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건망증을 두려워한다. 이런 경향은 젊은 사람들보다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더 두드러진다. 두려움의 실체는 건망증이 아니라 치매. 치매의 증상으로 가장 흔한 것이 건망증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깜빡 깜빡 잊어먹기를 잘 한다면 치매가 아닐까 염려한다.

그러나 치매와 건망증은 분명히 다르다. 쉽게 설명하면 건망증은 기억의 창고에 남아있는데 창고에서 끄집어내지 못하는 상태다. 반면 치매는 기억의 창고에서 없어져버린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건망증은 나중에 다시 기억날 수 있는데 반해 치매에서는 남이 기억을 되살려줘도 다시 기억해낼 수 없다.

기억은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다. 다소 기억력이 나쁘더라도 반복해서 노력하면 누구나 기억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잊는 것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잊으려고 애를 쓸수록 더욱 또렷이 기억되기도 한다. 잊지 못하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다. 잊지 못하는 사람은 ‘delete’키가 없는 컴퓨터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컴퓨터라 할지라도 지우는 기능이 없다면 오래지않아 용량이 차고 넘쳐 못쓰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면서 얻는 기억들을 잊지 못하고 모두 기억한다면 무척 괴로운 일이고 머리는 병들어 못쓰게 될 것이다. 어렸을 적에 짝궁의 지우개를 슬쩍 했던 일로 평생 양심의 가책에 시달릴 것이고, 배우자의 허물을 잊지 못하고 모두 기억한다면 해로할 부부가 있을 성 싶지 않다. 마음에 상처를 받은 사람을 위로할 때 사람들은 잊어버리세요라고 말한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려면 잊어버리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데, 잊지 못한다면 상처를 치유할 길이 없다.
 
우리는 평생 하나의 뇌를 쓴다. 젊은 뇌는 새로 산 공책처럼 깨끗해서 기록하기 좋다. 기록된 정보를 다시 찾아내기도 쉽다. 오래 쓴 공책은 기록할 부분이 많지 않아 여기 저기 여백을 찾아서 적어 넣어야 한다. 나중에 다시 찾아보려면 어디에 적어뒀는지 한참 뒤적거려야하고 찾기도 쉽지 않다.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나빠지고 건망증이 늘어나는 것은 뇌에 정보가 많아 오래된 공책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찾아내기 어렵긴 하지만 오래 쓴 공책에 수록된 정보는 새 공책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나이 많은 사람들의 지혜를 젊은 사람들이 따르지 못하는 것은 이런 이치이다.
 
기억이 중요한 만큼 망각도 소중하다. 그러나 잊는 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잊으려고 애쓸수록 생생하게 기억되기도 한다. 기억력이 나빠도 노력만하면 기억할 수 있다. 자꾸 반복해서 기억하면 기억에 새겨지게 되어있다.
 
그러나 잊는 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잊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욱 생생히 기억되기도 한다. 기억은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잊어버리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억은 사람의 일이고 망각은 신의 은총이다라는 생각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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