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은 자연스런 현상…불안·공포에서 벗어나야

머리를 감으려고 한참 비누칠을 했는데 갑자기 물이 안 나오는 경우가 있다. 참 낭패스러운 일이다. 고지대 달동네에 살다보면 가끔 당하는 일인데 수압이 낮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수압이 높아 물이 콸콸 나오는 아랫동네로 내려오면 속이 다 시원하다. 삼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다는 비유는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확실히 수압은 낮은 것보다 높은 것이 좋다. 그렇다면 혈압도 높아야 온몸에 빈틈없이 피가 콸콸 흐르게 되고, 구석구석에 있는 세포들까지도 산소를 넘치게 받아먹어 활력이 넘치고 건강해질 것 같은데, 그건 그렇지 않다. 고혈압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활력은커녕 쌓이는 근심에 한숨만 쉰다.

혈압이 높으면 왜 위험한 것일까? 수돗물은 수압이 높으면 콸콸 잘 나오고 낮으면 졸졸 맥없이 흐른다. 그러나 수압이 높다는 것과 흐르는 물이 많다는 것은 다르다. 고무호스로 물장난하던 기억을 되살려보자. 같은 양의 물이 흐르는데 수도꼭지에 연결된 고무호스를 손으로 눌러서 구멍을 좁혀주면 수압이 높아지면서 물이 쭉 뻗어서 멀리까지 나간다. 흐르는 양은 같지만 수압이 높기 때문이다.
 
사람의 혈압이 오른다는 것은 흐르는 혈액의 양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혈관의 내경이 좁아지는 것이어서 위험하다. 혈관벽이 굳어져서 신축성이 없어지거나 혈관내벽에 기름떡이나 피딱지가 끼여서 좁아졌다는 것을 뜻한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사람의 나이에 90을 더하면 그것이 그 사람의 정상혈압이라고 배웠다. 나이가 70이면 혈압이 160이라도 정상이라는 말인데, 요즘 의사가 그런 말 했다간 밥 굶기 십상이다. 그러나 나이에 90을 더한 것이 정상혈압이라는 말은 나이가 들면 누구나 혈압이 오른다는 말이 된다. 고혈압은 만민이 두려워하는 병인데, 나이가 들면 만인이 걸리는 병이다.
 
젊은 혈관을 말랑말랑한 생고무로 만든 호스에 비유한다면, 나이 든 혈관은 오래 써서 딱딱하게 굳은 고무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생고무 호스는 잘 늘어나기 때문에 필요하면 늘어났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이내 정상으로 돌아온다. 삭은 고무는 늘어나지도 않지만 어쩌다 한번 늘어나면 다시 회복되지도 않는다.
 
이렇게 혈관이 굳어진 것을 동맥경화라고 한다. 혈관벽은 굳어지고, 내벽엔 찌꺼기가 쌓여서 내경이 좁아지게 되면 혈압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고혈압은 자연스런 현상이라 볼 수도 있다.
 
고혈압을 극복하려면 무엇보다도 불안이나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한데 스트레스나 불안을 극복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또 고혈압에 대한 공포가 스트레스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예전에는 고혈압 약을 먹으면 나른하고 기운이 없어져서 일을 해도 능률이 오르지 않는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약은 효과도 좋고, 값도 싸다. 한번 굳어진 혈관을 젊은 혈관처럼 다시 돌려놓을 수는 없지만 조절은 가능하다.
 
그래서 정상인들과 마찬가지로 생활할 수 있고 정상인만큼의 수명을 누릴 수 있다. 고혈압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이 고혈압을 치료하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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