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호텔 이미지 벗고 갖가지 서비스로 차별화 시켜

불황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연인들의 호주머니도 가벼지는 것은 당연한 사실. 어디 연인들뿐이랴? 친구를 한 번 만나더라도 우선은 돈이 있어야 한다. 돈 걱정없이 맘놓고 즐길 수 있는 곳은 어디 없을까? 실속도 있으면 금상첨화. 성인들만의 실속만점 놀이터를 알고 있는지...최고의 성인들 놀이터, 모텔을 소개한다. 서울 종로에 위치한 한 모텔의 프런트 앞. 시간은 낮 시간대였다. 네 커플이 의자에 앉아 방이 비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들의 얼굴에서는 전혀 부끄러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불과 2~3년 전만 하더라도 사방을 살피다가 보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고개를 숙이고 모텔 입구로 들어가는 커플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만난 커플은 당당하게 얼굴을 들고, 다른 커플의 모습을 살펴보는 등 주위 시선에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입실을 기다리며 객실에 들어가서 볼 DVD를 골랐다. 요새 많은 모텔은 5.1채널 오디오와 대형스크린, DVD플레이어 등 DVD방에 못지 않은 시설을 갖춰놓고 있기 때문에 종종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고 한다. 이들의 손에는 과자나 치킨, 피자 등이 담긴 봉지가 들려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먹을 간식거리다. 비디오방이나 DVD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 모텔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말이 되면 대기 커플은 더욱 늘어난다. 토요일 밤이 되면 10쌍 이상이 방이 비기를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진다는 것. 먼저 온 커플에게 순서를 양보하는 ‘에티켓’까지 보인다는 것이 모텔 관계자의 귀띔이다. ■ 이들은 왜 모텔을 찾을까? 서울에 사는 N씨(23 · 여)는 직장인인 남자친구와 한달에 네 번 정도 모텔을 찾는다. 이유는 한 가지, 편해서다. 모텔에 가면 지역에 따라 2편에서 3편까지 DVD를 무료로 볼 수 있다. 음료도 다섯 개 정도가 냉장고에 들어 있다. 초고속 인터넷이 깔린 컴퓨터도 있어 PC방처럼 컴퓨터 오락을 즐길 수 있다. 게다가 일반 욕조 대신 거품이 발생하는 욕조를 설치하고 사우나를 즐길 수 있는 곳도 많다. 가격도 2만~3만원이면 5~6시간 다양한 서비스를 마음껏 누릴 수 있기 때문에 바깥에서 만나 즐기는 것보다 저렴할 때가 많다. 물론 DVD방이나 PC방, 찜질방 등 각종 시설을 따로 이용할 수도 있지만 시간에 쫓긴다는 단점 이외에도 비싸고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단둘이 오붓하게 지내고 싶은 커플에게 모텔은 최상의 데이트 장소가 된다. 여기에 사랑도 나눌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N씨는 모텔을 이용하고 난 뒤 ‘영화-밥-차-술’이라는 뻔한 데이트를 하지 않게 됐다. 영화관은 시간을 지켜야 하고, 주차료도 내야 한다. 불편함과 비용도 문제지만, 요새 같은 더위라면 바깥에 나가고 싶지 않다. 이런 까닭에 피곤하거나 특별한 날이나 갈 곳이 없는 날이면 각종 편의시설과 시원한 에어컨이 기다리는 모텔로 간다. N씨는 모텔에 재미를 붙인 후에는 새로운 모텔을 찾아 돌아다닌다. 요새 모텔은 갖가지 시설과 분위기를 갖춰놓고 있기 때문에 곳곳의 모텔을 돌아다니는 것도 쏠쏠한 재미라고 한다. ■ 창피할 이유가 없다 대학생인 H씨(25 ? 남)도 모텔에 가는 것을 데이트 코스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 “여행을 가지 않는 한 서울에서 즐길 만한 데이트 코스가 많지 않잖아요. 경제적인 면 등을 고려하면 이런 모텔을 이용하는 것도 나름대로 바람직하다고 봅니다”라는 H씨는 이런 까닭에 모텔에 들어가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는다. 창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음식점 들어갔다가 나오듯, 편하게 들락날락한다. H씨가 모텔에서 하는 일은 다른 이와 다르지 않다. 뜨거운 날씨에 비오듯 흐르는 땀을 씻고 난 뒤 싸갖고 간 간식거리를 먹으며 DVD를 본다. 맥주 한잔 마시고 잠깐 눈을 붙이면 대실 시간은 금방 지난다. 지난해부터 이런 데이트를 한달에 두세번 정도 즐긴다. H씨는 요새 가까운 친구들에게 모텔의 장점을 강조하고 다닌다. 지난해만 해도 친구의 여자친구가 있는 자리에서 ‘○○모텔이 좋다. 한번 가봐라’라고 얘기를 하면 면박을 주던 친구들이 요새는 ‘그곳이 어디냐’고 묻는다. 이런 친구들과 맞장구를 치며 그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을 느끼고 있다. 남자친구가 전경인 Y씨(20 · 여)는 남자친구가 외출을 나오는 일요일마다 모텔에 놀러간다. 부모님이나 어른들에게는 모텔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못하지만, 친구들에게는 적극 홍보하고 다닌다. 좋은 모텔을 알려주면 친구도 그 모텔에 놀러가는 식이다. Y씨는 여자친구들끼리 놀러가기도 한다. 밤새 놀자는 친구 두셋이 모이면 MT를 가는 기분으로 술을 사들고 모텔로 간다. 