 전체 수액백의 80~90%가 PVC제품이다. 이들 병원이 PVC 수액백을 사용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제약회사와의 관계 때문이든 PVC수액백의 장점 때문이든 국내 병원 대부분이 NON PVC 수액백을 사용하지 않는 한 PVC 수액백을 둘러싼 논쟁은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DEHP 란? 플라스틱을 제조할 때 사용하는 첨가 물질. 플라스틱을 부드럽게 해준다. 수액백을 만들려면 액체를 담는 비닐 형태의 용기를 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제조과정에서 DEHP가 필수적으로 첨가된다. DEHP가 첨가된 플라스틱을 가공해 수액백으로 사용하면 DEHP가 녹아나오게 된다. *PVC 수액백, 소각 말고 다른 처리방법 없나? 병원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감염성폐기물’이기 때문에 소각처리해야 한다. 이때, 유독물질인 다이옥신이 발생한다. 땅에 묻을 경우 PVC가 잘 썩지 않아 분해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DEHP가 녹아나와 토양을 오염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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