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도 안된 자격증의 남발 심각해

우리는 요즘 자격증 홍수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결코 그 대과가 없다. 하루가 멀다하고 생소한 명칭의 자격증이 각 매체에 장식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름대로 만들어진 이유들이야 있겠지만 자격증만 따면 마치 밥벌이와 관련해서는 모든 일이 해결될 듯 광고를 하고, 또 이에 현혹되어 꼭 따야만 하고 취득하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듯한 생각에 무작정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치 군인이 군복에 훈장과 휘장을 달듯이... 취업난과 직장내 고용불안이 겹치면서 자격증에 대한 막연한 기대심리가 퍼져있다. 1997년 자격기본법 제정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민간자격증에 국가자격증까지 합치면 그 수는 무려 1천500여종에 달한다. 그러나 취업과 고소득이 보장된다는 식의 과장광고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가하면 자격증 제도의 관리. 운영은 물론 자격증 소지자의 활용에도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 범람하는 자격증, 그 수만 무려 1천500여종...실태파악도 안돼 주부 이모씨는 취업과 고소득이 보장된다는 광고를 믿고 정보기기 관련 자격증을 따느라 가사일을 뒤로 하고 힘들게 공부했던 허탈한 경험이 있다. 자격증을 손에 쥐고 당당하게 이곳저곳 일자리를 노크하다 이내 그 자격증이 종잇장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 자격증 있으나마나 별 차이가 없어요." 이런 시큰둥한 반응이 계속되자 처음에는 신주 모시듯 하던 자격증을 요즘은 장롱 속에 처박아 두고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이씨는 자격증을 준비하는 기간에 매월 일정액의 수강료를 정부에서 지원받았다. 같은 처지의 사람이 주변에 적잖은 점을 감안하면 결국 국고의 일부가 헛일에 쓰인 셈이다. 컨벤션 기획사 1급, 임상 심리사 1급, 소비자 상담사 1급 자격증 준비생들은 이씨와는 사정이 판이하다. 지난 2002년 신설된 국가자격증이지만 일정기간 해당분야 경력을 갖춘 대졸출신 지원자가 없다는 이유로 해당부처가 시행을 포기하는 바람에 올해까지 3년째 시험이 치러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이들 자격증 외에도 최근 3년간 접수인원이 아예 없거나 시장수요가 없는 생사기술사, 타출판금기능사, 섬유기계기능장, 목질재료기능사 등 6종의 자격시험도 건너뛰었다. 올해 2월 27일 실시된 정보관리기술사 필기시험에서는 400여명이 응시했으나 문제 난이도 조절 실패로 합격자가 단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 지난해 가맹거래사업상담사 시험에 합격한 51명은 현행 제도로는 자격증을 따더라도 관련 직종에 근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올초 연수를 집단 거부해 정부를 당혹케 한 일도 있다. 정부가 공인하는 각종 자격증의 신설과 사후관리, 운영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들이다. 현재 정부나 민간단체 등에서 발급하는 각종 자격증은 1천500여종으로 추산되고 있다. 변호사, 공인중개사, 워드프로세서 등 누구나 알 수 있는 자격증 외에 나전칠기를 이용해 생활용품을 만드는 패세공기능사, 교통량을 추정해 도로설계를 돕는 교통기사, 섬유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전문직인 제포기술사 등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자격증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 가운데 노동부 등 정부부처가 관리하는 국가자격증만 693종에 달하며, 특히 민간자격증은 국가가 공인한 51종을 포함해 600~1천여종으로 추정될 뿐 정부도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뒤늦게 교육인적자원부, 노동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 2월부터 민간자격증 실태 파악에 나섰으나 대부분 자격증 운영기관의 자율적인 보고에 의존하고 있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외환위기 이후 취업난이 심화되면서 불어닥친 `자격증 열풍'은 1999년 이후 매년 국가기술자격증 취득자 100만명 이상을 배출시켜 급기야 자격증 한두개 없는 취업준비생을 찾아보기 힘든 세태를 만들었다. 그러나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자격증은 관리부실로 인해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각종 사회문제까지 초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애초부터 노동시장의 수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채 일부 이익집단의 요구 등에 밀려 자격증을 무계획적으로 신설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 자격증 이름과 자격관리 단체만 다를 뿐 시험내용은 큰 차이 없어 한국산업인력공단 산하 중앙고용정보원 강순희 원장은 "국내 상당수의 자격증은 기술과 노동시장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가 현장의 목소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니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감사원은 2003년 35개 자격증 관련 기관에 대한 감사에서 정부의 무분별한 자격증 신설과 무책임한 관리 실태를 적발했다. 감사 결과 2002년 신설된 33개 자격증 가운데 절반 이상인 17개 종목이 용역비 부족을 이유로 자격증 신설을 위해 의무적으로 실시토록 하고 있는 업계 설문조사 등을 생략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중복되는 자격증도 80개에 달했으며, 직물가공기능사 등 36개 자격증은 산업변화로 인해 최근에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 것으로 지적돼 이후 정부가 일부 개선안을 내놨다. 그나마 국가자격증은 정부가 3년 단위로 정비계획을 수립토록 하는 등 나름대로 대책이 나오고 있지만 민간자격증은 그렇지 못해 문제가 훨씬 심각한 실정이다. 일례로 교육부가 공인하는 민간자격증 7종 가운데 4종이 90년대 말부터 유행처럼 등장한 한자관련 자격증인데, 자격증 이름과 자격관리 단체만 다를 뿐 시험내용은 큰 차이가 없다. 또 정보통신부 관할의 PC활용능력평가시험(PCT), 정보기술자격시험(ITQ), 디지털정보활용능력(DIAT) 등도 시험과목이 대부분 중복돼 명확하게 구분하기 힘들다고 수험준비생들은 지적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교육부 관계자는 "명목상 국가공인 민간자격증이지만 정부출연기관인 직업능력개발원에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면 관계부처는 별다른 검증없이 공인해주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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