고성방가만 하지 않는다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부 모텔은 술을 마시러 오는 이들을 위해 큰 방에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까지 구비해놓고 있다. 최신 시설을 갖춰서일까. 서울에 사는 J씨(25 · 여)는 모텔이 집보다 더 편안하다고 느낀다. 집에서는 식구들이나 옆집을 신경써야 하지만 모텔방에서는 신경쓸 것 없이 마음놓고 지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집에서는 누리기 힘든 갖가지 문화시설이 갖춰져 있으니 좋다. 장씨는 모텔 시설 중 거품 욕조를 좋아한다. 남자친구와 함께 들어가기도 하고 혼자 들어가기도 한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이용하지 않아 위생적이라는 것이다. ■ ‘러브호텔’의 이미지 탈피 러브호텔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모텔이 젊은이에게 놀이터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차별화를 꾀한 모텔이 늘어나면서부터다. 지난해 초 서울 강남의 일부 모텔을 중심으로 생겨난 차별화 전략이 그 시작이었다. 러브호텔의 이미지를 벗어난 개성있는 모텔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9월 성매매 단속의 여파가 모텔에 미치면서, 이런 움직임은 가속됐다. 한 인터넷 카페(모텔 관련) 운영자 L씨에 따르면 살아남기 위해 리모델링을 계획하거나, 경영컨설팅 주문에서부터 유명한 모텔을 소개해 달라는 등의 러브호텔이 많다고 한다. 차별화된 모텔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은 인터넷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모텔 관련 인터넷 카페 회원들은 모텔을 이용한 뒤 후기와 사진을 올린다. “2인용 월풀 욕조에 깔끔한 장식이 맘에 들었습니다. 42인치 티비 역시 맘에 들더군요. 욕실에 TV가 있어 너무 좋았어요. 여자친구가 너무 좋아해서 기쁩니다.”라는 식이다. 차별화했던 서비스가 공통적인 서비스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이다. 현재 젊은이가 ‘놀러다니는’ 차별화된 모텔, 즉 부티크텔이나 이벤트텔은 서울 역삼 · 종로지역, 경기 지방에 많다. 초고속 인터넷이 연결된 PC는 기본이고 최신 영화를 대형스크린으로 볼 수 있게 홈시어터 시스템을 갖추거나 플레이스테이션과 같은 오락기기, 거품욕조 등을 갖춘 곳도 많다. 심지어 방안에 작은 수영장을 갖춘 모텔도 있다. 수원의 메리트호텔은 이런 객실을 6개 운영하고 있다. 일부 모텔에서는 분위기로 승부한다. 객실마다 색깔이나 국가 등 테마를 줘, 일반 모텔과는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벤트텔에서는 하루에 두 건 정도 이벤트를 진행한다. 풍선을 매달고 바닥과 욕조에는 장미를 깔아 특별함을 강조한다. 와인과 케이크 등 기념할 만한 날에 빠질 수 없는 소품도 제공한다. 모텔업계에서 16년 동안 종사한 한 모텔 관계자는 “한 장소에서 다양한 것을 즐기려는 젊은이의 욕구와 이를 모텔 운영에 적용한 모텔업계가 만들어낸 것이 모텔의 놀이터화”라며 “성의식이 개방됨에 따라 이런 현상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현상은 젊은 층으로 갈수록 확대된다는 것이 업계나 소비자의 공통된 이야기다. 대학 졸업반인 Y씨(27)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문화는 상상하기도 힘들었다”며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모텔에 드나드는 것을 보면 ‘사회가 많이 바뀌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 모텔의 변천사 > 우리나라 모텔의 원조는 1980년대 중반에 생겨난 ‘파크텔’이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관광객을 위한 숙박시설 고급화를 유도한 정부의 정책에 따라 여관 · 여인숙은 ○○파크텔이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이후 ‘불륜’을 즐기려는 이들을 유치하면서 파크텔은 대실 위주로 영업했다. 곧 러브호텔로 불리기 시작한다. 1990년대에 이르면서 파크텔의 이름은 ‘모텔’로 바뀐다. 일본에서 러브호텔을 뜻하는 ‘모텔’이 수입된 것이다. ‘물침대 완비’나 ‘번호판 가림 서비스’ 등 현수막을 내걸며 본격적인 영업에 나섰다. 러브호텔은 주택가까지 파고들었고, 풍기문란의 주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1990년대 말에는 전국적인 러브호텔 반대운동에 부딪혔다. 여기에 지난해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직 ·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매출이 대폭 줄어 경매로 나오는 모텔도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제 모텔은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손님을 끌기 위해 인테리어와 시설을 고급으로 바꾸고 인터넷으로 홍보한다. 일부 모텔업계 관계자들은 들어선 지 십 수년이 지난 일급 호텔보다 달라진 모텔의 시설이 오히려 낫다고 자부한다. 이들은 변화를 계속하고 있다. 한쪽이 변화를 선도하면 다른 쪽에서 곧 따라와 결국 널리 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모텔업계 관계자들은 어떻게 특성화할지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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